인터뷰

20살 서무로 시작, 30대 마케팅 책임자 되기까지 한 노력

더 비비드 2024. 7. 2. 13:45
생도라지, 녹용, 산산배양근 넣은 건강보조식품 개발기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이것 살까, 말까’ 망설여질 때 실제 그 물건을 써본 사람을 만나면 어느 쪽으로든 결정이 빨라진다. 사진이나 설명서에 미처 담을 수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과 감상, 평가야말로 구매를 결심하게 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척도가 될 수 있다.

광고나 협찬인 줄 알면서도 블로그·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라오는 사용후기를 참고하는 것 역시 같은 심리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포털 사이트 지식백과에 등재될 만큼 보편적인 마케팅 방법이 됐다. 잘론네츄럴 이정아 영업전략기획부장(37)은 국내 인플루언서의 인스타그램(SNS) 마케팅 1세대다.

직장의 신, 잘론네츄럴 이정아 영업전략기획부장. /더비비드

이 부장은 건강기능식품 ‘면역플러스’를 출시한 후 시장에 반응이 없자 인스타그램에서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팔로워 수가 많은 인플루언서가 제품을 먹어 본 후기를 SNS에 남기도록 했더니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고 1년에 10만병이 팔렸다. 이 부장에게 신제품을 기획하고 판매한 과정을 들었다.

◇사회(社會)생활 배우려 회사(會社)로

이 부장은 2004년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공부를 하기보단 빨리 회사에서 일을 배우고 싶었다. 그해 12월 다른 친구들이 한창 자유를 만끽할 때 한 중소기업의 사무보조 일자리를 얻었다. “진공포장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했습니다. 처음으로 어딘가에 소속돼 일한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생기더군요.”

20대 시절 이 부장. 한 중소기업에서 홈쇼핑 채널에 제품을 방송할 수 있도록 영업하고, 방송에서 어떤 시연 장면을 보여줄 것인지 기획하는 등 전략을 세웠다. /이정아 부장 제공

2개월 만에 정직원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나이가 어리면 성실성이 가장 큰 무기입니다. 스무 살 대학생이 일한다고 하면 아르바이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더니 높이 평가해주더고요. 그 전엔 서류 작업만 했었는데 정직원이 되고 부터 홈쇼핑 관련 업무를 맡았습니다.”

홈쇼핑 채널에 제품을 방송할 수 있도록 영업하고, 방송에서 어떤 시연 장면을 보여줄 것인지 기획하는 등 전략을 세웠다. 이불을 압축해 진공으로 포장하는 장면이 방송을 타자 매출 그래프가 가파르게 올랐다. 회사는 4개월간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유통·영업 분야에 흥미가 생길수록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문지식이 부족한 점도 항상 아쉬웠습니다.”

박람회 부스 디자인을 할 때 직접 목장갑을 끼고 장비를 다루기도 했다. /이정아 부장 제공

2008년 첫 직장을 나와 멀티미디어디자인·경영학과로 대학에 재입학했다. 학업과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다. “옛 전공을 살려 온라인유통전문회사인 주식회사 주영의 디자인팀에 입사했습니다. 면접 자리에서 ‘디자인에 대한 모든 것을 해 보고 싶다’고 했더니 ‘원 없이 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입사를 결심했어요.”

쇼핑몰 홈페이지와 제품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것까지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박람회 부스 디자인까지 제게 맡기실 줄은 몰랐어요. 인테리어는 3D적인 영역이라 낯설었죠. 사람들의 동선과 공간감·조명 등을 신경써야 했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을 줬을까?’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요. 지나고 보니 장기적으로 제품 패키징이나 마케팅 분야에서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죠.”

◇'폭망’한 제품, 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반전

주식회사 주영은 2012년 잘론네츄럴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 했다. “보디빌더 출신인 대표님이 건강 관련 분야로 신사업을 꾸리신다는 말에 저도 따라나섰죠. 2014년에 디자이너가 아닌 ‘제품기획·유통 담당자’가 됐어요.

이정아 부장에게 떨어진 미션은 신제품 개발. 국내에서 판매되는 다이어트 보조식품, 단백질 식품 등 건강기능식품 시장 조사부터 했다.

직원들과 함께 제조공장에서. 맨 왼쪽이 이 부장이다. /이정아 부장 제공

1. 평소 관심분야에서 한걸음만 더 들어가라(아이디어 기획, 2015년 6월)

화학성분을 배제하고 자연유래성분만으로 건강기능식품을 만들기로 했다. 뱃속 아이의 건강을 염려해 감기약 한 알 제대로 먹지 못하는 임신부나 영유아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제품이어야 했다.

“‘세 살 감기 평생 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생애주기를 통틀어 가장 병원에 많이 가는 시기가 돌 전후예요. 돌이 지나면 엄마로부터 받은 자가면역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이 시기의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어요.”

좋은 품질의 수세미 원물을 구하기 위해 전남 해남군, 충남 서천군 농가를 찾았다. /이정아 부장 제공

2. 좋은 원물에서 좋은 제품이 나온다(아이디어 실행, 2015년 10월~2016년 8월, 11개월)

잘 익은 수박을 갈아야 맛 좋은 수박주스가 나온다. 애초에 화학성분을 일절 넣지 않기로 원칙을 세웠기에, 양질의 원물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됐다. 동·서양의 논문을 뒤져보며 원재료 후보군을 추렸다. 유럽에서 천연감기약으로 쓰이는 엘더베리(산딸기의 한 종류)와 우리나라 동의보감에서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는 데 썼다고 알려진 수세미를 배합하기로 했다.

“진짜 유기농으로 재배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배·수확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유기농 인증 관련 서류 일체를 받아 검토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고 건강하게 재배하는 농가를 가 보면 꼭 그 농부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있어요. ‘당신만의 노하우가 무엇이냐?’ 물었을 때 주저한다면 십중팔구는 유기농 기준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면역플러스 수출길을 뚫어보겠다며 중국에서 새벽 3시까지 미팅한 적도 있다. /이정아 부장 제공

3. 국내 최초로 시도한 마케팅 방법 (제품 출시, 2017년 3월)

2017년 3월 ‘면역플러스’라는 시럽형 건강기능식품을 출시했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소비자가 당연히 알아봐 줄 것이란 기대는 금세 무너졌다. “1~2년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차라리 욕이라도 들었으면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대기업 유통채널에 입점하기 위해 본사로 찾아가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고, 수출길을 뚫어보겠다며 중국에서 새벽 3시까지 미팅한 적도 있어요. 그날 오전7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면역플러스를 한 번 먹어본 소비자라면 언제든 다시 찾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SNS 인플루언서에게 제품을 제공해 먹어보고 그 후기를 남기도록 하는 마케팅을 시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처음 시도한 사례예요.”

면역플러스 SNS 인플루언서 마케팅 사례. /이정아 부장 제공

결과는 대박이었다. “SNS에 인플루언서 외에도 실제 소비자의 후기가 이어졌습니다. 임신을 한 상태라 약을 먹지 못해 한 달간 기침을 달고 살았는데 면역플러스를 먹고 증상이 가라앉았다는 사례가 대표적이죠. 별도의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퍼지는 입소문 덕에 지금까지도 1년에 10만병씩 꾸준히 판매되고 있습니다.”

4.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불리지 않기로 했다(신제품 출시, 2022년 1월)

2020년 어느덧 이 부장은 제품기획팀·디자인팀·영업부·마케팅팀·전략기획팀 등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그룹장·CBO의 자리까지 올랐다. 이 부장에게는 또 한 번 신제품 개발 미션이 주어졌다. “먼저 잘론네츄럴에서 만드는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봤어요. 분명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20년 이 부장은 제품기획팀·디자인팀·영업부·마케팅팀·전략기획팀 등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그룹장·CBO의 자리까지 올랐다. /이정아 부장 제공

베스트 셀러 중 하나인 배·도라지즙을 시선을 달리해 보니 새로운 시장이 보였다. “감기 등 호흡기 질환에 취약한 어린이를 위한 상품인데요. 어린이만큼이나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중장년층·노년층을 위한 제품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쌍화탕 등의 자양강장제에 맛을 내기 위해 들어간 화학첨가물이 수십가지입니다. 그걸 대체할 제품을 만들기로 했어요. 2021년 가을에 아이디어를 냈고 바로 원물부터 찾아 나섰죠.”

주먹만 한 도라지로는 부족했다. “비슷한 다른 제품들에서는 주로 3년근 중국산 도라지를 쓰는데 강원도에서 재배되는 5년근 약도라지는 크기부터 남다르더군요. 팔뚝만 한 굵기의 도라지를 보는 순간 ‘여기다’ 싶었습니다.”

강원도의 한 농가에서 팔뚝만 한 굵기의 5년근 약도라지를 찾았다. /이정아 부장 제공

2022년 1월 ‘천기팔팔’을 출시했다. 전략적으로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받지 않았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건강기능식품 인증요건으로 아연·비타민 등의 성분이 들어가도록 하는 규정을 뒀는데요. 그런 특정 성분에 집중하기보다 식물의 유효한 성분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김오곤 한의사 등의 자문을 얻어 만들었습니다.”

생도라지 외에 녹용, 산삼 배양근, 8가지 한방 재료 등을 더했다. 배·모과·감초·대추·벌꿀 등을 더해 맛도 살렸다. 설탕, 색소 등 인공첨가물은 넣지 않았다. 이정아 부장은 “쉽게 피곤해지는 사람이나 체력 저하로 고민하는 사람을 타깃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씩 지방으로 출장을 다닌다. “지난 7월에는 백도라지와 청귤·레몬 농가가 있는 제주도에 1박 2일로 혼자 배낭 하나 들고 다녀왔고요. 최근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 강원도 영동에 다녀왔습니다.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데 하루 정도 미룰 수 없냐며 걱정하는 가족들을 뒤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원물 공급이 하루 이틀만 늦어져도 제품 생산은 한 두 달이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천기팔팔’은 전략적으로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받지 않았다. /더비비드

◇고른 평지보다 첩첩산중이 낫다

이 부장은 올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8년이 흘렀다. 아직도 매일 첩첩산중에 있는 기분이다. “한 제품을 만드는 데에만 수십번 고비가 찾아와요. 원료 수급 문제가 해결되면 유통 전략을 짜야 하고, 판매채널에 따른 수수료를 결정하는 등 매 단계가 큰 산처럼 느껴집니다. 사회초년생 시절엔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내려놓는 법을 터득했어요. 앞으로 나아가는 이상 다양한 문제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죠. 정체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요.”

이 부장은 올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8년이 흘렀다. /이정아 부장 제공

새로운 사원을 뽑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지원자는 역지사지가 몸에 밴 사람이다. “물건을 파는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품을 바라보는 자세는 부서를 막론하고 꼭 필요합니다. 디자이너는 어떻게 디자인해야 소비자의 눈길을 끌지 생각해야 하고, 영업직군은 어떻게 말해야 상대가 공감하고 제품을 취하고 싶을 것인지 고민해야 하죠. 당연한 것 같지만 의외로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지방 출장이 줄어들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유효성분 함량과 체내흡수율을 최대로 끌어올린 특허 물질을 활용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싶어요. 지방 출장이 줄어드는 만큼 연구소에서의 야근은 늘 수도 있겠지만요.”

이정아 잘론네츄럴 영업전략기획부장 주요 경력
- 2010년 온라인유통전문회사 주식회사 주영 입사
- 2012년 주식회사 주영, 업종 변경 및 잘론네츄럴 출범
- 2014년 잘론네츄럴 제품기획·유통 담당자로 신제품 개발
- 2017년 ‘면역플러스’ 출시 후 SNS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도
- 2018년 ‘면역플러스’ 연간 10만병 판매
- 2020년 영업전략기획부장·CBO(최고브랜드책임)로 승진
- 2021년 신제품 ‘천기팔팔’ 기획·개발
- 2022년 1월 ‘천기팔팔’ 출시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