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간 공대, 서른 넘어 하루 두 시간씩 공부해 얻은 직업

2024. 7. 2. 14:15인터뷰

늦깎이 대학 생활이 가져다준 군무원 합격증

 

마트 캐셔, 기술 컨설팅, 해외 취업, 자동차 정비사, 군무원까지.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남덕현씨. /더비비드

마트 캐셔, 기술 컨설팅, 해외 취업, 자동차 정비사, 군무원.

직업을 자주 바꾸는 사람을 ‘프로 이직러’라고 한다. ‘끈기 없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당사자들에 물으면 저마다 곧은 확신이 있다. 자타공인 프로 이직러였던 남덕현(37) 씨. 과거의 경험이 있어 지금의 일에 소중함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남덕현 씨를 만나 취업 여정을 들었다.

◇남부러운 것 없던 젊은 시절, 마음은 곪고 있었다

24살. 두 달 동안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마련한 호주행 비행기표가 인생을 바꿨다. “고등학생 때는 뚜렷한 꿈이 없었어요. 그저 수능 성적에 맞춰 안동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죠. 군대를 다녀오고서야 목표 없이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해외여행 중인 청소년이 방문한 국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하는 제도)를 다녀왔습니다. 낮에는 한인 마트 캐셔로, 저녁에는 식당에서 일하며 틈틈이 영어를 배우고 여행을 다녔죠.”

20대 때 여러곳을 여행하며 경험을 쌓았다. /남덕현 씨 제공

한국으로 돌아와 편입 공부에 몰두했다. “고등학생 때는 최선을 다해서 수험 생활을 해보지 않았어요. 공부하다 코피 터지는 경험이 없었죠. 해외에 나가 열심히 사는 한국 친구들을 보며 자극받았습니다. 저도 제 역량만큼 공부해보고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좋은 곳에 취업하고 싶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고요. 상경해 누나 집에 얹혀살면서 1년 내내 책상에 붙어살았어요. 2010년에 국민대 전자공학과로 일반 편입했죠.”

첫 인턴생활 때 자동차 산업에 입문했다. “독일계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6개월간 인턴생활을 했어요. 자동차 센서와 섀시 관련 부서에서 일했죠. 농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경운기와 같은 농기계를 많이 접해서인지 일이 적성에 맞았어요. 하지만 당시 신규 채용 정원이 없어 정규직으로 전환은 안 됐어요.”

2013년 취직한 첫 직장은 외국계 국제 표준 인증 기업이었다. “신제품이 ISO(국제 표준화 기구)의 국제 표준 규격에 맞는지 검증하고 인증해주는 다국적 기업이었습니다. 인턴 경험을 살려 자동차안전인증, 산업안전인증 규격을 검사하고 컨설팅하는 업무를 했어요.”

(왼쪽부터) 현재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남 씨와 직장 동료들, 작년까지 일했던 차량 정비사로 근무할 당시 모습. /남덕현 씨 제공

안정적인 삶이 이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인증 규격에 대해 공부하고 실험하는 건 재밌었어요. 그런데 컨설팅 업무가 문제였습니다. 자료를 만들어 발표하는 일이 적성에 안 맞았죠. 클라이언트들과 회식도 잦았어요. 4년 동안 점점 지쳐갔고, 결국 번아웃(Burnout: 심신이 지친 상태)이 왔습니다.”

번아웃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도 했다. “퇴사 후 중국과 독일에 머무르며 일자리를 구하기도 했어요. 근무 장소를 바꿨지만, 오히려 더 힘들었어요. 언어장벽이 컸고, 인종차별도 겪었어요. 체중이 59kg까지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했스빈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퇴사하고 귀국했습니다.”

◇만학도의 길로 입문

적성을 찾아 다양한 경험을 한 남덕현 씨. 돌고 돌아왔지만 지난 삶에 후회는 없다 한다. /더비비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마음을 다잡았다. 다니던 학원에서 의외의 인연을 만났다. “자동차는 좋았지만 다시 컨설팅 업무를 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런데 경력이 기술 컨설팅 분야로 쌓이다 보니 다른 분야로의 이직이 쉽지 않았죠. 막막했어요. 당시 취미 삼아 다니던 독일어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가 한국폴리텍대 학생이었어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더니 1년 짜리 하이테크과정을 추천하더군요.”

2020년 3월, 한국폴리텍대학 화성캠퍼스 스마트자동차과에 입학했다. 세 번째 대학이다. “1년 과정이라 시간과 비용의 부담이 적었고, 찾다 보니 스마트자동차과가 있어 이전 직장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 번째 대학 스마트자동과에서 공부할 때 필기 노트. /더비비드

다시 신입생이 되자 비장해졌다. “스무 살 처음 대학에 갔을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놀 생각에 들떠 있었어요. 하지만 35살에 대학에 입학하니 마음가짐부터 달라졌습니다. 최대한 열심히 공부해 빨리 방황을 끝내고 이직에 성공하고 싶었죠. 자동차 엔진, 섀시 등 주요 부품에 대한 기본 정비 기술부터, 진단법, 센서와 자율주행 기술 습득, 컴퓨터 모델링 등 이론과 실기 수업을 병행했어요. 그랬더니 자동차를 더 좋아하게 됐죠. 특히 정비 실습이 제일 좋았습니다. 자동차의 문제점을 살펴 고쳤을 때 희열을 느꼈죠.”

◇무슨 일 있더라도 매일 2시간씩 공부

하이테크과정을 마치고 자동차 정비사가 됐다. “영국 자동차 브랜드의 공인 정비소 엔지니어로 입사했어요. 정비 업계는 현장에서 교육받으면서 일을 배우다 보니 젊은 친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어서 걱정했는데요.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셔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반년 정도 정비사 생활을 하다 보니 산업의 한계를 느꼈다. “친환경 차가 늘면서 전기차 수리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한 반면,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수요는 줄었어요. 전기차는 고전압이라 숙련된 엔지니어가 다뤄야 해요. 그러면서 전기차는 소모품이 많지 않고 구조가 비교적 단순해서, 많은 엔지니어가 필요하진 않아요. 정말 실력 있는 소수만 살아남는 시장인 겁니다. 이 업계에서 36살에 시작한 제가 경쟁력을 발휘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죠.”

마지막 직업이 될지 모르는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남덕현 씨. /남덕현 씨 제공

안정적인 직장을 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군무원’이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군부대에서 일하는 비군인 신분의 공무원이죠. 알아보니 마침 육군차량직을 선발하더군요. 군용차량을 수리하는 자리인데, 사기업 엔지니어보다 고용 안정성이 있으니 도전 안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8개월간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뒷심을 발휘했다. “공무원 시험을 치르기로 결심한 날부터 퇴근 후 매일 2시간 이상 공부했어요. 야근이나 회식이 있는 날도 예외 없었죠. 한국사, 국어, 자동차 공학, 정비 과목의 전체 공부량을 공부할 수 있는 날의 수로 쪼개 할당량만큼 끝내고 잤어요. 주말에는 그 주에 공부한 내용을 다시 복습했고요. 정비 부분은 근무하며 실습한 셈이라 기억에 잘 남았던 게 필기 합격에 주효했어요.”

◇돌고 돌아 찾은 적성에 맞는 일

남 씨는 2021년 12월 육군차량직 군무원으로 임용돼 근무 중이다. /더비비드

2021년 12월 육군차량직 군무원으로 임용됐다. “과천의 군부대로 배정돼 근무하고 있습니다. 부대 내 전투차량과 상용차를 정비하는 일이죠. 8시 30분에 출근해서 차량을 정비하고, 오후 4시부터는 잔업이 없다면 개인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요즘에는 한국사능력시험 1급 공부를 하는 데 시간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돌고 돌아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 기분이다. “직장생활에 잘 적응하고 나면 연차에 따른 승진 전에 7급 군무원 시험에 먼저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 퇴근 이후에는 수영을 배우고 있어요.”

퇴근하고 여유를 가져본 게 10년 만이라고 했다. “꿈을 찾고 좋아하는 일을 찾기까지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 시간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힘든 시간을 지나 하루가 짧다고 느낄 정도로 즐겁거든요. ‘조금 더 참아보라’, ‘버텨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요. 현실에 안주했다면 지금의 성취감을 맛보지 못했을 겁니다. 조금 천천히 가면 어떤가요. 꾸준히 하고 싶은 걸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게 더 중요해요.”

/더비비드 X 한국폴리텍대학 공동기획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