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소셜펠로우 12-2기 코스모스랩·누비랩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요즘 스타트업은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 돈 잘 버는 건 물론이고, 사회 문제까지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업계 화두는 ‘탄소 저감’.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스타트업이 수익 창출과 동시에 환경 문제도 해결하겠다는데 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벤처에 투자금과 대기업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LG그룹은 매년 될성부른 떡잎을 미리 알아보고 점 찍어 둔다. LG소셜캠퍼스는 친환경 분야 사회적경제기업 지원 프로그램 ‘소셜펠로우’를 12년째 운영하고 있다. 업계에선 LG의 안목이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보증수표’로 통한다. LG소셜펠로우 지원 기업인 코스모스랩의 이주혁(34) 대표와 누비랩의 박범진(32) 리더를 만났다. 요즘 스타트업이 어떤 발상과 기술로 산업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지 들었다.
◇폭발없는 전기차 배터리, 한국 스타트업이 만든다
아연 금속전지 전문기업 코스모스랩은 전기차용 비발화성 배터리를 만든다. 전지 내부 전해액이 ‘물’인 수계 배터리다. 불이 붙을 수 없으니 폭발할 위험이 없다. 리튬을 활용한 전지보다 낮은 가격으로 만들 수 있고, 친환경 소재와 제조 공법을 활용해 탄소 저감에도 도움이 된다.
그간 수계 배터리에 대한 개발이 지지부진했다. 리튬 전지보다 에너지 저장 밀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같은 동력을 내기 위해 더 크고 무겁게 만들어야 했다.
코스모스랩은 지난 7월 리튬 전지에 견줄 만큼 에너지 저장 밀도가 높은 수계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 다른 차세대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형 리튬 전지보다 제품 수명, 충전 속도, 에너지 효율 등의 성능 지표에서 3배 이상 높은 성능을 보인다. 현재 연구개발을 마치고 제품 양산 작업을 하고 있다.
코스모스랩의 이주혁 대표는 충남대학교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광주과학기술원 환경공학 석사,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수계 배터리 전문가다. 한국화학연구원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5년 넘게 비발화성 배터리에 대해 연구하며 20개 이상의 기술 특허를 냈다. “연구를 거듭할수록 수계 배터리로 리튬 전지의 경제성과 성능을 뛰어넘을 수 있겠다고 확신했어요. 몸담고 있던 연구원의 연구 방향성이 달라지면서 직접 나와 회사를 차리게 됐죠.”
코스모스랩이 주목받는 이유는 공정의 경제성과 친환경성 때문이다. “전지의 주원료로 ‘아연’을 사용합니다. 매장량이 풍부한 광물로, 가격도 리튬 대비 8분의 1 수준이죠. 전지에 들어가는 전극의 소재는, 야자수·귤·바나나 껍질 등 폐목재를 태워 만든 활성 탄소를 기반으로 합니다. 코발트·망간·니켈 등 희귀 광물을 쓰지 않죠. 또 전극을 제조할 때 이산화탄소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원인이었던 유기용매를 사용하지 않아 리튬전지 대비 친환경적입니다.”
2021년 3월 설립한 이제 2년차 스타트업이지만 주목받는 ‘루키’로 떠올랐다. 지난 8월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되며 업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제조 기반 스타트업은 제품의 양산 가능성을 입증할 때 가장 어려움을 느낍니다. 제품 없이 기술만으로 투자사에 확신을 줘야 하니까요. LG소셜펠로우 선정 후 오픈 이노베이션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 기술 조언까지 받게 돼 너무 좋습니다.”
리튬이온전지를 대체하는 완전무결한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제조의 용이성, 공급망 확보 등 업계의 관성적인 이유로 리튬이온전지가 계속 사용돼왔어요. 새로운 기술이 더 뛰어나도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까진 배척하는 분위기죠. 기술력만 있다면 스타트업에선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연구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급식 먹고 식판 사진 매일 찍으면 벌어지는 일
푸드테크 기업 누비랩은 AI 푸드 스캐너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인다. 식사 전후로 식판을 스캔하면, 빅데이터로 학습시킨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잔반의 종류와 부피를 인식한다. 영양사는 매월 보고서를 통해 어떤 잔반이 얼마나 남는지 알 수 있다. 2018년 창업 이후 현재 130만건 이상의 음식 데이터를 확보했다. 음식물 종류 인식률과 부피 측정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박범진 리더는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가공식품 전문 기업에서 일했다. 같은 식품 업계지만 음식물을 생산하지 않고 ‘줄인다’는 발상에 반해 누비랩에 합류했다. “알고 보니 음식물 쓰레기가 이산화탄소 배출에 엄청난 영향을 주더라고요. 전 세계 음식의 3분의 1은 그대로 버려져요. 전체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량 중 8%가 음식물 쓰레기와 연관돼 있을 정도죠. 너무 많이 만들어 다 못 먹고 버린다는 거죠.”
경험에 의존하던 급식 산업의 한계점을 짚어 냈다. “영양사들이 식단을 설계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 점이 바로 ‘소비량 예측’입니다. 예측이 힘드니 항상 넉넉하게 음식을 만드는 게 업계 관행이 됐죠. 객관적 데이터가 없으니 운영비도 줄이기 힘들고, 지나친 음식물 쓰레기가 나와요.”
누비랩의 푸드 스캐너를 이용해 잔반 데이터를 확보하면 적정 생산량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 멸치볶음이 5kg씩 남는다면, 생산량을 줄이면 되죠. 보고서에는 요일, 날씨별 식사 인원 등 생산량과 관련된 다른 변수도 고려한 생산예측량을 제공해 영양사의 판단을 돕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국 30곳의 학교 등 공공 영억을 위주로 입지를 다졌다. LG소셜펠로우 선정 이후 많은 기업이 ESG 정책의 일환으로 누비랩의 서비스를 찾고 있다. “최근 국내 통신사, IT 기업 등 대기업의 구내식당에도 누비랩의 푸드 스캐너를 설치했습니다.”
해외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LG소셜캠퍼스에서 푸드테크 분야 여러 전문가와 연결해주셔서 기술적으로도 성장하는 계기가 됐어요. 기술 개발에 매진하면서 놓쳤던 마케팅과 해외 법률 교육도 제공받아 꾸준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 유치를 마쳤다. 푸드테크를 넘어서 헬스케어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잔반 분석에 국한돼있지만, 개인별 식사 기록을 활용해 식습관을 관리할 수 있는 앱 서비스도 출시할 계획입니다. 사진만 찍으면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거죠. 당뇨환자 등 치료 목적으로 식단 관리가 필요한 수요에 대응해 헬스케어·푸드테크 종합 기업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LG전자·LG화학은 2011년부터 LG소셜캠퍼스를 운영하면서, 환경문제 해결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은 사회적경제기업의 성장을 돕고 있다.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된 기업은 최대 5000만원의 금융지원, 기업별 맞춤형 컨설팅, 기업 연계 등을 지원받는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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