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식 세라미 이사의 직물 가업 승계기
오픈마켓 전성시대입니다.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고, 직장 다니면서 투잡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오픈마켓 셀러를 꿈꾸는데요. 하지만 막상 실행하려면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성공한 오픈마켓 셀러들을 만나 노하우를 들어 보는 ‘나도 될 수 있다, 성공 셀러’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직물 가공⋅제조기업 세라미의 금동식(42) 이사는 사장인 어머니와 함께 가업을 운영한다. 9년째 경영과 제품 개발을 도맡았는데, 어머니에게서 ‘가업을 물려주겠다’는 말을 들은 건 올해 초다.
금 이사가 시도한 건 판로 확대다. 패브릭 제조와 오프라인 도매 유통에 국한돼있던 사업 영역을 온라인 소매 판매로까지 넓힌 것. 전략이 적중했다. 세라미는 다른 직물 제조 업체들이 폐업하는 동안 오히려 몸집을 불려 연매출 20억원을 올리고 있다. 금동식 이사를 만나 가업의 세대교체를 이룬 비법을 들었다.
◇집 한 채 날린 사업 도전
어린 시절 기억 속 어머니는 항상 바빴다. 의상실을 운영하던 이모의 권유로 1986년 강동구 길동에 직물점을 차린 어머니는 방석·베개 커버·매트 등 생활 직물 용품을 직접 만들었다. “사업 수완이 좋으셨어요. 제품을 들고 명동 신세계백화점에 직접 찾아가 제품을 홍보하고 납품 계약을 따오시기도 했죠.”
공부 잘하는 누나와 음악을 전공했던 여동생. 어머니의 감각은 아들이 물려받았다. 상명대학교 섬유디자인과에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디자인학부 200명 동기 중 남학생은 저 포함 4명뿐이었어요.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이 튀었어요. 보는 눈이 많으니 역설적으로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2007년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동안 영국 유학 생활도 했다.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돼 학업을 마치진 못했다. “사업을 하고 싶은데 그림 밖에 그릴 줄 몰랐어요. 디자인 경영 수업을 들으며 학업을 이어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아버지께서 갑자기 사고로 전신마비 진단을 받으셨어요. 방학마다 한국에 들어와 병간호를 함께 했어요. 공부에 전념하기 쉽지 않더군요.”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와 온라인 쇼핑몰 사업에 도전했다. “귀국 직후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다 우연히 온라인 생활 잡화 쇼핑몰을 운영하던 회사를 알게 됐어요. 사장님이 사업을 접으려 하길래 헐값에 인수했죠. 어머니의 패브릭 제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인수한 지 1년 만에 지하에 있던 사무실과 창고가 침수돼 큰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었다. “사무실이 서초구 방배동 지하에 있었는데, 강남 전역이 침수돼 사무실, 스튜디오, 창고가 모두 물에 잠겼어요. 창고에 두던 재고는 모두 버리게 됐죠. 논현동 쪽으로 사무실을 이전해 사업을 일으키려 했지만, 결국 2013년 사업을 접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파트도 한 채 날렸죠.”
◇어머니 회사 입사, 궂은일 다 해보고 느낀 점
세라미는 당시 임직원 10명으로, 소파 패드·앞치마 등 직물 제품을 개발해 만들어 납품하는 업체였다. 재래시장을 위주로 납품하고, 백화점 브랜드의 ODM(제품개발·생산) 프로젝트도 수주해 맡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는 더 이상 봉제 인력이 없어 부천으로 본사를 이전하고 연 매출 10억원 수준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연이은 실패로 낙담한 그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건 침구 제품 개발 프로젝트. 성과를 내면서 2014년 어머니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백화점 침구 브랜드에서 세라미에 ODM 제품 개발 의뢰가 왔어요. 바닥에도 깔 수 있고 매트리스 패드로도 활용할 수 있는 ‘워싱 패드’를 개발했죠. 반응이 좋아 개발 의뢰가 꾸준히 들어왔어요. 재래시장 위주의 판로를 백화점 중심 유통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죠.”
8년 동안 제품 개발부터 제조까지. 직물 제조 공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봤다. “제품 개발, 백화점 영업, 재래시장 영업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공장 청소부터 자투리 원단 정리, 단춧구멍 내기, 재단, 공업용 미싱까지 모든 일을 다 해봤어요. 회사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더라고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업무 전반을 경험해보면서 직원들에게 감사함을 느꼈죠. 지금의 직원분들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고 싶어졌어요.”
◇온라인 사업 전략과 생산 시설의 시너지
코로나19로 줄어든 오프라인 유통망을 체감했다. 면 마스크를 제조하며 버텼지만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판로 확보가 절실했다. “이젠 정말 온라인으로 판로를 넓혀야겠다고 판단했어요. 웹디자인도 배워보면서 온라인 유통망을 조사했죠.”
조사해보니 직접 쇼핑몰을 만들던 2010년대와는 산업 양상이 아주 달랐다. “오픈 마켓이 발달해 초기 자본을 들이지 않고 온라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쇼핑몰 운영에 실패했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죠. 2021년 12월, 이용자가 가장 많다고 알려진 쿠팡 마켓플레이스에 먼저 입점해보기로 했습니다.”
생산시설을 갖춘 기업의 장점을 십분 발휘했다. 제품을 모두 등록해보고 가장 반응이 좋은 제품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방석부터 소파 패드, 앞치마 등 100개의 상품을 모두 등록했습니다. 그 후 소비자의 반응을 기다렸죠.”
족히 몇 개월은 걸리겠거니 싶었는데, 한 달만에 매출이 나면서 제품군 인기도가 극명히 갈렸다. 오프라인 시장에선 반응이 별로 없었던 의외의 제품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앞치마였다. “유튜브에서 앞치마 수집이 취미인 연예인이 앞치마로 가득한 옷장을 소개하는 영상이 화제였어요. 세라미는 이미 다양한 디자인의 앞치마를 제작하고 있었고, 쿠팡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해있는 상태였죠. 지난 2월부터 본격적으로 반응이 오기 시작했어요.”
‘온라인 주력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앞치마는 주방용품인 동시에 패션 상품이기도 해요. 계절별로 소재와 디자인을 달리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죠. 세라미 제품은 리넨과 면을 혼방해서 제작하는데요. 계절별로 혼방 비율과 두께를 달리해 다양한 제품을 제작했습니다. 봄, 여름에는 플라워 패턴을 다양하게 제작하고, 가을, 겨울에는 체크무늬나 데님 소재를 활용해 출시하기도 했죠.”
하룻밤 사이에 주문이 수십 건씩 쌓인 경험도 했다. “지난 5월 오픈마켓의 무료노출 프로모션 기능의 덕을 크게 봤어요. 쿠팡의 앱 주요 구좌에 세라미의 제품을 노출할 수 있는 기능인데, 여름 인견 앞치마가 노출돼 잘 팔리더라고요. 주문량이 하루 만에 3배 뛰었죠. 생산망이 없었다면 난처했을 거예요. 디자인실과 공장이 붙어 있어 하루 만에 즉시 제작이 가능하기에 배송 일정을 맞출 수 있었죠.”
사용자 후기도 바로 반영했다. 제조기업의 또 다른 장점이다. “쿠팡은 제품을 사기 위해 앱에 접속하는 사용자가 대부분이에요. 제품을 사고 후기를 남기는 활성 고객도 그만큼 많더라고요. 덕분에 다양한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머니를 한 칸에서 두 칸으로 늘리고, 왼손잡이 사용자를 위해 앞치마 끈 고리를 양쪽에 내거나, 암홀 사이즈를 늘린 제품을 만든 것 모두 사용자 후기를 반영한 것들이죠.”
구매 데이터를 여러모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고객 연령대를 보니 30~50대 여성 고객이 가장 많았어요. 초기에는 마네킹을 이용해 상세페이지를 구성했는데요. 앞치마를 직접 입어 보고 싶은 구매자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접 모델을 고용해 앞치마 전 제품의 상세페이지를 모델 착용 사진으로 수정했죠. 앞치마를 입고 앉아 있을 때 어떤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모습은 어떤지 자세하게 담았습니다. 의류 쇼핑몰처럼요. 번거로운 작업이긴 한데, 이런 걸 자동으로 해주는 여러 기능이 있어서 손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기업 특징 정확히 알아야 신사업 도전 가능
올해 2월부터 시작한 온라인 사업의 매출은 다달이 20%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판로 수익 중 80%가 쿠팡 마켓플레이스에서 발생한다. 앞치마만 월 800건 정도 팔린다. 전체 기업 매출에서 온라인 사업의 점유율도 점점 늘고 있다. 빅사이즈 앞치마, 캠핑용 패딩 앞치마 등 이색적인 제품 출시를 통해 앞치마 전문 기업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고 있다.
가업을 이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건 겨우 1년 전. 기업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하고 온라인 사업에 도전한 것이 자신감의 토대가 됐다. “세라미는 제조시설을 갖추고 있어요. 수요에 맞는 공급이 가능해 재고 부담이 없죠. 소비자 의견을 반영해 생산 방향성도 즉각적으로 바꿀 수 있고요. 온라인 판매에 더 주력해 100년 이상 사랑 받는 직물 기업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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