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기의 아빠 자동차 부품 회사, 딸이 증권사 사표내고 연매출 60억원 탈바꿈

더 비비드 2024. 7. 1. 15:01
40세에 대학 다시 들어가 가업 승계


자동차 부품 제조 회사 케이제이테크노 주자경(42) 대표는 제조업계에서 보기 드물다는 여성 CEO로서 가업을 잇고 있다.

증권사에서 12년간 기업 투자 심사업무를 하다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를 대신해 2017년 대표 자리에 올랐다. 대표의 딸이 가업을 이었다는 편견 때문인지 처음엔 반기를 드는 임직원들이 있었다. 처음엔 임직원들의 대화 속 MCT 가공, CNC 선반, 밀링 등의 기본적인 용어조차 이해가 안 가 회의를 주도할 수도 없었다.

케이제이테크노 주자경 대표. /더비비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업이익은 점차 줄어드는 상태였다. 연매출이 10%씩 감소하던 위기의 상황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한국폴리텍대학에 입학했다. 제조 설비를 직접 만져보고 설계 이론을 배우면서 회사를 바라보는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학업과 병행하며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꺾이던 회사 매출을 60억원대로 키웠고 수익성도 회복하고 있다. 주 대표를 직접 만나 초보 사장의 성장기를 들었다.

◇숫자로 기업가치 평가할 수 있을까

200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통상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증권사에 취직했다. “성적 맞춰 대학에 입학했고, 전공에 맞춰 동들과 취업을 준비했어요. 새로운 분야의 직업을 선택할 생각은 못 했어요. 처음엔 증권사 지점에서 3년간 있다가, 본사 신용리스크팀에서 9년 동안 근무했어요. 기업의 재무제표와 산업군을 보고 기업 가치를 매겨 투자 승인을 위한 자료를 만드는 일을 했죠.”

대학생 시절 주 대표의 모습. /주자경 대표 제공

근무 12년 차. 한창 능력을 인정받던 시기에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주변에선 좋은 직업이라고 부러워하는데 막상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번 새로운 기업을 분석하다 보니 해당 기업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기업보고서를 만든다는 기분이 들었죠. 기업의 신용도나 안정성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면, 기업 내부 직원들의 생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일인데도요. 한번 그런 생각에 빠지니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더군요.”

주변을 돌아보니 기업을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께선 제가 한창 사회생활을 할 때 계속 기업을 이어받아 경영해보라는 권유를 하셨어요. 당시에는 한 귀로 듣고 흘렸습니다. 제 전문 분야도 아니고, 기업을 투자 가치적인 측면에서 바라봤지 직접 경영할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요.”

◇우물 안 개구리 깨닫고 퇴사

케이제이테크노 공장 전경. 자동차 부품을 제조한다. /케이제이테크노

2017년 아버지의 회사를 직접 가보곤 돌연 퇴사를 결심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전망을 살펴 보고, 아버지 회사의 재무제표를 분석하고 가봤습니다. 영업이익이 없는 상태라 수익성이 안 좋은 상태였죠. 직접 현장에 가보니 어줍잖은 생각이었더군요. 30명 남짓의 직원들, 열기로 뜨거운 공장, 쉼 없이 나르는 자재들을 보니 숫자로 표현되는 것 이상의 모습이 보였어요. 아버지께서 왜 사업을 계속하시는지에 대해 답답함을 느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어요.”

처음엔 주변의 못마땅한 시선이 있었다. “보통 기업의 2세 경영이라고 하면 ‘금수저’라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하지만 2017년 당시 케이제이테크노는 사업 전망이 안정적이지 않았어요. 전기차 시대로 전환되면서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이 줄어드는 상태였고, 특히 엔진과 조향에 관련된 부품을 만들던 기업이라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준비 안된 채 경영에 뛰어든 주 대표. 초반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더비비드

생각보다 빨리 기업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입사 1년 만에 대표가 됐어요. 사업을 이해하기 부족한 시간이죠. 회사가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사정과 재무 업무 정도만 파악한 정도였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한계를 체감했다. “영업력을 발휘해 몇몇 프로젝트를 수주해오기도 했습니다. 영업과 재무관리는 그럭저럭해냈지만, 제조기업인데 정작 사장이 제조업에 문외한인 상황이었죠. 솔직히 말하면, 회의에서 용어조차 잘 못 알아듣겠더군요. 이런 식이면 가업을 키우는 건 커녕 유지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툰 초보 사장, 40세에 두 번째 대학 입학

주 대표가 직접 공장 설비를 다루는 모습. /주자경 대표 제공

2020년, 생애 두 번째 대학에 입학했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 융합기계과에 입학했다. 30명 동기 중 40대 여자는 유일했다. “중요한 사업적 결정을 내릴 때 판단하기 어려웠어요. 상황에 따라 공부하고 일을 처리하다간 실수를 범할 것 같았습니다. 제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죠.”

산업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선반, 밀링, CNC 공작기계를 이용한 정밀 부품 가공과 2D, 3D CAD를 이용한 부품 설계, 그리고 각종 측정기를 이용한 정밀측정, 3D 스캐너를 이용한 역설계 및 프린팅 기술, 5축 가공기를 통한 정밀가공 등을 배웠습니다. 경영 수업과 다를 바 없었어요. 의학 드라마 속 알 수 없는 의학용어처럼 들리던 회의의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희열을 느꼈죠. 나중에는 직원들도 저를 진심으로 이해해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 또한 직원들의 노고를 잘 이해하게 됐고요.”

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 융합기계과 실습실 모습. /한국폴리텍대학

사업까지 병행하다 보니 상상 이상으로 바빴다. “교육과정이 촘촘하고 바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더 바빴어요. 오전에 등교해 수업을 마치면 빠르게 회사로 복귀해 주어진 업무를 마치고, 퇴근 시간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실습실에서 남은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코로나19로 가끔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내용을 다 복습하고 집에 갔죠.”
2022년 2월, 간신히 졸업했다. “직접 다녀보니 다른 어떤 곳과 견줄 수 없이 다들 열심히 공부하더군요. 늦게 시작했지만 다시 고3 수험생으로 돌아가 공부한 기분이었어요.”

◇받은 도움 베푸는 삶

대학에서 제조업에 대한 이론과 실무 지식을 쌓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더비비드

공부한 결과가 바로 드러났다. “경영을 맡은 이후 3개 사업을 추가로 수주했어요. 조향용 바퀴 축(샤프트), 볼스터드, 엔진 기어, 베어링 등 자동차 부품을 고객사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꺾이던 매출을 다시 돌려 유지할 수 있었고 수익성이 점차 나아지고 있습니다.”

제조업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로 임기응변 실력도 늘었다. “현장 직원분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 급한 발주 계약이 있어, 제가 직접 현장 생산 라인을 돌렸어요. 불량률이 올라 손실이 컸지만 제조 현장에 무지해 손을 놓고 있었다면 협력사에 납품도 제대로 못 했을 거예요.”

제조업을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기업을 다각도로 바라보게 됐다. “과거에는 단순히 자동차 부품 회사인 줄만 알고 경영을 시작했다면, 이제는 우리 회사의 공장 규모, 인력, 가공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됐습니다. 덕분에 신사업 수주를 위해 협력업체와 미팅을 할 때도 자동차 산업으로 분야를 가두지 않고 태양광, 건설 분야 등 철 가공이 필요한 곳이라면 열린 시각으로 신사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케이제이테크노 직원들과 주 대표의 모습. 30명의 임직원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주자경 대표 제공

경영 5년차, 직원들에 대한 애정은 더 깊어졌다.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어요.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내에 기숙사를 짓거나 사무실을 2층에서 1층으로 옮기기도 했죠. 직원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나니 보이더라고요.”

새로운 인연도 만들었다. “폴리텍대학에서 같이 공부한 동기도 새롭게 채용했습니다. 폴리텍 출신이라면 믿음이 가더라고요. 제가 직접 교육과정을 경험해봤으니까요. 사실 업계에선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폴리텍 출신이면 모셔가는 분위기입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극복했다. 진정한 ‘나’를 찾은 기분이다. “어느 때보다 삶을 주도적으로 산다는 기분이 들어요. 과거에는 타인의 평가와 사회적 기준이 곧 제 가치관인 줄 알고 살았어요. 그러다 보면 꼭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군요. 매너리즘을 극복하게 된 계기가 저한테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다시 학교에 입학하고 능동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삶의 가치를 새롭게 깨달았죠. 우선순위 1순위가 이제는 일이에요.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지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비비드 X 한국폴리텍대학 공동기획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