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가치 높은 화제의 미술 작품 한 데 모아
막 캠퍼스 울타리를 벗어난 취업 준비생은 여러 방면으로 미숙하다. 취업의 기본인 자기소개서, 이력서 하나 쓰는 데도 진땀을 뺀다. 취업 준비생을 대상으로 교육 비즈니스가 활성화된 이유다.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청년 작가들은 자신을 알리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진가를 알아줄 귀인을 만나는 데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이런 이유 때문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작가 문턱에도 도달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청년미술협회 설에덴(33) 대표는 고전하는 청년작가를 돕기 위해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설 대표를 만나 청년 작가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들었다.
◇재능 있어도 작가가 되지 못하는 현실 이유
청년미술협회는 청년 작가의 자립과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사단법인이다. 업계 관계자나 기업과 작가를 연계하는 등 청년 작가들이 다양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작가 활동 중 겪을 수 있는 법률적인 문제들을 자문해 주기도 한다. 현재는 ‘청년미술축제 아트그라운드 2022’를 준비 중이다. 이곳에서 진영, 이내 등 요즘 미술가에서 핫한 45명의 유망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시장에서 인정받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라 투자가치가 높은 그림이 많다.
그 무섭다는 90년생 백말띠다. 미술가 집안에서 나고 자라 자연스럽게 미대에 진학했다. 동국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 아시아문화예술진흥협회에서 근무하다가 창업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사단법인 청년미술협회의 대표이자 갤러리이든의 관장을 역임하고 있다. 사단법인을 운영하면서 중국 광저우 국제아트페어 한국지부장으로도 근무했다.
- 미대 출신인데, 작가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모든 사람이 전공에 맞춰 진로를 택하진 않잖아요. 미대생도 마찬가지예요. 제 경우 작품에 대한 이상은 높은데,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았어요. 작가 수준으로 잘 해야 할 당위도 못 찾았고요. 대신 다른 재능이 뛰어났어요. 바로 추진력이죠. 뭐든 마음먹으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아도 뛰어드는 성향이에요. 큰 결정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죠. 창업이든 사단법인 운영이든 고민이 많고 망설이는 성향이면 못하잖아요. 아무튼 이런 성향인데, 눈에 미술 시장의 숙제가 들어왔어요. 외면할 수가 없었죠.”
- 어떤 문제였나요.
“청년 작가들이 경제적 제약 때문에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있었어요. 수험생일 때 다녔던 미술 학원에서 실력이 뛰어난 선생님을 만났어요. 저만 선생님의 재능을 아는 게 아까울 정도였죠. 하지만 선생님은 작가로 활약하지 못했어요. 자본이 부족했거든요. 반면 같은 수강생 중 배경이 좋은 친구가 있었는데요. 재능이 자본과 맞물리니 톱스타가 되더라고요. 친구가 잘못 한 건 아니지만, 선생님이 안타까웠어요. 대학 입학을 하니 선생님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미대생이 많았어요. 능력이 뛰어나도 경제 문제 때문에 작업 활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죠. 안타까웠어요. 재능이 있는 누구나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청년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선택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2015년 아트포트라는 회사를 설립했어요. 청년 작가들에게 벽화 그리기 등의 부수입 창출 수단을 제공하는 회사였죠. 그림 잘 그리는 친구 중에 작업 활동을 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목적으로 취업하는 이들이 많은데요. 그나마 전공과 연관된 직업을 구하면 다행이지만 대다수가 그렇지 못합니다. 알다시피 조직에 몸담는 순간 작품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져요. 주객전도의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죠. ‘미술과 관련된 부업으로 돈을 조금이라도 벌게 되면 ‘작품 활동’이라는 끈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했어요.”
- 왜 계속하지 않았나요.
“제가 너무 공익적인 사람이더군요. 돈 버는 데 미숙했어요.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몰랐거든요. 인테리어 견적을 받을 때 보면 쓸데없이 정직한 사람이 있고, 마진을 적당히 남기는 사람이 있고 과도하게 남기는 사람도 있잖아요. 마진을 적당히 남겨야 시장의 선택을 받으면서도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데, 저는 그게 양심에 찔렸어요. 회사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더 큰 이윤을 안겨주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되니까 마음의 짐만 커져가더라고요. 이렇게 된 거 사단법인을 세워서 대놓고 공익적인 일을 해야겠다 싶었죠.”
◇미대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작가 되는 법’
2019년 사단법인 청년미술협회를 설립했다. 협회를 통해 청년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아트페어를 주기적으로 열 계획이었다. 2020년 사단법인 고유번호증을 발급받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치려던 찰나 불청객을 맞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가 방역지침을 강화하면서 많은 사람을 한데 모으는 행사를 주최하는 데 제약이 생긴 것이다.
- 사단법인을 설립하자마자 큰 위기를 맞았네요.
“2020년 문화서울역 284(구 서울역사)에서 ‘청년미술축제’를 열 계획이었어요. 이 행사를 기점으로 1년에 한 번씩 큰 아트페어를 추진할 생각이었죠.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서 그 장소를 대관 하는 데까지 성공했는데, 방역 지침으로 행사가 무한정 연기됐어요. 공공이 운영하는 장소라 정부 방침에 따라야 했거든요. 그때부터 주변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언론사로부터 취조에 가까운 취재를 당한 적도 있어요. ‘다른 미술 행사는 운영되는데, 왜 너희만 취소했냐’ 따져 묻는 듯한 질문이 들어왔죠. 보여줄 수 있는 건 공문뿐이었어요. 편취를 취한 것도 아니고, 저희도 큰 손실을 보고 있던 상황이라 속상했죠. 이대로 매장당할까 두려웠어요.”
- 힘든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요.
“협회의 초석을 갈고닦을 기회로 삼기로 했어요. 청년 작가들이 필요로 하는 걸 수렴해서 사업 내용을 기획했어요. 전시 큐레이팅, 동종업계 관계자 및 선배 작가와의 연계, 법률 자문 등 실무적인 지원책을 마련했죠. 무엇보다 청년 미술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많이 만들고 싶었어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했죠.”
- 강의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미대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요. 학교에서는 실용적인 것을 교육하지 않아요. 예컨대, 갤러리에 보여줄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는 청년 작가가 태반이에요. 그림 가격 정하는 법도 마찬가지예요. 내 그림의 가격을 따질 줄 모르는 사람이 70% 이상이죠. 어디에서도 안 알려주거든요. 교수님들조차 그림의 가격이 어떻게 산정되는지, 세상이 어떤 기준을 들이미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아요. 따로 질문하면 알려주겠지만, 물어보지 않았다고 모르는 게 당연한 건 아니잖아요. 학생을 프로 작가로 양성하는 게 학교의 몫인데 말이죠. 그래서 미대생들의 졸업 후 행보는 시행착오로 점철돼 있어요. 포트폴리오 제작법, 작품 가격 산정법 등 프로 작가가 되는 과정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강연을 통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갤러리 관장이 신규 작가 발굴하는 법
2022년 7월, 송파구 석촌호수 근처에 갤러리이든을 개관했다. 재능이 뛰어나지만 이름이 덜 알려진 청년 작가와 컬렉터의 접점이 되는 공간이다. 갤러리이든과 손잡은 작가는 이곳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다. 현재는 하정현 작가의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 신진 작가를 찾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주로 인스타그램에서 찾아요. 이미지 위주의 사회관계망서비스다 보니까 인스타그램 계정을 작업물을 한데 모아둔 포트폴리오처럼 활용하는 작가들이 많거든요. ‘#청년작가’, ‘#신진작가’ 등의 해시태그로 검색해서 일일이 찾아보죠.”
- 그다음에는요.
“작가노트를 꼼꼼하게 읽어봅니다. 작가노트란 작가가 작업을 할 때의 당위성을 정리한 글인데요. 한 장의 작업노트엔 기법 연구나 생각 발전 과정 등을 두고 몇 달을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담겨있어요. 작품 노트를 읽어보면 알아요. 수없이 많은 상념을 거치며 작품 활동을 했는지, 단순히 ‘잘 팔리는’ 주제나 기법을 집약해서 작품을 만든 후에 그림에 맞춰서 쓴 것인지를요. 저는 작품세계가 뚜렷하고 담고 있는 메시지가 강력한 작품을 선호해요.”
- 메시지에 치중하다 보면 수익성을 놓치지 않나요.
“사실 예술적인 것과 상업적인 것을 나누는 기준이 모호해요. 둘을 나누는 주체도 불분명하죠. 그보다는 ‘작가 본인의 생각이 명료하게 담겨있냐, 아니냐’로 작품 가치를 따지는 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생각이 결여된 채 그저 유행에 편승하는 건 예술성 없이 상업적이기만 한 게 맞습니다. 반대로 그저 잘나가고 잘 팔린다는 이유로 그 작품을 ‘상업적인 것’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어요. 유명세를 치르는 메커니즘도 알아야 합니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뚝심 있게 했을 때 대중들이 그를 알아보고,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상업적이면 예술적이지 않다’는 말도 일종의 편견인 셈이죠. 자신의 예술관에 충실했기에 선택받는다는 측면도 간과해선 안됩니다.”
- 미술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우선 장식적으로 아름다워요. 작가들이 공들여 만든 작품은 우리의 눈과 특정한 공간을 밝히는 힘을 지니고 있죠. 동시에 미술은 ‘시각화된 철학’이기도 합니다. 둘 중 어디에 주안점을 두는지에 따라 그림이 달라 보일 겁니다. 장식적으로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작품도 작가의 철학을 알고 접근했을 때 내 인생 작품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두 가치는 양자택일의 개념은 아니니 작품을 감상할 때 둘을 엮어서 보는 걸 추천합니다.”
◇절치부심 끝에 열리는 청년미술축제, 관전 포인트는
고생 끝에 낙이 왔다. 고대하는 일을 앞두고 있다. 오는 27일부터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봉갤러리빌딩에서 2부에 걸쳐 ‘청년미술축제 아트그라운드 2022′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현재 국내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청년작가 45명이 참여한다. 진영, 이내, 다니엘 신, 슈니따, 이민재, 박한지, 김송리, 권혜현, 이찬주, 한아름 등의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도 할 수 있다.
- 오래 기다렸던 행사를 개최하게 돼 기쁘겠어요.
“협회가 설립될 때만 해도 청년 작가를 대상으로 한 아트페어가 별로 없었는데 근래 많이 생기는 추세예요. 이런 행사는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해요. 보다 많은 작가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오는 일이잖아요. 신규 작가를 발굴해야 하는 갤러리에게도 효과적인 창구고요. 기회가 많아져야 작가도 작품 활동을 지속할 동력을 얻어요. 그 과정에서 마스터피스(걸작)가 탄생하고요. 대작은 일순간에 나오지 않으니까요. 소수라도 내 가치를 알아줘야 작가들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습니다. 아트그라운드는 나를 알아주는 소수와 작가를 연결시키는 기회이자 축제예요. 비슷한 행사가 활발하게 개최됐으면 합니다.”
- 이번 행사의 관전 포인트는요.
“진영 작가와 이내 작가를 모셨습니다. 컬렉터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분들이죠. 진영 작가의 경우 주체 없이 남을 따라 하기 바쁜 현대인을 ‘앵무새’에 빗대서 풍자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체는 예쁘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가 날카롭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이내 작가는 황금색을 토대로 다양한 표현을 하는 작가인데요. 이내 작가의 점묘화는 보는 시간이나 위치에 따라 다른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모두 시각이 선명해서 아름다운 작품들이에요. 매수 희망자들이 줄을 선 작가들인데요. 현장에서 구입도 가능합니다. 이밖에도 아트그라운드에서 45인의 작가들의 세계관을 여행하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 청년미술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애매함’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청년이라는 시기 자체가 애매해요. 청년 작가들은 상업적인 성공을 꿈꾸면서도 상업적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은 모순적인 마음을 안고 있죠. 청년기는 그들의 스탠스가 정립되지 않은 시기이니까요. 아트그라운드도 마찬가지예요. 고가의 미술품이 거래되는 여느 아트페어처럼 완전 상업적이지도 않고 비엔날레처럼 완전 공익적이지도 않죠. 아트그라운드를 준비할 때 주변으로부터 ‘행사의 정체성이 좀 더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요. 저는 이 애매함이 저희와 청년 미술의 또렷함이라고 생각합니다.”
- 갤러리와 사단법인을 동시에 운영하는 것. 어려울 것 같아요.
“항상 위기에 봉착해요. 지금도 위기 한가운데 있어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면 금수저인 줄 아는데 사실 평범한 소시민이에요. 능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고요. 단지 운이 좋아서 버티고 있는 것이죠. 힘들지만 아집 때문에 관둘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당장 힘들다고 관두기엔 좋은 작품을 하는 착한 작가가 너무 많아요. 이들의 존재가 저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에요.”
- 앞으로의 계획은요.
“올해 아트그라운드 행사는 준비 기간이 짧았어요. 이번에는 이 행사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아트페어를 참가 작가 100명, 200명 규모의 행사로 키우고 싶어요.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집대성한 ‘애매한 아트페어’를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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