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 전기공학과 82학번, 비염으로 병원 앉아 있다 개발한 것

더 비비드 2024. 7. 1. 09:13
비염 증상 완화 의료기기 '노즈굿' 개발한 엔티브이랩스 홍준희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비염 증상 완화 의료기기 ‘노즈굿’ 개발한 엔티브이랩스 홍준희 대표. /더비비드

우리나라 성인 5명 중 1명이 알레르기 비염 환자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19세 이상 성인의 알레르기 비염 진단율은 2012년 16.8%에서 2022년 21.2%로, 10년 새 4.4%p 증가했다. 환절기마다 콧물, 재채기, 코막힘에 시달리며, 심한 경우 숙면을 방해하기도 한다.

홍준희 엔티브이랩스 대표(61)는 매년 돌아오는 환절기가 두려웠다. 가방엔 늘 비염 약을 챙겨 다녔다. 약을 먹을 때마다 부작용으로 졸음이 몰려와 일상생활이 불편하긴 매한가지였다. 결국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직접 개발했다. 저출력 광선으로 알레르기 비염 증상을 완화하는 의료기기 ‘노즈굿’이다. 홍 대표를 만나 빨간빛의 숨겨진 힘에 대해 들었다.

◇비염 증상 완화하는 빨간빛

비염 증상을 완화하는 광 치료 의료기기 노즈굿. /더비비드

노즈굿은 파장으로 비염 증상을 완화하는 광 치료 의료기기다. 언뜻 보기엔 블루투스 이어폰처럼 생겼다. 전용 크래들을 열면 조사기 한 쌍이 있다. 조사기에 각각 실리콘 팁을 씌워 콧구멍에 끼워 착용한다. 전원을 켜면 붉은빛이 들어온다. 3분 후 자동으로 전원이 꺼진다.

붉은빛의 정체는 660㎚, 940㎚ 파장대의 저출력 광선이다. 광선이 열을 유도해 점막의 혈액 공급을 촉진하고, 알레르기 유발 항체를 줄여서 염증을 완화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로 특허도 등록했다. 회당 3분씩 하루 3번 사용을 권장하지만, 증상이 있을 때 언제든 사용하면 된다. 노즈굿은 온라인몰 메타샵(https://metashop.co.kr/)에서 최저가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생에서 교수가 되기까지

홍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과 82학번 출신이다. /더비비드

서울대 전기공학과 82학번이다. 1995년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곧장 경원대(현 가천대) 전기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대량으로 전기를 생산해 저렴하게 공급하는 기술이 핵심인 ‘전력공학’을 가르쳤죠. 교수 생활을 이어갈수록 교육공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죠.”

나무가 가지를 뻗어가듯 꿈이 점점 자라났다. “1999년 한양대 허운나 교수를 만나며 교육공학에 발을 들였는데요. 교육에 적용할 기술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IT기술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결국 비즈니스도 알아야겠더군요. 경영·경제학 논문까지 찾아보며 정말이지 신나게 공부했습니다.”

특허 기술을 이용해 제작한 패치형 광 에미터. 두께 3㎜의 LED 면 광원이다. /홍준희 대표 제공

다방면에 관심을 둔 덕에 포럼·위원회 등에 참여할 기회가 자주 주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녹색성장위원회 등에서 환경·에너지·IT를 주제로 발표하거나 토론하곤 했죠. 2011년엔 초고층빌딩 건설 기술 개발을 연구하기 위해 중동에 출장을 갔는데요. 층고를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두께 3㎜의 LED 면 광원을 천장에 설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안이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 3년간 LED에 대한 글은 죄다 찾아 읽었던 게 지금까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LED를 공부하고 나니 빛 하나하나가 달리 보였다. “평소 알레르기 비염이 있어 이비인후과를 자주 찾는데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평소처럼 빨간색 램프 앞에서 잠시 앉아 있으라더군요. 간호사는 감염 우려가 있다며 ‘마스크를 벗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면 이 램프를 쬐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어요. 감염 걱정 없이 누구나 빛을 쬘 수 있게 할 순 없을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결국 직접 개발해 보자는 결론에 다다랐죠.”

◇비염치료기 노즈굿 개발노트

1. 기능이 형태를 정한다

상·중·하 비갑개에 광원을 쪼이기 위해 이어버드형 디자인을 고안했다. /홍준희 대표 제공

빨간빛을 검증하는 데에는 힘을 쓸 필요가 없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이 들어오면 세포가 반응해서 부어오르는데요. 이비인후과에서 흔히 쓰는 빛이 660㎚, 940㎚ 파장대의 저출력 광선인데요. 이 빛이 세포에 에너지를 주면서 상처 회복이나 염증 치료를 돕죠. 관련 연구 결과가 이미 수두룩합니다. 다만 병원에서 주로 쓰이는 기기를 가정용으로 보급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계하는 일이 관건이었죠.”

기존에 출시된 가정용 기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LED는 빛도 나오지만 열도 나옵니다. 기기 끝에서 LED 빛이 나오면서 비강 점막을 건조시킨다는 부작용이 있었어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무발열 광 에미터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광케이블처럼 LED 빛이 전파되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방식이에요. 이비인후과에서 쓰는 광 치료기가 1세대, 기존 가정용 광치료기가 2세대라면 무 발열 광에미터 기술은 3세대라고 할 수 있죠.”

의료용 정밀 팬텀을 이용해 LED 광에미터가 내는 빛의 도달 범위를 확인해가며 연구했다. /홍준희 대표 제공

빛을 코점막에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전문의의 자문을 받았다. “가천대 길병원 이비인후과 김선태 교수의 도움으로 의료용 팬텀(모형)을 이용한 실험했습니다. 코에 숨이 드나드는 경로인 비갑개를 상·중·하로 나눌 수 있는데요. 3개의 비갑개에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짧은 막대기 형태로 광치료기기 ‘노즈굿’을 만들었습니다.”

2. 손해를 감수하고 들은 진짜 후기

노즈굿을 착용한 모습. 코 위쪽까지 빨간 빛이 전달되고 있다. /더비비드

개발자 입장에서 제품의 객관적인 가치를 매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본적인 원가 분석도 잘 안되더군요. 하필이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부품 대란이 일어나면서 재료비가 10배로 뻥튀기된 시기였어요. 500원짜리 부품이 5000원하던 때였죠. 기기 한 대에 재료비만 8만원,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포함하니 15만원이 들더군요. 계산기를 두들기기보다 일단 밀어붙였습니다. 그때 냉정하게 따졌다면 이미 사업을 접었을 거예요.”

1차 생산 물량으로 노즈굿 1000대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적어도 30만원은 받고 팔아야했다 싶은데요. 그땐 한 대 팔면 7만원씩 손해가 나는 구조였어요. 1000대 중 800대를 판매하며 소비자의 피드백을 들었습니다. 전용 크래들이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잘 서 있지 않는다는 점, 조사기가 크래들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 등 개선점을 듣는 즉시 반영했죠.”
3. 의료기기 인증을 진입장벽으로 활용

노즈굿은 2등급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다. /홍준희 대표 제공

의료기기 인증은 높디높은 벽이다. “그 벽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죠. 밖에선 안을 넘보지 못하게 하는 성가신 벽이지만, 안에서 보면 내 집을 지켜주는 소중한 벽입니다. 의료기기 인증이 딱 그래요. 가지지 못한 자에겐 무서운 진입장벽이지만, 가진 자에겐 믿음직한 옹벽이 돼 주죠. 노즈굿의 의료기기 인증이 꼭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유해성 검사, 전자파 검사 등 일련의 시험성적서를 모아 의료기기 인증을 준비했다. “성능 테스트 한 번에 3000만원, 문서 작성 등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합쳐 약 6000만원이 들었습니다. 단순 경비보다 아까운 건 시간이었어요. 제품은 다 만들어놨는데 인증이 될 때까지 팔 수가 없으니 목을 빼고 기다렸죠. 2023년 4월 21일 마침내 노즈굿이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에서 2등급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습니다.”

4. 가격 인하를 위한 대량 생산의 꿈

노즈굿을 직접 착용한 엔티브이랩스 홍준희대표. /더비비드

GMP(제조품질관리기준) 인증을 받은 생산시설에서 노즈굿 2차 생산을 마쳤다. 1차 생산량의 3배인 3000개를 만들었다. “덕분에 원가를 절반 가까이 낮췄습니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더군요. 1차 생산에서는 한 대에 30만원을 받아도 겨우 현상 유지하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소비자 가격 10만원 초반대에도 판매할 수 있는 수준이 됐습니다. 연간 생산량을 10만대 이상까지 끌어 올리면 소비자 가격을 지금의 절반으로 낮출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노즈굿은 온라인몰 메타샵(https://metashop.co.kr/)에서 최저가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평균연령 62세의 어벤져스

엔티브이랩스 홍준희대표. /더비비드

노즈굿을 만드는 엔티브이랩스의 직원은 총 5명이다. 평균 연령은 62세다. “정년 은퇴한 지 3년 된 GMP 담당자, OEM 신발을 생산하던 생산·품질 관리자가 모두 모였어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모두 팔팔합니다. 주변 창업인을 보면 아들뻘, 손자뻘도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젊은이들과 같은 자리에서 일한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엔 신제품 개발에 여념이 없다. “노즈굿을 놓고 보니 블루투스 이어폰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소비자에게 더 익숙한 형태를 갖추기 위해 디자인을 다시 손보는 중입니다. 시제품이 나왔는데, 언뜻 보면 이어폰과 구분하지 못할 정돕니다. 물론 유해성 검사, 의료기기 인증 등 까다로운 절차를 다시 밟아야겠죠. 한 번 걸었던 길이니 한 번 더 갈 땐 뛰어갈 수 있습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