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근육 운동기 개발한 ‘에덴룩스’ 박성용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하늘에 빌었다. 다시 전처럼 앞을 보게 해 달라고. 에덴룩스 박성용 대표(37)는 의사면허를 딴 지 2년 만에 시력을 잃었다. 고질적인 목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근육이완제 주사를 맞고 난 이후부터다. 꼭 초점이 제멋대로 잡히는 고장 난 카메라 같았다.
진단명은 ‘조절 마비’. 수정체를 둘러싼 근육이 움직이지 않아 눈의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증상이었다. 담당의는 ‘기다려보자’는 말만 반복했다. 박 대표는 불안한 마음에 검안경(시력 검사용 안경)을 끼고 살았다. 이것이 의외의 결과를 불렀다. 한 달 만에 시력이 돌아왔다. 멀리 봤다 가까이 봤다를 반복하는 행동이 수정체 근육 재활 운동이 된 것이다.
이후 눈 운동기기 ‘오투스 플러스’를 개발했다. 8개의 특수광학렌즈가 자동으로 바뀌는 안대 형태의 기기로 박 대표가 시력을 회복했던 원리를 그대로 담았다.
에덴룩스는 2020년 K-스타트업 왕중왕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2022년 2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다. 내년 1월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3에 출전한다. 지난 10여 년의 시간이 모두 기적 같다는 박 대표를 만나 기적을 믿게 된 사연을 들었다.
◇하루아침에 의사에서 환자로
오투스 플러스는 종일 스마트폰, PC 모니터 등을 보느라 경직된 수정체 근육을 단련시키는 기기다. 모양새가 마치 VR 기기 같은데, 머리에 쓰는 착용법도 같다. 착용 후 전용 애플리케이션에 연동하면, 렌즈가 자동으로 바뀌며 눈이 ‘멀리 봤다, 가까이 봤다’를 반복하게 만든다.
기기를 쓴 채 멍하니 있을 필요 없다. 평소대로 TV, 스마트폰, 책 등을 보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수정체 근육 운동을 할 수 있다.
가능성을 인정받아 2022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아기유니콘’으로 선정됐다. 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을 ‘유니콘’이라 부르는데, 에덴룩스는 유니콘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국가 공인을 받은 것이다. 일본 최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마쿠아케’에선 한국 제품 가운데 역대 최대 판매고를 올렸다.
어릴 적 마주치는 어른마다 그를 보고 “고놈, 참 똘똘하게 생겼네”라고 말했다.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려는 듯 학창 시절 공부에 매달렸다. 2003년 경상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2009년 3월 대학을 졸업하면서 의사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이듬해 4월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 대구 달성군 논공읍 카톨릭병원의 내과 군의관으로 배치됐다. “응급실 당직을 서는 날에는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공장·산업 시설이 밀집한 지역이다 보니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려 오신 환자도 있었고 술 드시고 넘어져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오는 분도 있었죠.”
환자를 많이 대한 날엔 목이 유독 아팠다. 목의 뻐근함이 어느새 두통으로 번졌다. 재활의학과 담당의를 찾아가 치료를 받았다.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는 근육이완제 주사를 맞고 나니 금세 두통이 사라지더군요. 그리곤 관사로 돌아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는데 갑자기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친구를 불러 겨우 귀가할 수 있었어요.”
초점이 한 군데로 멈춰 중간 거리만 보이고 그보다 가깝거나 먼 거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약물이 목 근육에만 국소적으로 작용해야 하는데 희박한 확률의 부작용으로 혈관을 타고 눈까지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됐어요. 수정체 조절 근육이 마비돼 수축·이완이 안 되는 상태였죠. 시력은 1.0에서 0.2까지 떨어졌고 안경을 이것저것 바꿔 쓰면서 겨우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담당의는 반감기(약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시간)를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마음속엔 이미 ‘불안함’이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었다면 기다렸을 겁니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나도록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안과로 유명하다는 병원이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갔어요. 대학병원만 7곳을 찾아갔지만 뚜렷한 해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쳐다도 보지 않았던 교회를 매일 새벽마다 찾아가서 빌었어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마치 다시 태어난 듯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집에서 매일 나름대로 훈련을 했다. 안과에서 쓰는 시력 측정용 안경인 검안경을 이용해 렌즈 도수를 바꿔가며 앞에 있는 사물을 보려고 노력했다. “말도 안 되는 거 같지만 갑자기 앞이 또렷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멀리 봤다 가까이 봤다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수정체 근육이 일종의 재활 훈련을 하게 된 것이에요. 이후 매일 30분씩 검안경으로 훈련했더니 한 달 만에 시력이 1.0으로 돌아왔습니다.”
분명 비슷한 사례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국내외 논문을 모두 찾아봤더니 미국에 검안사란 직업이 있더군요. 약물·수술 등의 기법을 쓰지 않고 특수렌즈를 번갈아 끼워보며 안구 속 근육을 단련해 노안·약시·사시·근시 등을 교정하는 전문가죠. 유일한 단점은 치료비였습니다. 시간당 140달러로 주 1회 치료를 받는다면 월 50만원 이상 부담해야 합니다. 한국엔 이런 훈련법을 활용하는 클리닉마저도 없었어요.”
검안경의 원리를 그대로 담아 눈 속 근육을 훈련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2014년 ‘시력개선장치’ 특허를 먼저 등록했다. 같은 해 부산대학교 대학원 기술창업학과에 입학해 창업에 필요한 지식을 배워나갔다. “당시 경남 김해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었는데요. 근무하면서 틈틈이 스케치하고 제품 디자인을 구상했습니다. 사업화에 확신이 생기면서 2년 뒤에 사표를 썼습니다.”
◇부엉이처럼 눈이 좋아지도록
2016년 3월 에덴룩스(EDENLUX)를 세웠다. 모아둔 목돈 3600만원과 한국과학기술지주의 투자금을 보태 제품 개발에 쏟아부었다. “검안경을 기본 뼈대로 하되 렌즈 직경을 키우고 렌즈 교체 자동화를 위한 모터를 넣어서 사용성을 높이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PCB(전기적 부품을 납땜하는 얇은 판)가 필요했는데요. 부산대 산학협력원에 자문을 구했고 한국전기연구원과는 정밀제어기술을 공동개발했습니다.”
디자인 도안을 10번 이상 갈아엎고 나서야 렌즈 8개, 센서 5개가 들어간 최종 도안을 확정할 수 있었다. 2018년 ‘오투스 플러스(Otus Plus)’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오투스(Otus)는 라틴어로 부엉이를 뜻한다. 부엉이는 조류 중에서도 시력이 좋다고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오투스 플러스의 디자인에도 영감을 줬다.
시력 개선 효과를 숫자로 확인하기 위해 임상시험 절차를 거쳤다. 2021년 6월부터 12월까지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60명을 대상으로 시험했다. 하루 30분씩 3개월간 오투스 플러스를 사용하도록 했더니 안구 조절력이 평균 0.5D(디옵터·렌즈의 굴절력을 나타내는 단위) 상승했다. 안경렌즈로 비교하면 두 단계 개선된 값이다.
“미국 검안클리닉의 검안사가 하는 역할을 대신해 줄 소프트웨어의 필요성도 느꼈습니다. 스마트폰에 블루투스를 연결해 쓸 수 있는 코칭 앱도 함께 개발했죠. 오투스 플러스를 착용하고 일정한 거리에서 앱을 실행시키면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기기 속 렌즈가 바뀝니다. 눈 운동 게임 콘텐츠 등을 이용해 훈련을 하고 나면 분석 리포트가 쌓여 눈 점수를 확인할 수도 있죠.”
◇내가 창업을 할 줄이야
한때는 안축장(안구의 크기)만으로 시력이 결정된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었다. “그 학설을 따르자면 성장이 끝난 만 19세 이후엔 시력이 나빠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수정체를 둘러싼 미세 근육의 컨디션에 따라 시력이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어요. 과도한 스마트 기기 이용으로 인한 시력 저하가 대표적이죠. 안축장이 1차 굴절, 그 외의 요소로 2차 굴절이 일어나 시력이 완성되는 겁니다. 그러니 2차 굴절에 영향을 주는 수정체 근육을 단련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박 대표는 창업이 ‘운명’이라 말한다. “의사면허증을 땄을 때만 해도 평생 의사로 살 줄 알았어요. 언젠가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국의사고시를 볼 준비를 하고 있었죠. 5년간 준비했지만 눈을 다치는 바람에 모든 의욕이 꺾였어요. 하지만 새로운 길이 앞에 보이더군요. 시력을 잠시 잃었다가 회복한 일련의 과정이 모두 창업을 운명으로 맞이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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