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특목고 자퇴한 24살, 창업 경력 8년차의 세상이 주목하는 사업

더 비비드 2024. 6. 27. 15:05
MCN 대체 소프트웨어 ‘크리에이터리’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어웨이크코퍼레이션의 김민준 대표. /더비비드

“민준 학생은 돌아갈 곳이 있잖아요. 여기 있는 사업가들은 다 생업으로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그게 민준 학생의 피치를 들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어웨이크코퍼레이션의 김민준(24) 대표가 고등학생 시절 스타트업 투자자에게 들은 말이다. 김 대표는 이 이야기를 듣고 다니던 특목고를 자퇴했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사업에 진심이었다.​

1999년생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벌써 창업 경력 8년차다. 초등학생 때부터 도전해본 사업 아이템만 10개가 넘는다. 지금은 크리에이터를 위한 광고관리 소프트웨어 ‘크리에이터리’를 개발·운영하는 어웨이크코퍼레이션의 대표다. 김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광고비의 40% VS 광고 1건당 20만원

'크리에이터리'는 인플루언서를 위한 광고관리 소프트웨어다. 유튜버가 독립적으로 광고를 관리하고 계약서를 작성해 광고주와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어웨이크코퍼레이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주 수익원은 ‘광고’다. 구독자에게 사랑받는 인물일수록 광고 단가가 높다. 광고 수익에 조회수 수익까지 더해 수십억 연봉을 찍는 유튜버도 있다. 유튜버 몸값이 높아지면서 연예인 소속사처럼 유튜버를 관리하고 지원하는 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 채널 네트워크)이 국내에 등장한 지도 10년이 넘는다. MCN은 유튜버가 감당하기엔 벅찬 ‘광고 제안 선별·광고주 소통·계약서 작성·기획안 피드백·광고 집행 이후 비용 정산·세금 신고’를 돕고 광고비 일부를 수수료를 받는다.​

문제는 이 수수료가 광고비의 최대 40%에 육박할 정도로 꽤 높게 책정돼 있다는 것이다. 유튜버가 광고비로 1000만원을 계약했다면 400만원이 MCN 수수료로 나간다.

​김 대표는 유튜브 업계 수수료를 획기적으로 낮추겠다며 ‘크리에이터리’를 만들었다. 광고 계약에 필요한 업무를 처리해주는 AI 소프트웨어다. MCN에서 인간 직원이행하던 업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했다. 자동 완성 기능으로 광고주에게 메일을 보내고, 전자 계약서를 작성하며, 창작물을 올려 광고주와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 크리에이터가 MCN 없이 광고 집행 과정을 다룰 수 있는 업무 도구다.

어웨이크코퍼레이션은 은행권청년창업재단 2022년 11월 창업경진대회, 토스 주관 창업경진대회 '파운드'의 최종 우승팀이다. /김민준 대표 제공

서비스 이용료는 건당 20만원. 광고비에 비례해 이용료가 달라지는 것이 아닌 정찰제다. 2020년 4월 법인설립 후 2개월만에 베타서비스를 출시했다. 현재 8개국에서 2만명의 크리에이터가 크리에이터리를 사용한다. 서비스의 혁신성을 인정받아 2022년 11월 디캠프 올스타전 우승, 토스 주관 스타트업 서바이벌 ‘파운드’에서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토스, 서울대 기술지주에서 15억원의 투자금을 받고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서 5억원의 연구 자금을 지원받았다.​

◇사업하는데 자퇴까지 해야 했던 이유

진부하지만 ‘남달랐다’라는 표현밖에 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홉살에 코딩을 독학해 게임을 개발하는가 하면 중학생 때는 컴퓨터 조립 사업을 했고 고등학생 때는 3D 프린터를 조립해 팔았다. “부모님 교육방침 중 하나가 ‘피시방 금지’였습니다. 집에서 시간이 남아도니 책이나 신문 기사를 많이 봤죠. 제가 11살일 때 뉴스를 보다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버드’의 개발 팀원이 저랑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때 ‘나라고 못 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도전하기 시작했죠.”​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고민하기보단 방법부터 찾고 보는 성격이다. “프로그램 개발서를 사서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일단 따라 하면서 코딩을 익혔어요. 아두이노(전자기기를 제어하는 작은 기판으로 코딩 교육에 흔히 쓰임)도 혼자 공부했고요.”

(왼쪽부터)고등학생 때 창업한 '준브레일'에서 교육용 3D 프린터를 직접 제작하는 모습과 21살 대웅제약의 디지털 헬스케어팀 팀장으로 활동하던 모습. /김민준 대표 제공

동탄국제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생과 사업가의 이중생활을 지속하다 고3 수험생이 되기 직전, 사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자퇴했다. “학업에 충실한 모범생은 아니었어요. 온통 사업에 정신이 팔려있었죠. 수업만 끝나면 바로 서울의 사무실로 올라가 당시 개발하던 비급여 의약품 가격 비교 앱을 만들었어요. 매일 병원과 약국을 돌아다니느라 바빴죠. 하지만 당시 투자자들은 저를 ‘학생’으로만 보더군요.”​

사업 열정이 학생이라는 신분에 가려지는 게 싫었다. “사업에 올인(All-in)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교가 기숙학교여서 외출 허가를 무한정 받을 수도 없던 상황이라 고민 없이 자퇴했습니다.”​

친구들이 대학에 다니던 21살, 제약사 디지털헬스케어팀 팀장 자리에 올라 억대 연봉을 받았다. “2017년부터 ‘뷰티패스’라는 피부과 중개·시술 가격 비교 앱을 운영했는데요. 2020년 인재 인수 형식으로 대웅제약에 인수됐어요. 그러면서 팀장이 됐죠. 남들은 엑싯이라고 하는데, 제게는 사업 실패였어요. 투자금으로 버틸 수 없어 기업을 판 거니까요.”​

◇유튜버와 같이 어울리며 만든 서비스

회사에서 나와 다시 창업을 고민하던 때를 회상하는 김 대표. 유튜버 친구들의 고충을 듣고 창업을 안할 수 없었다고 했다. /더비비드

김 대표가 대웅제약에 재직해야 하는 의무 근무 기간은 3년이었다. 계약을 파기할 경우 억대의 위약금을 물고 나와야 했는데, 1년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크리에이터 친구들과 어울리며 고충을 알게 됐죠. 소형 MCN에선 불공정 계약이나 정산 지연 등의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더군요.”

문제를 기술로 풀어보기로 했다. “처음엔 ‘크리에이터의 업무효율을 올려주는 도구’에서 시작했어요. 2020년 ‘미어캣IO’라는 SNS 활동 데이터 분석 리포트 서비스를 개발했죠. 매일 밤 10시 메신저를 통해 SNS 계정의 좋아요 수, 팔로워 증감 추이, 프로필 방문 횟수, 게시물 댓글 개수 등을 정리해 리포트로 제공하는 기능입니다. 각각의 데이터를 설정 창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한 번에 모아볼 수 있는 서비스는 없었죠.”

(왼쪽부터)매일 저녁 SNS 활동 데이터 분석 리포트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인 '미어캣IO'와 이를 기반으로 만든 크리에이터리 광고 관리 프로그램. /어웨이크코퍼레이션

별다른 광고 없이 입소문으로 일주일 만에 1500명의 크리에이터가 미어캣IO에 가입했다. 크리에이터가 모여있는 서비스라고 소문나자 광고 문의도 들어왔다. 미어캣IO가 광고 업무 대행 도구로도 쓰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광고관리 서비스를 만드는 데 1년이 걸렸다. “처음엔 제안받은 광고를 비교해주는 환경만 구현했다가, 광고 수락 후 전자계약서 작성, 기획안 피드백, 결제 모듈, 영상 공유 모듈 등을 추가했어요. 직접 유튜버에게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물어보며 살을 붙였죠. 바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만큼 기존의 MCN 체제에 의구심을 품은 크리에이터들이 많았던 거죠.”​

크리에이터리 사용법은 간단하다. “크리에이터는 보통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광고 제안 메일 주소를 남겨둡니다. 대개 MCN 직원이 메일을 관리하죠. 광고주는 광고모델로 기용하고 싶은 크리에이터에게 제안 메일을 보내고요. 크리에이터리를 사용한다면 프로필에 메일 주소 대신 크리에이터리에서 부여하는 고유 링크를 넣어두면 됩니다. 광고주는 링크를 누르면 나타나는 웹페이지에 광고 제안서를 남기죠. 이후 과정이 모두 크리에이터리 안에서 이뤄지는 겁니다.”​

◇사업만 8년 하며 깨달은 기업 운영 원칙

유튜버 수빙수, 시현하다, 성팩 등 다양한 유튜버들과 교류가 많다. 친구처럼 직접 어울리면서 크리에이터리를 만들었다. /김민준 대표 제공

2년간의 베타서비스 기간을 마치고 2022년 9월 공식 출시했다. 현재 2만명이 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크리에이터리를 사용한다. 인기 유튜버 수빙수, 기우쌤 등 100만 유튜버도 최근 MCN을 나와 크리에이터리를 쓰고 있다.​

어웨이크코퍼레이션은 미어캣IO를 운영하던 2020년 6월부터 수익을 냈다. 2021년 2억원, 2022년에는 3억원의 매출이 났다.

남의 돈을 쓸 때는 극단적으로 투명하게 관리해야 투자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고 당부했다. /더비비드

한 건당 20만원의 수수료로 기업 운영이 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온라인 창작물로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를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라고 하는데요. 갈수록 시장이 커지고 있어요. 2021년 기준 전 세계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장 규모는 132조원 수준입니다. 올해 안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입니다. 크리에이터의 소득 데이터를 활용할 계획이에요. 크리에이터의 소득 수준과 현금 흐름 동향을 살펴 금융 상품을 만들어 핀테크 기업으로 거듭날 거예요.”​

어웨이크코퍼레이션을 1조원 가치의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고집하는 경영 원칙이 있다. ‘극단적으로 투명하라’다. “투자금은 남의 돈이에요. 어웨이크코퍼레이션은 매월 투자자에게 ‘주주 업데이트’ 문서를 보냅니다. 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각 직원의 월급부터 업무로 지출한 비용, 사무실 월세 비용까지 10원도 누락 없이 투자자에게 보여주죠. 비용을 허투루 썼거나 낭비한 부분이 있었다면 투자자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피드백을 들어요. 실적을 숨기거나 거짓말하기 시작하면 이미 사업은 실패한 거라고 봐야 합니다.”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