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회계 분야의 ‘지식in’을 만든 브릿지코드 박상민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브릿지코드 박상민 대표(34)는 우연한 선택 때문에 생각과 다른 삶을 살게 됐다. 경제에 관심이 많아 증권사에 입사했는데, 뜻하지 않게 IT부서에 들어가 컴퓨터 코드 지옥에 빠진 것이다.
9년 간 금융권 IT부서에서 경험을 쌓으며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금융과 IT기술 사이에 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세무·회계 상담 앱 ‘택슬리(taxly)’와 금융·실물자산 세금 신고 앱 ‘알고택스(Algotax)’를 개발했다. 택슬리의 한 달 순이용자 수는 18만명, 알고택스의 세금 신고액은 한 달 145억원을 넘어섰다. 박상민 대표를 만났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2008년 아주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점수에 맞춰 들어갔는데 컴퓨터보다 금융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강이 보이는 여의도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산업공학과로 전과하고 경영학을 복수전공으로 했죠. 1학년부터 등하굣길에 경제 라디오를 들으면서 금융 공부를 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노력은 결실을 봤다. 졸업을 두 달 앞둔 2013년 12월 여의도에 있는 금융사 미래에셋증권에 입사했다. “당시 제일 관심 있게 보던 영역이 ‘시스템 트레이딩’이었어요. 사람 없이 자동으로 거래하는 일종의 ‘금융 알파고’죠. 사내에 ‘트레이딩 시스템’ 부서가 있어서 지원했는데, 이게 웬걸 트레이딩(주식 매매)을 관리하는 IT부서였습니다. 금융·증권사 업계에서 가장 업무 강도가 세다고 정평이 난 곳이죠. 실수로 입사 지원을 한 겁니다.”
트레이딩 시스템팀은 팀원 중 8할이 IT 개발자였다. “들어가자마자 다른 사람이 만든 코드를 고치고 새로운 코드를 짜는 업무가 주어졌습니다. 사실 할 줄 몰랐어요. 컴퓨터공학과에서 산업공학과로 전과한 게 지독히도 후회되는 순간이었죠. 상사에게 ‘회사는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니다’ 말을 듣곤 돌아서서 남몰래 울기도 했어요.”
뿌연 안개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금융을 잘 아는 개발자, 개발할 줄 아는 금융 전문가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금융과 개발은 철저히 분리된 영역이었어요. 나만의 무기를 가지는 방법은 그 경계선에 서서 두 영역을 넘나드는 사람이 되는 길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매일 아침 7시 출근해서 남들보다 일찍 일을 시작했고 퇴근 후엔 자산관리사(FP) 같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 금융 스터디를 했죠.”
◇창업하기도 전에 모인 투자금
공부할수록 눈에 띄는 분야가 블록체인(가상 화폐 거래 시 발생할 수 있는 해킹을 막는 기술)이었다. “2015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서 블록체인을 이용한 주식 발행을 허가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블록체인을 금융 시스템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보였어요. 대표적으로 금융투자협회는 21개 금융투자회사와 함께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꾸려 인증 분야 공동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나섰죠. ‘여기가 미래다’ 싶었어요.”
2017년 금융투자협회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금융시장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일의 실무를 맡았습니다. 공인인증서를 대신할 공동 인증 서비스 개발 등을 했죠. K-OCT 거래를 운영하는 일도 했습니다. K-OCT는 코스피·코스닥에 상장하지 못한 기업들이 주식 시장에서 자금을 확보하는 장외 주식 시장인데요. 여기에서 스타트업을 많이 접했죠.”
스타트업의 민낯을 봤다. “스타트업 대표들이 재무에 정말 약하더군요. 자신의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봤어요. 결국 그 회사는 투자 유치에 실패해 도산했죠. 왜 진작 세무·회계사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답답했습니다. 필요할 때 바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고 가끔은 진득하게 상담받을 세무사, 회계사를 찾을 수 있는 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회사에 사직서를 내기까지 한 달이면 충분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금융권에 종사하는 동료들과 회계사, 벤처캐피탈 심사역을 만났는데요. 세무·회계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앱을 만들겠다고 했더니 한 달 만에 투자금 4억원이 모였어요. 2021년 12월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본격적으로 앱 개발에 들어갔죠.”
◇입소문으로 모집한 전문가 군단
2022년 1월 금융·투자·세금 문제를 기술(코드)로 해결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브릿지코드’를 세웠다. 2개월 만에 세금·회계 상담 앱 ‘택슬리(taxly)’를 출시했다. “작동 원리는 네이버 지식인과 비슷해요. 사용자가 세무·회계 관련한 질문을 남기면 전문가들이 답변을 남기도록 했습니다. 답변이 도움이 됐거나 추가 상담을 원하는 경우엔 해당 전문가와 상담을 이어갈 수 있죠. 평균적으로 전화 상담은 3만3000원, 방문 상담은 9만7000원 정도예요.”
상담료는 수수료 없이 고스란히 세무·회계 전문가에게 돌아간다. “입소문을 노렸습니다. 택슬리를 통해 고객을 만나는 회계사가 동료 회계사들에게 소개를 하게 되리라 생각했죠. 예상은 적중했어요.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세무·회계사, 자산 코디네이터 등이 500명 이상 모여들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눈에 계속 들어왔다. “세금은 신고만 잘해도 절반은 하는 겁니다. 가령 직장인이 직장 외 추가 소득이 있는 경우 종합소득세 신고가 필요한데요. 신고 기한을 놓치면 납부 세액의 20%를 가산세로 내야 합니다. 홈택스에서 직접 신고하려고 하면 입력항목만 해도 80개에 달하죠. 신고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자산 유형이 부동산, 비상장주식, 해외주식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점점 복잡해지고 있어요. 간편한 세금 신고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2022년 8월 알고택스를 출시했다. “간편함만큼이나 공들인 부분은 ‘보안’이었어요. 금융권에선 고객 보호(compliance)가 생명인데요. 해외주식 거래 세금 신고 과정에서 증권사와 세무법인 간에 고객 정보를 주고받을 때 이메일을 이용하더군요. 어느 한 명이라도 해킹당하면 고객의 개인 정보는 줄줄 샐 수밖에 없습니다. 알고택스에서는 각 금융사별로 데이터 서버를 별도로 마련하는 방식으로 데이터 전송채널을 암호화했습니다.”
알고택스의 이용자 중 눈에 띄는 이들은 토스, 당근마켓 등 스타트업의 스톡옵션을 보유한 이들이다. “스톡옵션은 기업이 임직원에게 자기 회사 주식을 일정한 가격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인데요. 막상 그 주식을 팔고 현금화하려고 하면 어떻게 세금을 신고해야 하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죠. 알고택스 앱에서 관련 정보를 입력하면 전담 세무 전문가와 전화로 가격을 협의한 후에 결제하고 세금 신고를 마칠 수 있습니다.”
◇너는 나, 나는 너
1인 창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17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 중엔 미래에셋증권에서 저에게 쓴소리를 했던 상사도 있어요. CTO(최고기술책임자)로서 팀을 이끌어주고 계시죠. 이젠 저를 금융 잘 아는 개발자, 개발할 줄 아는 금융 전문가로 인정해줍니다. 호되게 혼났던 상사에게 인정받으니 정말 성공한 기분이 들더군요.”
지난 12월 브릿지코드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하는 2022년 디캠프 올스타전에서 혁신금융상을 받았다. 매출이 나기 시작한 2022년 4분기 매출은 5000만원이다. 2023년 예상 매출은 29억원이다. “이젠 처음 창업을 결심하게 했던 분야를 변화시키고 싶어요. 스타트업 회계를 전문적으로 다룰 온라인 회계법인을 세울 계획입니다. ‘파트너스(Partner-s)’라는 이름도 지었어요.”
직장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할 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나'보다 중요한 게 생겼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욕구가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느낍니다. 예전엔 해마다 목표가 있었어요. '올해는 차를 사야지', '올해는 결혼자금을 얼마 모아야지' 같은 계획을 세웠었죠. 이제는 온 신경이 회사에 집중돼 있어요. ‘회사가 곧 나’가 됐죠.”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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