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이식 전문가 황성주 박사의 창업기
머리 감다 우연히 본 배수구. 오늘따라 머리카락이 많이 쌓인 것 같은 기분.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탈모는 더이상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21년 발표한 탈모증 환자의 진료현황을 보면, 2020년 국내에서 탈모로 병원을 찾은 23만명 중 40%는 2030세대다.
불면 날아갈까, 감으면 떨어질까 불안한 탈모인의 머리카락을 붙잡아주는 의사가 있다. 서울 신사동에서 털털한피부과의원을 운영하는 황성주(52) 박사다. 의대 졸업 후 모발이식 한 우물만 팠다. 아시아와 미국에서 쓰이는 모발이식 교과서 공동 저자로 오르고, 세계 모발이식학회장까지 지냈다.
최근 탈모샴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의사의 유명세를 이용해 제품 팔이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지적에 황 박사는 “머리를 깨끗이 감는 게 탈모 악화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황 박사를 만났다.
◇개업 미루고 공부 결심한 이유
황 박사가 병원 이름을 따서 만든 털털샴푸는 두피 관리 기능성 샴푸다. 연노란색의 점도 있는 제형으로, 멘톨이 첨가돼 시원한 느낌이 든다. 다른 샴푸 대비 거품이 조밀해 세척이 잘되는 느낌이 든다.
‘카퍼트라이 펩타이드-1′라는 인체 유래 단백질 성분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노화할수록 체내 존재율이 줄어드는 성분인데, 분자 크기가 작아 외부에서 공급할 경우 흡수가 빠르다. 두피가 모낭을 지탱할 수 있게 도와 모발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인삼, 녹차, 창포뿌리, 비타민나무오일 등 17가지 자연 추출물과 살리실산, 덱스판테놀 등 탈모예방 성분을 함유했다. 인공색소, 실리콘오일, 에탄올, 계면활성제인 설페이트와 인공 방부제 성분인 파라벤 등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은 배제했다.
황 박사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체육은 젬병이었지만 공부는 늘 즐거웠다. 특히 생명과 화학 과목을 잘했는데, 잔병치레가 잦으니 의술을 터득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1984년 경북대 의대에 진학했다.
막상 의대에 입학하고 보니 환자를 돌보는 일도 체력전이었다. “인턴 1년 해보니 당직이 잦은 과는 버겁더라고요. ‘밤에 잠을 잘 수 있는 전공’을 찾다 피부과를 공부하게 됐어요.”
1995년부터 1998년까지 경북대병원에서 피부과 전문의 생활을 하다 안동의료원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했다. 피부 외과적 시술을 다루면서 보다 전문적인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피부암·종양 제거 수술, 상처 봉합 등 다양한 수술을 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다루다보니 수술마다 꼼꼼한 공부가 필요했죠. 유의해야 할 합병증이 뭔지,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지 등을 접하다 보니 전문의가 돼도 여전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 특정 신체 부위만 공부하기에도 모자라겠더라고요.”
‘이것만큼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하겠다고 결심했다. “미래에 대한 세속적인 걱정도 있었죠. 개업하려면 특기 하나는 꼭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들 하는만큼만 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거라 생각했죠.”
고민하던 찰나 생긴 지 얼마 안 된 경북대학교병원 모발이식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2000년 자진해서 모발이식센터에 합류했어요. 다시 전공의 월급을 받으며 근무하는 조건이었죠. 급여가 10분의 1 수준이니 다들 기피했어요. 하지만 한 우물을 파겠다고 결심한 저한텐 최적의 자리였죠.”
◇머리카락을 손바닥, 종아리 등에 심어보니
연구논문을 위해 생체 실험도 불사했다. 털의 ‘뿌리’인 모낭을 자신의 신체 여러 부위에 이식해봤다. 초반엔 모두가 황당한 실험으로 여겼지만 그의 호기심은 정설로 간주하던 학설을 흔들었다. “당시만 해도 세계적으로 모발이식에 대한 연구가 더딘 상황이었어요. 2000년대 초반인데도 1959년 발표된 ‘공여부 우성설’만 정설로 여겨지고 있었죠.”
공여부 우성설(모낭을 어느 곳에서 뽑았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은 모발이식의 기틀이 되는 학설이다. 유전적으로 잘 빠지지 않는 후두부의 모낭을 앞쪽 두피로 이식하면, 원래의 모낭 특성대로 빠지지 않고 계속 자라난다는 의미다. 모발 이식에서 중요한 건 두피 환경이 아닌 모낭이란 얘기다.
그렇게 공여부 우성설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문득 모낭이 두피를 벗어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두피의 특성이 모발 성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실제 확인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황 박사는 자신의 모낭을 채취해 등, 손바닥, 종아리 등 여러 곳에 이식했다. “의외의 결과가 나왔어요. 같은 모낭이어도, 자라나는 모양이 달랐습니다. 등이나 손바닥 등 두피를 벗어나는 순간 성장 속도가 떨어지고, 각 신체 부위에 맞는 길이 이상으로 자라지 않더군요. 손바닥 위에서는 머리카락만큼 길게 자라지 않는 겁니다.”
역으로도 이식해봤다. “다리에 옮겨심었던 모낭을 뽑아서 후두부 두피로 옮겨보니, 다시 머리카락만큼 길게 자라더군요. 가슴에 털이 있던 환자의 동의를 구하고 가슴 털 모낭을 몇 가닥 두피에 옮겨 심어봤어요. 그랬더니 머리카락 모낭만큼은 아니지만, 두피에서 더 길게 털이 자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공여부’인 모낭만큼이나 ‘수여부’인 두피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황 박사가 주장한 ‘공여부와 수여부 조화론’이다. 그의 논문은 2003년 대한 피부과 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2006년엔 면역학 박사학위를 수료하고, 세계 모발이식학회에서 우수한 연구 성적을 낸 의사 한 명에게만 수여하는 백금모낭상을 받았다. 30대의 젊은 의사가 이 상을 받는 건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후 세계의 여러 모발이식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명성을 날렸다. 2017년엔 세계 모발이식학회장에 올라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탈모 원인은 유전, 이식도 무조건 되는 건 아냐
2002년 개원 후 수많은 환자가 그의 손기술을 찾았다. 모발 이식뿐 아니라 두피 문신, 약물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으로 환자들의 고민을 풀고 있다. “환자 중 남성 비율이 60% 정도입니다. 남성 환자의 60%는 이식술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고, 20%는 두피 문신을 합니다. 반면 여성 환자는 특정 구역에만 머리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숱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30%가 이식술을 진행하고 60%는 약물 치료와 두피 문신을 병행하죠.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는 면역 질환이라 별도의 약물 처방과 스트레스 관리로 치료합니다.”
황 박사가 말하는 탈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유전이다. “탈모는 모근이 가진 탈모 유전자와 고농도의 남성 호르몬이 결합해 나타납니다. 탈모약은 남성 호르몬이 탈모를 유도하지 않게끔 중간에서 방해하는 원리인 거죠. 샴푸로 탈모를 치료할 순 없어요.”
모발을 이식하고 싶다고 모두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술을 희망하는 환자 10명 중 3명은 돌려보낸다. “탈모가 한창 진행 중인데 너무 빨리 이식받으면 수술 이후 빠지는 부분을 다시 메워야 합니다. 탈모의 진행 속도에 따라 시술 여부를 결정해야 하죠.”
◇ 26년 모발이식 권위자가 두피 건강에 집착하는 이유
샴푸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황 박사는 자신의 이름을 건 털털샴푸를 개발했다. 펩타이드와 비타민 성분을 주재료로 한 탈모 예방 기능성 샴푸다. “병원에 방문한 환자들의 제품 추천 요청이 많았어요. 없는 모낭을 새로 만들 순 없어도, 자극 없이 두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보기로 했죠.”
공여부만큼이나 수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봤기에 제품력에 확신이 있었다. “두피, 즉 모낭이 심어지는 밭도 중요하다는 공여부와 수여부 조화론을 발표한 이후 탈모의 외부적 요인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됐어요. 기름진 음식, 두피의 혈액순환을 방해하는 피지, 피부염증 등이 탈모를 촉진하는 외부 요인이라고 알려졌죠. 이 요인들을 해결할 수 있는 멘톨과 살리실산을 배합해 1년 넘게 제품을 연구했어요. 해로울 수 있는 성분은 완전히 배제하고 천연 성분을 위주로 담았죠.”
좋은 성분을 넣는 것만큼 기존 샴푸에 들어가던 해로운 성분을 빼는 것에도 집중했다. “저자극성 임상시험에서 피부 자극 지수 ‘0.00′ 단계인 무자극 인증을 받았어요. 샴푸에 사용해도 된다고 알려진 성분이라도, 잔여물이 피부염을 일으킬 확률이 있다면 무조건 제외했죠. 인공색소, 실리콘오일, 에탄올, 인공향료 등이 대표적인데요. 그래서인지 샴푸의 잔향이 오래가진 않아요.”
황 박사도 20년 넘게 지키고 있는 두피 관리법을 공유했다. 2·2·2(둘둘둘) 샴푸법이다. “우리가 탈모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항상 청결하고 건강한 두피를 유지해주는 것뿐이에요. 두피의 피지를 제거하기 위해 하루 두 번 머리를 감고, 샴푸 할 때는 두피의 혈액순환을 위해 2분간 충분히 거품을 내 마사지해야 합니다. 이후 2분간 세제 성분을 제대로 헹궈 세제 잔여물로 일어날 수 있는 피부염을 막아야 하죠. 탈모인은 머리를 자주 감지 말아야 한다는 건 정말 낭설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루 평균 60~100가닥의 머리카락이 빠지니 머리를 감는 주기가 길어질수록 머리가 많이 빠져 보일 뿐이죠. 양치나 세수처럼, 두피도 좋은 제품으로 자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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