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덕분에 짭짤하이 벌었으니까 ‘짭짤이 토마토’ 맞지예"

더 비비드 2024. 6. 27. 13:43
부산 대저토마토 이렇게 자라납니다


“아따 밤새 마이 자랐네. 우째 이래 빛깔이 곱노.”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 2동에는 토마토에게 말을 거는 남자가 있다. 그는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지(冬至) 즈음엔 아침 8시에, 해 뜨는 시간이 앞당겨진 요즘 같은 시기에는 아침 7시에 토마토 농장으로 출근한다. 한바퀴 가볍게 돌고 난 후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토마토의 상태를 확인한다. 얼마나 잘 컸는지, 부족한 건 없는지 직접 눈으로 봐야 직성에 풀린다.

​그렇게 40년을 살았다. 삼남매의 아버지인 그에게 토마토는 네번째 자식이다. ‘대저 짭짤이 토마토’로 유명한 부산 대저동에서 키움농장의 김승배(64) 대표를 만났다.

부산 대저동에서 나고 자란 김승배 농부가 그의 손자가 대저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물고 있다. /더비비드

바다와 강이 만나는 소금기 있는 땅이 준 선물

낙동강 하구의 삼각주에 있는 대저 지역은 연평균 15°C, 겨울철 온도는 5°C 내외로 온화하다. 바다와 인접하고 일조량이 많아서 겨울철에도 토마토를 생육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대저 토마토는 이 대저 지역에서 생산되는 토마토다. 염분을 머금은 토양에서 자라서 새콤하면서 짭짤한 맛을 낸다.

대저 토마토 중에서도 당도 8브릭스 이상에 지름이 62mm 이하인 과실은 ‘짭짤이 토마토’로 분류된다. 짭짤이 토마토는 일반 토마토보다 크기가 작고 경도가 높아  저장성이 좋다. 기후, 토양, 시기 등 여러 환경 요소가 맞물려야 생장할 수 있기 때문에 희소한 작물로 꼽힌다.

대저 토마토 중 크기가 작은 짭짤이 토마토. 선명한 검녹색 줄무늬가 특징이다. /더비비드

짭짤이 토마토와 한 평생을 산 남자

김 대표는 1959년생이다. 대저 지역에서 나고 자라 40년째 농업에 종사 중이다. 현재 총 3000평, 비닐하우스 20동 규모의 농장에서 대저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다. 자신의 농장을 운영하면서 대저농협에서 감사를 역임하고 있다. 대저농협의 신용 사업이나 경제 사업 등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고 감독하는 자리다.

- 언제부터 토마토 농사를 하셨나요.

“토마토 농사 2세대입니다. 부모님이 이 지역 토마토 농사 1세대시죠. 이 지역은 부산시로 편입되기 전까지 경상남도 김해군이었습니다. 대저동은 낙동강 하구와 바닷물이 만나 쌓인 삼각주 지역입니다. 대저(大渚)라는 지명 자체가 큰 모래 섬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토양에 염분이 많은데요. 어느 날, 선조들이 이 지역에서 키운 토마토의 맛이 남다르단 걸 발견했습니다. 토마토에서 강한 짠 맛이 난거죠. 이 독특한 맛이야말로 땅이 주는 선물이라는 걸 선조들이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이 지역에서 토마토 농사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제 경우 24살에 군 전역 후 자연스럽게 부모님 일을 대물림 받았습니다. 그 당시엔 직업에 대한 선택권이란 게 딱히 없었거든요.”

부산 대저동에 있는 대저농협산지유통센터에서 만난 김승배 농부. /더비비드

- 대도시 부산에서 청년기부터 농사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동화 시스템도, 기계도 없이 오로지 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시절이라 힘들었습니다. 넓은 면적을 아우르지도 못했죠. 현실에 불만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과 갈등을 빚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갈등은 나 자신과의 갈등이기도 했습니다. 직장 다니는 친구들은 말끔하게 입고 출퇴근하는데, 저는 매일 흙밭에서 뒹굴어야 하는 현실이 서러웠거든요.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니, 지금은 제가 가장 행복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쫓기듯 살았는데 마음에 여유가 생겼거든요. 경제적으로도 그렇고요. (웃음)”

- 정말 40년간 외길만 걸었나요.

“사실 잠깐 딴짓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막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쯤 됐을 때 일이 너무 하기 싫었습니다. 농사의 농자만 들어도 지겨운 나날이었죠. 농촌 지역이다 보니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었고요. 그래서 6년간 도시에서 다른 일을 했습니다. 정말 힘들더군요. 농사가 재미없고 더 이상 매력 없다고 느껴져 관둔 건데 다시 돌아왔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속담처럼 제가 가장 잘하는 게 농사였던 거죠. 딴짓을 하면서 깨우친 게 많아서 그 이후 농사에 더 열중입니다.”

대저 토마토가 나무 줄기에 매달려 있는 모습. /더비비드

와인 속 포도처럼 ‘떼루아’를 품은 토마토

대저 토마토를 보다 값지게 만드는 건 ‘희소성’이다. 대저 토마토는 2012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됐다. 대저 1, 2동을 벗어나면 대저 토마토라는 원산지 상표권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떼루아(프랑스어로 ‘풍토’라는 의미로 자연환경으로 인한 작물의 고유한 풍미)를 최대한 살리려면 추운 겨울에 과실을 맺어야 한다. 이 떼루아를 위해 생산성 좋은 수경재배나 양액재배 방식 대신 토경재배를 고집한다. 한정된 지역에서 제한된 시기에 오로지 땅에서만 키웠다는 특성이 맞물린 대저 토마토는 이 과정을 통해 귀하디 귀한 몸이 된다.

- 대저 토마토 재배 과정이 궁금합니다.

“전체적으로 9개월이 소요됩니다. 사과나 배 같은 과수 다음으로 작기가 긴 편이죠. 우선 8월 하순에 토마토 씨앗을 파종합니다. 싹을 한 45일 정도 키워서 9월 말이나 10월 초에 본 밭에 옮겨 심어요. 이후 벌을 통해 자연수정하지만 인공 수분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겨우내 난방을 하면서 키우다 보면 1월 말부터 토마토가 익기 시작합니다. 농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2월부터 수확을 시작해 3~5월에 집중적으로 출하가 이뤄집니다. 화방(토마토 꽃이 피어나는 토마토 꽃줄기) 하나에 4~5개의 열매가 열리는데요. 보통 한 나무에 평균 20개 정도의 생산가치가 있는 토마토가 수확됩니다. 아주 귀한 녀석이죠.”

(왼쪽부터) 바로 먹기 좋게 익은 대저 토마토, 1~2일 놔뒀다가 먹으면 좋은 대저 토마토 상태. /더비비드

- 대저 토마토의 생장에 꼭 필요한 조건이 궁금합니다.

“온도, 햇빛, 물 세 가지가 중요한데요. 그중에서도 일조량이 핵심입니다. 대저동이 위치한 김해평야는 최적의 토마토 재배지에요. 산이 없는 벌판이라 일단 해가 뜨면 해가 질 때까지 그늘진 곳 하나 없이 쨍쨍하죠. 최고의 장점입니다. 온도의 경우 과실이 집중 생장하는 겨울에 각별히 신경을 씁니다. 겨울철에는 야간에도 9도~10도의 기온을 유지하기 위해 난방기를 가동해야 하죠.”

- 일조량과 기온이 중요하다면 여름에 키우는 게 수월하지 않나요.

“실제로 여름엔 열매를 맺는 데까지 45일이 걸리지만 겨울엔 일조량이 부족해서 100일~120일까지도 소요됩니다. 그럼에도 겨울 재배를 고집하는 이유는 오로지 맛 때문입니다. 강수량이 많은 여름철엔 땅의 염도가 낮아집니다. 그만큼 토마토의 떼루아도 옅어지죠. 여름철엔 높은 기온 때문에 토마토의 덩치도 빨리 커지는데요. 맛도 싱겁습니다. 여름철에 키우면 조그마한 덩치에 풍미를 압축하고 있는 대저 토마토의 매력이 사라지죠. 대저 토마토는 겨울 추위를 인고하며 자란 봄의 전령이에요. 희소가치가 뛰어나죠. 정말 ‘별거’입니다.”

김승배 농부가 자신의 대저 토마토 온실하우스에서 밝게 웃어보이고 있다. /더비비드

- 가장 무력했을 땐 언제였나요.

“인간에게는 자연재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병이 오면 약을 치고, 물이 부족하면 물을 주면 되지만 강풍이나 폭우에는 대항할 능력이 없어요. 폭우가 쏟아지거나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는 날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잠에 들지 못합니다. 밤새 농장을 지키죠. 한파라도 찾아오는 날이면 전 농가에 비상이 걸립니다. 2017년에 폭설이 심하게 온 적이 있어요. 무너져 내린 하우스를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관이나 농협을 통해 가입한 재해 보험으로 피해 일부를 보전 받긴 했지만 마음까지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상시 시설에 투자해야 하죠. 최근에는 열 효율이 좋은 보온재로 교체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습니다. 하우스에 오리털 파카를 입혀준 셈이죠.”

대저 토마토 가장 맛있게 먹는 법

김승배 농부가 손자와 함께 익살스럽게 대저 토마토를 물고 포즈를 취했다. /더비비드

농장(땅)을 근간으로 하는 일에 종사하는 농사꾼은 개발 정책의 향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도시 개발 과정에서 농가의 입장은 배제되기 마련, 김 씨는 지금도 새로운 개발 사업의 공고문이 올라오면 불안함을 느낀다. 대저 토마토 재배 가능 토지가 줄어드는 현실도 못내 아쉽다. 실제로 신도시 개발 사업인 에코델타시티가 추진되면서 이웃 농가가 곳곳으로 흩어졌다. 당시 약 100 농가가 사라졌다. 대저 토마토를 재배할 수 있는 농지가 기존에 100이었다면 현재는 70만 남은 실정이다.

위기에 몰린 농민들을 지탱하는 건 지역 명물을 생산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함이다. 수확철인 2월 말, 농민들은 하루치 수확물을 대저 2동에 있는 대저농협산지유통센터에 가져온다. 농부들이 열과 성을 다해 기른 토마토들은 이곳에서 선별 작업을 거친 후 소비자와 만나기 위해 예쁜 옷을 입는다.

당장 먹기 좋게 익은 대저 토마토. /더비비드

- 수확된 이후의 토마토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하루치 수확물을 대저농협산지유통센터에 가서 선별 작업을 진행합니다. 오늘은 162kg을 수확했네요. 선별 작업은 긴 컨테이너 형태의 기기가 진행하는데요. 토마토의 크기뿐만 아니라 당도까지 판별할 수 있습니다. 수확 작업은 보통 20~30분 소요됩니다. 한 작업이 끝나고 나면 선별기 근처의 모니터에 해당 농가의 정보, 투입량, 고당도 과실의 무게, 폐기율, 총 중량 등이 표시됩니다. 크기의 경우 지름별로 2L, L, M, S, 2S 다섯 가지의 분류 기준이 있는데요. 짭짤이 토마토는 S와 2S사이즈에 해당됩니다. 바로 베어 물기 좋은 2S가 가장 인기 많은 규격이죠. 7.5브릭스 이상의 과실은 ‘고당도’로 분류됩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1. 선별 중인 대저 토마토 농부의 이름이 전광판에 떠있는 모습. 2. 레일을 따라 크기 선별기를 통과하는 모습 3. 크기에 따라 대저 토마토가 선별되는 모습. 4. 크기, 당도에 따라 최종 선별된 대저 토마토들이 각각의 상자에 담기는 모습 ./ 더비비드

- 선별 작업 이후에는요.

“농협에서 일괄적으로 선별 작업을 거친 후 토마토는 같은 농가에서도 자랐어도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예컨대, 인기 규격에다 고당도인 토마토는 특품으로 분류되죠. 유통센터에서 짧은 시간에 정확하게 갈 길이 정해진 토마토들은 대형마트, 백화점, 홈쇼핑 등 다양한 채널로 유통됩니다. 요즘은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소분용 팩을 공동 개발 중입니다. 한 알 사과처럼 토마토 2~3과를 소분해서 편의점 등에 유통할 구상이에요. 농협에서 이 아이디어를 제안해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마케팅 지식을 기반으로 다양한 제안을 해줘서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저희를 위해주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고 저희 물건을 맡기죠.”

- 연 매출은 얼마나 되나요.

“작년 기준으로 2억5000만원의 매출이 발생했는데요. 이 중 1억5000만원의 비용이 발생했으니 순이익은 1억원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매출이 적은 편은 아닌데 사람의 손으로 수확해야 하다 보니 인건비가 많이 듭니다. 난방비도 만만치 않은 편이죠.”

(왼쪽부터) M으로 분류된 대저토마토, 탐스러운 2S 짭짤이 대저 토마토. /더비비드

- 대저 토마토 가장 맛있게 먹는 법 알려주세요.

“3월 중순에서 4월 초에 가장 맛있습니다. 지금 수확한 것도 충분히 맛있지만 그 시기의 토마토는 꿀 토마토예요. 즙을 짜보면 손에 진득하게 묻어날 정도로 당도가 높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칼을 대지 않고 입으로 베어 먹는 쪽을 추천합니다. 대저 토마토는 경도가 높기 때문에 요리에 넣는 것 보다는 날 것으로 먹는 게 가장 맛있는데요. 예외가 있습니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같이 구워 먹으면 기가 막힙니다. 새콤하면서 달달한 맛이 올라오면서 고기의 잡내를 깔끔하게 잡아줍니다.”

- 싱싱한 토마토 고르는 팁은요.

“모양이 둥그스름하게 잘생겼으며 녹색과 붉은빛이 모두 진한 과실을 고르세요. 맛있을겁니다. 완전히 푸른 것보단 약간 익은 것을 추천합니다. 수확 후 일주일쯤 후숙한 게 가장 맛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냉장 보관 대신 실온 보관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경도가 높아서 실온에 둬도 15일까지는 끄떡없어요.”

김승배 농부가 탐스럽게 열린 열매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더비비드

- 선생님에게 대저 토마토란 무엇인가요.

“제 철학과 모든 제 삶의 우여곡절이 토마토 한 알에 담겨있습니다. 토마토를 심고 나면 그날로부터 하루도 농장을 떠날 수가 없어요. 농부 눈에는 한포기 한포기가 다 눈에 들어옵니다. 얘가 간밤에 얼마나 컸나, 어디 아픈 덴 없나, 빛은 잘 들어오나, 이 부족하지는 않나 하나하나 살펴보죠. 자식 키울 때처럼 토마토와 대화를 나눕니다. 스마트워치로 보니 매일 그렇게 1만3000보를 걷더군요. 토마토 때문에 행복했고, 힘들었고 망연자실하기도 했어요. 눈이 와서 하우스가 무너졌을 땐 내 삶의 모든 기반이 무너진 것 같았죠. 그만큼 보람이 큽니다. 40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잘 키운 토마토를 볼 때마다 참 뿌듯합니다.”

- 계속 토마토 농사를 하실 건가요.

“청년 시절 부러워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저를 부러워합니다. 친구들에게 서슴없이 밥도 사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죠. 박스에 수북하게 쌓인 토마토처럼 지갑이 두둑하게 쌓이는 게 아주 짭짤합니다. 그래서 짭짤이 토마토인가 봐요. (웃음) 앞으로도 10년은 더 농사를 할 예정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토마토 밭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못할 정도가 되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