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스바이오 이현웅 대표 인터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민관심질병 통계를 보면 2021년 우울증 환자는 91만785명에 이른다. 코로나 발생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14.3%가 증가한 수치다. 정신과적 문제를 방치하면 지독한 질병이 돼 사람의 숨통을 조인다. 2020년 경찰청 변사자통계에서 동기별 자살 현황을 살펴보면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38.4%(4905명)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해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25.4명으로 OECD 1위였다.
오션스바이오 이현웅 대표(37)는 정신과 전문의인 친구의 말에 ‘우울증 치료 전자약’ 개발을 결심했다. 세로토닌을 분비하는 데 관여하는 미주신경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원리다. 미주신경이 지나는 왼쪽 귀에 무선이어폰처럼 착용하면 언제, 어디서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 대표를 만나 먹지 않는 우울증 약이 어떻게 가능한지 들었다.
◇젊음이 불러온 용기
충북대학교 산림학과 03학번이다. “점수에 맞춰서 들어갔는데 운이 좋게도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국립산림과학원 내공해 연구소,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수목생리학실, 서울대 식물병원 등에서 조교 겸 연구원으로 일했죠. 동시에 대학원 입학 준비를 했는데요. 눈여겨봤던 연구실에서 스타트업을 세운다기에 합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13년 3월 체외 진단 의료기기를 만드는 회사 ‘셀레믹스(Celemics)’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처음 받은 직함은 품질책임자였는데요. 1년 만에 RA/QA(유지관리/품질보증)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주로 GMP(제조품질관리기준), ISO9001(품질경영 국제규격), ISO13485(의료기기 품질관리시스템 인증), CE-IVD(유럽 의료기기 인증) 등 의료기기 인허가를 담당했어요."
하루 14시간 근무가 기본이었다. 여느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일인다역을 해야 했다. "안전관리, 채용, 사내 체육대회 기획까지 하면서도 지치기는 커녕 쌩쌩했어요. 이제 와 보면 젊어서 그랬겠더니 싶은데 그땐 ‘스타트업이 체질이다’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창업을 꿈꾸면서 2016년엔 숭실대 경영학 MBA 과정을 밟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묵혀져 있는 기술들을 들춰보기로 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연구소에서 만난 교수님, 박사님들은 오로지 '연구'에만 뜻이 있으셨어요. 사업화엔 전혀 관심이 없었죠. 특허까지 받은 좋은 기술들이 사장되는 걸 자주 봤습니다. 그런 기술이나 아이템을 찾아서 기술이전을 받아 제품으로 만들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가 가장 우울할 때
2017년 퇴사하고 이듬해 7월 ‘오션스바이오’를 세웠다. 연구실, 전 직장에서 만난 동료 10명이 모였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특허청 홈페이지 검색이었어요. 익숙한 단어부터 두드리다 충남대 강종성 교수님의 기억력 증진용 식품 관련 특허(제10-0495319호)를 찾았습니다. 직접 연락해 제품화하고 싶다고 했더니 흥미로워하시며 흔쾌히 승낙하셨어요.”
첫 아이템은 숙취 해소 건강기능식품 ‘바른 아침’이었다. 칼슘, 사과당, 카탈라아제(catalase), 페록시다아제(peroxidase) 등이 함유된 헛개나무 추출물을 활용했다. 감초, 갈근, 진피 등 한약재 원료도 더했다. “제품은 만족스러웠지만 마케팅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2020년 2000박스를 판매하고 마침표를 찍었어요. 팀원은 3명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템을 찾아 나서야 했습니다.”
지난날 흘려들었던 친구들의 이야기가 번뜩 떠올랐다. “고등학교 동창 중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2명이 있는데요. 언제 가장 불안하냐고 물어봤더니 ‘규칙적으로 오던 중증 환자가 발길이 뜸해질 때’라고 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았을까 걱정한다면서요. 그러다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생기면 그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고 하더군요. ‘조금만 더 들여다봤더라면’ 하며 자책하고 후회하는 모습도 봤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경증 단계에 일찌감치 병원을 찾는 환자가 크게 늘었다. “사회적으론 반길 일이지만 의사에겐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진료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어서 전체 환자 수가 늘어날수록 중증 환자를 진료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우울증 환자는 물론 의사를 위해서라도, 매번 내원하지 않아도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번 내원해야 할 것을 1번으로 줄여주기만 해도 의사가 훨씬 많은 환자를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아이디어를 팀원들과 공유했더니 이윤범 CTO(최고기술경영자)가 ‘체외형 미주신경 자극’를 제안했습니다. 미주신경은 휴식을 조절하고 우리 몸의 불안감을 없애는 통로인데요. 이곳에 전기 자극을 주면 세로토닌(행복·안정·수면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분비하고, 심장 박동 수를 낮추는 등 안정감이 높아집니다.”
◇아직 서로 알아가는 중
2022년 1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휴먼시스템의학과 김은영 교수의 자문을 받아 시제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 제품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구조와 원리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와이브레인, 뉴로핏 등은 모두 머리에 쓰는 ‘헤드기어형’입니다. tDCS(경두개 직류자극법)을 쓰기 때문에 기기가 이마를 덮어야 하죠. 저희는 ta-VNS(비침습 경두개 귀신경자극)을 활용해 미주신경이 지나는 왼쪽 귀 부근을 자극하는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왼쪽 귀에 무선이어폰처럼 착용하기만 하면 집이 아니어도 지하철, 사무실 등에서도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우울증 치료 효과는 서울대학교병원, 서울성모병원과 협업해 연구하고 있다. 여름이 오기 전 시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우울증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도 계획하고 있다. “아직 제품 이름도 없고, 의료기기 3등급 인증 등 수많은 절차를 더 밟아야 합니다. 정식으로 제품을 출시하고 나면 B2H(기업 대 병원의 거래)로 병원에 영업할 생각입니다. 병원에 먼저 기기를 판매한 다음, 의사의 처방 아래 환자에게 3개월·6개월 단위로 빌려주는 방식을 구상 중이에요.”
◇마음이 편하려고 하는 일
이렇다 할 매출 없이 6년간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정부 R&D 과제와 지원사업 덕분이다. 보건산업혁신창업센터에서 지원한 시제품 제작지원 사업을 시작으로 정보통신기획평가원 ICT R&D 혁신 바우처 사업 지원금 7억원 등 개발 비용에 들어간 지원금은 20억원이 넘는다.
금전적인 지원 외에 교육·발표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청년창업사관학교를 통해 2년간 교육을 받았고, 2022년 12월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디캠프) ‘프리 디데이’ 최종 발표 5개 기업 중 하나로 선발돼 무대에 올랐다.
의료기기를 직접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난 직후 서울대 대학원 휴먼시스템의학과에 입학했다. 2022년 3월부터 박사과정을 밟는 중이다. “내심 학력을 더 높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가 생명줄과 같은데 CEO의 학벌·학력도 하나의 평가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가끔 후배들이 창업 고민을 들고 찾아오는데요. ‘월급 받는 게 더 편하다’며 창업을 말리면서도 어느샌가 같이 머리를 맞대곤 해요. 월급 받을 때보다 몸은 더 고되지만 마음은 더 편합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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