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딸기 청년 농부 김지운 대표
논산 훈련소에 다녀온 군인들은 우스갯소리로 ‘논과 산밖에 없더라’고 말한다. 논산은 그 자연에서 많은 게 자란다. 특산물 딸기가 대표적이다. 2019년 기준 논산시의 딸기 재배 면적은 1027.7헥타르(㏊)로 전국 딸기 재배 면적의 15.9%를 차지한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딸기 농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지운 대표(24)도 그중 하나다. 경기 광명시에서 나고 자란 김 대표는 논산의 800평(약 2644㎡) 규모 농장에서 금실·죽향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아무런 연고 없는 논산에서 농사를 지은 지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었다. 김 대표를 만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청년 농부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딸기산업특구 논산시
논산은 60여 년 전부터 딸기 농사가 발달했다. 1960년대 나무 상자에 딸기를 담아 논산·대전 일대에 판매하던 것에서, 지금은 투명 플라스틱 용기와 골판지를 이용해 미국·홍콩·싱가포르·베트남 등 해외까지 수출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2021년 한 해 생산량은 2만 9660톤에 달한다.
국내 딸기 시장 점유율 80% 이상이 2005년 논산딸기시험장에서 육성된 국산 품종 ‘설향’이다. 이듬해 논산시는 딸기산업특구로 지정됐다. 이후 달걀보다 큰 ‘킹스베리’, 당도와 경도가 높은 ‘비타베리’까지 개발했다.
비타베리는 논산 딸기연구소가 2013년부터 육성해 2019년 10월 국립종자원에 품종보호를 등록한 품종이다. 농가에 보급돼 재배를 시작한 건 2년이 채 안 된다. 이름처럼 비타민C 함량이 과실 100g 당 77.1㎎으로 설향의 57.8㎎보다 높다. 2020년 4월 싱가포르에서 현지 셰프들을 대상으로 열린 한국산 딸기 품평회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 2월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딸기 품질 특성 분포 조사 결과를 보면 소비자가 좋아하는 딸기 특유의 단맛은 비타베리, 금실, 킹스베리 순으로 높았다. 금실은 경남 산청군에서 개발한 품종으로 복숭아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도 죽향, 하이베리, 아리향 등 전국 각지의 농가에서 다양한 품종을 개발·재배하고 있다.
◇장래 희망이 ‘농부’였던 여고생
김 대표는 1999년생이다. 2022년 8월 기준 논산 인구는 11만명 남짓, 그중 20~30대는 17.9%에 불과하다. 김 대표가 고향 경기 광명시를 떠난 건 20살 때다.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2017년 전북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입학했다.
- 어린 나이에 농부를 꿈꾼 이유가 궁금합니다.
“중·고등학생 때 어렴풋이 사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무렵 TV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귀농귀촌’을 자주 소개했는데요. 농업은 절대 망할 일 없는 사업이다 싶었죠.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믿지 않으셨어요. 한국농수산대 입학원서를 들이대니 그제야 두 눈이 동그래지셨죠. 허락해 달라며 종일 다큐멘터리 내용을 줄줄 읊었더니 고개를 끄덕여주셨습니다.”
- 한국농수산대학교에서는 어떤 걸 배웠나요.
“수도작(벼), 전작(밭) 작물 재배를 배우는 식량작물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학년까지만 해도 이대로만 하면 뭐든 키울 수 있겠다 싶었는데요. 2학년 때 경기도 농업기술원 옥수수팀에서 실습을 하면서 한계에 맞닥뜨렸습니다. 식량 작물을 재배하려면 다룰 줄 알아야 하는 농기계가 크고 종류도 많았어요. 3학년부터 채소학과, 원예시스템학과 수업 위주로 시간표를 채웠어요. 그때부터 평소 제일 좋아하던 과일인 ‘딸기’가 제 마음에 들어왔죠.”
- 딸기로 마음을 정하고 난 다음엔 어떤 일부터 했나요.
“2020년 2월 졸업과 동시에 농사할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어요. 충청도·전라도 등 안 가본 지역이 없을 겁니다. 딸기 당도를 높이려면 하루 종일 볕이 잘 드는 것이 중요한데요. 괜찮다 싶은 땅은 평당 15만원을 훌쩍 넘어 800평이면 1억원이 넘으니 포기해야 했죠. 그러다 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 공공임대 사업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자리의 2400평 땅을 1년에 임대료 40만원에 이용하는 조건이었죠. 선택 고민이 없었어요. 이보다 나은 조건은 없을 테니까요.”
- 농사 시설을 다 갖추기까지 돈이 꽤 들었겠어요.
“하우스와 난방시설, 온습도 조절 시설, 양액기 등을 포함해 총 1억원 정도 들었습니다. 2400평 중 800평 땅에 작업 동을 포함해 하우스 세 동을 지었습니다. 논산 청년후계농의 혜택을 많이 봤어요. 청년후계농으로 선정되면 창업 자금으로 최대 5억원까지 5년 거치 20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대출받을 수 있습니다. 5년간은 고정금리 1.5%의 이자만 내면 돼요. 논산에 정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만찮은 딸기 농사
딸기의 한 작기는 15개월이다. 작기란 모종을 키우고 열매를 따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말한다. 3월에 모주를 사서 증식을 한 다음 증식한 묘(런너)를 9월에 하우스에 심는다. 이를 ‘정식’이라 한다. 품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0~11월부터 열매를 따기 시작해 5월까지 수확한다. 15개월 안에서 작기가 겹치는 3~5월이 가장 바쁜 시기다. 한쪽에선 열매를 따고 한쪽에선 다음 작기를 위한 묘를 키워야 한다.
-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늦어도 새벽 3~4시엔 일어나서 딸기를 땁니다.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낮아지는 새벽에 딸기가 가장 단단하기 때문이죠. 낮에 딴 딸기는 말랑말랑해서 무르기 쉽습니다. 바쁠 땐 쪽잠을 자고 밤 12시부터 일어나 딸기를 따기도 해요. 수확한 딸기는 그날 물량에 맞춰 포장해 오전 10시엔 농협 로컬푸드로, 오후 5시엔 우체국 택배를 통해 전국으로 나갑니다. 그 사이사이에 육묘를 하고 꽃도 솎아주죠.”
- 열매가 맺힐 꽃을 왜 솎아야 하나요.
“처음 열리는 1화방 꽃은 건강해서 모든 열매가 맛있고 상품성이 좋습니다. 그다음 2화방, 3화방으로 갈수록 힘이 없어져서 딸기 모양이 울퉁불퉁하고 당도도 떨어지죠. 선택과 집중을 위해서 7~8개 꽃 중에서 3~4개를 꺾어주는 거예요. 작기 내내 균일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죠.”
- 딸기 딸 때 허리 아프지 않은가요.
“딸기를 심은 흙을 통째로 허리 높이까지 올리는 ‘고설재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다행히 제 허리는 무사합니다. 물을 줄 땐 일정한 양으로 정해둔 시간에 물이 나오는 양액기를 이용할 수 있으니 손을 덜었죠. 이번 작기부턴 딸기 주변에 폴리에틸렌 섬유인 타이벡을 깔아봤어요. 귤을 재배할 때 주로 쓰는 방식인데 햇볕을 더 잘 받아서 딸기 과가 골고루 익고 당도가 높아집니다.”
- 그 외에도 어떤 점들을 신경 써야 하나요.
“이론적으로 온도는 24~25℃, 습도는 60%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는데, 농가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전 날씨가 좋으면 28~30℃까지 실내 온도를 올리기도 합니다. 빛만큼이나 온도가 만드는 당도가 있는 것 같아서요. 이렇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면서 평균 당도를 14~15브릭스까지 올렸습니다. 설향이 통상 10브릭스 정도예요.”
- 품종에 따라 맛 차이가 큰가요.
“맛만 다른 게 아니에요. 단면의 모양, 단단한 정도, 병충해에 강한지 등 요모조모 뜯어보면 다른 점투성이에요. 저희 농장에서 재배하는 품종은 단면에 대나무처럼 빈 공간이 있는 ‘죽향’과 복숭아 향이 나는 ‘금실’인데요. 이 품종을 선택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경도입니다. 온라인 판매를 하면 배송할 때 무르지 않아야 하는데 이 두 품종이 단단하면서도 당도가 높더군요. 물론 단점도 있어요.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인 설향에 비해 병충해에 약한 편이라 손이 많이 갑니다.”
- 딸기는 어떤 병충해가 있나요.
“흰가루병이 대표적이죠. 말 그대로 딸기에 흰 가루가 묻는 병이에요. 가루를 닦아내려다 상처가 나서 상품으로 나갈 수 없게 되죠. 그 외에도 꽃곰팡이, 잿빛곰팡이를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병충해를 막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단백질·식이섬유·비타민·무기질 성분이 있는 클로렐라를 뿌려줘요. 일종의 영양제예요. 농약을 뿌릴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딸기가 껍질이 없는 과일이다 보니 영 손이 안 가더군요.”
◇논산 딸기 가장 맛있게 먹는 법
김 대표의 곁엔 늘 3살 터울의 언니 김지수(27) 씨가 있다. 시작은 조용한 시골에서 취업 준비를 할 겸 농사일을 돕자는 마음이었다. 브랜드명 ‘따울’을 짓고 ‘온라인 마케팅·판매’라는 ‘담당’이 생기면서 자매 지간은 동업 관계가 됐다. 주말엔 부모님도 농사일을 거들어 주신다.
일손을 돕는 건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농장에 들어서면 윙윙거리는 벌 소리가 들린다. 딸기는 다른 식물에 비해 바람이나 자가 수정보다 곤충의 역할이 중요하다. 딸기꽃이 피고 나서 꿀벌이 수정을 해줘야 딸기 열매가 맺힌다. 벌을 이용해 자연 수정한 딸기는 색상이 더 선명하고 과육이 단단하다.
- 논산 딸기를 가장 맛있게 먹는 법 알려주세요.
“일단 싱싱한 딸기를 고르는 것부터가 중요합니다. 가장 쉽게 확인하는 법은 초록색 꼭지의 상태를 살펴보는 거예요. 꼭지가 파릇파릇하고 싱싱해야 과실도 싱싱한 법이죠. 전 꼭지를 딴 자리부터 먹습니다. 사람은 끝맛이 제일 강렬하게 남는다고 하더군요. 제일 달달한 빨간 부분을 마지막에 먹으면 단맛이 확실히 더 잘 느껴져요.”
- 농부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도시 생활이 그리울 때야 많죠. 친구들이랑 모였을 때 제일 까무잡잡한 게 속상하기도 하고, 늦은 밤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을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도 논산에서 인생을 많이 배웠습니다. 첨엔 혼자 농사짓고 혼자 팔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분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몇십 년간 농사를 지으며 터득한 노하우를 선뜻 알려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극 내향형인 제가 여기선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다는 게 신기해요.”
- 논산 딸기와 함께 3년을 보낸 소감이 어떤가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어요. 농사에 뛰어든 이후로 쭉 논산시에서 운영하는 농업대학을 다니고 있는데요. 딸기학과, 치유농업학과 과정을 들었고, 올해는 다른 학과를 들어보고 싶어서 알아보는 중이에요. 갈수록 욕심이 생깁니다. 최근엔 논산딸기연구소에서 개발한 ‘비타베리’란 품종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새콤달콤해서 망고, 샤인머스캣 향이 나요. 다음 작기에 도전해볼 계획입니다.”
◇오늘 새벽 딴 논산 딸기, 내일 아침 미국 마트에서도
논산의 각 농가에서 수확한 딸기는 선별·포장을 위해 농협유통센터로 이동한다. 각 지역마다 담당하는 센터가 있는데, 논산에서 가장 큰 곳은 광석면에 있는 ‘광석농협유통센터’다. 100동이 넘는 농가의 딸기를 이곳에서 선별포장한다. 한창 때는 하루에 내보내야 하는 딸기 수확량만 10톤(t)이 넘는다. 이곳에서 나는 딸기 연매출만 150억원이 넘는다.
농가에서 1차적으로 크기에 따라 왕특, 특상, 보통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눈다. 적어도 오전 11시 이전에 유통센터로 싣고 가 입고장으로 들여보내야 한다. 최승복 광석농협 산지유통센터장은 “날이 따뜻해지면 딸기 신맛이 강해지기 때문에 해가 길어질수록 입고 시간도 조금씩 빨라진다”고 했다.
딸기는 섭씨 4도 이하의 예냉고에서 잠깐 머문 뒤 선별포장대로 이동한다. 딸기를 포장할 때는 기계를 쓸 수 없고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선별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비타베리, 킹스베리, 금실, 설향 등 품종과 크기별로 포장해서 출하장으로 옮긴 뒤 전국 각 마트 물류센터로 이동하거나 해외로 수출된다. 최 센터장은 “오늘 수확된 논산 딸기는 바로 다음날 국내는 물론 미국 등 해외 마트에도 깔린다”고 했다.
/이영지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분에 짭짤하이 벌었으니까 ‘짭짤이 토마토’ 맞지예" (0) | 2024.06.27 |
---|---|
우울증 치료를 위해 생각해 낸 뜻밖의 아이디어 (0) | 2024.06.27 |
암투병 아내 간호하다 떠올린 아이디어로 월 매출 1억원 (0) | 2024.06.27 |
"머리카락을 머리 대신 손바닥에 심은 이유" (0) | 2024.06.27 |
만 15세 의대 합격한 천재가 서른 넘어 하고 있는 도전 (0) | 2024.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