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갑작스런 가장의 짐, 스트레스로 불면증 겪던 연대생의 해결책

더 비비드 2024. 6. 27. 14:08
과학적으로 수면 효과 입증한 수면 솔루션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창업가만의 특징은 무엇일까. 공통의 덕목 중 하나가 쉽게 좌절하지 않는 회복 탄력성이다. 자금이 씨가 말라도,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도 꾸준히 걸어간다.

권서현(25) 대표도 남다른 회복 탄력성을 지녔다. 20대 초 어린 나이에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게 됐지만 현실에 굴하지 않고 가족 기업을 키워냈다. 힘든 시기에 얻은 불면증을 신규 비즈니스의 토대로 삼았다.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총 4번의 피보팅(사업모델 전환)을 했다. 슬립테크 스타트업 무니스의 권 대표를 만나 불면증을 극복하는 가장 창업가다운 방법에 대해서 들었다.

◇교수 꿈꿨던 연대생이 잔다르크가 된 이유

미라클나잇 서비스 화면. /무니스

무니스는 디지털 수면 솔루션 미라클나잇을 서비스한다. 특정한 리듬에서 뇌의 특정 주파수가 유도되는 ‘뇌파 동조 현상’에 착안한 서비스다. 전문용어로 모노럴 비트(monaural beat)라 하는데, 여기서 유발되는 뇌파로 수면을 유도하는 원리다.

얼핏 복잡한 발상처럼 보이겠지만 이용 방법은 쉽고 직관적이다. 앱을 켜서 스트레스, 불안, 피곤, 편안 등 오늘의 상태를 선택하고 희망 기상 시간을 설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주변 소음에 맞는 볼륨의 모노럴 비트를 들려준다. 이용자는 반복적인 리듬을 들으며 깊고 빠르게 잠들 수 있다.

무니스는 이미 포화 상태였던 수면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 경진대회에 국내 대표로 출전해 2위를 차지했고,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한 창업 경진 대회에서 우승했다. 최근에는 블루포인트와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미라클나잇 서비스를 소개하는 권 대표. 권 대표는 어린 나이에 가족 사업을 이끈 적이 있다. /더비비드

권서현 대표는 연세대 국제대학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10살에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유학 생활을 했습니다. 컬럼비아대, 홍콩대 등 유수의 대학에 합격했지만, 짧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국내 대학에 진학하게 됐죠. 학교생활은 무척 즐거웠어요. 교수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언젠가 해외대에서 박사 학위도 취득하고 싶었어요. 어머니가 교수이셨는데요. 학생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전파하는 어머니 일이 멋지게 느껴졌거든요.”

발랄하고 꿈 많던 대학생에게 가혹한 시련이 닥쳤다. “2019년 여름 갑작스레 집안 사정으로 가족 사업을 맡게 됐습니다. 22살 하루 아침에 벌어진 일이죠. 휴학하고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사업 수완은 괜찮았습니다. 제가 맡으면서 매출이 140% 신장했거든요. 스스로도 많이 성장했습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에 던져져 가장의 책임을 떠안게 됐으니까요.”

◇독학으로 IT개발 공부 후 연구실과 스타트업에서 실무 경험

권 대표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 독학으로 개발 공부를 했다. /권서현 대표 제공

2020년 중반, 회사를 매각하고 자유의 몸이 됐다. 그리운 캠퍼스로 돌아왔다. “학교를 떠나 있는 동안 동기들이 공부나 인턴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아간 모습이 무척 부러웠어요. 이젠 제가 쌓을 차례였죠. 아이디어를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껴 IT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독학으로 개발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공부하자마자 실무 경험을 쌓았다. “연세대 생활디자인과 산하의 디지털미디어랩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프론트 엔지니어로 활동했죠. 그러다 AI(인공지능) 분야에 관심이 생겨서 응용뇌인지과학연구소 근무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AI 모델링하는 박사님들을 돕는 RA(연구보조원)로 일했죠. 2개의 랩실을 다니면서 프론트 엔지니어링 실력을 쌓고, 앞으로 잘하고 싶은 AI 모델링도 배웠습니다.”

쌓은 실력을 실무 현장에서 검증했다. “공간 대여 스타트업의 개발자로도 근무했어요. 랩실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죠. 스타트업 개발자는 실제 이용자의 피부에 와닿는 서비스를 개발해야 합니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탐구하면서 앱을 만들었습니다. 서비스 기획부터 출시까지 모든 사이클을 경험하고 나니 눈이 많이 뜨였어요. 관련 지식과 경험이 누적되니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이젠 내 일을 할 차례란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 사업을 했던 경험까지 맞물려 창업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불면의 밤을 채워준 100개의 논문에서 발견한 아이디어로 창업

잠을 잘 때 우리는 보통 델타에서 알파파까지의 낮은 파장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뇌파는 특정한 리듬의 소리를 들었을 때 특정한 주파수로 유도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뇌파 동조 현상’이라고 한다. /미라클나잇 홈페이지 캡처

창업 아이템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가족 사업을 하던 시기 극심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병원은 물론 수면 보조 기기, 수면 보조제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 나섰어요. 아마존에서 백색 소음 기기를 직구한 적도 있죠. 적지 않은 돈과 노력을 들였는데 뜬 눈으로 밤 새기 일쑤였어요. 너무 화가 나고 답답했죠.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수면과 관련한 논문을 읽었습니다. 약 3개월 동안 100개가 넘는 논문을 읽었던 것 같아요.”

그의 눈을 끈 건 ‘뇌파 동조’ 현상이었다. “뇌파란 뉴런들 사이의 신경 활동 과정에서 생기는 전기 신호입니다. 뇌는 감마, 베타, 알파, 세타, 델타파 등 5가지의 뇌파를 만들어냅니다. 잠을 잘 때 우리는 보통 델타에서 알파파까지의 낮은 파장을 만들죠. 이 뇌파는 특정한 리듬의 소리를 들을 때 특정 주파수로 유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뇌파 동조 현상’이라고 하는데요. 뇌파 동조를 이용하면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논문을 발견했습니다. 뇌파 동조가 불면 치료와 수면 상태 진입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도 있었죠.”

이 과정에서 모너럴 비트를 발견했다. “뇌파를 동기화하려면 그 주파수의 리듬에 따라 발생하는 음파 조합을 만들어야 합니다. 모노럴 비트는 뇌파를 효과적으로 유도하는 음파 조합 중 하나입니다. 다른 음파 조합은 이어폰을 필요로 하거나 소리가 이질적이라 수면 유도로 적합하지 않은 반면, 모노럴 비트는 장치가 필요 없고 상대적으로 편안한 소리를 냅니다. 모노럴 비트를 발견한 후 유레카를 외치고 연세대 응용뇌인지과학연구소의 교수님에게 아이디어를 공유했는데요.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며 연구실 내 기계 사용을 허락해 주셨어요. 이곳에서 일반 모노럴 비트보다 훨씬 강하고 동기화가 빠른 '모노럴 비트 믹싱 알고리즘'을 개발해 특허부터 냈습니다.”

◇최적의 솔루션 찾기 위해 4번의 피보팅

수면 스피커 인형 닥터 도지의 귀여운 모습. /권서현 대표 제공

핵심 기술을 발굴하는 것과 기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2020년 9월, 닥터 도지라는 이름의 토끼 모양 수면 스피커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안고 자면서 모노럴 비트를 들을 수 있는 제품이었죠.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보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였어요. 처음 양산한 500대가 모두 팔렸습니다. 이후 아이돌을 모델로 기용해서 판매를 이어갔어요. 성과가 괜찮았는데 더 이어갈 자신이 없었어요.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창업했는데 인형이라는 하드웨어 중심의 비즈니스로는 사업 확장에 한계가 있었어요. 수면 시장의 고관여층이 아닌 일반 대중이 3만~5만원의 비용을 투자할지도 미지수였고요.”

무니스의 구성원들. 이들은 총 4번의 피보팅 끝에 미라클나잇을 출시했다. /아산나눔재단 유튜브 캡처

소비자가 느낄 문턱을 낮춰 보기로 했다. 2021년 8월 수면 패턴을 형성해 주는 앱 ‘슬립웨이브’를 출시했다. “수면 시장에 관심 있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보니 ‘수면 루틴을 만들고 싶다’는 의견이 다수였거든요. 그런데 만들고 나니 결과사 처참했어요. 이용자 자체도 적고, 리텐션율(재구매율)도 형편없었죠. 왜 잘못됐는지 검증할 방법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2~3개월 운영하다가 빠르게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21년 12월, 수면 관련 기능을 집대성한 ‘닥터 도지’를 선보였다. “수면 추적, 수면에 도움되는 ASMR, 수면 상태 분석 리포트 등 수면 관리에 도움 되는 기능을 한데 모은 초대형 앱이었어요. 야심차게 선보였는데 시장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습니다. 저희는 문제 해결책을 의도했는데 소비자들은 수면 추적 앱으로 인식하더군요. ‘다른 유명 수면 추적 앱이 있는데 왜 굳이 너희 것을 쓰겠냐’는 반응이 대다수였죠. 당초의 목적대로 서비스를 기획하는 데 실패했던 겁니다.”

미라클나잇 서비스 화면. /무니스

‘본질’에 충실하기로 했다. “저희 팀이 보유한 수면 추적, 수면 유도 기능을 하나로 엮었어요. 그리고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는 수면 웨이브 앱 ‘슬립 그라운드’를 출시했습니다. 이용자의 수면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해서 상태에 맞는 파동을 제공하는 앱이죠. 세상에 없던 서비스라 야심 차게 영어로 론칭 했습니다. 반응이 좋았어요. 다만 이용자들이 서비스를 오래 쓰지 않더군요.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이용자 인터뷰를 하러 다녔는데 의견을 받는 게 수월치는 않았어요. 서비스가 정서에 안 맞는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 길이 없었죠. 가설은 있었지만 성공 여부를 검증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장 해외 직원을 채용할 여건도 되지 않았고요.”

모든 과정에 대한 결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한국 시장에서 다시 해보기로 했다. “시중의 수면 관련 앱을 모조리 분석했습니다. 대부분 ‘충분한 수면’을 모토로 하더군요. 평일에 충분히 잘 수 없는 상황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어요. 관련 일을 하는 우리 조차 목표 달성을 위해 쪽잠을 청해야 하는 처지였거든요. 그래서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들을 타깃으로 설정했어요. ‘4시간 30분 동안 양질의 수면을 취하자’, ‘같은 잠도 더 잘 잔다고 느끼게 하자’를 콘셉트로 삼기로 했죠.”

◇연세대 연구소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으로부터 효과 입증, 해외 진출 목표

(왼쪽부터) 디캠프 디데이 참가 당시의 모습과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서 촬영한 단체 사진. /무니스

지난해 4월 30일, 4시간 30분이라는 핵심 메시지에 맞춰 미라클나잇 서비스를 출시했다. 수면의 주기는 1시간 30분마다 반복되는데, 미라클나잇은 3번째 사이클인 렘수면(REM sleep)이 끝나고 개운하게 기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앱을 켜고 그날의 상태를 입력하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에 적합한 모노럴 비트를 들려준다. 적합한 볼륨도 추천해 준다. 1개월이나 30회 이용권을 구매해서 이용하면 된다.

시장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2주 내 재결제율 10%를 성공의 척도로 삼았는데요. 일주일만에 재결제율 18%를 달성했어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라는 확신이 들었죠. 최근에는 ‘기상방’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같은 시간에 기상하는 이용자들을 15분 단위로 모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개념인데요. 같은 방에 있는 사람 중 누가 여전히 수면 중이고 누가 기상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 소소한 재미를 줍니다. 만약 유명인의 이름이 기상방에서 발견된다면 홍보 효과까지 누릴 수 있겠죠. 앱에서 제공하는 기능이지만 마케팅 요소까지 갖춰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이며 부작용이 적은 것이 최대 장점이다. “미라클나잇만의 차별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과학 이론을 기반으로 개발했고 그 근거가 확실합니다. 연세대 응용뇌인지과학 연구소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으로부터 숙면 효과를 검증 받았습니다. 두번째는 접근성이 좋습니다. 수면 스피커나 보조제는 재생과 복용이라는 행동을 수반합니다. 저희는 몇 번의 스마트폰 터치만으로 깊은 잠에 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부작용 위험이 적습니다. 부작용이 아예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수면제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습니다.”

권 대표는 미라클나잇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서비스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더비비드

별도의 마케팅 활동 없이 2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상도 받았다. “지난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CBC(Creative Business Cup) 세계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2등을 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한국 기업이 10위안에 든 것은 우리가 최초입니다. 같은 해 10월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는 2위, 11월 디캠프가 주최하는 디데이 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도 얻었어요. 우리가 구상한 비즈니스가 다른 창업팀과 견주어 봤을 때 유의미한 것임을 팀원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숙원이었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4시간 30분간의 퀄리티 높은 쪽잠이든, 빨리 잠에 드는 것이든 구체적인 목적은 달라도 서비스의 실질적인 가치는 동일해요. ‘좋은 잠’이죠. 잠은 하루의 에너지와 집중력, 사고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잘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자기를 갈망하죠. 당장은 유저 20만명을 확보하는 게 목표인데, 종국적으로 70억 인구가 쓰는 서비스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모든 인류가 당연히 쓰는 서비스, 일상의 한 부분이 되는 서비스가 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