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좋다는 의사 하다가 창업에 도전한 이유"

더 비비드 2024. 6. 27. 11:31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의 스타트업 도전기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 소위 ‘사’로 끝나는 직업은 사회적 지위와 안정적인 소득을 동시에 누릴 수 몇 없는 직업이다. 그만큼 자격을 얻기 위한 과정이 쉽지 않다.

전문직 타이틀을 거머쥐고도 불확실성 투성이인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든 이들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렇게 선망받는 전문직 타이틀을 거머쥐고도 불확실성 투성이인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있다. 전문 영역에서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펼치는 이들이 상당수지만 전혀 관련 없는 분야를 개척한 이도 있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창업한 기업에 대해서 알아봤다.

◇미국의 전문직 창업 현황은

온라인 법률 플랫폼 리걸줌의 화면. /리걸줌

기업가 정신이 발전한 미국에서는 전문직 창업이 활발한 편이다. 크게 성장해서 업계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상장까지 한 기업도 있다. 바로 리걸테크 기업 ‘리걸줌’(LegalZoom)이다.

리걸줌은 2001년 설립한 온라인 법률 플랫폼이다. 개인과 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기반의 법률문서 자동작성 서비스를 제공한다. 리걸줌의 창업자는 한국계 기업인 브라이언 리(Brian Lee)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OJ 심슨의 변호사로 이름을 알린 로버트 샤피로와 리걸줌을 공동 창업했다.

리걸줌은 현재 시가총액 2조1198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2021년 6월에는 나스닥에 상장했다. 브라이언 리는 리걸줌의 성공을 발판으로 유명 셀러브리티 킴 카다시안, 제시카 알바 등과 온라인 구독 서비스, 친환경 유아용품 서비스를 연이어 창업해 성공 궤도에 올렸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변호사 보다는 성공한 사업가로 더 유명하다.

(왼쪽부터) 작닥의 창업자 올리버 카라즈와 홈워드헬스의 제니퍼 슈나이더 박사. /작닥 홈페이지, 링크드인

의학 분야에서의 창업도 두드러진다. 2007년 설립된 스타트업 작닥(ZocDoc)은 비싸고 비효율적인 미국 의료 시스템 문제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의사와 환자를 연결해주는 예약 서비스를 제공한다.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고속 성장해 지금까지 3억7590만 달러(한화 약 4943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작닥의 공동창업자 올리버 카라즈 대표는 의사 출신이다. 300년 전통의 의사 가문 출신인 그는 가족의 뜻에 따라 뮌헨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됐지만, 내재된 창업 DNA를 외면하지 못한 것이다.

2021년에 설립된 홈워드헬스(Homeward Health) 역시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지방의 의사 부족 문제의 해결책으로 가상의료와 재택의료 등을 제공한다. 홈월드헬스의 창업자 제니퍼 슈나이더 박사는 존스 홉킨스 의대 출신의 의사다. 진료 일선에서 의료 서비스에서의 지역 격차 문제를 목격하고 이 회사를 창업했다고 한다.

◇치과의사에서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인이 된 남자

치과의사로 일하다가 벤처 생태계에 뛰어든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 /비바리퍼블리카

한국에서도 전문직 창업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 정점을 찍은 주인공은 핀테크 서비스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다. 서울대 치대 출신인 그는 치과의사로 일하다가 벤처 생태계에 뛰어들었다. 무려 8번의 창업이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토스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외에도 건강관리 앱 ‘캐시워크’의 운영사 넛지헬스케어와 비대면 원격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닥터나우’도 각각 의사와 의대 출신의 창업가가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두 스타트업은 직간접적으로 건강 관리 관련 비즈니스를 영위 중이다.

장성수 체인라이트닝 대표는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뒤로하고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 /더비비드

법조계에서도 창업 물결이 일고 있다. 맞춤형 영양조합 서비스를 영위하는 스타트업 ‘알고케어’의 정지원 대표는 유명 로펌 김앤장의 변호사 출신이다. 전기차 충천 플랫폼과 충전 기기 개발사 ‘체인라이트닝컴퍼니’의 장성수 대표도 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법률상담 플랫폼 ‘로톡’으로 유명한 로앤컴퍼니를 거쳐 창업했다.

이 외에 렌탈 제품 가격 비교 플랫폼 ‘렌트리’의 서현동 대표는 공인회계사다. 이들은 전문 직종에 종사하며 느낀 특정 산업군의 문제점이나 일상생활 중 발견한 불편함을 토대로 자신의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의사의 본분'에서 꽃 핀 아이디어

전문직 창업이라고 양상이 모두 같은 건 아니다. 전문직 라이선스와 창업 중 양자택일을 한 창업가가 있는가 하면 전문 분야에 종사하며 느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 전문 커리어의 확장으로서 스타트업을 설립한 이도 있다.

서울대 치대 교수이자 의사인 에스엠디솔루션의 김현정 대표가 대표주자다. 그는 서울대학교치과병원 부설 장애인 치과(현 중앙장애인구강진료센터)에서 진료를 보면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환자를 위한 구강관리 기기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환자가 스스로 칫솔질을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호자가 해준다고 해도 저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치아 관리가 사각지대에 놓인 탓에 많은 장애인과 중환자들이 치주염을 달고 사는 현실에 강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구강관리 기기 코모랄을 개발한 서울대 치대 교수이자 의사인 에스엠디솔루션의 김현정 대표. /더비비드

이에 개발 비용 50억원을 투자해 구강관리 기기 ‘코모랄’을 개발했다. 코모랄은 직육면체 형태의 본체에 ‘워터렛’이라고 부르는 마우스피스를 연결해서 사용하는 구강 세정기다. 워터렛을 입에 문 뒤 기기를 작동하면 사방에서 60개의 물줄기가 뿜어져 나와 구강 내 이물질과 플라그를 제거한다. 입속에 있던 물은 기기가 자동으로 흡입해 배수통으로 보낸다. 워터렛을 입에 물고 있는 것만으로 구강 세정이 완료되는 것이다.

칫솔질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개발했는데, 임플란트나 교정 환자 등 구강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에스엠디솔루션은 의사의 전문 지식과 경험이 창업에 활용된 사례다. 김 대표는 “여전히 사회 곳곳에 해결해야 할 ‘불편함’이 너무나도 많다”며 “이제 환자가 느끼는 어려움을 해결할 다양한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것 자체가 진료의 일종이지 않나 싶다”고 설명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