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스타트업 '메디아크'의 이찬형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을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이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으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의대 입학 후 최소 11년은 지나야 전문의가 된다. 예과 2년, 본과 4년의 대학 생활 후 종합병원에서 5년의 전공의 생활을 거쳐야 한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메디아크의 이찬형(31) 대표는 1992년생이다. 2019년, 만 27세에 내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반적인 셈법으로는 계산이 안 된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만 15세에 의과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3년의 군의관 대위 생활을 거치고 2022년부터 서울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임상강사로 일하고 있다. 2022년 4월에는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며 창업까지 했다. 그를 직접 만나 창업 과정을 들었다.
◇만 15세 의대 입학생, 의사 꿈 갖게 된 계기
메디아크는 질병 자가 진단·생활 관리 애플리케이션(앱) ‘우리닥터’를 개발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질병을 진단하거나 예측한다. 앱에 접속해 주어진 질문에 응답하면서 환자가 질병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다. 응답을 마치면 의심되는 질병이 순위로 도출되고, 대한응급의학회의 응급도 분류체계를 기반으로 한 응급도를 점수화해 알려준다.
감기와 같은 가벼운 질병은 서너가지의 질문에 답하면 알 수 있고, 증세가 심한 중증일수록 질문이 많아지는 구조다. 증상부터 가족력까지 다양한 질문을 통해 결과를 낸다. 질문 알고리즘은 의사가 병원에서 활용하는 문진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 100명 이상의 분과 별 의료진과 협력해 개발했다. 소아청소년과를 제외한 모든 분과의 질병에 대한 알고리즘을 구축했다.
당뇨, 고혈압, 비염, 과민성대장증후군, 식도염 등 생활 관리가 중요한 만성질환자는 생활 관리도 할 수 있다. 운동·수면·식이 데이터를 입력하면 생활 습관에 대한 분석 내용과 의료적 권고 사항이 나온다.
앱은 곧 출시 예정이다. 이미 아이디어를 인정받았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주최한 창업경진대회 2022년 12월 ‘프리 디데이’에서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장을 받아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표는 초등학교만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집에서 한살 많은 형, 부모님과 홈스쿨링을 했다. “부모님께서 이미 홈스쿨링을 계획하고 계셨어요. 초등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가족들과 여행, 미술관 견학, 직업 체험 등을 했죠. 1년 동안 원 없이 노니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듬해 4월에 중학교 검정고시, 8월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고 11월에 수능을 봤어요. 첫 수능은 의대에 갈 성적이 나오지 않았죠. 한번 더 수능을 치르고 한림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어요.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죠.”
의대를 꿈꾸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공부를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대에 간 건 아닙니다.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우연히 대학병원에 갔다가 의사분이 말씀하시는 걸 듣게 됐어요. 한 할머니께서 목에 혹이 만져져 암인 줄 알고 몇 개월 동안 고민하다 병원을 찾았는데, 다행히 진료하며 만져보니 걱정할만한 정도가 아니었대요. 그래서 ‘괜찮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 너무 고마워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수심 깊던 표정이 바로 밝아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남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죠.”
감기 환자부터 암 환자까지 모두 진료하는 내과를 선택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돕고 싶어 여러 질병을 아우르는 분과를 택했어요. 공부도 즐거웠어요. 의학의 ‘단순함’이 좋았거든요.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산업 전체가 움직이잖아요. 복잡한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더라고요.”
◇군의관 시절 코딩 공부하며 창업 준비
막상 의사가 돼보니 창업하고 싶어졌다. “현존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더군요. 의사 한 명이 봐야 할 환자가 너무 많아 진료 시간이 짧았고, 지역이나 국가별로 의료 서비스 불균형 문제가 심했어요. 전공의 생활로 정신없이 바빴지만, 언젠가 창업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병원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건강 관리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는 앱 서비스를 떠올렸다. 군의관 생활을 하며 떠올린 발상이다. “장병이 병원에 가려면 여러 절차를 거쳐야하잖아요. 많이 아프지 않다면 보통 아픔을 참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더라고요. 문제는 온라인에 믿을 수 없는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또 군 생활이 아니어도 해외에 체류하고 있거나, 벽지에 거주하는 분들은 당장 의사를 만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겠더군요.”
의사가 없더라도 환자가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했다. 의사로서 위험한 발상이었지만 꼭 필요하다 생각했다. “생명을 다뤄야 하니 신중해야 하는 건 맞지만,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을 때 질병의 치료 효과가 더 커집니다. 식단, 운동 등 일상에서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요. 주치의가 24시간 환자 곁에 붙어있을 수는 없으니, 무작정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답은 아니라 생각했어요.”
직접 앱을 만들기 위해 대위 생활을 하며 코딩을 공부했다. 전역 후 분과별 동료들을 동원해 알고리즘을 구체화했다. “군 생활을 하며 옛 의학 서적까지 펼쳐 질문을 만들어뒀어요. 전역 후 질병 별 질문 목록을 뽑아 각 분과 의사에게 검수받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참여한 의료진만 100명이 넘어요. 내과에서 다루는 질병은 제가 직접 제작했죠.”
병원에서 의사에게 문진 받듯, 기본적인 증상부터 기존 병력·발병 시기·가족력·경과 등을 질문을 구성했다. “최소 4개에서 최대 20개 넘는 질문에 답변하면 됩니다. 의학 용어가 사용된 부분은 그림, 사진 자료를 최대한 활용해 이해도를 높였어요.”
◇‘3분 진료’로 해결 안 되는 만성 질환 관리하자
자가 진단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니, 질병을 인지하는 것뿐 아니라 예방과 치료도 앱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과에서 만성질환을 많이 다루면서 한계를 느꼈어요.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단기간 치료하는 걸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질병이 많습니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가 대표적인데요. 이 질환들은 생활 관리가 중요합니다. 생활 요인만으로 질환의 위험도와 예후가 시시각각으로 변하게 되죠. 두달에 한 번씩 의사를 만나는 것으로는 무척 부족합니다. 그 관리를 앱이 해줄 수 있습니다.”
의사의 시각에서 생활 관리 기능을 만들었다. “사용자가 입력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의미한 조언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복용하는 약, 대소변 상태, 수면 시간, 체온, 미세먼지 오염도 등 생활 데이터를 분석해서 신체 건강 그래프를 시계열로 보여줍니다.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자주 앓는 질병을 알려주거나, 특정 음식을 먹을 때 신체에서 일어나는 증상 등을 알려주죠. 체중 감량 목표를 설정하면 그에 맞는 섭취 권고 식품이나 영양성분, 열량도 알려주고요.”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넣을수록 이용자가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아진다. “입력이 번거로울 수 있으니 휴대폰이나 스마트 워치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최대한 자동 연동되도록 개발하고 있습니다.”
◇3월 출시, 메디아크 병원 설립이 목표
서비스 이용료는 무료다. 사업비는 공공 과제나 연구 공모전을 통해 마련하고 있다. “여러 투자 제안이 있었지만 기업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비스가 안착하기 전까지는 외부의 간섭없이 중립적으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궁극적으론 평균수명과 건강수명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목표예요. 나중에는 우리닥터 앱을 활용해 효율적인 진료 체계를 갖춘 메디아크 종합병원을 세우고 싶어요.”
해당 분야에 대한 현장 경험이 세심한 서비스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매주 100명 넘는 환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창업 활동에 임상까지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저는 서비스를 만드는 일과 임상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환자를 만나며 제품을 보완하고, 새로운 기능에 대한 기획도 할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현장 진료에 소홀하면 제품을 바라보는 시야가 더 좁아질 거예요.”
/김영리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투병 아내 간호하다 떠올린 아이디어로 월 매출 1억원 (0) | 2024.06.27 |
---|---|
"머리카락을 머리 대신 손바닥에 심은 이유" (0) | 2024.06.27 |
멀쩡히 다니던 LG 그만두고, 3억원 털어서 한 인생 도전 (0) | 2024.06.27 |
"그 좋다는 의사 하다가 창업에 도전한 이유" (0) | 2024.06.27 |
90년대 3대 생산국의 영화, 중저가 맞춤형 한국 시계의 부활 (0) | 2024.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