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나라 참외 80%를 성주군이 휩쓰는 이유요?"

더 비비드 2024. 6. 26. 15:49
우리나라 참외 80% 생산하는 성주 다녀왔습니다

성주군 월항면 강도수 농부님의 농가. 짙은 안개가 낀 날이었다. /더비비드

4월 25일 오전 8시. 비 오는 날이 드물다는 성주군에 도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성주군 월항면에 들어서자 눈에 보이는 건 비닐하우스뿐이었다. 적막한 가야산 자락에 걸친 안개와 비닐하우스에 후두두 떨어지는 빗소리가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취재진을 반기는 강도수 조합장의 모습. /더비비드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니 활기찬 모습이 펼쳐졌다. 초록빛 참외순과 황금색 참외 사이로 취재진을 반기는 농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탐스러운 자태를 자랑하는 참외와 잘 어울렸다.​

강도수(67) 월항농협 조합장은 2015년 참외 농사를 시작한 늦깎이 참외 농부다. 아내와 함께 월항면의 참외 비닐하우스 6개동을 관리한다. 농사 도전기와 성주 참외 재배법을 들었다.​

◇밭에서 나는 황금, 성주 참외

강도수 조합장이 기른 참외. 색과 골이 선명하고 태좌부에선 진한 단맛이 났다. /더비비드

참외는 껍질과 과육, 태좌부로 이루어져 있다. 씨앗이 몰려있는 물컹한 부분을 태좌부라고 한다. 성주 참외는 아삭한 과육에 진한 단맛의 태좌부가 어우러져 달콤하고 시원한 맛을 낸다. 평균 당도는 12브릭스 이상이다. 성주 참외는 2월부터 9월까지 출하하는데 그중에서도 집중 출하기인 4~6월에 1년치 물량의 70%가 유통된다.​

성주군에선 50년 전부터 참외를 집중적으로 기르기 시작했다. 비가 잘 내리지 않아 풍부한 일조량, 낙동강 연안의 비옥하고 넓은 평야까지 참외를 재배하기 적합한 조건이었다.

끝없이 보이는 월항면의 참외 농가. /더비비드

맞춤 재배 조건에 50년 노하우까지 쌓여, 이제 성주를 빼놓고는 참외에 대해 함부로 논할 수 없다. 2022년 기준 전국 참외 생산량의 80%, 약 18만톤(t)이 경북 성주군에서 난다. 참외밭 면적만 3420헥타르(ha)인데, 경기 구리시의 전체 면적(3330헥타르)보다 넓은 크기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특정 농산물의 명성이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는 경우 해당 지역과 농산물을 붙여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성주 참외는 농산물 지리적 표시제 10호로 등록됐고, 연 5000억원이 넘는 조수입(농산물 판매수입)을 낸다. 지리적 표시 농산물 중 제주 감귤 다음으로 조수입 규모가 가장 큰 농작물이다. 참외 덕에 성주군은 대한민국 대표 부농도시가 됐다. 성주군에서 참외를 기르는 농가는 약 3800호인데, 44%인 1700호가 지난해 억대 조수입 실적을 기록했다.​

◇농협 은퇴 후 농부로 변신

성주군 농협 직원이었던 강도수 조합장. 은퇴 후 참외 농사에 도전했다. /더비비드

1956년생인 강 조합장은 성주농업고등학교(현 성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농촌진흥청 소속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성격에 공무원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1983년 성주군 농협 공채 시험에 도전해 농협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2001년 농산물 유통팀에서 근무하며 참외와 인연을 맺었다. 각 마을의 작목반을 관리하는 일로 시작해, 14년 동안 참외 유통 체계를 정립하는 데 힘썼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수확 전 작물을 밭의 면적 단위로 사고파는 포전매매나, 중간 상인에 따라 일관성 없는 유통 수수료 같은 관행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농가 소득이 안정적이지 않았다.​

이에 농협은 조합 가입 농가 스스로 유통망을 확보하기 보다, 농협에 일괄적으로 농작물을 팔았을 때 노동력 대비 더 높은 이익을 얻도록 유통 체계를 개편하기 시작했다. 당시 강 조합장은 농협유통센터에서 근무하며 관련 일을 맡아, 대형 마트 등으로 적극적으로 판로를 개척했다.​

2014년 정년퇴직 후, 2015년 3월 성주 월항농협의 조합장으로 당선됐다. 같은 해 참외 농사에 도전해 8년째 참외를 기르고 있다.

(위에서부터) 빨간 소쿠리에 10kg의 참외가 들어간다. 밭에서 한알을 따서 소쿠리에 담는다. 밭에서 갓 딴 참외의 모습. /더비비드

-직접 농사를 해보니 어떻던가요.

“농협에서 근무하며 농민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해 왔다고 자부했어요. 성주를 부농도시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는 직업적 보람도 갖고 살았죠.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나한테 참외 농사는 식은 죽 먹기다’라는 패기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푹푹 찌는 비닐하우스에 쪼그려 앉아 참외를 한 알씩 따보니 농협 직원으로서 제가 했던 일들은 농민의 구슬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농사 용지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4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2개동을 1000만원에 인수해 시작했습니다. 매년 수익이 나면 규모를 늘려 어느새 1200평이 됐습니다. 아 건물만 구매한 것이고요. 땅은 임차했습니다. 요즘에는 시설비와 땅값이 많이 올랐어요. 200평짜리 비닐하우스의 설치비만 1800만원 정도 합니다. 귀농 의향이 있는 청년에게 성주군청에서 저리로 빌려주긴 하는데, 그래도 목돈 없이 도전하긴 힘들죠. 신중해야 합니다.”​

◇연중무휴 참외 농사의 1년 여정

(위에서부터) 강 조합장이 참외를 수확하는 모습. 봉오리에서 참외 열매가 되기까지 40여일이 걸린다. /더비비드

평소에는 더위를 피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밭을 가꾼다.  4월부터 5월은 거의 매일 수확 작업을 하는 시기다.​

-일과가 궁금합니다.

“기업형 부농이 많은 동네에서  저의 재배 규모는 작은 편입니다. 그래도 조합장 업무까지 겸하고 있어 늘 바빠요. 아내와 둘이 밭을 돌보는데요. 수확시기가 아니면 주로 시들한 잎이나 가지를 제거하는 일을 합니다. 재래식 방제법인데, 농약을 덜 쓰면서도 병충해가 드는 것을 막을 수 있죠. 평균적으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밭에서 3시간 정도 작업 후 월항농협으로 출근해요. 낮에는 비닐하우스 내부 체감 온도가 50도에 육박해 작업이 힘들거든요. 해가 지는 오후 4~5시에 퇴근하면 하우스에 한 번 더 들러, 밭을 보살피죠.”

​-참외 재배 과정이 궁금합니다.

“보통 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 사이 시작합니다. 육묘장에서 모종을 사거나 모종을 직접 길러 본 밭에 심어요. 이걸 ‘정식’이라고 합니다. 50cm 간격으로 모종을 심으면 줄기와 잎이 무성하게 자라요. 모종끼리 서로 꼬이기도 해서. 꽃이 피길 기다리면서 줄기를 정리합니다. 이 과정을 ‘순 치기’라고 합니다. 정식 후 3~4주 정도 지나면 암·수꽃이 핍니다. 참외는 원래 밭에 벌통을 두고 자연 수정을 하는데요. 1화방(한 작기에서 농작물 모종이 꽃을 피우는 시기) 때는 겨울이라, 분무기에 수정액을 담아 사람이 직접 쏘는 인공 수정을 해야 합니다. 수정이 끝나면 암꽃의 봉오리가 열매로 변합니다. 열매가 자라 수확할 때까지 40일 정도 걸리는데요. 참외는 한 작기에 총 5번의 꽃을 피웁니다. 열매를 5번 맺는단 의미입니다.  이듬해 8월까지 이 과정을 하고 농사를 마치죠. 다음 농사 전까지 밭을 갈고 관수 작업을 해 땅의 염분을 제거합니다.”

직접 기른 참외와 함께 웃어보이는 강 조합장. /더비비드

-열매 수확을 5번이나 하는군요. 참외가 여름 과일이라는 인식은 왜 있는 건가요.

“비닐하우스 도입 전 노지 참외는 여름작물인 게 맞습니다. 현재는 모두 시설에서 재배합니다. 비닐하우스 지붕에 검은색 부직포를 덮으면 겨울에도 높은 온도가 유지돼 참외 생산량이 2~3배로 늘어납니다. 이제 노지 참외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 재배 환경이 달라진 덕에 참외 제철이 당겨졌어요. 비닐하우스 참외는 적당한 일교차가 있는 늦봄에서 초여름에 가장 맛있습니다. 과육이 무르지 않으면서 당도도 높게 오르는 시기거든요.”​

-가장 힘든 작업은 뭔가요.

“수확이죠. 쪼그려 앉아서 참외를 한 알 한 알 따야 하니까요. 줄기와 열매가 땅에 가까이 자라고 무게도 개당 300g 수준으로 많이 나가요. 잎과 줄기에는 털이 많아 따갑고요. 시급을 2만원으로 책정해도 인력이 안 구해지니 말 다 했죠. 작년부터 농업기술원 소속 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에서 참외도 딸기처럼 고설 재배(성인 허리 높이의 시설물에 토양을 깔고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를 할 수 있는지 연구 중이라고 하더군요.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빠르게 도입해 볼 계획입니다.”​

-참외 재배 팁이 있나요.

“농사하며 터득한 두 가지 비밀을 알려드립니다. 먼저 모종 접붙이기입니다. 호박 모종과 참외 모종을 접붙인 모종을 사용하는 거죠. 호박이 뿌리가 발달한 작물이라, 참외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같은 박과 덩굴 식물이라 참외 본연의 특성을 해치지도 않고요. 두번째는 토양 관리인데요. 성주 사람들은 몸에 좋다는 건 참외밭에 다 준다고 보면 됩니다. 관수 시설에 칼슘, 비타민, 마그네슘 등 각종 무기질을 넣습니다. 병충해가 잘 들지 않게 면역력을 키워주는 거죠.”​

◇참외 입고만 8개월, 쉴 틈 없는 참외 선별 과정

(위에서부터) 공선회원의 농가에서 바로 공수한 참외는 트럭에 담긴 채로 무게를 측정한 뒤 세척과정을 거친다. 상수도를 활용해 흙 등의 불순물을 제거한다. /더비비드

성주군 동북부에서 나는 참외는 월항농협 산지유통센터로 모여 선별 과정을 거친다. 취재를 간 4월 25일 월항농협 산지유통센터에 입고된 참외는 60톤.​

수확 후 2~3일 안으로 출하돼야 한다. 수확 후 일주일이 지나면 신선도가 떨어지면서 급격히 물러지기 때문이다.​

월항농협 산지유통센터의 약 80명의 직원은 연간 7000톤의 참외를 선별한다. 연 매출은 320억원으로 성주군의 9개 농협 중 참외 유통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든다. 강 조합장과 선별센터로 자리를 옮겨 유통 과정에 대해 들었다.

기계를 통한 선별 과정. 하루 60톤의 참외를 선별하기 위해 다양한 장비를 활용한다. /더비비드

-참외의 품질 기준이 있나요.

“참외는 다른 작물과 달리 ‘평균 당도’라는 표현을 씁니다. 부위별로 당도의 편차가 있기 때문이죠. 태좌부는 17~19브릭스에 육박하고, 과육 부분은 9~10브릭스 정도인데요. 평균 당도 12브릭스 이상이면 맛이 좋아 바로 출하할 수 있습니다. 14브릭스 이상의 과실은 고당도 참외로 분류되죠.”

(왼쪽부터)기계를 이용하고 선별하고 다시 손으로 직접 참외 등급을 분류한다. 로봇팔과 적재로봇을 이용해 참외를 나르는 모습. /더비비드

-참외 선별 포장 과정이 궁금합니다.

“농가에서 수확한 참외가 입고되면 바로 세척을 합니다. 상수도를 이용해 2번 세척하죠. 월항농협은 당도·모양·중량·색택 4가지 기준을 토대로 참외를 14단계로 구분합니다. 먼저 레이저 당도계로 12브릭스 이상인지 확인합니다. 그 후 중량에 따라 10과 미만·10~20과 미만·20~30과 미만·30~40과 미만·40과 초과(과: 10kg에 참외가 들어가는 개수)로 구분합니다. 이후 사람이 개입합니다. 보기 좋은 타원형인지, 노란 껍질 색이 진하고 윤기가 나는지 판별해 각 같은 중량 단계에서도 특·상·보통으로 나누죠. 선별이 완료되면 로봇팔과 로봇 적재기를 이용해 포장 센터로 옮깁니다. 설비 투자도 아끼지 않습니다. 4월 초에는 인공지능(AI) 카메라 선별기를 들여와 4가지 기준을 모두 기계가 판별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있죠.”

0.5% 재고율에 불과한 월항농협의 참외. 입고 직후 2일 안으로 모든 참외가 출하된다. /더비비드

-참외의 유통 경로가 궁금합니다.

“각 대형마트부터 수도권의 재래시장, 백화점 등에 유통합니다. 월항농협의 참외 재고율은 0.5%에 불과합니다. 입고량 그대로 출하된다고 보면 됩니다. 주문량에 비해 생산량이 적은 날도 있어요. 이럴 때는 선별센터 옆 경매장에서 참외를 수매하기도 하죠. 수출 실적도 좋아요.  2022년에 홍콩,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 약 13억원(100만달러)어치의 참외를 수출했죠. 올해부터는 호주에도 성주 참외를 수출할 예정입니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참외를 이용해 참외 마스크팩이나 참외씨 기름을 만든다. /더비비드

-상품성이 떨어지는 참외는 어떻게 되나요.

“깨졌거나 너무 작아 걸러진 참외를 가공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참외 마스크팩은 이미 판매하고 있고, 최근에는 참외씨로 식용 기름을 짜보고 있습니다. 신기하게 참기름과 거의 같은 맛이 나고, 비타민E가 참기름보다 30배 이상 많더라고요. 연내 판매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참외로 꿈꾸는 세계 일주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참외와 함께했다. 일만 하고 사느라 정작 가족과 여가 시간을 많이 보내진 못했지만, 지역 주민들은 그의 노고를 안다. 4년 임기인 월항농협 조합장 자리도 두번이나 재선에 성공했다. 벌써 9년째다.

강도수 조합장과 그의 아내 박의숙 씨. 조합장 은퇴 후 아내와 여행을 가는 것이 강 조합장의 소원이다. /더비비드

-연 매출이 궁금합니다.

“잘 키운 참외는 농협에서 10kg에 4만5000~5만원 정도의 값으로 수매합니다. 5화방까지 거치면 200평 비닐하우스 1개동 기준으로 1000만원 정도의 매출이 발생하죠. 여기서 관리비를 제외하면 700만원 정도의 수익이 남습니다. 비닐하우스 6개동이면 평균 3500~4000만원을 벌 수 있죠. 병충해가 들면 수확량이 확 줄어 변동 폭이 큽니다.”​

-맛있는 참외를 고르는 비법이 있을까요.

“겉모습이 어른 주먹만 하고, 타원형에 골이 선명한 것이 맛이 좋습니다. 참외를 꾸준히 먹으면 노폐물 배출과 변비 해소에 좋아요. 과채류 중 엽산이 가장 많아 임산부 과일로도 추천하죠. 아내와 저는 수확하면서 하루 3개는 먹어요. 다른 데는 몰라도 배탈은 잘 안 나고, 피부도 나이에 비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농부님에게 참외는 어떤 의미인가요.

“색깔만 황금색이 아니라 밭에서 나는 진짜 보배죠. 제 노후를 책임져 주고, 손주들에게 용돈도 넉넉히 줄 수 있도록 체면을 살려주니까요. 조합장 임기가 끝나도 힘이 닿는 데까지 참외 농사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참외로 여행 경비를 모아 아내와 꼭 크루즈 여행을 가고 싶어요.”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