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보낸 세월만 40년,
김진태 방울토마토 농부의 인생 스토리
“방울토마토가 방울토마토지 뭐긴 뭐여. 내가 뿌듯헐라고 이거 키우는 거면, 팔지 않고 갖고 있어야쥬. 사실이 그렇잖아유. 다 먹고살라고 하는거여.”
충청도 화법의 묘미는 ‘돌려 말하기’다.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에 있는 청포농장의 김진태 대표(65)는 순도 높은 충청도 사투리로 시종일관 돌려 말했다. 겉 말과 달랐다. 방울토마토는 단순 소득 창출의 수단이 아니었다. 세 자녀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버팀목이자 인생의 압축판이었다. 흙밭에서 뒹군 세월만 40년. 김 대표를 만나 방울토마토 농가의 삶을 들었다.
◇보릿고개 넘기 위해 시작한 농사
부여읍에서 동남쪽으로 24㎞가량 떨어진 세도면은 금강을 따라 논산, 전북 익산과 자연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하수가 풍부하고 평야 지역이면서 일조량도 많아 농업에 최적화된 땅이다. 진흙이 약간 섞인 부드러운 사질양토다.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하는 심근성 식물에 적합해 1960년대 중반 토마토 재배가 시작됐다. 1990년대 중반 방울토마토 주산단지로 전환했다. 2019년 기준 세도 지역 방울토마토 재배면적은 약 260ha(78만6500평)로, 연 생산량은 1만7000톤(t)에 달한다.
부여에서 나고 자란 김진태 대표는 세도면에서 1만㎡(약 3000평), 하우스 12동 규모의 농장을 운영한다. 이중 8개 동이 방울토마토 몫이다. 과거엔 모든 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했는데, 3분의 1은 대추밭으로 전환했다. 방울토마토가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 농부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대에 먹고살기 힘들어서 시작했죠. 보릿고개라고 들어 봤나요. 요즘이야 주 5일제니 4.5일제니 하지만, 제가 청년일 적에는 밥만 줘도 일했어요.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데다 보고 자란 게 농사밖에 없으니 선택권이 없었죠.”
- 어떻게 출발했나요.
“빌린 땅에 토마토와 참외를 심었습니다, 요즘은 기계로 농사지을 땅을 쉽게 고를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 개념이 없었어요. 삽으로 일일이 땅을 파서 농지를 가다듬고 작물을 재배했죠.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컸어요. 한 해 농사 지어서 집 짓고, 한 해 농사지어서 땅을 매입하고.”
- 주 재배 작물을 방울토마토로 삼은 이유는요.
“다 돈 때문이죠. 저는 시대의 흐름을 좇았을 뿐입니다. 1990년 중반부터 방울토마토 농가가 증가하기 시작했는데요. 방울토마토 키운 사람이 그냥 토마토를 키운 저보다 더 잘 벌더라고요. 방울토마토 3kg가격이 일반 토마토 5~10kg 가격에 육박할 정도였죠. 굳이 토마토를 고집할 필요가 없었어요.”
◇1200℃ 열을 품고 자란 작물
방울토마토 수확의 기준이 되는 것은 ‘적산온도’다. 발아에서 수확할 때까지 평균기온이 기준온도 이상인 날의 평균 기온을 합산한 것이다. 방울토마토는 적산온도가 1200℃가 되면 수확을 시작한다. 방울토마토 한 알이 1200℃의 열을 품고 있는 셈이다.
- 방울토마토 재배 과정이 궁금합니다.
“정읍의 육묘장에서 토마토 씨앗을 40~50일 정도 키웁니다. 이후 10월에 모종을 밭에 옮겨 심는 정식(定植) 작업을 하죠. 빠르면 열흘 후부터 토마토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11월 개화해서 그 다음 해 4월까지 꽃이 피죠. 이후 벌로 자연 수분합니다. 벌들이 얼마나 독한지 제가 하우스에 들어서기만 하면 자기 밥그릇 뺏으러 온 경쟁자인 줄 알고 달려들어요. 벌에 쏘여서 손 붓는 건 이제 일도 아니죠.”
- 수확은 언제 하나요.
“기온이 예년보다 높으면 빨리 수확하고, 낮으면 평소보다 늦게 수확합니다. 그 판단 기준이 적산온도인데요. 빠르면 5월, 늦으면 6월 적산온도에 도달하죠. 방울토마토 나무를 아파트로 비유해서 각 층을 ‘단’이라고 하는데요.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면 아랫단부터 수확합니다. 토경재배의 경우 잘 자라야 한 그루 14~15단 정도가 형성되는데요. 수경재배의 경우 한 그루 25단까지도 자랍니다.”
- 물에서 키우는 게 효율적인 것 같은데, 토경재배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수경재배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시설비와 전기료가 많이 나오고 기술력도 필요로 하죠. 농가 입장에서 보면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장점으론 관리가 쉽습니다. 토경재배는 물 주는 주기를 잘 맞춰야 하고 병충해 예방도 꼼꼼하게 해야 하는데, 수경재배는 그런 관리가 쉬운 편이죠. 소비자의 호불호가 갈리는 점도 있습니다. 토경 재배는 땅의 미네랄이나 사람에게 좋은 미생물의 기운을 받는데요. 수경재배는 그런 상호작용 없어서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지죠. 이런 이유로 수경재배를 피하는 분들이 있어요. 까다로운 분들은 구매할 때 수경이냐 토경이나 물어보기도 합니다.”
- 재배 시 각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물 주는 주기를 잘 맞춰야 합니다. 너무 안 주면 마르고, 많이 주면 시들어서 열매를 못 맺습니다. 주기가 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데요. 딱 보면 알아요. 이파리에서 모든 게 보입니다. 이파리가 방울토마토의 언어인 셈이죠. 온도도 중요합니다. 한파라도 닥치는 날이면 밤새 난방을 가동해야 합니다. 전기와 기름난방 모두 다 하는데요. 기름값과 전기료가 모두 폭등했지만 어쩔 수 없어요. 빛은 당도와 직결됩니다. 충분한 빛을 쬐어야 과실이 달달해집니다.”
◇농부가 태풍보다 두려워하는 것
도시인들에겐 그의 삶이 목가적으로 보이겠지만 서러운 날이 많았다. 2012년 태풍 볼라벤 때는 하우스가 초토화됐다. 당시 1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 완벽히 복구하는 데 몇 달이 걸렸다. 농민에게 자연재해와 천재지변은 영원히 적응할 수 없는 통증 같은 것이다.
최근에는 농사 인생 40년 초유의 위기를 겪었다. ‘방울토마토를 먹고 구토와 설사를 했다’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정부가 조사를 나선 것이다. 그 결과 특정 품종(HS2106, 상품명 TY올스타)에서 유독 많은 토마틴 유사 성분이 생성돼 이런 증상을 유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쓴맛 방울토마토’는 전량 폐기됐지만 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면서 소비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세도 지역 농가도 직격탄을 맞았다.
-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악의로 발생한 일은 아닐 겁니다. 방울토마토도 꾸준히 품종 개량이 이루어집니다. 세균에 강한 종자와 과실이 단단한 종자를 섞어 내병성과 내구성이 모두 좋은 종자를 만들어내죠. 사고가 발생한 품종도 좋은 의도로 개발된 신품종입니다. 다만 신품종은 널리 유통되지 않았습니다. 검증이 덜 돼, 모험심 있는 농가 중심으로 도입됐거든요. 방울토마토도 품종이 다양하고, 사람 성격이 다 다르듯이 농가의 재배 스타일도 제각각입니다.”
- 선생님은 어떤 유형의 농부인가요.
“안전지향형입니다. 시장성과 안전성이 검증된 것만 도입합니다. 저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 적이 있어요. 황금방울토마토를 재배해본 적이 있죠. 신품종은 처음엔 희소성 때문에 값을 높게 받아요. 그러다 재배 농가가 늘어나면 가격이 뚝 떨어져 버리죠. 반짝 주목받다가 시세가 하향평준화된 샤인 머스캣을 떠올리면 돼요.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보편적인 게 최고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 이번 위기는 부침이 컸을 것 같습니다.
“공산품은 40년 하면 눈 감고도 만든다는데 농사는 점점 더 어려워요. 노하우는 많이 쌓았다만, 농사도 운이 따라줘야 해요. 하늘이 도와줘야 하죠. 요즘 이웃 농가들 다 속이 타들어 갈 겁니다. 매일 울상으로 지낼 수 없으니 웃기야 하겠지만 우리끼리 모이면 성토의 장이 벌어져요. 농부끼리 하는 말이 있습니다. 농사하는 사람이 제일 불상하고, 제일 끗발 없다고요.”
◇출하기엔 새벽 5시 기상, 매출의 30%가 수입
요즘 같은 시기엔 끗발 없다며 한탄할 새도 없다. 연일 부정적인 소식이 쏟아지지만, 수확기엔 새벽 5시 기상해 아침 댓바람부터 하우스를 둘러봐야 한다. 병충해가 발생한덴 없는지 두루 관찰하고, 땡볕이 내리쬐거나 무더운 날엔 차광막을 걸어준다. 4월 중순임에도 하우스의 온도는 40℃에 육박했다.
- 수입이 얼마나 되세요.
“매출의 30%입니다. 하우스 한 동 매출이 1500만원인데 비용이 1000만원이니 500만원을 버는 셈이죠. 방울토마토 하우스 8동을 운영 중이니 연 순익은 4000만원입니다.”
- 방울토마토는 어떤 존재인가요.
“고마운 존재죠. 이걸로 삼남매를 키웠으니. 직장이라고 봐야죠. 그렇다고 애틋하고 예뻐 죽겠고 그런 건 또 아닙니다. 그럼 유통 안하고 내가 갖고 있어야죠. 열심히 키워서 내보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어요. 딸 중 하나가 초등학교 교산데, 딸이 나눠준 방울토마토를 먹고 바로 주문한 선생님들도 있었어요. 그럴 땐 참 뿌듯하죠.”
◇방울토마토, 냉장 보관하면 안 되는 이유
열과 성을 다해 키운 방울토마토는 농가에서 선별하거나 산지 유통센터에서 공동 선별한다. 후자의 경우 세도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에서 진행한다. APC는 총 42곳이 있다. 공동선별회(공선회)에 가입한 42개 농가의 수확물을 공동선별한 후 '미스타팜' 같은 커머스 플랫폼이나 하나로마트, 롯데마트 등의 오프라인 채널에 납품한다. 이 외에 박스 공동구매 사업, 방울토마토 수급 조절을 위한 토마토즙 제조 사업 등도 한다.
지난해 세도 지역의 방울토마토 매출 규모는 600억원(추정치)이었는데 이 중 170억원이 APC에서 발생했다. 출하량이 절정인 5월에는 하루 40톤 넘는 방울토마토가 센터에 입고된다. APC 취재는 세도농협의 양윤섭 계장이 동행했다.
- 센터 운영의 취지와 목적이 궁금합니다.
“농가 분들은 농사에는 도가 텄지만 수확 이후의 과정에 어려움을 겪으세요. 센터에서는 농가가 어려워하는 선별 작업, 판로 개척 및 유통을 대신합니다. 농가는 그날의 수확물을 센터 앞에 내려놓기만 하면 돼요. 무게를 측정하고, 입고증을 끊고 나면 그날 농가의 역할은 끝납니다. 하루치 수확물을 센터에서 한 번에 선별해서 포장하고, 유통하니까 농가 입장에선 인건비를 아낄 수 있습니다. 직접 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죠. 일손이 줄어드니까 농사에 더 집중할 수 있고요. 실제로 장목을 전환하거나 농사 규모를 늘리기 위해 공선회에 가입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 어떻게 선별하나요.
“각 농가의 수확물 중 다섯 알을 무작위로 으깨서 당도를 측정합니다. 평균치로 해당 수확물의 당도를 계산하죠. 이후 밝은 곳에서 육안으로 오염됐거나 금이 간 과실을 골라내는 ‘직접 선별’을 합니다. 이 단계에서 농가의 실력이 드러납니다. 농사 잘하는 농가의 수확물은 걸러낼 게 별로 없는 반면, 실력이 아쉬운 농가의 수확물은 선별에 오랜 시간이 걸리죠. 그다음 과실을 크기로 구분하는 ‘형상 선별’을 합니다. 보통 크기별로 1번부터 5번까지 5단계로 분류합니다. 숫자가 적을수록 큰 것인데요. 그렇게 분류된 방울토마토는 자동으로 저울이 달린 상자 위에 투하됩니다. 기준 무게를 충족한 상자는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포장대로 이동합니다.”
- 알아서 유통하니까 농가 입장에선 농사를 더 잘할 유인이 없어진 게 아닌가요.
“당도를 기준으로 차등 정산합니다. 당도가 7브릭스 미만이면 평균가보다 저렴하게, 7~8브릭스면 평균 수준으로, 8브릭스 이상은 평균 이상으로 가격을 책정하죠. 품질에 따라 달리 정산하니까 가입 농가 모두 맛있는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려 노력합니다. 선순환을 창출한 덕에 미스타팜, 쿠팡, 롯데마트 같은 훌륭한 유통처를 확보할 수 있었죠.”
- 방울토마토 맛있게 먹는 법 알려주세요.
“가장 인기 있는 크기인 ‘로얄과’는 2번과입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 한입에 쏙 들어오죠. 과실을 고를 땐 꼭지가 싱싱하고 광이 나는 것이 좋습니다. 과실로 판단하는 게 어렵다면 지역 농협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부여농협 브랜드는 ‘굿뜨래’인데요. 이 브랜드를 달고 유통되려면 까다로운 실사와 조사를 거쳐야 해요. 브랜드가 품질보증수표인 셈이죠. 보관의 경우 냉장 보관하면 결로 현상으로 표면이 쭈글쭈글해지니 꼭 상온 보관하세요. 먹기 직전에 잠깐 냉장해서 시원하게 드시면 됩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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