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실직에 파산까지, 인생 나락갈 뻔 했던 싱글골퍼 구원한 아이디어

더 비비드 2024. 6. 26. 15:32
신개념 골프 장갑 개발 노트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주식회사 레온의 홍두호 대표. /더비비드

골프의 기준점수는 72타다. 한 게임에서 공을 친 횟수가 72번보다 많으면 오버파, 적으면 언더파라고 부른다. 평균 기록이 72타에서 81타 사이인 사람을 ‘싱글 골퍼(single golfer)’라고 하는데, 이 정도 실력이면 취미로 골프를 즐기는 아마추어 골퍼 사이에선 매우 잘하는 축에 속한다. 아마추어 골퍼 중 상당수가 100타 이상의 기록을 갖고 있다.

주식회사 레온(이하 레온)의 홍두호(64) 대표는 싱글 골퍼다. 직장인 시절 회사 헬스장에서 처음 골프를 접하고 매력에 푹 빠졌다. 그로부터 20년 후 골프 장갑을 직접 개발해 특허를 내고 창업했다. 홍 대표는 취미가 업으로 이어지니, 일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를 만나 취미 생활을 하며 사업 아이템으로 연결한 계기와 제품 개발기를 들었다.

◇손바닥에 구멍 뚫린 골프 장갑

레온의 LOCK 골프그립 트레이너. /더비비드

레온은 골프용품을 개발하는 회사다. 대표 상품은 초보자용 양손 골프 장갑 ‘LOCK 골프그립 트레이너’와 왼손용 한짝 골프 장갑 ‘SOS 골프그립 트레이너’다. 골프채를 올바르게 쥘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제품이다.

세가지 특징으로 쥐는 법을 교정한다. 먼저 손바닥 부분에 구멍을 크게 뚫었다. 피부가 드러나는 부분에 골프채가 닿으면 잘못된 그립이란 의미다. 손바닥에 채가 닿으면 안 된다는 교본 속 방법에서 연상해 개발했다. 올바르게 쥐는 법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한 것이다.

레온의 SOS 골프그립 트레이너. 손바닥 부분 타공, 약지와 새끼 손가락 사이의 벨크로, 그리고 손가락 마디의 가이드라인으로 골프채 쥐는 법을 쉽게 터득할 수 있다. /주식회사 레온

골프채에 맞닿아야 하는 손가락 마디 부분에는 두줄의 볼록한 선이 있다. 이 선 사이에 골프채를 끼우면 된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선 안쪽에는 메모리폼을 덧댔다. 손을 구부렸을 때 손가락과 채 사이의 공간이 남지 않아 접지력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벨크로로 붙여버렸다. 백스윙하며 손목을 꺾을 때, 채에서 새끼손가락이 들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손가락으로 채를 강하게 지지하기 때문에 지렛대 효과가 극대화된다. 공이 멀리 나갈 수 있다.

내구성이 좋은 극세사 원단과 스판덱스 원단 ‘라이크라’를 사용해 손세탁이 가능하다. 초보자는 골프채 쥐는 법을 쉽게 익힐 수 있고, 골프 애호가는 경기력을 향상할 수 있다.

◇헬스장에서 안 쓰는 중고 골프채로 입문

1985년 군 제대 후 바로 직장 생활을 했다. 골프는 회사 사내 헬스장에서 처음 접했다. /홍두호 대표 제공, 더비비드

홍두호 대표는 1985년 군 제대 후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롯데백화점 영업팀에서 근무하다 1993년 나산그룹으로 이직해 백화점 영업과 나산농구단 홍보 업무를 했다.

직장인 시절부터 운동을 즐겼다. 매일 2시간 일찍 출근해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일할 정도였다. 골프도 이때 처음 접했다. “아침 6시마다 헬스장에 출석 도장을 찍는 바람에 관장님과 친해졌어요. 헬스장에 실내 골프 연습장이 딸려 있었는데요. 관장님이 어느 날 헬스장에 방치된 중고채를 주시면서 골프 연습을 해두라고 하시더군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쓸모가 있을 거라면서요. 곧 골프 교본을 사서 읽어보고, 모르는 건 관장님한테 물어보며 3년 만에 싱글 골퍼 기록에 도달했어요.”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1997년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난 것이다. “인생 취미를 찾았다고 만족해하던 순간 갑자기 실직자가 됐죠.”

홍두호 대표는 첫 사업의 실패를 뒤로하고 심기일전해 레온 창업에 재도전했다. /더비비드

얼떨결에 첫 창업을 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영업, 유통 쪽이다 보니 법인을 세워 우산, 가방과 같은 생활 잡화를 유통했습니다. 백화점에서 근무한 덕에 질 좋은 제품을 선별하는 능력이 있었어요.”

10년 정도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회사가 어려워졌다. “2011년 기업을 정리하고, 재창업 기회를 모색했습니다. 신용보증기금, 한양대학교, 동국대학교 등 기관에서 주관하는 창업 교육 과정을 들으며 기본기를 다시 다졌죠.”

2014년 창업진흥원의 중소기업 창업 재도전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재창업 기회를 얻었다. “골프용품 사업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하면서 느꼈던 자세에 대한 궁금증, 비용적인 부담을 용품에 녹여 골프를 쉽게 즐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거든요.”

◇목장갑으로 개발 시작, 30만장 팔린 골프그립 트레이너 개발 노트

1. 생활 속에서 발견한 사업 아이템

제품 개발 단계에서 직접 목장갑을 잘라보며 착용감을 시험했다. /홍두호 대표 제공

어려워진 사업 탓에 골프를 잠시 쉬었더니, 오랜만에 다시 잡은 골프채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빨리 감을 찾을까’ 궁리하다 자연스럽게 골프 장갑이 눈에 들어왔다. 2014년 주식회사 레온을 설립하고 노트를 펼쳤다. ‘저절로 골프채 쥐는 법을 터득할 수 있는 골프 장갑’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골프 프로 선수에게 받았던 수업 내용과 골프 교본 속 골프채 파지법(쥐는 법)을 기반으로 장갑을 디자인했다. “골프 교본에 따르면 골프채는 마치 계란을 움켜쥐듯 채와 손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고, 손바닥이 아닌 손가락의 힘을 이용해 잡아야 합니다. 골프채가 닿으면 촉감으로 바로 느낄 수 있도록, 골프채에 닿지 말아야 할 부분은 장갑으로 감싸지 않기로 한 거죠. 장갑의 손바닥 부분에 구멍을 내보고, 손끝 부분도 잘라보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목장갑을 낀 채 골프채를 잡아봤죠. 손이 상처투성이가 될 정도로 여러 시도를 했어요.”

2. 아이디어 상품 개발은 속도전이다

홍두호 대표는 골프 장갑과 관련한 아이디어 6건을 특허로 등록해두었다. /홍두호 대표 제공
레온의 LOCK 골프그립 트레이너의 설계도. /주식회사 레온

빠르게 제품을 개발하고 특허 출원부터 했다. “이제부턴 속도전이죠. 골프가 취미인 제가 떠올린 아이디어잖아요. 언제 누가 또 비슷한 발상을 할지 모르니까요. ‘손바닥 부분에 구멍이 뚫린 장갑’에 대한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기능을 보완하면서 특허를 계속 출원했어요. 골프장갑만 관련해서 6건의 특허를 등록했죠.”

아이디어를 빠르게 제품화해야 했다. 온라인 유통이 가능하게끔 크기를 단순화했다. “채를 쥘 때 접지력을 올리기 위해 골프 장갑을 낍니다. 손에 꼭 맞아야 해서 치수가 중요하죠. 장갑의 크기는 통상 18~24호까지 손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데요. 빠르게 유통하려면 규격을 단순화해야 했습니다. 규격이 세분돼 있을수록 온라인 판매도 어렵고,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요.”

LOCK 골프그립 트레이너의 경우 여성용(18~20호)과 남성용(22~24호)으로 구분돼 있다. /주식회사 레온

소재의 장점을 활용해 치수를 두 구간으로 줄였다. LOCK 골프그립 트레이너의 경우 여성용(18~20호)과 남성용(22~24호)으로 구분돼 있다. 손바닥 부분에 얇은 국내산 극세사 원단을 써서 접지력을 높였다. 손등 부분은 국내산 스판덱스 원단인 ‘라이크라’를 사용했다. “라이크라 원단은 얇아서 통기가 잘 되고 신축성이 좋습니다. 손등 부분이 사용자의 손 크기에 맞게 늘어나면 규격을 단순화할 수 있죠. 착용 시 신축성이 좋은 만큼, 세탁 후 복원력도 뛰어나야 합니다. 세탁 후 장갑이 늘어나 헐거워지면 안 되니까요.”

3. 두 마리 토끼 다 잡는 똑똑한 생산 전략

베트남 현지 봉제 공장의 모습. /주식회사 레온
/더비비드

골프 장갑 제조는 수작업이 불가피하다. “봉제할 때 사람이 원단을 붙잡고 손가락 모양대로 재봉틀에 밀어 넣어야 합니다. 사람이 꼭 필요한데 인건비가 높아 국내에는 장갑 봉제 공장이 없습니다. 묘안이 필요했어요. 국내에서 원단을 수급해 베트남으로 보내고, 봉제 작업을 베트남에서 한 뒤 완성된 장갑을 다시 국내로 들이기로 했죠.”

장갑 완제품을 들여와 포장은 국내에서 진행한다. 물류비를 줄이면서도 품질 관리가 가능한 생산 전략이다. “장갑은 한 치수당 최소 5000세트씩 주문해야 합니다. 예컨대 LOCK 골프그립 트레이너 제품을 들여오려면 총 1만세트를 가져오는 셈이니, 박스 포장까지 해외에서 하면 부피가 커져 물류비가 늘죠. 장갑의 품질 검사도 제대로 할 수 없고요. 한국에서 최종 검수·포장 작업을 하면 불량품도 걸러낼 수 있고, 물류비도 20% 이상 절약할 수 있어요.”

4. 소비자 반응 살펴 제품 보완

골프장갑 개발을 마치고 홍보를 위해 골프장과 연습장을 다녔던 일화를 소개하는 홍두호 대표. /더비비드

출시 초기에는 골프 장갑 홍보를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수도권의 골프 연습장, 골프용품점을 무작정 찾아가 제품을 소개했습니다. 제가 속한 골프 동호회 회원들은 전속 체험단이 됐죠.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아낌없이 제공해 사소한 피드백까지 꼼꼼히 들었어요. 의외의 장점도 알게 됐죠. 손톱에 네일아트를 하신 여성 골퍼들에겐 칭찬을 들었어요. LOCK 골프그립 트레이너의 손끝이 뚫려있으니 손톱이 더 편하다고 하시더군요. 이 부분을 알게 된 이후 홈쇼핑 판매를 진행할 때 소구 포인트로 활용했어요.”

2014년 골프 장갑 첫 출시 이후 지금까지 30만장 이상 판매했다. 레온의 2022년 매출은 5억원이다. “단일 상품으로도 성과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유사 상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늘 신제품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었죠. 2018년에는 사용자의 피드백을 수렴한 신제품 SOS 골프그립 트레이너를 출시했습니다. 기존 LOCK 골프그립 트레이너가 골프 입문자를 위한 제품이라면, 신제품은 그립법이 익숙해진 이를 위한 제품입니다. 제품의 특징은 그대로 살리되 사용감에 더 집중해 치수를 S, M, L 세가지로 세분화했습니다. 양손 한 켤레로 팔던 제품을 왼손 한 짝으로 줄여 가격 부담을 낮췄죠.”

◇골프 진입 장벽 낮추는 것이 목표

취미가 업이 되니까 일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홍두호 대표. /더비비드

취미가 업이 되면 오히려 취미를 잃게 된다는데, 홍 대표는 그렇지 않다. 지금도 한 달에 2~3번은 골프장에 나가 골프를 즐긴다. “취미가 업이 되니까 일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업무적 부담이 사명감으로 승화됐죠. 저한테 레온은 단순한 돈벌이 이상입니다. 골프가 도전하기 어려운 취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죠. 골프 초보자라면, 다른 장비 없이 일단 골프 장갑과 골프화만 사서 시작해 보세요. 혹시 모르죠. 여러분도 골프에 빠져 참신한 아이디어가 샘솟을지도요.”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