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딱 보면 압니다, 치킨 무게를 한 눈에 알아채는 방법"

더 비비드 2024. 6. 25. 13:50
닭 농가를 위한 스마트팜 솔루션 개발한 파이프트리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닭 농가를 위한 스마트팜 솔루션 개발한 파이프트리 이병권, 장유창 대표. /더비비드

치킨을 먹어야 할 이유는 너무 많다. 축구 경기가 있어서. 맥주 안주로 딱이라서. 복날이라서. 스트레스 받은 날이라서. 선물 받은 모바일 쿠폰을 써야 해서. 그럴듯한 이유가 없다면 만들어내면 된다. 걸어가다 치킨 냄새가 나서. 치킨집이 가까워서. 더워서. 추워서.

양계 스마트팜 스타트업 파이프트리 이병권 대표(42)와 장유창 대표(34)는 치킨을 먹다가 창업 아이템을 찾았다. 양계 농장에 스마트팜 기술을 적용해 닭의 평균 체중, 건강 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파머스 마인드(Farmers mind)’ 시스템을 개발했다. 닭으로 창업하니 치킨을 보는 눈빛부터 다르다. 두 대표가 손을 잡고 양계농장으로 향한 이유를 들었다.

◇두 남자 이야기

파이프트리 이병권 대표는 빈곤 문제 해결을 꿈꾸며 창업 의지를 다졌다. /더비비드, 이병권 대표

도처에 음식물 쓰레기가 쌓이는데, 지구 어떤 곳에선 먹을 게 없어 생명의 불씨가 꺼진다. 이병권 대표는 그 모습을 23살 중앙아시아 여행길에서 봤다. 그리곤 삶의 목표를 세웠다. 빈곤 문제 해결. 다소 거창하지만 진지한 결심이었다. 개인의 힘으로 꿈을 이루려면 영향력 있는 사람이 돼야 했다. ‘창업’에서 답을 찾았다. 창업 과정부터 결과까지 ‘빈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삶은 현실이었고, 대학 졸업은 ‘취업’으로 이어졌다. 두산 인프라코어 기술 R&D센터, SK 데이터 사이언스 팀에서 각각 7년, 3년간 근무했다. 그래도 창업에 대한 꿈은 놓지 않았다.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던 날, 어김없이 ‘창업’의 꿈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놨다.

“언제까지 그 소리야?” 핀잔처럼 툭 던진 친구의 말이 자극이 됐다. 10년 넘는 세월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창업 타령’만 했다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 길로 사직서를 썼다.

파이프트리 장유창 대표는 망할 때 망하더라도 ‘내 일’을 하고 싶다며 창업에 뛰어들었다. /장유창 대표, 더비비드

같은 시기 장유창 대표도 창업의 열망에 들끓고 있었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현상을 보며 프로게이머 FA시장이 열릴 것이라 내다봤다. ‘프로게이머 FA 플랫폼’이라는 아이템까지 정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장 대표는 부동산 개발 회사에서 대출 플랫폼 기획을 맡았었다. 금융위원회에서 새로운 규제를 던질 때마다 몇 번이고 방향을 바꿔야 했다. 3년 뒤 전기 배터리 회사로 이직한 후에도 갈팡질팡하는 것은 여전했다. 콘텐츠 사업을 기획하다가 대외 변수로 엎어지기 일쑤였다.

그때 장 대표가 떠올렸던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긴 이가 나타났다. 해당 회사의 대표는 장 대표보다 2살이 어렸다. 우물쭈물하다가 창업의 꿈과 멀어질까 덜컥 겁이 났다. 용기를 내야 할 때였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을 하기로 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창업 나라

장유창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이병권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 /파이프트리

두 사람은 2017년 자전거 동호회에서 처음 만났다. 서로의 첫인상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장) “이 대표가 ‘세계 빈곤’이 어떻고, ‘식량 문제’가 어떻고 하는데, 처음엔 흘려들었어요. ‘얼마나 진심이겠어’란 생각에 경계했죠. 그런데 매주 같은 얘길 하면서도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더군요. 어느 순간 주말마다 만나서 수다 떠는 사이가 됐습니다. 하루에 10시간 넘게 식당, 카페를 오가며 대화한 날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예요.”

(이) “장 대표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어요.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관심이 많았고 엉뚱한 소릴 자주 했죠. 그런 점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져 거리를 뒀었어요. 어느 날인가 길게 얘기할 기회가 생겨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누구보다도 ‘잘 듣는’ 친구더군요. 창업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 덕분에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함께 하기로 결심했죠.”

이 대표와 장 대표는 ‘창업’이라는 공통점으로 빠르게 가까워졌다. /더비비드

코로나19가 한국에 상륙했던 2020년 1월. 두 사람은 치킨집에 모여 앉아 사업 방향성을 논의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잔량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려다 개발에 필요한 실제 운행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해 제자리걸음을 하는 중이었다. 그때 장 대표가 특유의 엉뚱한 소리를 꺼냈다.

“닭은 코로나에 안 걸리나?”
“닭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리지!”
“인공지능으로 조류인플루엔자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곧바로 자료 조사에 착수했다. 조류인플루엔자는 닭을 키울 때 겪을 수도 있는 가장 큰 변수였다. 조류인플루엔자로 닭이 죽으면 반경 3㎞ 이내의 농가는 예방적 살처분 조치에 따라야 한다. 양계농가에서 닭의 이상 징후를 지자체에 보고하지 않으면 질병 확산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감염 여부를 빠르게 알아내는 일이 관건이고, 인공지능을 활용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닭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창업 초기 양계농장을 둘러보는 모습. /장유창 대표 제공

닭의 체온에 주목했다. 닭도 사람처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열이 난다. 한 닭장 안에 있는 닭들의 평균 체온이 정상 체온(40도)보다 0.7도 이상 올라가면 조류인플루엔자 감염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이외에도 소음, 활동성 등의 요소를 더하면 정확도는 높아진다. 조류인플루엔자 조기 감지 알고리즘을 개발해 양계농가에 시범적으로 설치했다. 비용은 일절 받지 않았다.

(이) “양계농가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처음엔 화색을 띠다가도 ‘계란 값 떨어지겠는데’, ‘다른 농장엔 팔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등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조류인플루엔자를 잡으면 오히려 풍요의 역설(공급이 넘쳐 가격과 수익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양계농가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으로 눈을 돌려야 했어요.”

닭의 체중을 인공지능으로 관리하는 모습. 양계농장 천장에 달린 CCTV가 닭을 비추고 있다. /장유창 대표 제공

(장) “전국의 농가를 다녀보니 조류인플루엔자만큼이나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닭의 체중’이었습니다. 닭은 소·돼지처럼 육질로 등급을 매기지 않고 오로지 무게로만 분류합니다. 일일이 잴  수 없으니 표본을 고르는데 그 수가 너무 적습니다. 축사 하나에 3만 마리를 키우는데 단 10~20마리의 평균 체중을 계산해 판매하더군요. 하림 같은 수매업체 입장에선 1㎏인 줄 알고 구매했는데 그에 못 미치는 닭은 헐값에 되팔아야 합니다. 그 손실은 판매가격 고스란히 상승으로 이어지죠. 생산자들의 불찰이 소비자 효용 감소로 이어지는 겁니다.”

(이) “수년간 양계농가를 다니면서 양계 산업 내 구성원 간 불신이 팽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평균 체중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없으니 수매처와 농장주가 신뢰를 쌓으려야 쌓을 수 없는 구조였죠. 수매처 담당자가 아침 저녁으로 농장주에게 전화해 닭의 체중을 물어보는 모습은 너무나 비효율적으로 보였습니다.”

닭의 체중을 관리하기 위해 양계농장 천장에 CCTV를 달았다. /장유창 대표 제공

닭의 체중을 인공지능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논문을 뒤졌다. ‘면적과 중량의 상관관계’를 다룬 논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3차원인 부피가 아니라 2차원인 면적만으로도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을 확인했으니 실제로 구현할 차례였다.

(이) “천장에 CCTV만 설치하면 실시간으로 닭의 평균 체중을 확인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닭을 키우는 데 보통 30일 정도 걸리는데요. 그만큼 체중이 변하는 속도도 빨라요. 기존에 직접 체중계에 닭을 올려 가늠하던 방식으로는 평균 체중의 정확도가 80%에도 미치지 못했는데요.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정확도가 92%까지 올라갑니다. 양계농장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에 ‘파머스 마인드’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장) “농가와 수매처에 각각 구독료 명목의 이용 요금을 받고 있어요.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업체가 여럿 있지만 모두 초기 설치비용이 상당하더군요. 파머스 마인드는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설치할 수 있습니다. CCTV와 컴퓨터 1대면 되니까요. 농가에서 별도 요청이 들어오면 온·습도, 음수량, 사료, 암모니아 악취 등 별도의 요소를 감지하는 센서를 추가로 설치하기도 합니다.”

파머스마인드 구동 화면. 양계농가는 농가용(왼쪽), 수매처는 기업용(오른쪽)으로 접속해 농가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파이프트리

대표적인 닭고기 수매업체인 체리부로, 신우에프에스 등이 파머스 마인드로 닭의 유통을 관리하고 있다. 2020년 6월 파이프트리 법인 설립 이후 2021년 2억2000만원, 2021년 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23년 예상 매출은 20억원이다.

(이) “평균 체중 알고리즘은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아직 조류인플루엔자 등 질병에 대한 부분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건국대 수의학과와 협업해 실험도 했습니다. 열화상 카메라로 닭의 체온을 측정할 땐 72시간 만에 호흡기성 질병(IB) 감염 사실을 확인했고, 마이크를 설치해 울음소리를 분석했을 땐 48시간 만에 찾았죠. 이렇게 양계농장에서 생길 수 있는 변수를 줄여나가면 닭 가격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불확실성이 만드는 불안

파이프트리는 2020년 9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이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 본선 무대에 올랐다. /파이프트리

창업 이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예측할 수 없었기에 더 불안했다. 2020년 9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디데이) 본선 무대에 오를 때만 해도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022년엔 매출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6개월간 직원들의 급여를 주지 못했다. 창업의 밝은 면을 경험하고도 경영난에 허덕인 것이다.

(장)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2022년 하반기엔 인수합병 제안을 받고 이만 놓아버릴까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동료들과 둘러앉아 회의하는데 만장일치를 얻은 쪽은 ‘포기’가 아니었어요. 지금 포기하면 죽기 전까지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모두 공감했죠.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직장인일 때와는 천지차이예요. 닭의 일생이 나의 일생만큼이나 중요해졌습니다.”

파이프트리 직원들과 함께 서서 활짝 웃고 있는 두 대표. /파이프트리

(이)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 닭의 공급망을 관리하고 싶습니다. 곡물은 비교적 관리 시스템이 잘 갖춰진 편입니다. 글로벌 식량 공급회사인 ‘카길’은 인공위성을 띄워 경작지의 면적을 확인하고 연간 수확량을 가늠해 가격을 결정하죠. 닭은 그보다 더 쉬울지도 몰라요. CCTV가 인공위성의 역할을 해내니까요. 파이프트리는 이렇게 한 걸음씩 세계 빈곤 문제 해결에 다가가는 중입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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