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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운전기사 출신의 농협 조합장, 만성 적자 화성 떡 공장의 대변신

정남농협 떡공장 다녀왔습니다

 

정남농협 김경식 조합장이 도정 시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더비비드

“사료가 품절돼 배달이 며칠 미뤄졌을 때의 일이예요. 축사 돼지들이 사료 배달차 소리를 아나 봐요. 농장에 차가 들어서자마자 멀리서부터 돼지 우는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조금이라도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농가들이 난리를 겪는구나. 이게 농협의 존재 이유구나.”

나고 자란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의 농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운전 기능직원이라는 직무로는 농민을 전방위적으로 도울 수 없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공부를 해서 환직 시험을 보고 사무직 명함을 받았다. ‘농협 생활 30년’의 주인공 정남농협 김경식(65) 조합장의 얘기다. 그가 요즘 농민들을 위해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떡이다. 김 조합장에게 농협의 존재 이유를 떡으로 보여주는 방법에 대해서 들었다.

◇농협 조합장이 된 운전사 출신의 시골 총각

화성시 동부에 있는 정남면은 도시와 시골의 장점을 한데 모은 지역이다. 면 한가운데로 황구지천이 흘러 토양이 비옥한 편이다. 약 1396곳의 농가가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동시에 수도권 접근성이 좋아 주변에 기업체와 소규모 공장이 많다. 이곳에서 생산한 농산품이나 가공식품을 큰 도시로 유통하기 좋은 구조다.

(왼쪽부터) 디딜향의 호두 영양찰떡과 디딜향 떡국떡으로 만든 떡국. /정남농협

정남농협은 지리적 이점을 토대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남농협 유통사업본부는 잡곡유통사업단과 화성웰빙떡클러스터사업단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통사업단에서는 지역 농가가 재배한 쌀을 수매하고, 도정한 후 선별한다. 떡사업단에서는 유통사업단에서 도정한 곡류로 떡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떡은 총 831평 규모의 전용 공장에서 제조 후 ‘디딜향’이라는 브랜드로 유통된다. 방부제나 향료 없이 경기미와 국산 재료로만 만든 디딜향 떡은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다. 냉동 영양찰떡의 경우 실온에서 해동한 후 먹으면 되는데 식사 대용으로 인기가 많다. 떡볶이 떡, 조랭이 떡 같은 냉장떡류는 타 브랜드의 흰 떡보다 밀도가 높아 찰진 맛이 특징이다. 품질을 인정받아 미국, 유럽, 아시아 주요 국가 등에 수출되고 있다.

도정 및 선별을 마친 곡류를 저장한 창고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 조합장. /더비비드

1990년 정남농협에 기능직 직원으로 입사했다. 그가 처음 부여받은 역할은 운전기사였다. 지역 농가에 사료를 배달하기 위해 새벽부터 운전대를 잡고 사료 공급처인 인천까지 다녔다. 잡곡 센터 소속 운전사 일 때는 팔도의 잡곡을 수집하기 위해 방방곡곡을 누볐다.

90년대 중반, 보다 다양한 업무를 아우르기 위해 환직 시험을 보고 농협 일반직 직원이 됐다. 이후 농약, 비료, 마트 관리, 보험 등 농민과 관련된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이후 2015년까지 농협인으로 살았다. 은퇴 후 4년간 상임 이사를 역임하다가 지난 3월 정남농협 조합장으로 당선됐다.

- 직무를 한번 바꾸셨네요.

“운전 직원 시절, 배달을 끝내고 농민들과 술 한잔하는 걸 낙으로 살았어요. 서로 고민을 털어놓으며 돈독히 정을 쌓았죠. 벼농사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농민에 삶에 대한 연민을 늘 지니고 있었는데요. 운전 기사로는 농민에게 도움을 주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농가와 접점을 더 늘리고 싶었어요. 물론 급여를 높이고 싶다는 개인적인 동기도 한몫했고요.(웃음)”

- 조합장으로 출마한 계기는요.

“활기를 잃어가는 정남면에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58년생 개띠인데요. 이곳에서는 젊은 편에 속합니다. 입사 초 친하게 어울려 지냈던 분들 중에 작고한 분들이 많아요. 그만큼 농촌의 고령화 문제는 심각합니다. 농협이 여기까지 성장한 데에는 예전 조합원들이 협조해 주신 덕이 큰데요. 이분들의 공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없었어요. 젊은 사람들이야 알아서 살 길을 잘 찾겠지만 고령의 조합원들은 농사 말고는 대안이 없어요. 제 이웃이자 친구인 가입 농가들의 소득을 보전하고, 여러 혜택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쌀 소비량 감소 문제에 대한 쫄깃한 대안

김 도합장이 도정 시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남농협 잡곡유통사업단은 수매한 곡류를 도정 및 선별한 후 소포장해서 마트, 학교 급식용 등으로 유통한다. /더비비드

정남농협 잡곡유통사업단은 수매한 곡류를 도정 및 선별한 후 소포장해서 마트, 학교 급식용 등으로 유통한다. 계약을 맺은 농가의 곡류 재배 면적은 162만평으로, 1년 생산량은 3300톤에 달한다. 유통사업단에서 도정 작업을 거친 쌀 일부는 떡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화성웰빙떡클러스터사업단으로 옮겨진다. 떡사업단에서는 매일 맛있는 떡을 만든다. 매일 13톤의 냉장떡과 1톤의 냉동떡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 떡클러스터사업단의 개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1인당 쌀 소비량이 줄고 있습니다. 농가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쌀 소비 촉진 방법을 발굴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습니다. 떡클러스터사업단은 쌀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쌀 소비는 줄어도 ‘떡’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지 않아요. 명절엔 떡국과 송편을, 평상시엔 떡볶이를 통해서 꾸준히 떡을 섭취하잖아요. 가입 농가에서 재배한 쌀로 떡을 만들어 팔고, 이로 인한 이익을 나눠 가지면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2009년 떡클러스터사업단을 발족하고 떡 브랜드 ‘디딜향’을 론칭했습니다.”

디딜향 냉동떡의 맛깔나는 모습. /정남농협

- 디딜향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디딜방아를 통해서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는 뜻인데요. 계약재배한 경기미만 사용합니다. 제조 과정에서 방부제, 향료, 색소를 일절 쓰지 않습니다. 인공 향료를 쓰지 않는 게 마냥 장점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향이 첨가된 식품을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어르신들은 달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다며 디딜향의 떡을 좋아하십니다.”

- 어떤 떡을 생산하나요.

“제조하는 떡은 보관방법에 따라 냉장떡과 냉동떡으로 분류합니다. 냉장떡은 떡볶이 떡, 조랭이 떡, 가래떡 같은 흰떡을 의미합니다. 성분의 98%가 쌀인 흰떡은 냉동실에 오래 두면 갈라지기 때문에 냉장 보관합니다. 유통기한이 130일 정도 돼요. 냉동떡은 절반은 찹쌀, 나머지 절반은 잡곡 등의 원재료로 구성되는데요. 찹쌀 외의 재료에 따라 다양한 떡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영양찰떡, 약밥, 찹쌀떡 등이 대표적이죠. 냉동떡의 경우 제조 후 급속 냉동하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1년 정도로 깁니다.”

◇맛있는 떡 탄생의 비밀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도정 공장에서 포즈를 취한 김 조합장, 왕겨가 쌓인 모습, 도정을 끝낸 후 톤백에 저장된 곡물들, 도정을 갓 끝낸 쌀. /더비비드

떡의 탄생 과정은 벼의 여정과 무관하지 않다. 매년 9~10월 농가로부터 수매한 벼는 가공부로 입고된다. 입고된 벼를 조선기에 넣어 이파리, 짚 같은 이물질을 제거한다. 그 후 벼의 껍질(왕겨)를 벗겨내는 제현 작업을 진행한다. 이후 도정기에서 도정한 다음 연미기로 넘겨서 쌀가루를 닦아준다. 그다음 색상 선별기로 넘어가 벌레를 먹었거나 색상이 너무 튀는 것을 선별한다.

도정부에서 취급하는 주요 곡물은 찹쌀, 현미, 백미다. 도정 작업 초반부에 벗긴 왕겨는 따로 모아서 돼지 축사의 깔개나, 퇴비 등으로 활용된다.

- 현미, 백미, 찹쌀은 어떻게 구분하는 건가요.

“쌀은 도정하는 정도에 따라 맛과 영양이 달라집니다. 현미는 과피를 벗겨내지 않아 쌀눈과 효분층이 남은 상태고요. 백미는 쌀눈이나 쌀겨가 깎인 상태를 뜻합니다. 백미와 찹쌀은 수분 함유량에 따라 분류됩니다. 투명한 백미는 벼의 수분을 15% 말린 것이고, 새하얀 찹쌀은 13% 말린 것이죠. 찹쌀은 관리하기 힘든 곡물입니다. 하얗다는 특성 때문에 점 하나만 있어도 상품성이 떨어져 걸러내야 하기 때문에 도정수율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찹쌀에 점이 있으면 떡에도 영향을 미쳐요. 떡에 사용하는 찹쌀은 더 꼼꼼하게 선별해야 하죠.”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불린 후 물기 제거 작업 중인 쌀, 곱게 갈린 쌀, 치대기 작업 중인 모습, 가래떡 모양으로 뽑혀져 나오는 냉장떡. /더비비

- 떡 제조 과정이 궁금합니다.

“냉동떡부터 설명 드릴게요. 냉동떡은 찹쌀로 만듭니다. 도정부에서 도정된 찹쌀을 세척한 후 불립니다. 이후 롤러를 통해 2번에 걸쳐 쌀을 곱게 갈아요. 곱게 간 쌀가루를 증자기에 투입해서 떡을 찝니다. 중간중간 올리고당, 땅콩, 콩 같은 재료를 투입해서 함께 찝니다. 중자기에 재료를 섞는 날이 있거든요. 떡을 40분간 찐 후 틀에 넣어서 모양을 맞춰줍니다. 이후 떡의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영하 30도에서 급속 냉동합니다.”

- 냉장떡은요.

“조금 더 간단해요. 준비단계는 냉동떡과 비슷해요. 재료가 멥쌀과 물뿐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멥쌀을 곱게 빻은 후 증자실에서 치대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떡을 2번 치대서 식감을 쫄깃하게 만들어요. 이 작업이 완료되면 길게 뽑아낸 후 용도에 맞게 자릅니다. 기계가 자르기 때문에 순식간에 떡볶이 떡이나 조랭이 떡, 떡국 떡 모양으로 가공돼요. 이후 탄력을 높이기 위해 냉각수에 떡을 담근 후 방냉실에서 하루 동안 열기를 제거합니다. 이후 이틀간 숙성 시켜요. 냉장떡들은 음식의 재료로 활용되기 때문에 서로 들러붙어선 안됩니다. 떡을 굳히기 위해서 숙성 작업을 꼭 해야 하죠.”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냉장떡이 뽑혀져 나오는 모습, 냉동떡을 증자기에서 꺼내는 직원의 노습, 냉동떡을 틀에 맞추는 모습, 일정한 크기로 잘려진 냉장떡. /더비비드

- 제조 시 주안점을 두는 게 있다면요.

“조합원 출하 품목을 우선 구매하고 수입산 재료를 일절 쓰지 않는 것입니다. 수입 재료를 사용해버리면 ‘농협표’라는 의미가 퇴색되고 맙니다. 수익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항상 농협의 존재 이유를 고민해야 하죠. 이물질 발생 위험을 없애는 데도 신경씁니다. 포장된 떡은 출고 전에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를 거칩니다. 위생 관리도 철저합니다. 저희 시설은 해썹(HACCP: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사업장인데요. 점검을 받을 때마다 모범 사례로 꼽힙니다.”

- 떡은 어디에 유통하나요.

“마트, 홈쇼핑, 온라인몰 등 다양한 경로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지역 학교 급식용으로도 납품하고 있어요.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중동 등 세계 곳곳에 수출도 합니다. 주요 수출 품목은 떡국 떡, 떡볶이 떡 같은 냉장떡입니다. 경기도 농식품 수출탑 100만불도 달성했어요. 2021년 기준으로 462톤의 떡을 수출했죠. 사실 수출 사업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요. 국산 재료만 쓰다 보니까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거든요. 그래도 명분이 확실한 일이라 수출 보조금에 의존해가며 감행하고 있습니다. 수출에 대한 농민분들의 자부심이 엄청납니다. 당신들이 키운 벼가 해외 어딘가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며 뿌듯하시죠.”

◇우리 떡은 농민의 노력을 예쁘게 빚은 결과물입니다

정남농협은 쌀값이 폭락하는 위기에도 흑자라는 큰 성과를 달성했다. 떡사업단의 활약 덕분이다. /더비비드

지난해 떡 판매 매출만 75억원을 기록했다. 쌀값이 폭락해서 다른 농협이 줄줄이 적자를 내는 극한의 상황에서 되레 돈을 번 것이다. 떡 공장이 화수분이 돼 준 덕이다.

화성 떡 클러스터사업단은 농협 가공공장 경영대상에서 대상(2021년), 동상(2020년), 금상(2017년, 2018년), 동상(2016년)을 받았다. 수십개의 농협중앙회 소속 가공공장 중에서 흑자 수익이 발생한 곳에만 부여하는 상이다. 2016년에는 6차산업인증을 받았다. 생산, 가공뿐만 아니라 체험 시설까지 갖춘 사업장만이 이 인증을 받을 수 있다.

- 체험 시설을 운영하면 번거로울 것 같은데, 6차산업인증을 받은 이유는요.

“농산물 생산부터 판매 체험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역량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남에게 보여줘도 될만큼 자신있다는 의미죠. 체험시설을 운영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본인들이 직접 만들어봐야 믿고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예컨대, 영양사분들은 체험을 통해 떡을 만들면서 구매 의사를 밝히곤 합니다. 체험 제공이 판매로 이어지는 셈이죠. 하지만 이만큼 좋은 촉매제가 있을까 싶어요.”

도정된 쌀 앞에서 미소를 보이는 김 조합장. /더비비드

- 약 반년간 조합장으로 활동한 소회가 궁금합니다.

“농협 브랜드로 상품을 만드는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작은 실수만 저질러도 전국의 농협에 위협이 되거든요. 이곳에서 제조한 떡이 조합원들의 얼굴이기도 하니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저희는 엄연히 기업이지만 이윤 추구에만 무게를 실을 수 없습니다. 손해를 감수하고도 비싼 값에 재료를 수매하기도 합니다. 딜레마적인 상황이지만 농협이라는 브랜드의 이미지, 조합원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의사 결정을 해야 하죠. 조합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니까요.”

-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떡사업단의 경우 발족 후 7~8년간 적자를 냈다가 비교적 최근부터 손익분기점을 넘고 있어요. 적자 기간을 들으면 다들 ‘그래도 되냐’는 반응인데요. 흑자나 적자보다 중요한 농협만의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농민’입니다. 정남농협은 낮술이 허용되는 직장입니다. 직원들이 조합원들과 낮에도 술자리를 가지곤 하거든요. 다른 직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괜찮습니다. 농가와 돈독하게 신뢰를 다지는 것만큼 훌륭한 업무가 있을까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농민을 위한 마음으로 잡곡사업단과 떡사업단 활성화에 전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디딜향 떡은 관내 조합원과 농민들의 노력을 예쁘게 빚은 작품입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단순한 결과물이 아닌 농협의 자부심입니다. 흠이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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