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닮았나요?" 생수 속 '이것'에 놀라 창업한 사촌형제

2025. 3. 13. 18:19인터뷰

미세 플라스틱 거르는
생수 필터 개발사 리얼워터
 

리얼워터의 권혁문 이사(왼쪽)와 사촌형이자 리얼워터의 대표 권혁재 대표(오른쪽). /더비비드

가족끼리는 동업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이 있다. 혈육 간에 이해관계가 얽히면 남보다 못 한 사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감에서 출발한 발언이다.

리얼워터의 권혁문(30) 이사는 가족 동업을 강력 추천한다. 한때 군인이었던 그는 8살 터울의 사촌형을 따라 창업의 세계에 입문했다. 사촌 권혁재(38) 대표가 개발한 것은 미세 플라스틱을 거르는 생수 필터다. 9명의 사촌 남매 중 유일한 남자 형제인 두 사람은 피나는 노력 끝에 회사를 안정궤도에 올리고,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다. 두 사람을 만나 사촌형제의 창업기를 들었다.

◇ 생수 속 한가득 미세 플라스틱, 작은 뚜껑 하나로 해결

리얼워터는 생수 병 내의 미세 플라스틱을 걸러주는 필터 개발사다. /리얼워터

리얼워터는 생수 병 내의 미세 플라스틱을 걸러주는 필터 개발사다. 국내외 연구를 통해 생수에서 검출된 미세플라스틱의 크기는 59~139㎛(마이크로미터. 0.005mm와 같음)다. 리얼워터 생수 필터에는 5㎛ 물질까지 여과할 수 있는 마이크로 세디먼트 필터가 장착돼 있다. 필터로 생수 속 미세 플라스틱을 전부 걸러낼 수 있다는 의미다. KIAST 한국분석과학연구소의 시험성적서를 통해 크기 45㎛ 이상의 미세플라스틱을 완벽히 제거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생수 속 미세 플라스틱은 생수병 가공 과정에서 발생한다. 페트병은 풍선을 불듯, 작은 플라스틱 덩어리를 5초 안에 팽창시키는 블로우 사출 방식으로 만든다. 이때 플라스틱 분자의 사슬이 끊어지면서, 미세 플라스틱 가루가 발생한다. 리얼워터 생수 필터는 블로우 방식이 아닌 틀에서 찍어내는 사출 방식으로 제작해 제품 내 미세 플라스틱 우려를 없앴다. 시험을 통해 환경호르몬 불검출, 형광증백제 불검출, 기타 유해 물질 불검출 등을 확인받았다.

생수 뚜껑처럼 생겼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생수병에 장착할 수 있다. /리얼워터

생수 뚜껑처럼 생겼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생수병에 장착할 수 있다. 생수병 뚜껑을 열고, 병 입구에 생수 필터를 끼운 뒤 병을 눌러 물을 컵에 따라 마시면 된다. 물 2L를 매일 여과한다고 했을 때, 필터 1개당 최대 2개월 사용할 수 있다. 사용 후 흐르는 물에 씻고, 건조 보관하면 보다 위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살균 등 열처리는 하지 않는 게 좋다. 2020년 6월 첫 출시 후 지금까지 30만개 이상 팔렸다. 

◇전직 군인이 창업을 결심한 이유

(왼쪽부터) 군 복무 시절 촬영한 사진, 현재의 권 이사. /권혁문 이사 제공, 더비비드

권 이사는 직업 군인이었다. 약 6년간 육군으로 복무했다. 명령에 충실하면 되니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훈련 중 무릎 부상을 입어 수술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병실에서 처음으로 군인이라는 직업에 의문을 던졌다. “이 생활을 계속 해야하나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두려웠어요. 당장 뭘 해야 할 지 모르니까요. 그때 병문안을 온 형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형은 첫 아이템이었던 신발 유통 사업을 성공시킨 후 다른 분야에서 새 출발을 한 상태였어요. 자극이 됐습니다. 저보다 여덟 살이나 많은데다 이미 이룬 게 많은 사람도 계속 도전한다는 걸 처음 알았으니까요. 앞으로 10번은 더 망해도 괜찮겠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권 이사와 권 대표의 어린 시절 사진. 목마를 태워주는 아이가 권 대표고 어깨 위에 앉은 아기가 권 이사다. /권혁문 이사 제공

2019년 1월 전역 후 다양한 일에 손 내밀었다. “사업을 하기 전에 공부부터 해야겠다 생각하고, 연이 닿는 대로 일했습니다. 개점한지 얼마되지 않은 식당의 마케팅 담당자로도 일했는데요. 식당이 단기간에 잘 되는 걸 보고 마케팅에 재주가 있단 걸 깨달았습니다. 요식업계에 몸 담으면서 느낀 문제점을 토대로, 포장 전문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기도 했어요. 야심차게 만들었지만 잘 되진 않았습니다. 제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거든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그때의 제게 필요한 건 당장의 성공이 아닌 경험치였으니까요.”

사촌동생의 마케터로서의 자질을 눈 여겨 본 권혁재 대표가 먼저 그를 찾았다. “리얼워터 창업 초기라 일손이 필요했나 봅니다. 저는 사업 공부가 절실했고요. 처음엔 제 일을 하면서 간헐적으로 형의 일을 도왔어요. 그런데 점점 리얼워터에 애착이 갔어요. 원래 무딘 성격인데요. 자취를 시작하면서 관점이 달라졌어요. 생수를 배달해먹기 시작했는데, 생수 속 미세 플라스틱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신경 쓰이더라고요. 리얼워터 생수 필터야 말로 시의적절하고 사업성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 올인하기로 결심했어요.”

◇생수의 배신

생수에 리얼워터 필터를 적용해서 컵에 여과한 물을 따른 모습. /리얼워터

리얼워터 생수 필터는 건강에 관심이 많은 권혁재 대표가 만들었다. 2019년 시판되는 대부분의 생수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뉴스 보도가 화근이었다. 정수보다 생수에 미네랄이 더 많다고 해서 생수를 사 마셨는데, 충격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마땅한 대안도 없었다. 생수 속 미세 플라스틱은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제조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생수병 내 미세 플라스틱을 줄일 방법도 없었다.

(왼쪽부터) 권혁재 대표가 직접 그린 필터 설계도, 함께 출장가는 모습. /리얼워터

‘생수병 상단에 미세 플라스틱을 거르는 걸 만들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생수에 꽂아서 사용하는 형태의 필터를 떠올렸다. 간결한 아이디어지만 개발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신문방송학과 출신인 형이 설계도를 직접 스케치했어요. 중고로 간이 3D 프린터를 들여서, 유튜브로 공부해서 시제품을 만들었죠. 시제품만 30번 이상 제작했고요. 적합한 제조처를 찾기 위해 11곳의 공장 문을 두드렸고, 금형도 4번이나 수정했습니다. 제품을 구상하고, 연구하고 출시하는 데까지 거의 2년이 걸렸어요. 이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형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제품을 홍보하기 전에 먼저 알린 것

생수 필터를 들고 포즈를 취한 권 이사와 권 대표. /더비비드

혈육이 열과 성을 다해 만든 제품을 세상에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제품군이라 쉽지 않은 과제였다. 생수 내 미세 플라스틱의 존재를 밝히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뉴스로 여러 번 보도됐지만, 이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소비자에게 제품의 강점부터 소구 하는 건 무용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생수병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된 사실을 알리는 메시지를 담아 영상과 카드뉴스를 제작했습니다. 제품보다 이런 시장의 존재를 먼저 제시한 것이죠.”

그 다음 단계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다. “150㎛ 이하의 미세 플라스틱은 소화관 내벽과 혈관 벽을 통해 신체 기관 곳곳으로 흡수됩니다. 임산부가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면 태반을 거쳐 태아에게까지 전달될 정도로 침투력이 강해요. 흡수된 미세 플라스틱은 배출이 안 돼 몸에 축적됩니다. 특히 치매, ADHC 등 뇌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많아요. 종종 ‘미세 플라스틱 무용론’을 펼치는 의견도 있지만 선제적으로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유해성이 입증된 가습기 살균제 사태처럼, 우려가 있는 것은 미리 피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죠. 이런 메시지를 마케팅에 활용했습니다.”

(왼쪽부터) 권 이사가 제작한 카드뉴스, 활성탄 가루를 타서 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영상. /리얼워터

초창기엔 자금이 부족해 콘텐츠를 직접 제작했다. “소비자들이 필터가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어떻게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죠. 활성탄 가루를 탄 생수를 저희 필터로 여과하는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까만 색의 물이 필터를 거친 후 맑아지는 걸 한 눈에 볼 수 있죠. 반응이 좋아서 뿌듯했습니다. 매출 성장세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을 때부터는 형이 법인카드를 줬어요. 시행착오가 있어도 되니 하고 싶은 시도를 다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결과가 항상 좋았던 건 아닌데 한 번도 질책한 적이 없어요. 저를 믿어준 덕분에 빠르게 성장한 것 같습니다.”

◇2024년 미세 플라스틱 파동 이후 매출 폭증, 미국 진출 목전

2024년 시판되는 생수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정부 기관의 발표 후 판매량이 폭증했다. /더비비드

가족이 합심한 결과는 달콤한 결실로 돌아왔다. 2020년 6월 이후 누적 판매량이 30만개에 달한다. 온라인몰 판매로만 이룬 성과다. 특히 2024년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시중에 판매되는 생수의 93%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국내 정부 기관이 이 문제에 대해 공식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이 일을 기점으로 2024년 판매량이 2023년 대비 3배 폭증했다. 

소비자 인식이 달라지는 걸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 “처음 리얼워터에 합류했을 때 생수 내 미세 플라스틱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았어요. 형도 애써 만든 물건이 시장에서 외면 당할까 걱정했대요. 반응이 오니까 신기하고 뿌듯합니다. 초창기엔 100만원치만 팔려도 좋겠다고 말했는데, 작년 크라우드 펀딩에서 억 단위의 매출을 기록했어요. 포털 사이트에 리얼워터를 검색하면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고요. 예전엔 형이 비싼 걸 사주면 눈치가 보였는데 이제는 편히 얻어먹습니다. 회사를 키우면서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에요. 친척 어른들도 너무 좋아합니다.”

사촌형제의 다음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이미 말레이시아, 브라질, 인도에 수출했다. “현재 일본과 중국의 특허를 등록했고 미국 특허는 출원해서 심사 중입니다. 가장 큰 목표는 미국입니다. 미국 생수 시장은 우리나라의 20배 규모입니다. 통상 크라우드 펀딩 성과가 좋으면 공급사나 유통사의 연락이 쏟아지는데요. 미국의 대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서 론칭해 유통 루트를 확보할 구상이에요. 미국에서 성공하면 다른 국가 진출 기회가 열리거든요.” 현재 온라인몰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권 이사는 사존형에게 존경의 마음을 갖고있다고 말했다. /더비비드

현지 맞춤형 제품과 콘텐츠도 준비 중이다. “미국 일부 생수 규격은 한국 생수 규격과 다릅니다. 현지 규격에 맞춘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어요. 그 규격대로라면 탄산수나 다른 음료수에도 적용 가능합니다. 그동안 탄산수용 필터도 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많이 받았는데, 그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겠죠. 마케터인 저는 미국 소비자가 가장 즐겨 찾는 숏폼 플랫폼의 문법에 맞춰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에요.”

어릴 적 목마를 태워줬던 8살 터울 형보다 키가 껑충 자라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목마를 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혹자는 가족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요. 저는 불평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존경심이 크거든요. 가족구성원으로서 형의 사업을 그냥 지켜봤으면 감흥이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형이 밟은 길을 따라서 제 개인 사업도 시도해봤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창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형에게 감사합니다. 쌓아온 것을 아낌없이 알려주니까요. 군인으로 살았으면 몰랐을 것들을 배우며 매일같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실패가 두렵지 않아요. 성취의 맛을 아니까요.”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