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카이스트 나와 서른에 공대 교수 임용, 지독한 봄철 비염 정복한 아이디어

더 비비드 2025. 3. 17. 08:29
34살 교수의 비염 정복 도전기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가천대 IT융합대학교 의공학과 전용민 교수. /더비비드

교수의 명함을 받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정말 교수가 맞을까. 능력이나 경력을 의심한 것이 아니다. 앳된 얼굴 때문이었다. 가천대 IT융합대학교 의공학과 전용민(34) 교수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학내 최연소 교수였다”며 익숙한 듯 웃었다.

전 교수는 서른 살의 나이에 교수로 임용됐다. 한때는 카이스트 박사, LG 디스플레이 연구원이었다. 지금은 모든 시간을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OLED(유기 발광 다이오드)의 바이오 메디컬 응용’이 주된 연구 주제다. 최근엔 LED 광원을 이용한 광 치료 의료기기 개발에도 참여했다. 전 교수를 만나 빛이 주는 힘에 대해 들었다.

◇콧물 뚝 그치게 하는 붉은빛

비염 증상을 완화하는 광 치료 의료기기 ‘노즈버드’. /더비비드

노즈버드는 파장으로 비염 증상을 완화하는 광 치료 의료기기다. 언뜻 보기엔 블루투스 이어폰처럼 생겼다. 본체 한 쌍에 각각 실리콘 팁을 씌워 콧구멍에 끼워 착용한다. 전원을 켜면 붉은빛이 들어온다. 3분 후 자동으로 전원이 꺼진다. 회당 3분씩 하루 3번 사용을 권장하지만, 증상이 있을 때 언제든 사용하면 된다.

​붉은빛의 정체는 비염 증상 완화에 도움을 주는 660㎚, 940㎚ 파장대의 저출력 광선이다. 660㎚ 적색 파장의 빛은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점막 진피세포의 활력을 강화한다. 940㎚의 근적외선 파장은 알레르기 비염 물질에 반응해 비만 세포(Mast Cell)가 만들어내는 히스타민을 억제한다. 노즈버드를 개발한 엔티브이랩스는 관련 기술로 특허도 등록했다.

​◇같은 연구, 다른 마음

카이스트 석박사 과정 당시 OLED를 측정하던 모습. /전용민 교수 제공

경희대 정보디스플레이학과 09학번이다. “원래 전자과에 지원하려다가 특성화 학과인 정보디스플레이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전자 기기 분야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적으로 디스플레이 붐이었거든요. 학부생으로 공부하면서 디스플레이 속 광원에 더 흥미가 생겼어요. LED를 의료 기술에 적용하는 사례를 보며 OLED의 활용법을 연구하고 싶어졌습니다.”

카이스트에서 석·박사 과정을 이어갔다. ‘OLED의 바이오 메디컬 응용’을 주제로 연구했다. “LED나 레이저를 쬐어 인체의 생화학 반응을 촉진시키는 광 치료는 꽤 보편적인 치료법인데요. 기존 LED 광 치료기는 균일하게 빛을 조사하지 못하는 등 몇 가지 단점이 있었습니다. OLED의 쉽게 구부러지는 성질을 활용해 반창고 형태로 제작했더니 피부에 밀착할 수 있었어요.”

전 교수가 연구실에서 갓 만들어진 OLED 기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더비비드

OLED 반창고의 사용으로 세포 증식이 58% 향상되고 세포 이동이 46% 향상되면서 상처 부위가 빨리 아무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연구 내용은 2018년 3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 테크놀로지(Advanced Materials Technologies)에 실렸다. “세계 최초로 OLED를 광 치료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광 출력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피부암, 치매, 우울증 등 응용 범위를 넓힐 수 있죠.”

2020년 박사 과정을 마치자마자 LG디스플레이에 입사했다. “산학 장학생으로서 입사를 전제로 박사 공부를 했어요. LG디스플레이에서는 주로 마스크 설계를 담당했습니다. LED와 OLED 제작 방법의 가장 큰 차이기도 한데요. 쉽게 말해 반도체 패턴을 미리 그려 넣는 작업입니다.”

가천대학교 반도체 공정실습실의 OLED 개발 장비들. /더비비드

직장 생활을 할수록 연구에 대한 갈증이 깊어졌다. “회사에서 하는 일도 ‘연구’였어요. 하지만 과정이 달랐죠. 회사에서 해야 하는 연구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되고,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합니다. 성과를 낸다고 해도 내 이름으로 기록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웠죠.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내 이름을 걸고 이어 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2년 만에 학교로 돌아갈 결심을 했죠.”

◇끝도 시작도 없는 제품화의 길

(왼쪽부터) 전용민 교수와 홍준희 교수. /더비비드

서른이란 나이에 ‘교수’가 됐다. 가천대 IT융합대학 의공학과의 연구실에 터를 잡았다. 카이스트 박사 과정 중에 인연을 맺었던 가천대 홍준희(61) 교수의 추천을 받았다. “당시 홍 교수님은 LED 광원을 활용한 비염 증상 완화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었어요. 목업(실물 모형) 기기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 세기를 측정하기 위해 제 연구실을 찾으셨죠. 빛의 파장과 에너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기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기존 광 치료 의료기기와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3년 만에 만난 홍 교수는 여전히 광원을 이용한 의료기기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제가 연구하고 싶었던 분야와 접점이 있었어요. OLED로 디스플레이를 연구하는 사람은 많아도 바이오메디컬을 응용하는 연구자는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 홍 교수님의 비염 증상 완화 의료기기의 기술 자문을 자처했습니다.”

비염 증상 완화 광 치료 의료기기에 들어간 광원을 확대한 모습. 기존(오른쪽)에 이중 원통형이던 것을 단일 원통형(왼쪽)으로 설계를 변경했다. /더비비드

2023년 광 치료 기술을 적용한 비염 증상 완화 의료기기 ‘노즈굿’을 출시했다. “끝인 줄 알았지만 그때가 비로소 시작이었어요.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하며 디자인이나 사용성을 개선하는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죠. 광원이 출력되는 부분인 ‘광가이드’의 형태를 단순화할 것을 제안했어요. 기존엔 파장에 따라 광가이드를 다르게 설계했지만, 효과에 차이를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광가이드 하나에 생산원가를 10원 이상 줄일 수 있다며 설득했어요. 제 고집 때문에 금형(제조업에서 쓰이는 금속 형틀)을 다시 제작하느라 약 5000만원을 더 투자해야했죠.”

‘인증’에만 8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초기 모델 출시 당시에 밟았던 절차를 똑같이 다시 밟았다. 국가공인기관인 KTL(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서 유해성 검사, 전자파 검사 등 일련의 시험성적서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기기 인증 단계도 거쳤다. “의료기기 인증은 제품 출시 준비가 다 된 상태라야 접수를 할 수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판매하고 싶은데 인증을 받을 때까지 그저 시간이 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노즈버드를 착용하고 활짝 웃고 있는 전 교수. /더비비드

2025년 2월 ‘노즈굿’의 후속작 ‘노즈버드’를 시장에 선보였다. 노즈굿과 비교할 때 본체의 형태에 곡선이 많은 디자인이다. “소비자에게 익숙한 형태를 갖추기 위해 블루투스 이어폰의 디자인을 차용했습니다. 언뜻 보면 귀에 꽂아야 할지, 코에 꽂아야 할지 헷갈릴 정도죠. 비염 증상이 있을 때 전원을 켜고 코에 꽂아 3분만 사용하면 됩니다. 사용 후엔 충전기에 담아 보관하면 되는데요. 단순 충전 기능이 있는 케이스와 충전·소독 기능이 있는 UV(자외선) 케이스가 있습니다.”

◇연구실에만 있던 아이디어를 세상 밖으로

(왼쪽부터) 윤태산 부사장, 전용민 교수, 홍준희 교수. /더비비드

전 교수는 노즈버드의 개발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꿈을 키웠다. “연구를 잘하는 것과 그 연구의 결과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완전히 별개라고 생각해요. 홍 교수님 옆에서 연구실의 아이디어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를 보고 배웠습니다. 최근엔 가천대학교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함께 수개월째 노즈버드의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시험도 하고 있어요. 끝날듯 끝나지 않네요.”

주 연구 분야에도 힘을 쏟고 있다. “OLED 전자약에 대한 국책사업을 수주해 아토피·건선을 치료하는 전자약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2025년에 임상시험도 계획하고 있어요. 아직 전 세계적으로 OLED로 바이오 메디컬 의료기기를 만든 사례는 한 건도 없습니다. 누구라도 개발하면 ‘세계 최초’가 될 수 있어요. 욕심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욕심 좀 내보렵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