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른 다 돼 처음 맛 본 홍어에 인생 걸었다, 33살 목포 청년의 도전

더 비비드 2025. 1. 31. 16:13
온라인 유통에 최적화된 포장법 적용한 국산 홍어, 청년 홍어 박주현 대표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청년 홍어 박주현 대표가 홍어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청년 홍어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홍어’가 등장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이탈리아 요리사인 파브리는 요리 미션 주제로 ‘홍어’를 받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특유의 냄새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식재료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홍어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가 있다. 청년 홍어 박주현(33) 대표는 국산 홍어를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유통하는 홍어 생산자다. 박 대표를 만나 알싸하고 쫄깃한 홍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었다.

​◇알싸한 맛과 쫀득한 식감, 청년 홍어

청년 홍어는 날개살 외 몸살, 볼살 등 특수 부위를 맛볼 수 있고 홍어 특유의 풍미와 찰기를 유지하고 있다. /청년 홍어

청년 홍어는 국산 홍어와 흑산도산 홍어만 취급한다. 수입 홍어는 살만 발라져 입고되는 경우가 많다. 국산 홍어는 마리째 들어오기 때문에 날개살 외 몸살, 볼살 등 특수 부위를 맛볼 수 있다. 흑산도 연안은 홍어가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품질이 뛰어난 반면 잡히는 수량은 적은 편이다. 따라서 수입 홍어보다는 국산 홍어가, 국산 홍어보다는 흑산 홍어가 더 높은 값에 경매된다.

​홍어의 풍미와 찰기를 위해 저온에서 오랜 숙성을 거친다. 초보자와 고수가 모두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강·중·약으로 숙성도를 나눴다. 제품의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위생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특수 스킨 포장을 사용했다. 그릇에 투명한 비닐을 씌운 뒤 진공 상태로 만드는 방식이다. 공기가 통하거나 이물질이 들어갈 염려가 없다.

◇코로나 직격탄 맞고 정한 새로운 진로

전남 여수를 중심으로 인근 전라도 지역에서 여행 가이드로 활동했다. /청년 홍어

목포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1~2학년 때까지만 해도 막연히 적당한 회사에 취직해서 평범한 삶을 살겠거니 생각했는데요. 점점 현실이 보이더군요. 지방 대학을 나와 아무리 좋은 곳에 취업하더라도 대기업이 아닌 이상에야 ‘평범’하기 힘들겠다는 불안함이 생겼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던 군 선임이 마침 일자리를 제안했어요. 2달간 고민하다 무작정 휴학계를 내고 서울로 올라갔죠. 그때가 2015년이었습니다.”

국내 여행 가이드가 됐다. 주로 전남 여수를 중심으로 인근 전라도 지역 관광코스를 안내했다. “가수 장범준의 노래 ‘여수 밤바다’ 덕을 크게 봤죠. 낭만포차, 해상 케이블카에 갓김치·게장 맛집을 더해 코스를 짰습니다. 월급이 많지 않았지만 여행이 없는 날엔 시간이 많이 남았어요. 그 시간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필름 난방 시공, 택배 상하차, 이자카야 서빙 등 가리지 않았죠.”

목포 수협 위판장에서 경매를 앞둔 국산 홍어들. /청년 홍어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여행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경력을 활용할 곳도 마땅찮았다. “마침 고향에서 홍어 사업을 하시던 외삼촌이 홍어 팔아볼 생각 없냐고 하셨어요. 당시 삼촌은 온라인 시장을 개척해 판매량을 한창 끌어올리던 중이었습니다. 지방에서 하는 일이라 초기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 마음이 끌렸어요. 무엇보다도 언제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베테랑, 삼촌이 계셔서 귀향을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홍어라도 다 같은 홍어가 아니다

박 대표가 직접 홍어를 손질하는 모습. /청년 홍어

2021년 ‘홍어 생산자’가 됐다. 산지에서 수매한 홍어를 손질해 식당이나 마트 또는 개인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일이다. 전남 목포에 홍어 가공 공장을 차렸다. 홍어를 손질·가공하는 6평(약 20㎡) 남짓한 공간과 홍어를 숙성·보관하는 5평(약 16㎡)짜리 저온 창고가 있다. 그 옆의 빈자리에는 컴퓨터 한 대와 택배 포장을 위한 상자가 가득 쌓여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송장을 출력하고 포장하기 위해서다.

- 홍어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죠.

“사실 저도 이 일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홍어를 처음 먹어봤어요. 홍어는 숙성도에 따라 강·중·약으로 나뉘는데요. 난생처음 맛본 홍어가 강숙성이었습니다. 씹을수록 입안이 화해지는 게 오묘하더군요. 사람에 따라 강숙성을 먹으면 속이 쓰리기도 하죠. 그래서 삼합이 유명한가 봅니다. 돼지고기, 묵은지와 함께 먹으면 중화가 되니까요. 약숙성은 ‘이게 홍어가 맞나?’ 싶을 만큼 냄새가 안 나요.”

홍어를 골고루 숙성하기 위해 영하 2.5도의 저온 창고에 보관한다. /청년 홍어

- 숙성 정도는 어떻게 관리하나요.

​“홍어를 수매해 오면 홍어 애(내장)를 분리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먼저 합니다. 실온에 숙성하면 겉은 타고 속은 덜 익은 고기처럼 겉만 삭혀져요. 골고루 숙성하기 위해 영하 2.5도의 저온 창고에 홍어를 차곡차곡 쌓아둡니다. 저온 숙성 과정에서 수분이 빠지면서 홍어 맛이 깊어집니다. 홍어를 담은 통에는 창고 입고일이 적혀 있습니다. 이 날짜를 기준으로 숙성도를 파악하기 때문이죠. 14일 이내는 약숙성, 한 달 이상 지나면 중숙성, 두 달 이상 지나면 강숙성으로 분류합니다.”

- 국산·흑산도산 홍어만 취급하는 이유는요.

​“맛이 다릅니다. 값싼 아르헨티나, 캐나다산 홍어는 마치 마른오징어를 씹는 것처럼 억셉니다. 얇게 썰어 먹는 수밖에 없죠.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잡히는 홍어는 ‘참홍어’란 종입니다. 수입산에 비해 훨씬 부드럽죠. 그중에서도 흑산도 바다에서 잡은 홍어는 한 단계 더 높은 등급으로 취급합니다. 수심이 깊고 홍어가 먹을 수 있는 수족 자원이 풍부해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죠. 오죽하면 흑산도 홍어만 이력 바코드를 달고 유통되겠어요.”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포장해 숙성도를 잡고 냄새가 새는 것도 방지했다. /청년 홍어

- 삭혀 먹는 홍어도 신선도가 중요한가요.

“물론이죠. 삭혀 먹는 생선이라도 선도가 좋아야 맛도 좋습니다. 목포에서 홍어를 수매할 때마다 직접 가서 선도를 확인해요. 흑산도산 홍어는 중매인을 통해 사진을 받아봅니다. 선도가 떨어지는 홍어는 홍어 애가 까맣거나 잡내가 심해요. 선홍빛, 보랏빛을 띠면서 표면이 많이 미끄러운 홍어가 신선하고 좋은 홍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온라인 판매를 위해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있다면요.

“포장 방법을 차별화했습니다. 홍어는 공기 중에 노출되는 순간 숙성돼 버립니다. 기존 포장법은 스티로폼 상자에 천 한 장 깔고 홍어를 올린 다음 랩을 감는 정도였는데요. 큰맘 먹고 소고기 선물세트처럼 진공 포장할 수 있는 기계를 샀습니다. 이 포장법을 ‘스킨 포장’이라고 해요. 스킨 포장을 하면 배송 과정에서 홍어가 과하게 숙성될 염려가 없고, 냄새도 안 샙니다. 캠핑이나 나들이를 갈 때 챙겨가기도 편하죠.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대량으로 납품하는 마트나 식당에서도 반응이 좋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쏟아지는 주문

마트에 진열된 청년 홍어의 국산 홍어. /청년 홍어

청년 홍어는 인근 지역 마트와 식당은 물론 서울·대구·부산 등 전국 각지로 납품한다. 택배가 쉬는 주말엔 드라이브 삼아 다른 지역 시장을 방문한다. 홍어 유통 현황이나 맛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발로 뛰며 확장한 주요 거래처는 현재 50여 곳에 달한다.

- 일부 사람들이 홍어를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글쎄요.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긴 하지만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인터넷상에선 그런 말을 쉽게 한다죠.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청년 홍어를 주문하는 분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습니다. 주요 거래처 중엔 경북 포항, 경남 거제 등 경상도 지역도 있고요. 지역 차별은 느껴본 적 없습니다. 오히려 젊은 친구가 애쓴다며 토닥여주시던걸요. 맛있는 생선을 가공해 판매하는 것뿐인데 생각이 너무 많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홍어 라면과 홍어 삼합. /청년 홍어

- 맛있는 생선인 홍어, 더 맛있게 먹는 법을 소개해 주세요.

​“손질된 홍어라도 요리하기 전에 물기를 한번 짜주는 게 좋습니다. 미나리, 양파, 쪽파 등 야채를 더하고 식초, 고춧가루, 매실청, 설탕 등으로 양념해 무치면 새콤달콤한 홍어 무침이 됩니다. 홍어살을 튀긴 다음 마요네즈를 찍어 먹으면 안주로 제격이죠. 뭐니 뭐니 해도 홍어는 회로 먹는 게 가장 맛있어요. 초장에 참기름을 살짝 넣고 푹 찍어 먹으면 알싸한 맛과 쫄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사업을 더 확장할 계획이 있나요.

​“외삼촌이 베트남에 수출한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수요가 있겠다 싶더군요. 스킨 포장을 하면 해외 배송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식당을 직접 운영하고 싶다는 꿈도 있어요. 낮에 대량 납품이나 온라인 판매 포장을 마치고 나면 저녁엔 식당을 열고 손님을 직접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홍어에 대한 피드백을 바로바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결론은 하나입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싱싱한 홍어 맛을 선보이고 싶다는 바람이죠.”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