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농약 제거하는
친환경 포장재 개발기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청소용 솔이 부착된 슬리퍼, 후드 부분이 목 베개로 변신하는 후드티.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사물을 결합하면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도 있다.
과일을 박박 문질러 씻다가 지친 졸브의 송승훈(21) 잔류농약을 손쉽게 제거할 방법을 구상했다. 잔류농약을 제거하는 세제 역할을 하는 과일 포장재를 개발한 계기다. 그가 개발한 포장재는 일반 플라스틱 포장재와 달리 물에 닿으면 녹아서 쓰레기 배출량을 줄여, 사회 문제 해결에도 기여한다. 송 대표를 만나 친환경 포장재 개발기를 들었다.
◇1년에 수십 곳의 창업 공모전에 도전하던 대학생
송 대표는 눈앞에 주어진 것에 의문을 던지는 아이였다. “실험을 좋아했어요. 예상한 결과가 나오면 과거를 답습한 것이지만, 결과가 이상하면 특별한 발견을 한 게 되잖아요. 예상한 것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의 간극을 파헤치는 게 즐거웠습니다. 실험 좋아하는 꼬마가 창업에 매력을 느낀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창업은 검증의 연속이니까요.”
‘내 일’을 하는 어른을 꿈꾸며, 어린 나이부터 창업경진대회에 나갔다. “중학생 때였나, 교과서에서 ‘온도가 높을수록 발효가 잘 된다’는 개념을 접했어요. 여기 착안해 온도별 김치 발효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사업화해보기로 했어요. 10대 때의 일이었죠. 이때 데이터 분석에 눈을 뜬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창업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진료 현장에 활용할 수 있는 의료 질 향상 서비스를 만들기도 했어요.”
중앙대 응용통계학과에 진학했다. “제 눈엔 사업과 실험이 비슷해 보였습니다. 마케팅, 제품 등 여러 요소를 토대로 일의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이 변수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실험과 유사하게 느껴졌죠. 분석을 잘 하려면 데이터 다루는 능력이 필수라 판단해 응용통계학과에 진학했고요. 대학생이 된 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창업 공모전에 나갔습니다. 쏟아지는 아이디어를 틈틈이 메모했다가 1년에 20~30개의 공모전에 도전했습니다.”
2024년 6월, 여느 동기들처럼 입대를 하려고 했다. 그때 그의 눈에 신생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환경부 청년그린창업 스프링캠프였다. “업력 제한 없이 1억원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 시기에 어린 나이에 창업하는 친구들을 보고 자극 받은 영향일까요. 선정되면 대박이고, 안 되면 입대하자는 마음으로 지원했어요. 그리고 예비창업자 팀 중에서 유일한 선발자가 됐죠.”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잔류농약을 제거하는 친환경 포장재’다. “창업학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주변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출발하라’고 조언했어요. 허무맹랑한 말인 것 같아 그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과일을 씻다가 ‘잔류농약 때문에 이렇게까지 힘들여 씻는 게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과일 껍질째 먹는 걸 좋아하는데, 세척 과정이 번거로웠거든요. 그러다 흰색 포장재가 눈에 들어왔어요. 재활용이 안되지만 많은 분들이 그 사실을 몰라 분리수거하고 있었어요. 일반 쓰레기로 처리하는 것만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거죠. 버려지는 포장재로 잔류농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호기심이 시발점이었습니다. 다음날 바로 특허 명세서를 작성하며 여정을 시작했죠.”
◇과일 포장재를 이렇게 만들 수 있다고?
물에 닿으면 녹으면서, 잔류농약을 없애 주는 포장재를 만들기로 했다. 독성이 없으면서 잔류농약을 씻어내는 소재를 찾는 게 관건이었다. 동시에 과일의 품질을 유지하고 손상은 방지는 포장재 본연의 기능에도 충실해야 했다. 중앙대 식품공학과 건물 인근에 100평 규모의 공장과 연구소를 마련해 본격적으로 연구 개발에 들어갔다.
바이오매스 기반의 친환경 소재를 발포 성형해 포장재를 만들었다. “부피를 커지게 하는 물질과 잔류농약을 제거하는 물질을 혼합했습니다. 최적의 조합을 발견하기 이해 조합을 150번 가까이 바꿨습니다. 좋은 조합을 발견하면 테스트를 진행했죠. 그 사이에 더 좋은 조합을 찾으면 또 테스트했고요.”
이용법은 간단하다. 포장재를 따로 버릴 필요 없이 그대로 과일과 함께 물에 씻으면 된다. 개별 과실 포장재부터 계란판처럼 생긴 난좌, 패드, 완충재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었다. “포장재의 본 역할은 과일의 품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다공성 구조로 과일의 후숙(산화)를 유발하는 에틸렌가스를 흡착해 유통기한을 연장시켜줍니다. 잔류농약 제거제로서의 기능도 탁월합니다. KOTITI시험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등으로부터 세척 후 잔류농약 461종, 납과 카드뮴 등의 중금속 미검출 테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사회적 의미와 실용성. 두 요소를 모두 달성한 아이디어인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적합한 기계를 찾기 위해서 말 그대로 전국 8도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말도 안 되게 비싼 발포 성형기의 가격도 문제였어요. 학생 신분으로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습니다. 나름의 공학 지식을 활용해 단가를 낮을 설계안을 짠 후 공장 문을 두드리고 다녔는데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놓고 비슷한 걸 만들기 시작한 곳이 있었어요. 개발을 다 끝낸 후 생산할 기계만 알아본거라 큰 비극은 피했지만 씁쓸했습니다.”
사르르 포장재는 농가의 GAP(농산물우수관리제도) 인증을 도을 수 있다. “GAP 인증은 농산물의 생산부터 수확 후 관리·유통 단계까지 관리하는 제도로, 농산물에 농약·중금속 또는 유해생물이 잔류하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의미입니다. 2년마다 초기화해서 검사를 해야 하는데요. 농가가 사르르 포장재를 차용하면 농약 제거를 위해 노력하는 농가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국내외 창업경진대회 싹쓸이, 보급 위한 마지막 과제는
창의력과 실행력을 동시에 인정받아 말 그대로 상을 휩쓸었다. 환경창업대전 환경부 장관상, 경기도 ESG 해커톤 1위, 경기창업공모전 2위, 도전K-스타트업 중기부장관상 등 다수의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 클린턴 재단과 헐트 재단이 공동 주관하는 글로벌 치속가능 개발 목표 창업경진대회 상위 6위에 오르는 기염도 토했다. 하버드, MIT 출신의 쟁쟁한 경쟁자를 제친 것이다. 2024년 11월에는 우리나라 최대 스타트업 창업경진대회인 정주영창업경진대회 도전트랙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유명 식품 기업, 제지기업 등 다양한 기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대형 유통 채널과 공급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도 진행했다. 복숭아 농가 등 전국의 과수농가와 시장검증(PoC)을 진행해 대략적인 공급 규모와 보완점을 파악해 둔 상태다.
관건은 단가를 낮추는 것이다. “농가에 널리 보급되려면 기존 플라스틱 포장재와 비교했을 때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 과제가 가장 어렵습니다. 졸브의 비전은 농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소셜벤처입니다. 농가의 GAP 인증을 도우면서 친환경 전환을 돕는 포장재가 그 시발점이죠. 다만, 포장재 출시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전까지 농가를 대상으로 저희의 정체성을 보여줄 다양한 비즈니스를 펼칠 계획입니다. 해외 농가 진출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요.”
송 대표는 창업에 있어서 아이디어 못지않게 실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릴 적부터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눈에 보이거나 만들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실천에 옮겼어요. 경남 수질오염 문제가 불거졌을 때 수질오염 검사 키트를 만들어 배포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홈 인테리어가 유행일 땐 인테리어 견적을 자동으로 짜주는 프로그램도 만들었죠, 눈에 들어오는 건 수익을 따지지 않고 일단 만들고 봤습니다. 지금 하는 일은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시대 흐름이 절묘하게 맞물려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요. 이제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불도저 같은 저의 장점을 농가 문제 해결에 발휘하고 싶어요.”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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