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리뷰는 이용자가 식당 주인에게 건네는 쪽지이자 설문조사지다. 긍정적인 리뷰에 감사의 말로 화답하거나 제안한 바를 빠르게 수용하는 식당엔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비자에게 신경 쓰는 식당이라는 느낌을 체감한 덕이다.
하지만 식당 주인에게 리뷰 관리도 일이다. 말주변이 부족한 이들은 한참을 망설여야 한다. 플랫폼별 리뷰를 일일이 확인하는 일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르몽의 이희용(43), 김보형(36) 공동대표는 식당 사장들의 창작의 고통을 덜기 위해 인공지능(AI) 기반 댓글 생성 서비스를 개발했다. 그들을 만나 AI 작가가 필요한 이유를 들었다.
◇삼성전자, 삼성SDS 출신이 의기투합한 이유
이희용 대표는 신한은행과 신한금융지주에서 14년 근무했다. 금융사에 재직하는 동안 고려대 컴퓨터정보통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삼성SDS에 시니어 엔지니어로 이직했다. 문과 직무에서 이과 직무로 전직한 것이다. 삼성SDS 재직 당시 금융IT 사업부에서 인공지능(AI)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이때 스타트업 세계에 입문하고, 그 세계에 매료됐다.
김보형 대표는 학부 시절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생 때 스마트워치용 애플리케이션(앱)도 개발했다. 부족한 점 투성이었지만 벅찬 경험이었다. 기술력을 쌓고 싶어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 입사했다. 당시 개발에 참여한 제품이 페이스북, 구글 같은 빅테크에 납품이 됐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두 차례 받았다. 회사 지원으로 서울대 컴퓨터공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곳에서 AI를 접하고, 창업의 불씨를 지폈다.
두 사람은 한 AI 스타트업에서 만났다. AI 합성 데이터를 만드는 기업이었다. 당시 이 대표는 CSO, 김 대표는 CTO로, 이미 C레벨이었다. 해당 스타트업은 한 상장사에 인수됐다. 대기업 퇴사 후 스타트업에 입사한 이들이 겪을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였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두 사람은 새 창업을 결심했다. 이번엔 기업 대상의 B2B 서비스 대신 이용자 반응을 즉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B2C 시장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식당 사장들의 영원한 숙제
창업 아이템을 발굴하기 위해 AI의 도입이 시급하지만, 도입률이 낮은 영역을 찾아 나섰다. “전 직장에서 30개가 넘는 AI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AI 프로젝트가 사업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조건을 정립했어요. 첫째는 데이터를 꾸준히 수집할 수 있는 구조일 것, 둘째는 사람이 정말 하기 싫어하거나 혼자 하기 힘든 일을 AI 모델이 대신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산업군을 조사해 보니 외식업의 AI 도입률이 낮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모을 수 있는 데이터가 결제 내역 같은 금융 데이터로 한정된 게 원인이었죠.”
외식업에서 금융 데이터가 아닌 다른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사람들의 불편점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인맥을 총동원해 식당 사장 100여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분들은 공통으로 ‘창작의 고통’을 호소했어요. 배달 앱이나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리뷰에 대응하는 작업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리뷰 스트레스는 개인의 성실함과 무관했다. 그보다는 외식업 시장의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사장 평균 연령이 50세 이상인 데다, 외식업자의 76%가 나홀로 사장입니다. 매장 셔터를 내린 순간부터는 ‘댓글 작업’의 시간이 시작된다고 해요. 배달 플랫폼별로 댓글을 확인하다가 악성 댓글이라도 발견하면 어찌 대응해야 하나 머리를 쥐어짠다고 합니다. 댓글 작업을 외주에 맡기는 분도 있지만 한계가 있었어요. 사장의 의지와 무관한 내용이 담기거나 기계적인 답변 일색이면 큰 효용이 없으니까요.”
‘댓글에 쏟을 시간에 요리나 잘하라’는 조언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사장의 댓글은 식당 이미지를 형성하는 핵심 콘텐츠다. 매출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배달 플랫폼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용자 10명 중 9명이 ‘식당을 고를 때 리뷰가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소비자 리뷰에 사장의 댓글이 달리면 운영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인상을 줍니다. 감사와 정성을 담아 댓글을 달면 재주문율이 높아지고요. 포털 사이트는 리뷰를 고객경험의 중요 지표로 보고, 충실한 내용으로 댓글을 쓰도록 장려합니다. 잘 이행하면 검색 엔진 상위에 노출해 주고요. 플랫폼에선 사장이 고객센터처럼 매장을 운영하길 권하지만 이분들에게 허용된 시간은 많지 않아요.”
◇잘 단 댓글 하나가 열 광고 안 부럽다
AI의 장점은 철저한 개인화다. 데이터가 누적될수록 유저를 닮아간다. 이런 강점을 활용해 AI가 정성을 다해 리뷰에 댓글을 대신 달아주는 서비스 ‘댓글몽’ 개발에 들어갔다. 멋지고 있어 보이는 서비스가 아닌, 돈 내고 쓸 가치가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 중점 뒀다.
이용자가 진짜 필요로 하는 걸 찾고, 이를 수시로 반영해 신뢰를 확보했다. “플랫폼별로 댓글을 일일이 조회하는 게 번거롭다는 의견을 반영해 모든 플랫폼에 등록된 리뷰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습니다. 피드백을 남기면 4일 만에 반영해 버리니 유저들이 거기에 감동을 받은 것 같아요. 이들의 요구는 꽤 섬세하고, 치밀합니다. 요구 속에서 저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보여요. 예컨대, 리뷰 이벤트에 참여한다고 해서 서비스만 받아놓고 참여 안 하는 사람들의 목록을 달려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사장님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건 똑똑한 조수였던 거죠.”
프랜차이즈를 타깃으로 한 B2B 버전도 있다. “프랜차이즈들은 종종 개별 가맹점주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곤 합니다. 그래서 가맹점 수백 곳에 달린 리뷰를 총괄해서 관리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었습니다. 프랜차이즈는 댓글몽을 통해 일관성 있게 댓글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모든 댓글 하단에 신메뉴 홍보 문구를 추가할 수도 있어요. 광고를 별도로 집행하면 돈이 많이 드는데요. 일상적인 수단인 댓글을 홍보 창구로 활용하면 마케팅을 내재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서비스는 아니었다. 데이터 학습과 고도화를 통해 AI와 사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중이다. “’5점 드릴게요. 100점 만점에’처럼 고도의 언어유희가 들어간 리뷰가 많아요. 처음엔 AI가 이런 리뷰의 의도를 포착하지 못했는데요. 이제는 알아채고 있습니다. 요즘은 인간성을 보태는 작업 중이에요. 이용자 중 서비스를 이탈한 8%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말투가 과하게 친절하다’, ‘낯간지럽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지나치게 친절한 AI가 계획에 없는 서비스까지 주겠다고 한 멘트에 아쉬움을 표한 분도 많았죠. 1월 중 말투나 어조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될 계획입니다.
◇장사를 사업으로
2023년 12월, 르몽 법인을 설립하고 2024년 3월 댓글몽을 론칭했다. 50대 남성도 쉽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이용법은 간단하다. 댓글몽 웹사이트나 앱에 회원가입 한 뒤 매장 정보가 등록된 사이트를 연결한다. 그러면 등록된 리뷰와, 아직 댓글을 달지 않은 리뷰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개별 댓글엔 내용에 걸맞은 추천 댓글 3가지를 띄워준다. 가정의 달, 복날, 추석 등 시기에 맞춰 글을 써줘서 생동감이 있다. 원한다면 추천 댓글의 내용을 일부 수정해서 등록할 수도 있다.
지역별 외식업자 단체 메시지방,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모임 등 외식업자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났다. 매월 이용자 수가 180% 성장해 2024년 12월 기준 4000곳의 사업자가 댓글몽을 사용 중이다. 업력은 짧지만 단기간에 많은 성과를 내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11월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더벤처스, AUM 등으로부터 시드투자를 유치했고, 중소벤처기업부 팁스(TIPS)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카이스트 창업경진대회, 한국일보 디지털 이노베이션, KDB 스타트업 데모데이 등 다수의 대회에서 수상했다. 국내 최대 스타트업 경진대회 중 하나인 아산나눔재단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도 받았다.
댓글몽은 디지털 소외 계층의 AI 사용을 자연스럽게 녹인 서비스로 평가받고 있다. “댓글몽을 통해 단골을 관리하면서 시간은 절약하고, 매출 증대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성과는 이분들이 AI에 느끼던 벽을 허문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댓글몽 도입 전 AI는 어려운 게 아니냐고 물었던 사장님이 한 분 있었어요. 댓글몽 다루는 것도 힘들어했는데 최근엔 궁금한 점을 챗GPT에 질문했다고 했어요. 댓글몽이 사장님의 AI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은 거죠.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댓글몽 고도화를 위해 수집한 데이터는 다방면으로 활용 가능하다. “한 신용평가사와 시장검증(PoC)을 진행 중입니다. 이들은 텍스트 기반의 비정형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어요. 소비자 리뷰 속 어떤 흐름이 매출의 선행지표가 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불만족 리뷰가 늘고 평점이 떨어지는 시기에 매출이 하락하는지 상관관계를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형 통신사와도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포스기, 서빙 로봇 등 소상공인 대상의 솔루션 체인에 저희 서비스를 포함시킬지를 두고 검증 중이죠. B2B 시장에서 확장 가능성이 크더군요.”
이용자에게 댓글몽 이전의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AI가 인간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위기론이 만연하지만 사실 AI를 발판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내년엔 저희 서비스로 이런 경험을 전파하고 싶어요. 르몽의 모토는 ‘장사를 사업으로’입니다. 장사와 사업을 가르는 요소는 시스템입니다. 댓글몽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식당 사장들이 더 큰 꿈을 꿨으면 합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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