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용 필요 없는 VR 트래커 개발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와 애플의 아이폰의 공동점은. 개인용 PC와 스마트폰 대중화를 앞당긴 제품이라는 점이다. 두 제품이 출시되기 전에도 운영체제와 스마트폰은 존재했다. 하지만 윈도와 아이폰은 특정 상품군의 진입장벽을 대폭 낮춰 시장을 키우고, 그 시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스타트업 소울아트의 오혁재(23) 대표는 VR(가상현실) 진입장벽 낮추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전신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풀트래킹’에 VR의 미래가 있다고 봤다. 저렴하고 몸에 센서를 부착할 필요가 없는 VR 트래커를 개발한 계기다. 그를 만나 개발기를 들었다.
◇컴퓨터와 게임에 푹 빠진 영재
어릴 적 컴퓨터와 사랑에 빠졌다. 정확히는 컴퓨터 시스템에 매료됐다. 컴퓨터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게임으로 귀결됐다. “전자 장치가 돌아가는 구조에 말 그대로 꽂혔습니다. 집 컴퓨터를 해체했다가 고장 내기 일쑤였죠. 나중에는 게임의 세계에 푹 빠졌습니다. 게임하는 것보단 게임 산업과 구동 시스템에 흥미를 느꼈어요. 컴퓨터, 콘솔, 오락실 기기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심취했어요. 기기별 핵심 요소는 무엇인지, 어떻게 구동되는 건지 탐구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죠.”
과학고 진학 후에도 탐구정신을 불태웠다. 졸업 후 카이스트 전산학부에 입학했다. ”고등학생 때 휴대폰에서 게임을 구동하는 ‘에뮬레이션’ 기술을 집중 연구했습니다.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한국정보올림피아드에서 1등을 한 적도 있죠. 컴퓨터 다루는 게 좋아 전산학부에 진학했는데 대학 공부에 큰 흥미를 못 느꼈습니다. 대학은 당연히 가는 거라 생각해서 왔는데, 방향성이 보이지 않았어요. 일단 군 복무부터 하기로 하고 2학년 1학기를 마친 후 입대했습니다.”
소위 사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으로 불리는 군 내 컴퓨터 시설은 군 생활의 활력소였다. 하루 최대 4시간 주어지는 그 시간을 새로운 일을 벌이는데 쓰기로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함께 개발했던 친구들이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입대했으니, 훈련 후 남는 시간에 개발을 같이 하자고 권했어요. 매일 4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이 값지게 느껴졌습니다. 군 생활 스트레스를 풀 창구였어요. 몰입할 수 있는 시간에 바짝 개발을 하다 보니 티끌 모아 태산이 됐죠.”
이들은 VR 시장에 주목했다. “게임기는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기계입니다. 가상 세계 경험을 극대화하는 VR은 인간과 게임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정점의 매체죠.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무엇보다 VR 보디 트래킹 시스템이 아직 발전하지 않은 게 모순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기존의 VR게임은 헤드셋과 컨트롤러를 사용하는데 그러면 온 몸의 동작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몸의 동작을 인식하는 트래커가 있긴 했지만 소비자 친화적이지 않았어요. 온 몸의 관절에 센서를 부착해야 해서 불편한데다, 가격이 200만~300만원대로 비싼 편이었죠. 그래도 수요자가 있었어요. 대안이 있으면 좋은 반응을 얻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몸에 센서 부착할 필요 없는 트래커 개발
착용이 필요 없는 VR 트래커 아이디어로 공구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같은해 국방부창업경진대회와 도전K스타트업에도 참가했다. 도전K스타트업에서는 왕중왕전까지 진출했다. 창업경진대회에서 다른 팀의 IR자료를 보며 사업에 필요한 요소를 공부했다. 2024년 8월 전역하자마자 소울아트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트래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VR 분야에서 동작을 감지하는 기술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 중 헤드셋에 적용된 카메라로 몸의 동작을 추적하는 ‘인사이드 아웃’ 방식은 한계가 많다고 봤다. “카메라 기반 추적 방식은 눈에 보이는 움직임만 감지합니다. 카메라가 Z좌표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3차원적으로 몸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요. 결국 보이지 않는 부분은 예측으로 구현해야 하는데요. 예측에 의존하면 실시간성이 떨어집니다.”
정확도와 실시간성을 높이려면 외부에서 동작을 탐지하는 ‘아웃사이드 인’ 방식이 적합하다. “대부분의 추적 장치가 외부에 추적기를 두고, 사람에게 센서를 붙이는 방식을 차용하는 건 몸의 위치를 3차원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섭니다. 아웃사이드 인은 주로 레이더, 라이다, ToF(time of flight) 센서를 차용하는데요. 이 중에서 어떤 방식을 적용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관건은 대중화 가능성이다. 성능도 중요하지만 가격대를 최대한 낮춰 보급하는 데 중점을 뒀다. “처음엔 여러 센서를 넣어서 개발했는데, ToF 방식만 차용하기로 했습니다. ToF는 피사체에 빛을 쏜 뒤 시간을 측정해서 3차원 이미지를 구현하는 센서입니다. 하나의 고정된 위치에서 사용자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죠. 장치 안에는 인공지능(AI) 모델을 실시간을 처리해 주는 MPU칩을 탑재했습니다. 효율 높은 AI 모델을 활용해 고가의 센서를 대체하려는 구상이죠. 이처럼 성능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가격을 낮추기 위해 1년간 끊임없이 구조 변경을 했습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VR 게임을 할 공간에 직육면체 형태의 장치 두 대를 두기만 하면 된다. 동일한 와이파이에 연결돼 있는 VR, 컴퓨터, 휴대폰 등 모든 기기에 호환된다. “별도의 연동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몸에 센서를 부착할 필요도 없죠. 저희의 트래커로 웬만한 VR 게임은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 기반 센서보다 3D적 인식을 정교하게 하기 때문에 게임 콘텐츠에 보다 깊게 몰입할 수 있어요.”
소울아트의 1차 타깃은 VR 게이머지만, 개발한 기술은 가상 시뮬레이션이나 동작 인식이 필요한 모든 산업군에 적용 가능하다. “인체 움직임을 디지털 형태로 기록하는 '모션 캡처' 분야가 대표적입니다. 모션 캡처는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제작 분야에 활용되는데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소규모 제작사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저희 기기를 사용하면 몇 십만원으로 모션 캡처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장은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신시장입니다. 모션 캡처를 필요로 하는 산업군은 점차 확대될 텐데요. 저희 기술이 다방면으로 활용될 수 있게 오픈소스로 공개할 계획입니다.”
◇창업은 주도적인 도피처였어요
아직 정식 출시도 안 했는데 큰 주목을 받았다. 전역하자마자 메쉬업벤처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하고 카이스트의 창업지원프로그램 이파이브(E*5)에 선정됐다. 2024년엔 우리나라 최대 스타트업 창업경진대회인 아산나눔재단의 정주영창업경진대회 도전트랙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VR 풀트래킹 보급화라는 비전이 공감을 받은 덕이다. 현재는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2025년 중 트래커를 출시하는 게 목표다. VR 게이머 해외에도 출시할 구상이다. “게임을 한 사람은 많아도, VR을 경험한 사람은 적습니다. 지금 당장 메타의 퀘스트3를 써보면 ‘이게 진짜 가상 현실이구나’ 하고 생각할겁니다. 풀트래킹을 제대로 경험한 사람은 엄청난 희열과 짜릿함을 느낍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모를 뿐이죠. 그래서 보급 장치를 개발하는 겁니다. VR이 대중적으로 퍼지는 시점이 올 텐데요. 그때 저희 장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렴한 가격 외에, 보급화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매일같이 고민하는 이유죠.”
가상 세계에 몰입할 수단을 만들게 된 배경은 스스로에게 몰입할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게 창업은 도피였다고 생각해요. 전공 공부가 적성에 안 맞았거든요. 졸업 후 막연히 취업할 거란 구상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어요. 누군가 지시한 걸 만드는 제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거든요. 석박사 진학도 저와 맞지 않는 옷이라 생각했고요. 제가 진짜 원하는 건 실제 산업 현장에 활용되는 기술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주도적으로 갈 수 있는 도피처가 창업이었던거죠.”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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