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뇨 고혈압 가족을 위해 예순 다 돼 황토 산을 사서 만든 것

더 비비드 2025. 1. 31. 16:09
편백나무 황토볼 발마사지기 개발한 보은황토산업 김홍점 대표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편백나무 황토볼 발마사지기 개발한 보은황토산업 김홍점 대표. /더비비드

당뇨와 고혈압은 늘 묶여 다닌다. 두 질환 모두 가족력이 있고, 합병증으로 병세가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에 가입할 때 불리하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전문가들은 당뇨·고혈압 환자들에게 일상 속 생활 습관을 교정할 것을 강조한다. 금연·금주는 물론 소금 섭취를 제한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한다.

당뇨·고혈압은 보은황토산업 김홍점(64) 대표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6남매 중 자신을 포함한 세 명은 당뇨, 다른 세 명은 고혈압을 진단받았기 때문이다. 당수치와 혈압을 관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황토볼을 직접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김 대표를 만나 황토에서 찾은 해답을 들었다.

◇편백나무 황토볼 발마사지기

왓스업 편백나무 황토볼 발마사지기. /더비비드

편백나무 황토볼 발마사지기는 특수 제작 지압 전용 황토볼이다. 원적외선 방사율이 우수해 지압·찜질 시 체온을 높일 수 있다. 저가 원목이나 합판이 아닌 편백나무로 사각 틀을 만들었다. 편백나무 틀에 황토볼을 넣어두고 지압을 하고 싶을 때마다 올라서면 된다.

황토볼은 충청북도 보은군 황토 산에서 채취한 흙으로 만들었다. 황토를 파쇄하고 분체한 다음 구 형태로 성형을 했다. 자연 건조 후 1000℃ 이상 고온에 구워내면 압력·고온에 강한 고강도 황토볼이 완성된다. 일어서 자근자근 밟으면 황토볼이 발바닥의 경혈을 자극해 원활한 혈액 순환을 돕는다. 자근자근 밟아 주면 어느새 땀이 난다. 집에서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서울에 자리 잡은 자영업자의 귀향 결심

김 대표는 약 20년간 철강회사에서 일하다 당뇨를 진단받았다. /더비비드

1979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철강회사에서 직장을 얻었다. “19살에 형 따라 서울에 왔다가 일을 시작했어요. 철판을 자르고 구부리는 일이었죠. 첫 월급으로 6만5000원을 받았습니다. 식당에서 먹는 국밥 한 그릇에 2000원 하던 시절이었어요. 무겁고 날카로운 기계가 참 많았습니다. 일한 지 1년 정도 됐을 때 왼손 중지에 구멍이 뚫리는 사고도 있었어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흉터가 남아있죠.”

태양철강, 정원금속 등의 회사에서 경력을 이어가다 1991년 3월 사직서를 썼다. 독립을 위해서다. “스테인리스파이프 자재 유통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서울 금천구에 자리를 잡았죠. 금속을 자르고 성형해 납품했어요. 대부분 건축 자재로 쓰였습니다. 기둥이나 창문에 끼우는 스테인리스였죠. 내 공장이 생기니 새로운 물건도 만들어보고 싶더군요. 소형 바비큐에 들어가는 금속이나 태양광 볼라드(자동차의 인도 진입을 막는 구조물)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정기 건강검진을 하고 나오는 길,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1997년, 30대 중반에 당뇨를 진단받았습니다. 가족력이 있어 언젠가 다가올 미래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온 탓에 퍽 놀랐습니다. 이후 10여 년간은 큰 변화가 없었어요. 하지만 더 나이가 드니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느껴졌죠. 그제야 ‘일보다 건강이 우선’이란 걸 깨닫고 귀향을 결심했습니다.”

◇황토볼로 지압하는 발마사지기 개발 노트

1.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아이템을 기획하라

충북 보은에 있는 3만평 규모의 황토 산. /더비비드

2017년 고향인 충청북도 보은군에 다시 터를 잡았다. 3만평(약 10만㎡)의 황토 산을 인수했다. “황토로 뭘 만들 수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접착제나 경화제 등 화학 물질을 섞지 않겠다는 기준을 세웠습니다. 그간 건축자재를 주로 다뤘기에 황토로 벽돌을 만들거나 벽에 바르는 재료로 활용해 보려고 시도했는데요. 모두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건축용으로 쓰려면 경화제나 접착제를 섞어야 했기 때문이죠.”

이듬해 명절, 6남매가 한 자리에 모였다. “6남매 중 제가 둘째인데요. 저를 포함한 셋은 당뇨, 다른 세 사람은 고혈압을 진단받았어요. 특히 형이 당뇨 증상이 심했습니다. 혈액 순환이 잘되지 않아 자다가도 발이 저려 깨는 날이 셀 수 없이 많았죠. 형이 지압봉으로 발을 누르는 모습을 보더니 조카가 황토흙을 이용해 지압볼을 만들어보자더군요. 그때부터 황토볼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2. 황토볼 제작 매뉴얼은 내가 만족할 때까지

둥근 가마를 이용해 황토볼을 만드는 모습. /보은황토산업

날씨·기온에 구애받지 않고 지압할 수 있도록 제자리걸음 방식의 발마사지기라는 콘셉트를 정했다. “먼저 팥죽에 들어가는 새알을 만들듯 손수 황토 알을 빚었습니다. 오로지 황토와 물만 섞었죠. 손으로 만들다 보니 크기가 제각각이고 압착이 잘 되지 않아 쉽게 깨졌어요. 불규칙한 모양 때문에 발이 너무 아프다는 점도 개선이 필요했습니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갔다. “흙을 완전히 건조해 밀가루보다 더 곱게 갈았습니다. 황토볼을 처음부터 동그랗게 뭉치는 게 아니라 작은 알갱이를 먼저 만들었어요. 그 알갱이를 둥근 가마에 넣고 흙과 물을 번갈아 넣는 일을 반복했더니 마치 눈사람처럼 황토가 뭉쳐지면서 단단한 구 형태가 만들어졌죠. 원하는 크기가 만들어지면 꺼내서 건조한 다음 1000℃의 가마에 구웠습니다. 이런 제작 매뉴얼을 정하기까지 꼬박 7~8개월이 걸렸습니다.”

3. 의견이 다르다면 직접 확인하고 결정하라

밀가루보다 곱게 간 황토를 뭉쳐 황토볼을 만들었다. /더비비드

황토볼 발마사지기의 기획부터 생산까지 조카인 왓스업 김형근(39) 대표와 함께했다. “가족이라고 쉽게 넘어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까다로웠죠. 가령 황토볼을 담을 용기로 전 알루미늄 틀을 만들자고 제안했는데요. 조카는 나무 소재로 하자더군요. 누구 말이 옳은지는 늘 직접 만들어보며 확인했습니다. 알루미늄은 황토볼이 쉽게 굴러다니고 차가운 성질이 있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조카의 의견을 따라 편백나무로 틀을 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보완할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한다. “황토볼을 흙과 물만으로 만들다 보니 분진이 일어납니다. 약품을 섞으면 간단하게 해결할 문제지만 쉬운 길을 가고 싶지 않아요. 시중의 황토볼 발마사지기 중엔 분진이 ‘안 난다’고 홍보하는 곳도 많은데요. 단언컨데 화학 약품 없이 그런 황토볼을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수백, 수천 번을 실험해 봤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다만 분진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전히 실험을 계속하고 있죠.”

4. 가족끼리 쓰려다 대량 생산, B2B 판로도 확장

사용자의 피드백을 반영해 사이즈를 L(라지), M(미디움) 등 둘로 나눴다. /보은황토산업

소재와 틀까지 정하고 나니 제품명은 저절로 만들어졌다. ‘편백나무 황토볼 발마사지기’다. “편백나무 틀 안에 황토볼 5㎏을 넣고 두 발로 황토볼을 밟으면 됩니다. 2022년 10월 첫 생산량은 딱 100개였어요. 가족들과 지인들이 나눠 가졌죠. 평생 들을 덕담을 이때 다 들은 것 같아요. 황토볼에서 나오는 원적외선 덕분에 하루 10분만 제자리걸음을 해도 하체 부기가 빠진다며, 더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습니다.”

회당 생산량을 5배인 500개로 늘렸다. 기존 사용자에게 들은 피드백을 반영해 크기 옵션도 만들었다. “가로 60㎝, 세로 34㎝에 3㎏인 편백나무 틀이 너무 크고 무겁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가로 39㎝, 세로 34㎝에 2㎏인 편백나무 틀을 제작해 ‘M 사이즈’를 추가했습니다. 황톳길이 있는 전국 각지의 공원에도 납품합니다. 충북 충주 대가공원, 경남 양산 디자인공원 등에 우리 황토볼이 깔려있어요.”

◇소비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결과

황토를 활용한 체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보은황토산업 김홍점 대표. /더비비드

편백나무 황토볼 발마사지기로 가장 효과를 본 이는 김 대표의 가족이다. “아내도 고혈압이 있어요. 싱크대 아래, 침대 옆, 거실 소파 등 집안 곳곳에 황토볼을 뒀습니다. 설거지하면서, TV를 보면서도 황토볼을 밟으며 마사지했더니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더군요. 저도 하루 30분 이상 황토볼을 밟았더니 당화혈색소 수치가 7.2~7.3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2~3일은 손님을 맞이한다. “황토볼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고 싶다거나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방문을 문의하는 연락을 자주 받아요. 소비자가 직접 찾아온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온종일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지는 분도 많습니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황톳길 체험 공간을 기획했어요. 다가오는 봄에 문을 열 계획입니다. 더 많은 이들이 황토로 건강을 얻길 바라요.”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