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인을 질병에서 해방시킬 이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

더 비비드 2025. 1. 22. 17:48
원스텝 약물 전달 플랫폼 개발기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프나시어의 신현우 대표. /프나시어

창조의 본질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게 아니라, 유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미 존재하는 대상도 관점을 달리하면 완전히 새로운 대상이 될 수 있다.

바이오제약 스타트업 프나시어의 신현우(34) 대표는 제약 시장을 ‘유에서 유’의 관점으로 접근했다. 그는 신약 개발 대신 허가된 약물의 효능을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의 약물 전달 기술은 공정 과정이 5단계로 복잡한데, 프나시어는 그 과정을 1단계로 압축했다. 신 대표를 만나 유에서 유를 만드는 법에 관해서 들었다.

◇자본 중심으로 돌아가는 바이오 생태계에 아쉬움 느낀 청년

신 대표는 포스텍 기계공학과 졸업 후 동대학 동일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까지 했다. /프나시어

신 대표는 어릴 적부터 인류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우주 공학자를 꿈꾸며 포스텍(POSTECH)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공부해보니 바이오와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이 갔다. 인류의 건강 증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계공학과 바이오의 접점인 나노 소재에 주목했다. 동대학 기계공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으며 바이오 나노 입자를 연구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신약 개발 스타트업에서 2년 근무했다. 이 시간은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바이오 시장이 침체되면서 건강과 행복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잃고, 핵심 가치가 자본에 잠식되는 모습을 봤어요. 당시 투자자, 사업 파트너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만났는데요. 대부분이 약물의 효능 향상보다는 자본 조달 방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게 현실이니까요.”

바이오 시장에 유입된 머니 게임은 여러 문제를 양산했다. “상장 기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성과를 거짓으로 포장해서 큰 파장을 일으킨 사례가 종종 있었습니다. 일부 기업의 문제였지만 그 일부가 시장을 망치고 있었죠. 본질을 약에 두지 않고, 돈에 천착하다가 그렇게 된 겁니다. 인간의 생명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게 바이오 산업의 1순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바이오 기업은 창업으로 번 돈을 난치성 질환 치료에 기부하는 등 봉사의 양상을 띱니다. 우리나라 바이오 생태계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었어요. 자본이 아닌 사람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바이오 기업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신약 개발 대신 선택한 것

천연 폴리머 자가조립 유도 매커니즘을 설명하는 시각자료. /프나시어

바이오 기술이 발전하고 연구 및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약물이 세상에 나왔다. 그럼에도 매년 질병을 앓는 사람의 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고령 인구의 증가, 환경 변호, 질병의 다양화 등으로 질병의 원인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신약 개발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딘 탓이다. 연구실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려면 기존과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했다.

신약 개발 대신 기존의 약 효능을 향상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자원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접근법이다. “신약 개발의 목적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겁니다. 중요한 일인만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밟아야 할 절차도 많아요. 좋은 취지로 개발을 시작해도 치료 현장에 도입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세상에 이미 좋은 약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요. 존재하는 약물들을 효능을 높여, 신약 못지 않은 약물로 만들자는 구상이죠.”

(왼쪽부터) 연구 과정 중 촬영한 사진, 약물 탑재 효율을 보여주는 그래프. /프나시어

2023년 4월, 프나시어 법인을 설립하고 원스텝 약물 전달 플랫폼 개발에 들어갔다. 그의 전문 분야인 폴리머를 활용하기로 했다. “폴리머란 작은 분자가 반복적으로 결합해 형성한 큰 분자로, 약물 전달을 제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합니다. 폴리머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종류에 따라 조립 형태가 달라지거나, 조립이 안되기도 하는데요. 폴리머를 조합하거나 프레임(틀)을 만들려면 특정 화학물질을 추가해야 합니다. 약 개발에 새로운 물질을 추가하는 건, 새로운 허가 절차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되는데요. 저희는 천연 폴리머들의 조합만 바꿔서 조립해 기술적, 행정적 번거로움을 축소해 보기로 했습니다.”

핵심은 천연 폴리머의 자가조립을 유도하는 매커니즘이다. “천연 폴리머와 이를 밀어내는 성질을 가진 다른 폴리머를 혼합하면, 천연 폴리머들이 서로 뭉치며 자가조립이 자연스럽게 유도됩니다. 이 과정에서 API(원료의약품)가 천연 폴리머와 높은 친화성을 가지면, 자가조립된 구조체 내부에 API가 탑재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구조체는 약물을 체내에 안정적으로 전달하며 약효를 개선합니다. 약물의 생체 이용률은 높이고, 부작용은 줄일 수 있죠. “

한 전시회에서 바이어에게 기술을 설명 중인 신 대표. /프나시어

약물 효능을 높이는 기술은 이미 존재했지만 공정이 복잡하다. 프나시어는 폴리머와 약물을 한 번에 혼합하는 원스텝 방식을 차용해 공정 과정을 대폭 축소했다. “가장 대표적인 약물 전달 방식으로 마이크로 스피어를 꼽을 수 있습니다. 폴리머 구슬에 약을 탑재하는 방식인데요. 이 구슬을 만드는데 최소 4단계 이상의 공정이 투입됩니다. 저희의 원스텝 플랫폼은 단일 혼합 공정만으로 전달 구조체를 형성합니다. 생산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죠. 기존 약에 적용된 폴리머를 사용하기 때문에 폴리머 수정 절차도 필요 없습니다. 생산 효율은 높이면서, 규제 허가 과정에서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천연 폴리머 자가조립 유도 매커니즘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프나시어의 플랫폼을 통해 개발한 제형. /프나시어

천연 폴리머 자가조립 유도 매커니즘에 대한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도 개발하고 있다. 특정 약물 정보를 입력하면 어떤 폴리머가 적합한지, 어떤 방출 특성을 나타낼지 등의 정보를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다. 특정 API를 보유한 제약사는 자사가 보유한 약물에 최적화된 자가조립 제형의 설계 및 스크리닝 정보를 빠르게 받을 수 있다.

두 종류 이상의 약물을 동시에 탑재한 다중 약물 개발도 가능하다. 알츠하이머와 아토피 치료제 API를 보유한 파트너들과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다. “아토피의 원인은 여러가지입니다. 타깃에 따라 약 성분이 달라서, 증상이 심한 사람은 종류별로 연고를 발라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파트너와 다양한 아토피 약물을 한데 모아서 한 번에 바를 수 있는 연고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약물의 혼합체에 적합한 폴리머를 선정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알츠하이머를 타깃으로 페롭토시스 저해제를 탑재한 약물도 개발 중입니다.”

해외 담당자들과 교류 중인 신 대표. /프나시어

원스텝 약물 전달 기술은 헬스케어 소비재 제조에도 활용 가능하다. “스킨 부스터 제품을 만들어 판매 중입니다.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 사용하는 화장품의 제형인데요. 유효 성분의 흡수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습니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파트너사와 손잡고 신규 브랜드 론칭을 준비 중이죠. 이론적으로는 시중의 영양제에도 저희의 기술을 접목할 수 있습니다. 제약뿐만 아니라 헬스케어 산업 전반으로 확장 가능성이 있는 거죠.”

◇바이오 산업에 봄을 데려오겠다는 다짐

정주영창업경진대회 수상 당시 모습. /프나시어

제약 시장의 문제점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큰 주목을 받았다. 2024년,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딥테크 팁스' 패스트트랙 대상 기업에 선정됐다. 같은 해 우리나라 최대 스타트업 경진대회인 아산나눔재단의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 성장트랙 부문 장려상을 받았다.

보다 넓은 무대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영국에 법인을 설립했다. 다양한 국가의 스타트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글로벌 그랜트(국제 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프나시어를 알릴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JP모건 콘퍼런스를 비롯해 국제 무대에서 개발 중인 아토피 신약을 소개할 계획이다.

프나시어는 이 세상에 봄을 다시 가져오는 선구자라는 의미다. /프나시어

가슴 뛰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여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시장에 밝혀지지 않은 방식을 시도했기에 이론 해석부터 직접 해야 했다. “’참고 논문을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죠. 하지만 우수한 팀원 덕분에 빠른 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프나시어의 CSO(최고과학책임자)인 제야쿠마 박사는 옥스퍼드 생화학 박사 출신으로, 과거 스타트업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CTO(최고기술책임자)인 정광일 박사는 서울대 수의학과 출신으로 화이자, 사노피 같은 대형 제약사에서 굵직한 경력을 쌓은 분이죠. 모두 저보다 경력이 많지만 제 비전을 믿고 합류하셨습니다. 훌륭한 분들과 함께하는 매일에 감사함을 느껴요.”

프나시어의 시계는 이제 시작이다. 아토피 치료제의 제형을 개발해 내년에 임상시험계획서를 신청할 계획이다. 페롭토시스 저해제 탑재 약물은 임상3상 중으로 단계가 좀 더 빠르다. 헬스케어 소비재 판매도 확대해 매출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구상이다. “프나시어(Pnaseer)는 봄(Primavera), 탄생 (Nascita), 선구자(Pioneer) 세 단어를 조합한 말입니다. 이 세상에 봄을 다시 가져오는 선구자라는 의미죠. 사람들의 건강에 새로운 봄을 되찾아 주고 싶습니다. 자본보다 바이오 사업의 핵심 가치인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