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살균건조기 브리즈케어 개발한 경인전자 김성은 대표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10~20년 전만 해도 학교·직장의 아침 대화 주제는 TV였다. 뉴스,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등 ‘본방 사수(본방송을 챙겨보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TV와 함께 전성기를 누린 곳이 있다. 국내 최초로 리모컨을 개발한 경인전자다. 당대 최고의 전자제품 기업인 소니, 삼성전자의 리모컨 제조를 도맡았다.
본방사수가 옛말이 된 요즘, 경인전자는 더이상 TV만 바라보지 않는다. 2023년 설립 50주년을 맞은 경인전자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다. 김성은(51) 대표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에서 회사의 미래를 봤다. 신발 살균 건조기 ‘브리즈케어’를 출시해 2개월 만에 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김 대표를 만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들었다.
◇신발 살균 건조기, 브리즈케어
경인전자의 본앤메이드 브리즈케어는 자외선과 열풍을 이용한 신발 살균·건조기다. 상·하단에 각각 2개의 팬이 차례대로 교차하며 작동되는 방식이다. 살균에 가장 강력하고 적합한 광원인 UV-C를 사용했다. 작동 10분 만에 신발 속 박테리아와 세균을 99.9% 제거해 준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의 녹농균, 황색포도상구균 살균력 시험성적서도 있다.
말발굽 형태인 U자형 디자인으로 신발에 꽂아 사용할 수 있다. 신발 한 짝씩 끼우는 수고로움이 없다. 충전과 사용 모두 선 연결 없이 완전 무선 사용이 가능하다. 전용 거치대에 충전해 놨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거치대에 꽂혀있던 브리즈케어를 뽑아 방금 벗어둔 신발에 끼우기만 하면 된다. 충전하고 사용하는 모든 과정을 한 손으로 할 수 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경인전자는 1973년 김효조 회장이 설립한 전자 부품 제조업체다. 국내 최초로 리모컨을 개발·제조하며 199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TV가 각 가정에 보급되는 속도와 함께 빠르게 성장했다. 소니, 삼성전자, LG전자 등 굴지의 기업과 거래하며 리모컨을 공급했다. 김 회장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제가 둘째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영은 제 관심 밖이었어요. 형님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사를 이끌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현대자동차 전략기획팀에 입사했다. 건설교통부, 국토부 등 국가부처와 소통하는 대관 업무를 했다. “직장 생활에 적응할 때쯤 변수가 생겼습니다. 형님이 다른 사업을 하고 싶다며 독립을 했어요. 어머니께서는 저라도 아버지를 돕길 바라셨죠. 그때부터 경영 공부를 했습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대학교 MBA 과정을 수료하고 2007년부터 경인전자에 합류했습니다.”
1990년대에 활약했던 경인전자는 2000년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가장 바닥을 친 시기는 3년 연속 영업 적자를 기록했던 2017~2019년이다.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느껴졌어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주요 거래처였던 삼성전자와의 거래를 중단했습니다.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곳이었지만 단가 협상이 늘 어려웠거든요. 때마침 미국의 TV 제조업체인 VIZIO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왔습니다. 2020년부터 VIZIO TV 리모컨 제조를 담당하며 재기를 준비했습니다.”
◇신발살균건조기 브리즈케어 개발 노트
1. B2C 사업 확장을 위한 발돋움
숙원 사업이던 B2C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B2B(기업 간 거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마침 중국 천진에 위치한 공장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그곳에서 제조하고 있던 것들을 함께 가져오게 됐는데요. 그중 하나가 본앤메이드의 신발 살균 건조기였습니다. 샘플을 받아 직접 써보니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평소 몸에 땀이 많은 편이라 신발이 항상 꿉꿉했는데 출근하자마자 신발에 꽂아두니 퇴근할 때 뽀송뽀송한 신발을 신을 수 있었죠.”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당시 불량으로 반품되는 건이 많았습니다. 영하의 낮은 온도에서 전원이 켜지지 않거나, 조도 센서가 민감해 작동이 멈추는 경우도 있었죠. 원인은 회로 설계였어요. 경인전자 개발팀이 나서서 회로 설계를 전면 수정했습니다. 따로 비용을 받지는 않았어요. 우리 고객사 제품이니 우리의 도움으로 판매량이 늘면 상부상조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 소비자 리뷰를 힌트 삼아 제품 개선
2023년 6월 본앤메이드의 제품과 브랜드, 특허권 등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제가 실사용자로서 매우 만족하고 있었고, 회로 설계 과정에 참여하면서 제품력에 대해 더욱 확신했습니다. 다만 이대로 판매하기엔 개선할 부분이 더 보였어요. 사용성을 높인 말발굽 디자인은 살리되 소비자 리뷰를 바탕으로 성능과 구조를 최적화하기로 했습니다.”
사용하며 느꼈던 불편함을 떠올리며 업그레이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먼저 배터리 용량을 2500㎃h에서 5000㎃h로 변경해 사용 시간을 4.5시간에서 20시간으로 늘렸습니다. 작동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버튼형 디스플레이를 전면에 배치했어요. 뜨거운 공기는 위로,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이동하는 대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도록 송풍 방향도 변경했죠. 금형(대량 생산을 위한 금속 틀)까지 다시 제작하며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3. 만족할 수 없다면 준비가 덜 된 것
제품 리뉴얼에 1년의 시간을 쏟았다. 제품명도 ‘브리즈케어(Breeze Care)’로 새단장했다. 2024년 6월 브리즈케어 출시를 앞두고 제동이 걸렸다. “의외의 복병은 ‘마케팅’이었습니다. 제품 개발에 신경을 쓰느라 마케팅은 대행사를 통해 준비했는데, 아무리 봐도 콘셉트가 매력적이지 않더군요. 이를테면 ‘발냄새’라는 키워드에만 치중해 광고 문구, 상세페이지 등을 제작한 상태였습니다. 이대로 시장에 내놓을 순 없다고 판단했어요.”
여름 기간 판매를 과감히 포기했다. “마케팅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짰습니다. 계약했던 마케팅 대행사와 이별하고 새로운 대행사를 찾았어요. 또 회사 내 마케팅 실무자를 지휘하고 가르쳐 줄 시니어급 인재를 채용했습니다. 브리즈케어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해 줄 키워드를 중심으로 광고 콘텐츠를 다시 제작했죠.”
4. 생활 속 불편함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라
2024년 10월 브리즈케어를 정식으로 시장에 소개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약 2개월 남짓의 기간에 5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브리즈케어는 가격경쟁력이 있는 제품은 아니에요. 하지만 비슷한 저가형 제품이 유선형인 것과 달리 무선 작동과 충전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죠. 저도 한 대는 차에 두고 씁니다. 운동이 끝나고 축축해진 신발에 브리즈케어를 끼우고 그대로 신발주머니에 넣어둬요. 소비자 후기를 보면 골프 가방에 넣고 다닌다는 분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브리즈케어를 이을 차기작 준비가 한창이다. “시작은 아이디어 회의에서부터예요. 매월 B2C 사업부 팀원들과 함께 모여 각자 한 달간 생활하면서 느낀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직원들에게 ‘거창할 것 없다’고 신신당부합니다. 참신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상 속 사소한 불편함을 포착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준비한 차기작이 다가오는 봄에 출시될 예정입니다.”
◇무모한 도전이 만들어 낼 100년 기업
사업은 ‘무모한 도전’이다. “브리즈케어를 직접 뜯어고치고, 우리 공장에서 직접 제조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미련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국내 소형 가전제품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는 디자인만 하고 엔지니어링·생산은 중국 공장에 외주로 맡겨서 단가를 낮추죠.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무모해도, 미련해도 내가 정한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2023년은 경인전자 설립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경인전자를 이끌며 ‘100년 기업’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회사는 ‘법인(法人)’이라고도 불리죠. 뒤에 ‘사람인(人)’자가 붙어서인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경인전자가 저보다 더 오래 장수하길 바랍니다. 그 곁을 브리즈케어 같은 자사 제품들이 지켜주리라 믿어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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