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케이션 말고 워케이션?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원격근무가 노는 것이라면 제가 이렇게 경력을 쌓을 수 있었을까요.”
스타트업 디어먼데이의 김정수 이사(44)는 원격근무 1세대다. 라오스, 호주, 중국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종횡무진 누볐던 그는 공항 라운지, 비행기, 호텔, 타국의 카페를 사무실 삼았다. ‘원격근무는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편견과는 달리 성과도 좋았다. P&G, 유니클로, 하이브 등 누구나 알 법한 유명한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비결이다.
현재 그는 ‘워케이션' 전도사가 됐다. 업무 효율이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택한 일이다. 김 이사가 사무실 밖의 일터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디어먼데이의 김정수 이사와 김성우 이사(38)를 만나 워케이션이 기업 문화에 쏘아 올릴 공에 대해서 들었다.
◇ 워케이션용 숙소, 따로 알아보지 마세요
일을 뜻하는 영어 ‘work’와 휴가를 의미하는 ‘vacation’의 합성어인 워케이션은 말 그대로 사무실이 아닌 휴가지에서 근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어먼데이는 기업에게 워케이션 공간 예약 서비스를 제공한다. 강릉, 제주, 경주 같은 휴가지에서 근무가 가능한 공간을 물색한 후 해당 공간을 임대해 사무공간을 기획했다. 인사 담당자는 디어먼데이 웹사이트를 통해 휴가지의 숙소부터 사무실까지 한 번에 예약하고 관리할 수 있다. 숙박 시설과 업무 공간을 따로 알아볼 필요가 없다.
올 연말 울산, 시흥, 안동 등에 신규 지점을 오픈하고 워케이션 예약 플랫폼을 출시할 예정이다. 플랫폼에 인사 담당자의 크고 작은 고충을 녹여냈다. 대표적인 기능이 선불형 요금제다. 인사 담당자는 회사의 워케이션 예산에 맞게 금액을 충전한 후 이를 직원들에게 배분하기만 하면 된다. 배분 받은 금액을 활용하는 건 오로지 직원의 몫이다. 그동안 인사 담당자들은 숙소 예약, 변경, 취소 등을 모두 직접 해야 했는데, 플랫폼을 통해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기업 뿐 아니라 지자체들의 활용도 늘고 있다.
◇ 일주일에 하루만 재택근무? 입사 안 할래요
디어먼데이 김정수 이사는 해외 경험이 풍부하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 P&G를 거쳐 핀란드 헬싱키의 알토대에서 MBA를 했다. 라오스의 한 기업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현대자동차, SK 등 국내 대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일을 했다. 이후 유니클로에서 아시아, 호주 지역 8개국의 IT 운영을 총괄했다. 창업 전 방탄소년단을 배출한 기획사 하이브에 재직했다.
김성우 이사는 직업군인 출신이다. 특전사에서 부사관으로 군 생활을 하다가 개인 사유로 전역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유학비를 벌기 위해 창업한 식품 커머스 회사를 연매출 60억원 규모로 키웠다. 생존을 위해 시작한 일인데 창업의 매력에 눈을 떴다. 이후 고려사이버대학에서 부동산과 법학을 공부하고 헬싱키의 알토대에서 MBA 과정을 수료했다.
- 워케이션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정수 이사) “디어먼데이의 비전은 ‘월요병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인데요.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월요병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일하는 것이 즐거웠죠.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출퇴근 과정에서 고통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사무실만 안가도 직장 스트레스의 상당수가 경감됩니다. 유니클로에 재직할 때 1년의 반을 외국에서 보내거나 공중에 떠 있었는데요. 제가 결정한 장소에서 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성우 이사) “제 경우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 지방 부동산들이 공실 문제를 겪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공실이 많으면 임대료가 싸져요. 자산의 수익성이 떨어지죠. 실수요를 창출해서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게 관건인데요. 지방 부동산의 실수요 창출 과정에서 워케이션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개인적인 경험도 한 몫 했습니다.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왕복 5시간을 출퇴근한 적이 있었는데요. 에너지 소모가 컸습니다. 통근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근로자가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 스트레스를 창의성으로 대체하면 기업 입장에서도 이득이죠.”
- 기업이 워케이션을 도입할 유인은 없지 않나요.
(김정수 이사) “하이브에서 근무할 때 면접을 보다가 충격 받은 적이 있어요. 지원들이 재택근무일수를 기준으로 입사 결정을 하더군요. 재택근무 일수가 기대치보다 낫다며 입사를 포기한 지원자도 있었습니다. 세상이 변했다고 느꼈습니다. 근로자가 기업의 방침을 무작정 따르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죠. 재택근무든 유연근무든 근무형태나 복지에 변화를 주지 않은 기업은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겠다 싶었습니다.”
◇ 누구나 꿈꾸는 완벽한 사무실에 바다가 보이네
디어먼데이 팀은 워케이션을 영속적인 제도로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가능케 하려면 워케이션을 일반적인 근무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서비스 방향성을 기업 인사 담당자 대상으로 기획한 이유다.
- 디어먼데이의 전략이 궁금합니다.
(김성우 이사) “디지털 노마드나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하면 사업을 장기적으로 이어가기 어렵다고 봤어요. 근로 방식이 특이한 직종이니까요. 그보다는 일반 근로자 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한 기업이 워케이션을 도입하면 다른 곳들도 따를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채용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안 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워케이션을 담당하는 인사 담당자의 어려움을 탐구하고 이를 서비스에 담기로 했습니다. 공간을 꾸릴 때도 관리자의 관점을 반영해 ‘워크’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대체 일은 언제해?'라는 말이 나와선 안되니까요. 완벽한 사무실을 만드는데 주력했어요. 누구나 꿈꾸는 사무실인데 창밖에 바다가 보이는 식이죠.”
(김정수 이사) “지금은 보편화된 핀테크 앱을 10년 전만 해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 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서비스가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워케이션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누군가는 비관적은 시선을 보내지만 저희는 디어먼데이를 촉매제로 많은 회사들이 우후죽순 워케이션을 도입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이 사업이 안 될 이유는 1000가지겠지만 우리는 될 이유 한가지에 파고들어요.”
- 구체적인 방법론은요.
(김성우 이사) “회사의 발전 과정을 3단계로 설정했습니다. 1단계는 워케이션 관련 제반 업무를 담당하는 인사 담당자들의 고충을 뾰족하게 파고드는 겁니다. 일종의 오프라인 플랫폼인 셈이죠. 권유진 대표가 대기업 인사팀 출신이라 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실무자, 중간관리자, 최종의사결정권자들의 고충을 낱낱이 알고 있죠. 2단계는 온라인 워케이션 플랫폼 구축입니다. 다행히도 올해 초에 한국관광공사의 관광기업 혁신바우처 사업에 선정되어 플랫폼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3단계는 지점 확대와 커머스 분야의 강화입니다. 각 지점의 사무공간과 숙소를 여러 브랜드의 광고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방안인데요. 이미 의도한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지자체가 워케이션 도입에 혈안인 이유
디어먼데이 팀이 기업 인사담당자 못지 않게 공들이는 대상이 있다. 바로 지방자치단체다. 일본의 성공 사례처럼 각 지자체는 워케이션의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인구 소멸 방지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와카야마현은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규모 관광지인 시라하마정에서 워케이션 프로젝트를 시작해, 이곳을 워케이션의 성지로 성장시킨 바 있다. 일본 사례에서 힌트를 얻은 우리나라 지자체들은 ‘OO형 워케이션’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 워케이션은 지자체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김정수 이사) “지방 소멸 문제의 대안은 생활 인구를 창출하는 것인데요. 워케이션 참가자들은 1회성 관광객과는 달리 생활인구의 기준을 충족합니다. 해당 지역에서 체류하면서 지출도 하기 때문에 경제 활성화 효과도 큽니다. 한국관광연구원의 국민여행조사에 따르면, 한 해 워케이션 참여 규모를 2000박(night)으로 상정할 경우 지자체는 최소 13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김성우 이사) “보다 큰 틀에서는 저출산 문제에 기여하는 바도 있다고 봅니다. 수도권 거주자들은 높은 집값과 생활비 부담 때문에 출산을 망설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서울 근처를 고집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직장인데요. 만약 지방에 워케이션을 할 수 있는 분산 오피스가 생겨난다면 굳이 서울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속초나 경주에 살면서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는 거죠.”
- 디어먼데이는 지자체의 워케이션 운영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정수 이사) “개발 중인 디어먼데이 플랫폼을 통해서 지원금 운용, 사업 절차 관리, 로컬 상품 도입 등의 복잡한 과정을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지자체 워케이션 담당자는 굉장히 복잡하게 일을 합니다. 예산을 받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출해야 할 증빙자료가 많은데요. 사람이 하다 보면 누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플랫폼을 활용하면 시간과 비용을 아끼면서 실수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저희 플랫폼과 연동해 워케이션 상품 판매 홈페이지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해당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 실적과 시설별 정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죠.”
◇ 함께 월요병을 없앨 동지를 구합니다
이제 막 첫 돌을 넘겼는데 창업 첫해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워케이션 지점을 6곳으로 확대했고 지점을 광고 플랫폼 삼아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다. 허먼밀러 등 사무용 의자 3대장이라고 불리는 가구 브랜드, 화장품 브랜드, 경동나비엔 등 유명 기업이 디어먼데이에게 손을 먼저 내밀었다. 온라인 플랫폼도 거의 다 구축한 상태다.
- 빠른 성장의 비결은요.
(김성우 이사) “하이엔드 전략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다른 워케이션 업체와는 달리 0원 행사나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았어요. 대신 사무 공간 꾸리기에 힘썼습니다. 감탄사를 자아내는 ‘와우 포인트’를 끌어내려 노력했어요. 완벽한 사무공간과 리프레시가 맞물릴 때 와우가 나오거든요. 광고 협업 브랜드도 꼼꼼하게 엄선했어요. 워케이션 카테고리와 상관없는 상품은 모두 거절했죠.”
- 인사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채용 브랜딩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는데요. 디어먼데이는 어디에서 기회를 찾고 있나요.
(김정수 이사) “인재를 바라보는 관점과 고용인, 피고용인의 관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는 시대입니다. 대기업도 훌륭한 인재를 데리고 있으려면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스타트업의 채용 방식을 대기업이 벤치마킹하기도 하죠. 워케이션은 이런 변화 속에서 하나의 근무제도로서 경쟁력이 있습니다. 디어먼데이는 워케이션 분야에서 일 처리를 완벽하게 하는 파트너입니다. 인사 담당자의 공수를 줄여주면서 채용 브랜딩 증진 효과를 끌어올 수 있죠. 기업과 직원이 모두 만족하면서요. 지금은 누가 먼저 워케이션을 전면 도입할지 눈치 싸움을 하고 있는 단계인데요. 일단 누군가 도입하면 ‘우리만 뒤처지지 어떡하지’가 시작될 겁니다.”
-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김성우 이사) “워케이션 도입 전후의 퇴사율, 지원자들의 수준 등 워케이션의 정량적인 효과를 연구하는 게 당면한 목표입니다. 기업 의사결정자들이 정말로 알고 싶어하는 수치거든요. 출시를 앞둔 플랫폼을 통해 인사 효과를 검증하는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테스트 참가사에 최대 1000만원의 비용을 지원합니다. 워케이션을 인사 문제의 대안으로 보고 있는 회사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함께 월요병 없는 회사를 만들 방안을 고민해봐요.”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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