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 작은 시골의 식료품점이 연매출 100억원을 냅니다. 비결이요?”

더 비비드 2024. 6. 21. 10:28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방문기

용진농협의 이중진 조합장이 로컬푸드 직매장을 찾은 꼬마 손님을 응대하고 있다. /더비비드

‘준이 딸기’, ‘박선영 육포’

용진농협의 ‘로컬푸드 직매장’은 생산자의 이름이나 별명이 브랜드가 된다. 관내 농가가 직접 생산, 출하, 포장한 제품을 취급하면서 생산자의 이름을 브랜드로 쓰는 것이다. ‘얼굴 있는 먹거리’를 표방하는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은 880여 농가에서 출하한 700여 품목을 취급하고 있다.

2012년 문을 연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은 지난 10년 간 폭풍 성장했다. 일 평균 고객 수는 2012년 726명에서 2022년 1055명으로 늘었고, 동기간 연매출은 43억원에서 104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효율을 성공의 열쇠로 받드는 사회에서 효율과 거리가 먼 로컬푸드의 운영방식이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 15일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로컬푸드 매장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은 판매 비중을 기준으로 농산물 50%, 축산물 25%, 가공식품 25%를 취급하고 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농산물, 가공식품, 친환경 전문 매장, 축산물 매장. /더비비드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에 위치한 용진농협은 우리나라 로컬푸드 1번지다. 농립축산식품부의 농촌융복합사업(6차산업) 인증사업자로 로컬푸드 판매뿐만 아니라 김장체험, 송편만들기, 생강수확 등 도농 연계 체험 프로그램으로 로컬푸드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역 농수산물을 활용한 가공식도 판다. 비스코티, 쑥 미숫가루, 김부각이 대표적이다. 비스코티는 이탈리아 쿠키 중 하나를 말하는데, 단단하고 식감이 오독오독해서 우유나 홍차, 커피 등에 담가 먹기도 한다. 용진농협에서 파는 비스코티는 수입 밀이 아닌 우리 밀을 썼다. 이외에도 계란, 건대추, 감말랭이 등 주요 재료가 전북 완주산 농산물이다. 색소, 방부제, 보존료 같은 합성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았다

쑥향가득 미숫가루 역시 완주에서 자란 어린 쑥이 들어갔다. 검정콩, 보리, 흑미 찹쌀, 현미가 만든 고소함 속에 은은한 쑥향이 특징이다. 모든 재료를 가열하지 않고 건조한 다음 가루를 내어 생식에 가깝다. 바삭 김부각은 국산 김을 주재료로 완주에서 재배한 찹쌀과 참깨로 만들었다. 반찬이자 간식, 술안주로 제격이다.

(왼쪽부터) 2층에 조성된 로컬 식당 '황금 연못'의 전경과 황금 연못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들. /더비비드

용진농협은 모든 시설이 로컬푸드에 초점 맞춰져 있다. 1층엔 130평(430㎡) 규모의 로컬푸드 직매장이 있고 2층엔 140평(463㎡) 크기의 로컬 식당 및 조리시설이 있다. 2층 식당에서 취급하는 식재료의 50% 이상이 이 지역 생산자가 출하한 것이다.

3층에는 65평(215㎡) 규모의 체험교육장이 있다. 체험교육장은 6차산업 중 3차인 ‘체험관광’에 방점을 찍은 공간이다. 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요리 체험 교실과 온라인 판로 개척을 위한 라이브 커머스 스튜디오 등 다방면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날 신규 조합원 대상의 교육이 진행됐다. 이중진 용진농협 조합장(57)은 이 자리에서 로컬푸드 사업의 취지와 운영 방식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3층 체험교육장에서 밀키트 체험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박선영 기능장이 체험 행사를 진행했다. /더비비드

로컬푸드란 생산자가 브랜드가 되는 개념이다. 복잡한 중간 유통 단계를 대폭 줄인 게 특징이다. 이 조합장은 “지역 농민이 생산한 먹거리를 지역 안에서 소비하도록 촉진하는 활동이 로컬푸드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로컬푸드는 이해관계자 모두 윈윈(win-win) 하는 구조다. 소농은 로컬푸드 출하를 통해 소득 창출의 창구를 마련하고, 소비자는 보다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할 수 있다. 이 조합장은 “유통단계가 길어질수록 먹거리의 질이 하락한다”고 지적하며 “새로운 유통체계를 고민하던 과정에서 로컬푸드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신규 조합원 교육을 진행 중인 이 조합장. /더비비드

이 조합장은 로컬푸드 직매장을 ‘재래 시장’에 비유했다. 그는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 지도를 보면 10명 중 3명운 농업으로 큰 돈을 버는 중농이나 대농인데 나머지 7명은 판매 창구가 부족한 소농이나 부녀농”이라며 “그 10명 중 7명이 장날에 물건을 팔았던 시스템을 현대화한 것이 로컬푸드 직매장”이라고 설명했다.

용진농협은 여러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로컬푸드 직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선 완주 관내의 생산물만 취급한다. 판매 비중으로 따지면 농산물 50%, 축산물 25%, 가공식품 25%다.

로컬푸드 직매장을 방문한 농가와 담소를 나누는 이 조합장. /더비비드

신선 농산물은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아울러 주 2회 잔류 농약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이 조합장은 “일반 매장 대비 안전성 검사를 철저하게 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가공식품의 경우 생산자가 지역 특산물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비스코티, 쑥 미숫가루, 김부각 등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쿠키 중 하나인 ‘비스코티’도 완주산 재료로 만들었다. 수입 밀이 아닌 우리 밀로 반죽을 했고, 베이킹파우더 외에 모든 재료가 완주에서 나고 자랐다. 식감이 오독오독해서 씹는 맛이 좋다.

쑥으로 유명한 완주답게 통통하고 순한 어린 쑥으로 만든 ‘쑥향가득 미숫가루’도 있다. ‘바삭 김부각’은 국산 김, 완주산 찹쌀과 참깨로 제조해 반찬 뿐만 아니라 간식으로 두루 활용 가능하다.

식품 기업 미소공주의 유경애 대표는 로컬푸드 직매장 입점 이후 매출이 늘었다고 강조했다.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대표 상품 비스코티를 들고 있는 유 대표. /더비비드

출하 농가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것도 로컬푸드 사업의 특징이다. 농가는 농산물 생산, 출하, 소포장, 진열, 재고관리를 직접 해야 한다. 아울러 상품화 교육에도 참여해야 한다. 책임이 늘어난 만큼 수수료는 적다. 농가가 매장 측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는 10%대다.

낮은 수수료 덕분에 농가들은 적지 않은 추가소득을 벌어들이는 중이다.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생강과즐과 비스코티 등을 판매 중인 식품 기업 미소공주의 유경애 대표는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서만 매달 300만원 가까운 수익이 발생한다”며 “로컬푸드 입점이 하나의 직업이다”고 말했다.

◇10년 간 10만명 다녀간 성지로 부상

이중진 조합장은 로컬푸드 사업의 일등공신이다. /더비비드

지역 사회는 농촌이 보유한 무형의 자원을 다방면에 활용한 로컬푸드에 열광했다. 여기저기서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한 것이다. 10년간 10만명 이상이 견학 차 용진 농협을 방문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약 800여곳의 로컬푸드 직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2021년 친환경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장관상을 받았다.

용진농협의 15대 조합장인 이중진 조합장은 로컬푸드 사업의 일등공신이다. 1994년 농협에 입사해 29년째 농협에 몸담고 있는 그는 ‘로컬푸드 직매장을 연계한 체험관광 상품화 방안’을 주제로 논문을 썼고, 일종의 로컬푸드 지침서인 <한국 농업의 미래를 쓰다>를 공동집필 했다.

- 큰 변화를 시도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오래 농업에 종사하신 분들은 관성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변화를 제안해도 틀 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죠. 그런데 기후도, 산업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늘 하던 대로 농사를 짓다가 밥벌이를 놓칠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농업에도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죠. 우리 농산물로 비스코티나 미숫가루를 만든 것처럼 농산물 활용 방안에도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 주산작물 육성 등 농가 소득 보전 방안은 다양하지 않나요.

“완주 지역은 상추가 유명합니다. 하지만 상추 재배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투트랙으로 가야 하죠. 예컨대, 규모화가 된 농가는 산지의 유통센터를 활용해서 대형마트로 납품하고 나머지 영세농은 로컬푸드로 소득을 보전하는 식으로요.”

로컬푸드 직매장 운영 시 과열경쟁을 막기 위해 품목이 중복되는 걸 지양한다. 용진농협의 변민우 과장(왼쪽 인물)을 통해 매장을 점검 중인 이 조합장(오른쪽 인물)의 모습. /더비비드

- 로컬푸드 사업이 지방 소멸 문제에 어떻게 기여하나요.

“영세농의 귀농 성공 사례가 많아져야 귀농하는 사람이 늘 겁니다. 속된 말로 시골 아낙처럼 바닥에 앉아서 농산물을 파는 건 살림에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재래시장의 속성을 제도화한 게 로컬푸드 직매장인데요. 이런 판매 창구가 활성화돼야 농촌에 사람이 들어옵니다. 사람이 몰리고 소득이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복지와 문화가 형성됩니다.”

- 로컬푸드 직매장 운영 시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요.

“과열경쟁을 막기 위해 품목이 중복되는 걸 지양합니다. 평소 농가와 친하게 지내도 이 잣대만큼은 철저하게 고수합니다. 입점을 희망하는 친척을 돌려보낸 적도 있어요. 원칙을 지키는 것은 원활한 매장 운영의 기본 중 기본입니다. 로컬푸드 직매장에 입점 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품질보증 수표입니다. 규칙을 어겼거나 잔류농약 기준에서 벗어난 농가는 출하 정지합니다.”

이 조합장은 로컬푸드 판매를 넘어 농촌과 제품을 체험하고 즐기는 관광 시스템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더비비드

- 인상 깊었던 사연은 없었나요.

“다른 농가에게 기회를 양보하기 위해서 일부러 출하량을 줄인 곳이 있었습니다. 로컬푸드의 취지에 진심으로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이런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매일매일 대단한 이웃들과 함께 하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요.

“로컬푸드 콘텐츠에 힘쓸 구상입니다. 농촌과 제품을 체험하고 즐기는 관광 시스템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어요. 농업 관광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기업의 연수, 타 농협의 선진지 견학,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교육, 치유농장 등 활용할 방안이 많죠. 로컬푸드 직매장을 단순한 소득 증진 수단을 넘어, 지역민과 지역 소비자의 쉼터로 만들고 싶습니다. 요즘 총알배송이니 새벽배송이니 온라인 판매가 활성화됐지만 ‘시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친근함과 활력은 쉬이 대체될 수 없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