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와, 역시 배달의 나라” 1000개 주소 넣자 경로가 주르륵

더 비비드 2024. 6. 21. 10:18
인공지능 기반 최적 경로, 배차 솔루션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다수의 경유지에 대한 최적의 경로와 배차 최적화 솔루션 플롯(FLORT)을 개발한 김지성 플릿튠 대표. /더비비드

버스 3대를 연이어 떠나 보냈다. 출근을 위해 자차를 끌고 나오니, 나처럼 홀로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가 대부분이었다. 수요 예측에 실패해 버스를 타지 못하는 승객이 대거 발생하고, 승용차들이 도로 위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플릿튠의 김지성 대표(46)는 도로 사정을 효율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고 싶었다. 불필요한 차량 운행을 줄여 교통 혼잡은 물론 사고 위험과 시간, 이산화탄소 배출량까지 줄이고 싶었다. 다수의 경유지에 대한 최적의 경로와 배차 최적화 솔루션 플롯(FLORT)을 개발한 계기다. 그를 만나 도로 위의 차량은 줄이고, 운송 효율은 높이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인공위성, 자율주행차 엔지니어가 ‘교통체증’에 눈 돌린 이유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코딩을 배운 김 대표는 셋톱박스, 인공위성, 자율주행차 기업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더비비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8비트 컴퓨터였다. 컴퓨터 학원에서 밤새 코드를 짜던 경험이 누적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엔지니어로 경력을 쌓았다. “셋톱박스, 인공위성, 게임 등의 분야를 거쳤습니다. 사회인이 되기 전 컴퓨터공학과 출신만이 할 수 있는 버티컬한 분야를 찾아 나섰어요. 그렇게 발견한 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접점에 있는 ‘임베디드’ 시스템이었습니다. 막 태동하던 셋톱박스 업체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유죠.”

특별히 ‘관제 시스템’에 관심이 많았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사령선에서 무전으로 ‘휴스턴’을 외치잖아요. 그 모습이 멋있었어요. 큰 관제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쎄트렉아이라는 인공위성 관제 시스템에서 7년 근무했습니다. 해외 위성 발사 후 초기 운영까지 참여했죠.”

이후 자율주행차 기업 포티투닷에서 배차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자율주행차의 배차 알고리즘을 생성하는 일을 했습니다. 자율주행차에게 ‘미션’을 부여하는 개념이죠. 이때부터 모빌리티 기술에 관심을 갖고 기술로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소트프웨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플릿튠 팀원들의 모습. 가장 왼쪽 인물이 김 대표다. /플릿튠

지식과 경력을 활용할 영역을 찾아 나섰다. “버스가 만차라서 3대나 보낸 적이 있어요. 요즘 같은 IT 고도화 사회에 수요예측을 하지 못해 승객이 버스를 타지 못하는 상황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죠. 도로에 차가 많은데, 사람이 탈 수 있는 차가 적은 건 운송수단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었습니다. 500~1000대의 차량을 한번에 효율적으로 배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불필요한 차량 운행을 줄여 시간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제가 보유한 기술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어요.”

◇배송지 1000곳 배차도 거뜬 없어요

플롯으로 여러 경유지 최적화 시뮬레이션을 구동한 모습. /플릿튠

도로 사정의 큰 축을 담당하는 여객과 물류 분야에 주목했다. “5개의 경유지를 거쳐야 하는 택배 기사를 가정합시다. 보통 ‘손배차’로 일정을 짜요. 포털 지도를 열고, 나름 여러 경우의 수에 따라 예상 이동 시간을 계산한 후 최적의 노선을 결정하죠. 하지만 이는 중간 중간 발생하는 변수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시간대별로 바뀌는 교통 상황을 반영할 수도 없고요. 이런 산업에는 보다 동적으로 생성되는 수요 기반의 노선이 필요하다 판단했습니다.”

2022년 5월 플릿튠을 설립하고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기능부터 개발했다. “경로 및 배차 최적화 솔루션으로 출발했습니다. 아주 간단한 형태였어요. 수십 곳의 배송지 중에서 어느 순으로 가야 하는지 경로를 알려주고, 전체 적하량을 넣으면 배차까지 해주는 서비스였죠. 2주 만에 개발해 외부 업체가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형태로 제공했습니다.”

권역 배차 최적화 화면. 배송 권역을 겹치게 설정할 경우, 양쪽의 운행시간과 조건을 반영해서 더 유리한 차량에 배차된다. /플릿튠

피드백을 바탕으로 서비스 영역을 권역 배차, 운전자용 서비스, 차량 관제 솔루션 등으로 확대해 나갔다. 플릿튠의 최적 노선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플롯’의 세계관은 이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아우른다. “화주와 여객 버스, 셔틀 버스, 물류 배송 차량 같은 운송업체와 운전사가 타깃입니다. ‘2시간 안에 서울 시내 500개 배송지에 물품이 배송돼야 한다’는 미션을 엑셀로 입력하면 몇 대의 차량이 필요한지, 각 차량이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지 계획을 짜줍니다.”

기사들은 내비게이션 기능이 탑재된 운전자 전용 앱을 통해 배정된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같은 경로의 담당 기사가 바뀌어도 주어진 경로를 따르기만 하면 되니 경유지 누락의 우려가 없습니다. 최다 1000개까지 경유지를 입력해도 최적 노선을 뽑아냅니다. 이론상으로는 더 가능합니다. 손배차를 할 필요가 없죠. 배송 완료 처리도 앱에서 할 수 있습니다.”

플롯 솔루션을 이용 과정을 설명한 이미지. 전체 적하량과 경유지를 입력하면 최적 경로 생성과 배차가 완료된다. 운전자는 운전자용 앱을 내비게이션처럼 활용하고, 배송 완료 인증까지 할 수 있다. /플릿튠

사용 업체는 실시간 차량 관제 시스템으로 차량 운행현황과 운전자의 운전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일의 진행 상황과 예상 도착 시간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을 해소해주죠. 지금까지의 주행 이력도 확인 가능합니다. ‘서울-대전=20만원’처럼 절대 거리 기반의 관행적인 요금체계 대신 실제 주유비, 톨게이트 비용에 기사님 임금을 더하는 식으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죠. 투명한 가격 시스템을 기반으로 비용을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요즘 잘 나가는 영업사원의 업무 기밀

지금까지 240만km의 노선을 생성했다. 배차 시간은 평균 20분 감소했고, 한 운송업체와 기술검증(PoC)을 진행한 결과 차량을 40% 줄일 수 있다는 결과도 얻었다. 불필요한 차량운행은 줄이고, 운송 속도는 높인 것이다.

플릿튠은 제2회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성장트랙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플릿튠

괄목할만한 경쟁자가 없는 시장에 빠르게 진입해, 창업 초반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법인 설립 두 달 만에 초기 투자를 받았고, 그해 9월에 충소벤처기업부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됐다. 지난 11월 아산나눔재단의 제12회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성장트랙’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플롯은 기업형과 개인형 두 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쏘카, 금호고속 등의 기업과 협업 중입니다. 한 대기업은 직원 통근 셔틀을 운영하는 데 플롯을 사용합니다. 플롯으로 식자재를 배송하는 업체도 있죠. 식자재 분야의 경우 필요 식자재에 따라 주문이 유동적이거든요. 주문에 따라 바뀌는 경로를 빠르게 생성해줘서 유용하다고 합니다. 개인형 모델의 경우 중소 가전 업체 설치 기사, 해외 택배사 기사, 영업 사원들이 활용합니다. ‘이런 서비스가 있어서 너무 편하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플롯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법이 쉽다는 점이다. 이 장점을 발판으로 해외로 진출할 구상이다. /더비비드

내년 초 해외에 진출할 구상이다. “이커머스 산업이 사용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동적인 경로 배차 시스템이 필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분야에서 키를 쥔 회사가 많지 않아요. 플롯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하기 쉽다는 점인데요. 그래서 해외 반응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장을 독점하는 대신 함께 성장하는 청사진을 그린다. “하나의 서비스가 헤게모니를 쥔 구조는 산업 생태계에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지도 기술 기반의 ‘맵테크’(Map Tech) 기업인데요. 택시든, 물류든, 여객이든 좋은 기반이 있다면 저희의 기술을 활용했으면 해요. 플롯이라는 SaaS뿐만 아니라 API 형태로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죠. 지도 기반의 서비스 제공자와 최종 사용자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