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되는 빌라 전세사기 여파
‘전세 사기’ 여진이 끝나지 않았다. 경매로 나오는 빌라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가 하면, 빌라 소유자 사이에선 공시가격 이의제기 신청이 폭주하고 있다. 빌라 전세사기가 주택 시장에 미친 영향을 정리했다.
6일 경·공매 전문 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4월 진행된 서울 지역 빌라 경매 건수는 총 145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2006년 5월(1475건) 이후 월간 기준 18년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지역별로는 서울에서 전세 사기 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강서구가 536건이었고, 이어 양천구(144건)·구로구(113건)·관악구(85건)·금천구(87건)·은평구(69건) 순이었다.
서울 빌라 경매 건수는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0년엔 월평균 200건대에 불과했지만, 고금리에 부동산 경기가 꺾이고 전세 사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2022년 말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1268건)부터 지난달까지 7개월 연속 1000건을 웃돌고 있다.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보증금 반환 소송을 거쳐 법원이 경매 개시를 확정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빌라 기피 현상이 확산하면서 경매 낙착률이 10% 안팎으로 떨어지고, 경매 유찰이 반복되면서 경매 물건이 계속 쌓이는 상황이다.
세입자가 빌라 입주를 꺼리니, 임대 목적으로 빌라는 사려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올해 1~4월 경매가 진행된 서울 지역 4976채 빌라 중 낙찰된 물건은 669채로 13.4% 수준이다. 경매에 나온 빌라 10채 중 주인을 찾는 물건이 2채도 안 되는 것이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는 지난달 25일 최초 감정가(2억8900만원)의 8.6%인 2482만5000원에 경매를 진행했으나 응찰자가 없어 13번째 유찰을 기록했다. 11차례 유찰된 화곡동의 또 다른 빌라는 지난 11일 감정가의 9% 수준인 2688만6000원에 경매가 진행됐지만 이번에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강서구 일대는 전세 사기가 밀집했던 지역이다.
경매에서 당분간 주인을 찾지 못하는 빌라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지옥션 측은 전셋값이 급등했던 2021년 전후 높은 보증금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던 물량이 적체된 만큼, 빌라 경매는 한동안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공시가격을 올려달라’고 이의제기를 신청하는 빌라 소유자도 늘었다. 2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잠정안 공개 후 이달 8일까지 접수된 이의 신청 6368건 중 5163건(81%)이 공시가격을 높여 달라는 ‘상향 요청’이었다. 2020~2022년 상향 요청 비율이 2~7%대에 그쳤는데 이번에 폭증한 것이다. 공시가를 공개한 전체 공동주택 1523만가구 중 아파트 비율은 81%인데, 공시가격 상향 요청 건수 중에선 다세대·연립 비율이 72%를 차지했다.
공시가격은 대표적인 과세 기준이다. 공시가격이 상승하면 세금과 보험료 부담이 커지고 복지 수급에서 제외될 수 있다. 그런데도 집주인이 불이익을 감수하려는 이유는 ‘보증보험 요건 강화’ 때문이다. 가뜩이나 전세사기와 역전세난으로 빌라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보증보험 요건이 강화되면서 빌라 수요는 뚝 떨어졌다.
정부는 세입자들의 전세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작년 5월부터 공시가격과 연동된 전세 보증보험 요건을 강화했다. 발급 요건이 ‘공시가격의 150%’에서 126%로 낮아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주인은 신규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A 빌라 공시가격이 1억원이라면 1억2600만원까지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데, 빌라 전세 시세가 1억4000만원이라면 세입자 입장에선 전세금을 100% 보장받을 수 없어 계약을 꺼리게 된다. 이 때문에 공시가격을 올려달라는 빌라 집주인이 늘어난 것이다.
/이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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