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국 반도체 연구원이 사표내고 한국에서 개발한 뜻밖의 제품

더 비비드 2024. 7. 18. 09:52
미국 반도체 연구원 출신, 헤드업 디스플레이 방식 위성항법시스템(GPS) 주행보조장치 개발

3~5년을 넘기기 힘든 스타트업들에게는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중견, 중소기업이 참고하기 좋은 사례가 됩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오랜 시간 사업을 영위해온 기업들의 경쟁력과 기술을 알아봅니다.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주말에는 BEST 기사를 소개합니다.

오랫동안 맥을 이어온 기업은 저마다 비결이 있다. 26년째 위성항법시스템(GPS) 기기를 개발하고 있는 중소기업 케이앤씨텍의 비결은 ‘대표의 고집’이다. 케이앤씨텍 최귀철(67) 대표는 목적지에 빨리 닿는 지름길 대신 소비자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에움길을 고집해왔다.

케이앤씨텍 제품의 주요 부품은 모두 국산이다. 1980년대부터 반도체 기술자로 일한 최 대표가 몸소 느낀 점을 제품에 반영한 덕이다. 작년에 개발한 교통안전 단말기 ‘위파인드 허드백’이 대표적 예다. 최 대표에게 회사를 일궈온 얘기를 들었다.

최귀철 대표(가운데)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미국 반도체 기업 페어차일드(Fairchild)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본인 제공

◇간단히 장착하면 앞면 유리창에 주행정보가

‘위파인드 허드백(HUD-100)’은 헤드업 디스플레이(Head-Up Display, 운행 관련 정보를 운전석 유리창에 띄워 주는) 장치다. 운전석 창으로 속도 같은 주행 정보가 뜬다. 여기에 GPS 장치를 이용해 과속, 신호 위반 감지 카메라 등 단속 정보를 그래픽 외에 소리로도 실시간 안내한다.

기기를 차량 대시보드 앞에 부착하는 것으로 설치가 끝난다. 별도 전원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자동차 시동을 켜면 곧바로 작동된다. 시선을 내비게이션으로 돌리지 않아도, 앞만 보면서 각종 주행 및 단속 정보를 실시간 보고 들을 수 있다.

새 차를 살 때 헤드업 디스플레이 기능을 옵션으로 추가할 경우 70만원 대에 이르는데, 허드백은 10만원 내외 가성비 가격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래된 차에서도 신차에나 있는 기능을 싸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위파인드 하드백이 작동하는 모습. /케이앤씨앤텍

◇NASA 기술 국내에 전수한 반도체 2세대 출신

최귀철 대표는 스스로를 ‘반도체 2세대’라 소개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1980년대에 미국 반도체 기업 페어차일드(Fairchild)에서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반도체의 뿌리 같은 회사죠. 미군과 미 항공우주국(NASA)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기술을 국내로 전수하는 일을 했어요. 연봉이 국내 기업보다 두 배가량 높던 터라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꽤 샀죠.”

8년간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중 다른 꿈이 떠올랐다. “당시 반도체 산업군 엔지니어의 직업적 수명이 짧았어요. 과장 정도로 승진하면 기술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 내근직이 됐죠. 습득한 기술력이 아깝더군요. 회사 생활도 웬만큼 했으니 내 사업을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1980년대 미국 반도체 기업 페어차일드에서 근무했다. 맨 앞줄 왼쪽이 최 대표다. /본인 제공

사표를 내고 1990년대부터 창업가의 길을 걸었다. “처음엔 전기자동차를 공략했어요. 전기차에 필요한 반도체 부품을 유통하는 사업을 했죠. 매출은 잘 나왔지만 동업자와 문제가 생기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어요. 그래도 반도체의 끈은 놓지 않았습니다. 회사를 새로 세워 해외 반도체를 국내 기업에 납품하는 일을 했습니다.”

케이앤씨텍은 최 대표의 세 번째 창업 시도다. “돌고돌아 1996년에 케이앤씨텍을 설립했어요. 내비게이션에 들어가는 반도체 부품 등을 설계하고 유통하는 B2B(기업 간 상거래) 사업을 주로 했죠. 이번에는 GPS에 파고들었어요. GPS 활용 기기의 핵심도 결국 반도체거든요. 2006년엔 이탈리아 자동차 ‘피아트’에 들어가는 부품을 제조했습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안전이 최우선인데 공신력을 인정받은 거죠.”

이전 회사에서 회의중인 모습. /본인 제공

◇사양 산업 위기 돌파하기 위한 한 방의 정체

1997년 외환위기 등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회사를 굳건히 지켰다. 다만 각종 IT(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GPS 분야는 사양 산업이 되고 있었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고민 끝에 2013년, 기존의 B2B 비즈니스에서 물건을 개발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비즈니스로 확장을 결심했다.

“나이가 드니 새로 생긴 교통 표지판을 미처 보지 못하는 등 ‘아차’ 하는 순간이 생기더군요. 모범 운전자라 자부했는데 속도, 신호 위반 단속 정책이 나날이 강화되니 적응이 어려웠죠.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음성으로 단속 정보를 제공하는 GPS 기기 CDB-100(Camera Detector)을 개발했습니다.”

각종 반도체 관련 기기 앞에 선 최 대표. /더비비드

방향 전환은 통했다. CDB-100이 10만개 이상 팔리며 효자 상품이 됐다. 이후에도 계속 신제품 개발을 했다. “쏟아지는 첨단기기들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더 획기적인 제품이 필요할 것 같더군요. 소비자들도 음성만으로 단속 정보를 익히기엔 부족하다는 의견을 건넸죠. 시각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제품을 떠올렸어요.”

2020년 음성과 화면으로 교통 단속 정보를 알려주는 단말기 개발에 들어갔다. 반도체와 GPS에 몰두했던 40여 년 간의 노하우를 쏟아 부었다. “단말기의 핵심은 과속, 신호 위반 단속까지 남은 거리를 정확히 알려주는 거예요. 위성신호를 빠르고 정확하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죠.

위파인드 허드백 작동 모습. /케이앤씨텍

시중의 위치 추적 기기 대부분이 미국 위성 시스템인 GPS의 정보만 수신하는데요. 러시아에서 운용하는 글로나스, 유럽연합(EU)이 운용하는 갈릴레오 위성항법도 있습니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세 종류를 모두 활용하기로 했어요. 덕분에 위치 정확도가 세 배 정도 높아졌죠.”

시제품 테스트에서 중점을 둔 건 내열성이다. “햇빛을 직격탄으로 받는 차 유리창 쪽에 부착하는 기기니까 고온에 강해야 해요. 반도체 부품을 많이 다뤄봐서 그 필요성을 잘 알고 있었죠. 섭씨 80도에서도 고장 나지 않고 작동될 때까지 수십 번의 테스트를 거쳤어요. 차량 앞부분에 부착하는 다른 기기들은 기온이 높은 여름에 고장이 잦은데요. 저희 제품은 작년 여름에 수리 요청이 단 한 건도 없었죠.”

작동하는 모습. /케이앤씨텍

국산 부품만 사용했다. “제품에 제 고집이 들어갔어요. 모든 반도체 부품이 국내 생산이죠. 지금까지 반도체 기술자로 활동하며 느낀 바, 중국산 부품을 쓰면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더군요. 제조공정을 직접 보고 검증할 수 있는 우리나라 업체를 고수했습니다. 10년 전부터 여러 중국 업체들이 협업 요청을 보냈지만 모두 거절했죠.

부품 제조를 중국 업체에 맡기면 한국 업체와 진행했을 때보다 50% 저렴해요. 이 때문에 ‘생산 단가를 어떻게 맞추냐’는 만류도 많이 들었죠. 하지만 제품 가격을 조금 높이고 마진을 줄일지언정 품질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장수 비결은 ‘고집’

속도제한구역 표시들. /케이앤씨텍

2021년 2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 위파인드 허드백을 처음 출시했다. “운전자가 보기 편한 위치에 부착하면 됩니다. 보통 운전자 앞 유리창에 정보가 비치게끔 하죠. 단속 구간까지 남은 거리와 속도를 실시간으로 알려줘요. 전원 케이블을 시거잭에 꽂아두면 항시 작동됩니다.”

열과 성을 다한 결실은 달콤했다. “3주 동안 828명에게 6500만원 가량을 펀딩 받았어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숫자였죠. 작년에는 300여 곳의 정비소와 각종 오픈마켓에 제품을 선보였어요. 정확도가 높고 잔고장이 전혀 없다는 게 주된 평입니다. 성원에 힘입어 작년 12월 크라우드 펀딩을 다시 열었는데 926명이 참여했어요. 좋은 후기들을 보고 샀는데 역시 믿을만하다는 반응을 보니 가슴이 떨리더군요.”

칠순이 목전이다. 노후를 즐길 시기지만 아직 회사 운영에 열정적이다. “하드웨어에 바탕을 둔 산업이 저물고 있어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계속 아이디어를 내고 있습니다. 동고동락한 지 15년 넘은 직원도 있어요. 난항 속에서도 제 고집을 묵묵히 지켜준 게 고마울 따름이죠. 이들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함께 가는 게 목표입니다.”

/장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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