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웜 기반 폐스티로폼 분해 및 비료, 사료 개발 솔루션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물과 음식 없이도 수십 년 버티는 곰벌레의 생명력이 세상에 밝혀지자 많은 과학자들이 작은 생명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 해결의 열쇠가 미물(微物)의 생태 메커니즘에 있을 수도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주식회사 엠씨이의 박종욱 대표(35)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미물 ‘밀웜’에 주목했다. 밀웜의 스티로폼 분해 능력에 업사이클링이라는 방법론을 적용해 친환경적이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박 대표를 만나 미물의 가치에 대해서 들었다.
◇밀웜의 가능성에 주목한 스타트업
(왼쪽부터) 밀웜이 스티로폼을 갉아먹은 흔적, 밀웜 분변으로 만든 휴믹산. /엠씨이
주신회사 엠씨이는 산업 곤충으로 알려진 밀웜을 활용해 폐스티로폼을 분해하고 밀웜 기반 비료와 사료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밀웜은 스티로폼 등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엠씨이는 밀웜의 스티로폼 분해 효율을 높여주는 피드블록을 개발해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밀웜 손실률을 97% 낮추고, 스티로폼 분해율은 45% 높였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스티로폼을 분해하는 대안을 만든 것이다.
그 다음 단에선 농축산업용 자원을 생산한다. 사육 과정에서 발생한 밀웜 분변을 가공해 스마트팜 비료인 휴믹산을 만든다. 성장한 밀웜은 동물 사료의 원료로 활용된다. 밀웜의 생애주기를 영리하게 활용한 비즈니스로 각계각층의 주목을 받았다. 동남아시아 진출을 앞두고 있다.
◇밀웜이 스티로폼을 먹는다고?
호기심이 많다. 돌다리가 있으면 두드려보기 전에 건너는 타입이다. 행정학 전공 후 행정고시 1차까지 합격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수험 생활 중 돌연 게임회사에 입사했다가 부모님에게 걸려 집에 소환됐다. 2016년엔 서울 유명 대학의 로스쿨에 진학했다가 이내 자퇴했다. 안정적인 자리보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기술에 흥미를 느껴 변리사 사무실에 입사했다. 기술 명세서 만드는 법을 배우고 직접 특허도 만들어 봤다.
- 다이내믹한 20대를 보냈네요. 창업 계기가 궁금해요.
“아버지가 지역환경건설공학과 교수입니다. 당시 아버지가 하천에 쌓인 폐기물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요. 함께 고민하다가 밀웜을 활용해보기로 했어요. 2015년경부터 밀웜이 스티로폼을 먹는다는 사실이 알려졌거든요. 아버지를 돕기 위해서 시작한 일인데 점점 이 아이템에 매료됐습니다.”
- 아이템을 사업화 하는 건 결이 다른 이야기이지 않나요.
“2019년경 밀웜으로 스티로폼을 분해하는 기술을 구상했어요. 북경대나 스탠퍼드 등 명문대에서 관련 연구가 진행됐지만 아직 상업화한 사례는 없었거든요. 밀웜이 스티로폼을 잘 먹도록 하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당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친한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관련 기술을 개발했어요. 그리고 ‘아프리카 창업 아이디어’라는 공모전에 지원했어요. 본선에 진출했지만 수상까지는 못했지만요.”
- 보통 수상해야 창업으로 이어지지 않나요.
“그 과정에서 더 큰 걸 얻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유엔식량기구에 자문을 구했는데요. 자문 내용을 토대로 ‘지속가능한 K 농업 아이디어’ 대회에 출전했다가 최우수상(장관상)을 탔거든요. 이 일을 계기로 우리가 개발한 기술에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체계화하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석탄 캐지 않고 휴믹산 만드는 법
축산업은 크게 세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번째는 잘 먹이는 것, 두번째는 잘 배설하게 하는 것, 세번째는 그렇게 성장한 개체를 잘 가공하는 것이다. 축산업의 기초방정식에 밀웜과 스티로폼이라는 변수를 대입했다. 스티로폼을 먹고 자란 밀웜의 분변으로 비료를 만들고, 성장한 밀웜을 가공해서 사료로 만드는 모델을 구상했다. 스티로폼은 경질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스타이렌이다. 즉, 밀웜이 스티로폼을 먹는 과정 자체가 플라스틱 생분해인 셈이다. 이를 토대로 탄소배출권을 만들 수 있다.
- 아이템이 다소 생소하고 어렵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저희는 폐스티로폼으로 농업용 비료를 만듭니다. 그게 핵심 기술이죠. 농업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비료는 질소 화학비료인데요. 질소 화학비료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질소를 고정하는 과정에서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를 대거 방출하거든요. 그 대안으로 나온 게 휴믹산이라는 비료입니다. 석탄에서 유래한 고분자 화합물로, 일종의 식물 성장 호르몬입니다. 서구에서는 ‘블랙골드’라고 부르며 비싸게 거래되고 있죠. 휴믹산도 환경을 위한 온전한 대안은 아닙니다. 석탄을 캐야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저희는 밀웜을 매개로 밀웜의 분변을 석탄 기반 고분자 화합물처럼 활용합니다. 밀웜의 먹이인 플라스틱 속의 화합물을 업사이클링한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 밀웜 기반 비료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나요.
“토양 없이 배양액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양액재배 농가에서 비료로 사용합니다. 작년에 논산 딸기 농가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이제는 더 큰 규모로 납품하려 합니다. 1년 생산 가능량이 600톤 정도 되고, 기존의 휴믹산보다 가격경쟁력도 좋은 편이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료 사업만으로 매년 60억원의 매출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 스티로폼을 먹였는데, 밀웜 사료는 안전한가요.
“공인 결과를 얻기 위해 동물실험, 세포 실험 등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화학 호르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성 호르몬인 점을 감안해 유방암 세포 대상의 실험도 했어요. 안전성평가연구소와 실험 범위를 넓히는 중입니다. 실험으로 안정성을 확보한 동물 대상의 사료는 이미 판매 중입니다. 프리미엄 닭 사료를 출시했고, 대형 새우 양식장에서 시판 전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저희 밀웜은 사람이 먹어도 될 정도로 안전합니다. 심리적 장벽이 있어서 사람 대상의 식품은 만들진 않았지만 저는 저희 밀웜을 먹고 벌크업도 했어요.”
- 밀웜 사료는 상품 가치가 뛰어난가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비율을 ‘탄단지’라고 하죠. 사료의 탄단지 비율이 같아도 밀웜을 재료로 하면 15~25% 정도 잘 자랍니다. 흡수율이 좋거든요. 그래서 암환자 환자식으로 두루 활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식품으로 보편적으로 활용하기엔 심리적 장벽이 큽니다. 그래서 동물 사료 시장에 주목한 겁니다. 밀웜은 많은 동물들이 선호하는 식품이거든요. 기호성이 좋지만 비싸서 못 먹였던 밀웜을 보다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죠.”
- 이 비즈니스의 환경 효과가 궁금합니다.
“스티로폼 처리 효과가 가장 큽니다. 택배용 스티로폼은 재활용할 수 있지만 건축자재에 사용되는 난연 스티로폼은 재활용할 수 없어요. 일반 폐기물로 처리해야 하죠. 애물단지인 난연 스티로폼을 사용하면 비용을 절감하면서, 폐기물의 양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보통 1톤의 스티로폼을 태우면 13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요. 저희는 그 1톤을 먹이로 활용함으로써 이산화탄소 발생을 막으면서 비료, 사료 등의 자원을 만듭니다.”
◇인도네시아, 프랑스 정부도 주목
창업 초기, 한 유명 투자사 담당자로부터 “이 사업은 안되니까 접어라”란 말을 들었다. 망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라는 부연 설명도 따라왔다. 단 몇 년 만에 엠씨이는 각계각층의 관심을 받는 스타트업으로 도약했다. 2023년 대한민국 중소벤처기업 지속가능부문 대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 3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우승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농식품부가 선정한 14개 혁신기업에 선정돼 큰 주목을 받았다. 다양한 기업의 러브콜을 받아 유명 식품기업과 협업 방안을 논의 중이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에도 뛰어들 구상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얼마전 인도네시아 환경임업부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희 시스템에 관심을 보이면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매월 정기회의를 통해 접점을 모색하고 있어요. 저희 아이템은 개발도상국에 적용하기 좋습니다. 현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처리하면서 농사용 비료를 생산할 수 있으니까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를 시작으로 해외 사업을 하려 해요. 유럽이나 북미 같은 선진국에서도 큰 관심을 보입니다. 올 여름 유럽 전시회를 돌면서 저희 기술을 제대로 알리려 해요. 이제 본격적으로 스케일업 할 차례입니다.”
- 엠씨이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인류를 위한 선순환을 만들고 싶어요. 지구와 인류는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로 인한 악순환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그 고리를 끊어내서 후대에게 더 나은 땅을 물려주는데 기여하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팀원끼리 하는 농담이 있어요. 사명인 엠씨이(MCE)는 사실 Make Clean Earth, Mealworn Clean Earth의 줄임말이라고요. 지구를 위한 일을 하면서 잘 살고 싶은 게 저희 비전입니다.”
- 창업 소회가 궁금합니다.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제가 잘나봤자 얼마나 잘났겠냐고요. 저보다 잘난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아요. 저는 하루살이에 불과합니다. 다만 하루살이도 로켓에 타면 달까지 갈 수 있어요. 뛰어난 사람을 주변에 두면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엠씨이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연구인력이에요. 4분은 20년 이상 연구에 종사한 분이죠. 나머지 분들도 수의사, 한의사, 교수 등 우수한 인력이에요. 귀중한 엔진이죠. 지금 저는 로켓에 탑승할 준비가 된 하루살이지만 나중에는 다른 하루살이를 태워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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