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안 김변삼 대표의 창업 노트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엄마 손은 약손’. 누구나 한 번쯤 그 효험을 봤을 것이다. 실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따뜻한 손이 배를 왔다 갔다 하고 나면, 체기가 내려가거나 방귀가 나오면서 묵은 변을 보기도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직접 배를 마사지하다 보면 새삼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피어오른다. 몇 분 만에 금세 손이 저릿저릿해지기 때문이다.
복부 마사지에 인생을 건 이가 있다. 쉬안 김변삼 대표(54)는 6년 전 건강검진에서 다발성 용종을 발견하면서 창업을 결심했다. 30여 년간 가전제품 개발 분야에 종사했던 경력을 살려 복부 지압 관리기를 개발했다. 장 운동의 방향대로 순차 회전하는 지압 원리를 내용으로 특허도 받았다. 김 대표를 만나 가전제품 개발기를 들었다.
◇찜질에 지압까지 되는 복부 관리기
쉬안(SHEAN)의 장운동 복부 지압 관리기는 찜질과 지압을 함께 할 수 있는 복부 관리기기다. 압력을 가하는 6개의 지압봉이 원형으로 고르게 배치돼 있다. 상복부와 배꼽 주변, 하복부를 고르게 마사지할 수 있다. 온열 찜질 기능은 45~55℃ 범위에서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한 번에 약 15분간 작동한다. 복부에 벨트를 채워서 착용하는 방식으로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복부 형태나 컨디션에 따라 지압봉을 교체해가며 사용할 수 있다. 온열 찜질을 위주로 사용할 때는 2.5㎝ 길이의 1단계 지압봉을 사용하고, 강력한 지압을 원할 땐 6.6㎝ 길이의 라운드 지압봉을 사용하는 식이다. 온라인몰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뱃일하던 소년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일단 ‘섬’이라 답한다. 김 대표의 고향은 제주특별자치도 추자도다. “아버지께서 조기를 잡아 파는 일을 하셨어요. 학창 시절에 시간이 날 때마다 바닷가에서 그물 정리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일주일간 고기잡이배를 탄 적도 있었죠. 같이 탄 형은 뱃멀미로 고생하는 동안 저는 선원 한 명의 몫을 거뜬히 해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절 유독 예뻐하셨죠.”
아버지의 꿈은 아들과 함께 배를 타는 게 아니었다. “뱃일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아셨습니다. 자식들만큼은 기술을 배우거나 넥타이를 매고 일하길 바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수원과학대 기계설계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실습을 위해 갔던 경기 부천의 협립산업이라는 회사에 자리를 잡았다. “식기 건조기, 커피메이커, 스탠드를 만드는 곳이었죠. 생산과에서 생산과 품질관리를 맡았습니다. 일은 적성에 잘 맞았고, 잘 했어요. 삼파장 스탠드의 원가 절감 미션이 주어진 적이 있어요. 몇 날 며칠을 고민해 목 부분에 있는 6~7개의 부품을 2개의 부품으로 대체하는 방법을 보고드렸고 결국 특허까지 등록했죠.”
꼬박 30년간 일에 미쳐있었다. “협립산업에 이어 청소기 제조업체, 음식물 처리기 제조업체 등에서 가전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2017년 소화가 잘 안돼 병원을 찾았는데요. 다발성 용종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대장에서 7~8개 용종이 발견됐는데요. 너무 많아 한 번에 제거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2주 뒤 수술대에 누웠다. “2~3개의 용종만 먼저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이더군요. 그간 막연하게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더 이상 미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운동 시켜주는 복부 지압 관리기 개발 노트
1. 보물상자에서 꺼낸 아이디어
2017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 아이템을 고민했다. “가전제품 분야의 엔지니어들이라면 누구나 ‘나만의 제품’을 꿈꿔봤을 거예요. 저도 30년간 일하면서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아이디어 꾸러미가 있었는데요. 그중에서 제일 먼저 실현하고 싶은 제품은 복부 관리기였습니다. 소화가 잘 안되고 체할 때 배에 찜질팩을 올려두면 진정이 되던 것에서 떠올린 아이디어였죠. 누워있지 않아도 찜질할 수 있는 챔피언 벨트 같은 형태를 고안했습니다.”
아이디어에 확신이 있더라도 밑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림잡아도 금형(대량생산을 위한 금속 틀) 제작에만 2억원이 필요했습니다.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술보증기금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죠. 여기에 ‘50대 시니어 창업지원금’에도 선정돼 총 2억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019년 7월 쉬안 법인을 설립했죠.”
2. 차별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금형 제작에 앞서 도면을 그려보니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찜질만으로는 부족했어요. 차별화가 필요했죠. 소화 기관에 대한 한의학 자료를 찾아보니 ‘안복행법(按腹行法)’이라는 지압법이 있더군요. 소화 기능을 높여주고 생리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마사지법이었죠. 안복행법에서 힌트를 얻어 지압 기능을 더하기로 했습니다.”
지압 위치를 정하기 위해 KMCRIC(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가 밝힌 표준 경혈 위치를 참고했다. “사람의 배에서 상복부는 소화기관, 하복부는 비뇨기 계통과 연결돼 있습니다. 배 전체를 덮는 육각형을 그렸다고 가정했을 때 꼭짓점에 해당하는 곳에 지압봉을 위치시켰습니다. 두 손으로 복부를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꾹꾹 지압하는 형태라고 보면 됩니다.”
3. 출시 후에도 두 귀는 쫑긋
다음 차례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 금형 제작이다. “지인 찬스를 썼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금형 제작소 사장님에게 계약금 형식으로 50%를 먼저 지급하고 금형 제작에 들어갔어요. 금형 업계에서 드문 ‘외상’을 한 셈이죠. 그 덕분에 2020년 6월 쉬안의 첫 제품인 장운동 복부 관리기를 출시할 수 있었습니다.”
제품 출시 직후 발로 뛰어 다니며 마케팅을 했다. “헬스케어·재활·복지 관련 박람회와 전시회에 닥치는 대로 참가했습니다.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았어요.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앞으로 어떻게 홍보해야 할지 막막해졌습니다.”
그해 가을 한 지인을 만났을 때 여느 때처럼 복부 관리기를 자랑스레 소개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 가지 조언을 하더군요. 소비자 입장에서 가성비 좋다고 생각하려면 지압봉 종류가 다양해야 한다고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2000만원을 더 투자해 탈착식 지압봉 종류를 기존 2개에서 4개로 늘렸습니다. 기본 장착된 지압봉을 초함해 총 5가지 모드를 구성했죠. 개선된 관리기를 2021년 초 재출시했습니다. 변화를 준 게 묘수였습니다. 그연령층이 높을수록 새로 추가한 강한 지압봉을 더 선호하더군요. 효과가 있었던 겁니다.”
4.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근거 마련
한의학에 근거해 복부 지압 관리기를 만들었지만 소비자를 설득하는 힘이 부족했다. 근거가 더 필요했다. “2021년부터 상지대학교 한방병원에서 인체 적용시험을 했습니다. 13명을 대상으로 주 3회 이상 사용하도록 했더니 4주 뒤 변비 증상에 대한 불편감이 줄어들었어요. 반대로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3.84㎎/dL(데시리터당 밀리그램) 늘었습니다. 좋은 콜레스테롤은 혈관에 쌓인 찌꺼기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죠.”
그 외 내장지방·피하지방이 각각 약 7% 감소하는 등 유의미한 효과를 확인했다. “숫자보다 더 반가웠던 건 사용자들의 생생한 후기였습니다. 1㎏도 되지 않는 무게 덕분에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할 때도 부담 없이 배에 채워 쓸 수 있었다는 평이 있었어요. 활동량이 적은 어르신들이 그간 변비로 고생하다가 복부 마사지를 받은 뒤부터 화장실을 잘 가게 됐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뿌듯하던지요.”
◇일과 건강을 모두 챙기는 법
쉬안 장운동 복부 관리기는 출시 이후 지금까지 약 1만대 판매됐다. 온라인몰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처음 다발성 용종을 발견한 이후 1년에 한 번씩 수술을 받으면서 용종을 제거해 나갔어요. 3년 전 모든 용종 제거가 끝났죠. 한 번 용종에 시달리고 나니 변비나 더부룩함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유독 눈에 들어오더군요. 소화 불편감이 있지만 병원 가기는 애매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개발한 게 장운동 복부 관리기였죠.”
신제품 개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복부 관리기로 자신감도 얻었겠다, 다음으로는 관절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2년 전부터 단순히 몸에 얹어두고 쓰는 관절 찜질팩을 눈여겨봤어요. 복부관리기처럼 벨크로를 이용해 몸에 붙여두고 쓸 수 있다면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발 1년 만인 2022년 무릎·어깨·팔꿈치 등 관절 부위에 쓸 수 있는 마사지기를 출시했죠. 앞으로도 눈 앞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유심히 살펴볼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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