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8억 부도 후 쫓기듯 집 두 채 팔아, 나를 살린 편백나무

더 비비드 2024. 7. 18. 09:51
편백나무 생활용품 브랜드 우드랑모닉 김영대 대표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김영대 두강 대표가 '우드랑모닉'을 들고 웃어 보이고 있다. 우드랑모닉은 두강의 베스트셀러다. /더비비드

심신이 치칠 때면 숲이 생각난다. 울창한 숲길을 걷다 보면 몸과 마음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다. 편백나무에서 나온 피톤치드가 스트레스 유발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혈중 농도를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두강의 김영대 대표(55) 역시 편백나무에서 위안을 얻었다.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를 맞아 인생 최악의 위기를 겪은 그는 편백나무를 활용해 재기에 성공했다. 김 대표를 만나 실패 극복담을 들었다.

◇만능 소재 편백나무

편백나무 숲. 특유의 피톤치드향이 나와 산림욕 효과가 좋다. /조선DB

편백나무는 만능 소재다. 천연 항균물질인 피톤치드를 함유하고 있어 살균력이 뛰어나고 욕조나 도마의 재료로 사용해도 될만큼 내수성이 우수하다. 물이 닿으면 고유의 청량한 향이 진하게 퍼져 악취를 없앨 수 있다. 비염이나 아토피 완화에도 좋다.

두강은 편백나무 생활용품 브랜드 ‘우드랑모닉’의 운영사다. 편백나무로 도마, 신발 살균기, 가습기 거치대, 천연가습기 등 30가지 이상의 제품을 만들어서 유통한다. 일본에서 수입한 고급 편백나무를 직접 손질한 후 30년 경력의 목수들이 가공한다. 화학 처리나 인위적인 코팅은 하지 않는다.

우드랑모닉 편백나무 가습기. 김영대 대표는 편백나무를 주 소재로 다양한 목공 제품을 만든다. /두강

대표 상품은 편백나무 천연가습기다. 필터 교환이나 전기가 필요 없는 자연 기화식 가습기로 습도가 높으면 수분을 흡수하고 건조하면 배출하는 특성으로 최적의 습도를 유지한다. 본체에 편백나무 큐브를 넣어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건조함을 느낄 때 가습기 통째로 물을 흠뻑 적시거나 분무기로 물을 분사하면 된다.

바닥에 닿는 면적이 넓은 직사각형의 기본형과 좁은 공간에 배치할 수 있는 세로형 두 가지다. 편백나무 큐브는 2~5개월 주기로 교체하면 된다. 임산부와 육아맘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출시 1년 만에 1만3000개 팔렸다.

◇승승장구할 때 갑자기 찾아온 위기

김영대 대표는 젊은 시절 창업했던 회사가 부도를 맞아 빚더미에 앉아야 했다. /더비비드

김 대표는 야망이 넘지는 사회인이었다. 첫 직장에서 입사 1년 만에 영업 팀장을 달았고, 33살 젊은 나이에 첫 창업을 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1차 벤더사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 욕심이 유별났어요. 퇴근 시간도 없이 일했죠. 빠르게 팀장을 달았더니 세상이 제 것 같았습니다. 입사 4년차였던 33살에 좋은 거래선을 들고 회사를 차렸어요. 월 매출 4억원 이상을 낼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죠.”

주요 공급처였던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해외로 이전하면서 첫 사업을 접어야 했다. 두번째 사업 아이템으로 자동차 부품을 낙점했다. “자동차 루프랙, 도장 등을 납품하는 2차 벤더사를 7년 운영했습니다. 잘 나갈 땐 월 매출 18억원을 기록하기도 했어요. 다만 매출 대비 수익이 크지 않아 아쉬웠어요. 설상가상 협력사가 줄도산하면서 돈줄이 끊어졌습니다. 저희도 18억원 규모의 부도를 맞았어요.”

빚을 감당하기 위해 두 번의 사업으로 열심히 쌓은 자산을 처분해야 했다. “당시 양천구에 집이 3채였는데 그 중 2채를 팔아야 했습니다. 아내에게 면목이 없었죠. 심리적인 타격도 입었습니다. 저는 항상 잘 될 줄 알았는데 앞이 캄캄했어요.”

망연자실할 겨를도 없었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도를 맞고 허덕이고 있을 때 선배가 자기 회사로 불렀습니다. 편백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나무를 가공해서 대기업에 납품하는 회사였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편백나무를 접했는데요. 탈취 효과가 좋아서 그 매력에 푹 빠졌어요. 편백나무로 아이디어 제품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어요.”

◇편백나무 천연가습기 개발노트

우드랑모닉 편백나무 가습기 디자인 노트. /두강

편백나무 강아지 집, 캠핑 싱크대 등을 만들어서 팔며 여러 시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최초의 히트 상품 ‘편백나무 가습기 거치대’가 탄생했다. “편백나무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법을 구상하다가 가습기가 눈에 들어왔어요. 가습기 수증기가 편백나무를 거치면 피톤치드를 보다 쉽게 호흡할 수 있겠더라고요. 바로 제품을 만들어 팔았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베이비페어에서 호응을 얻어 박람회에서만 200~300개가 팔렸어요. 지금까지 7000개 이상 나갔습니다.”

1. 기존 제품의 아쉬움 보완해서 신제품 설계

우드랑모닉 편백나무 가습기에 들어가는 편백나무 칩. 편백나무를 정육면체 조각으로 만들었다. /더비비드

가습기 거치대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가습기와 편백나무를 조합한 차기작을 개발하기로 했다. 시장조사 과정에서 편백나무 천연가습기를 발견했다. “아이 키우는 집에서 주로 가습기를 사용하잖아요. 하지만 초음파식 가습기는 세균 발생의 우려가 있고 가열식 가습기는 화상 위험이 있습니다. 천연가습기는 기화식인데다 화학 물질의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기존 제품의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공간을 많이 차지했거든요.”

좁은 곳에도 둘 수 있도록 설계했다. “직접 디자인했어요.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죠. 공간 차지는 적되, 편백나무 큐브를 충분히 담을 수 있도록 세로로 긴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바닥면 기준으로 가로, 세로 155mm로 침대 옆 간이 테이블이나 아이들 방에 둘 수 있는 크기입니다. 크기 못지 않게 디자인에도 신경 썼어요. 실내 공간의 미관을 해쳐선 안되니까요. 스탠드 같은 모양으로 어디에 둬도 조화롭고 예쁩니다.”

피톤치드의 향을 극대화하기 ‘큐브’ 형태의 알갱이를 고안했다. “피톤치드 틀에 정육면체 형태의 편백나무 큐브 알갱이 2000~3000개를 넣어서 사용하는 형태입니다. 피톤치드는 물에 닿으면 향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물에 닿는 면적을 최대한 넓혔습니다. 편백 큐브를 물에 적신 후 털어서 넣거나 분무기로 물을 분사하면 됩니다.”

2. 전문 목수의 손길 거쳐 100% 나무로 제작

두강 소속 목수들이 편백나무를 깎아 제품을 만드는 모습. /두강

편백나무 본연의 기능에 집중한 제품인 만큼 좋은 원재료를 고르는데 중점을 뒀다. “편백나무 전문 업체로부터 일본산 편백나무를 수입해서 사용합니다. 우리나라 편백나무는 품질이 아쉽거든요. 저희 거래처의 편백나무는 향이 좋고 단단하며 표면 마무리가 잘 돼 있어요. 통나무 형태로 원재료를 수급한 후 절단과 가공은 저희가 합니다.”

총 5명의 목수가 손수 제품을 제작한다. 그 중 하나가 김 대표다. “30년 경력의 목수를 영입했습니다. 몸값이 비싸고 장인 고유의 아집이 강한 분인데 어쩔 수 없었어요. 이 일에 사활을 걸었으니까요. 제 경우 독학으로 목공을 배웠습니다. 낮에 어깨 너머 배운 것들을 밤에 시도하면서 하나하나 익혔어요. 이미 만들어진 걸 분해해서 재조립하는 식으로 공부했죠. 지금은 웬만한 제품은 스스로 만들 수 있습니다.”

김영대 두강 대표는 "편백나무 본연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 화학 처리나 코팅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더비비드

천연가습기라는 취지에 맞게 화학 처리나 코팅은 하지 않았다. “나무로 된 못인 목심으로 조립합니다. 100% 나무로만 만들었어요. 자투리 목재나 집성목이 아닌 질 좋은 통원목만을 선별해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테스트를 통해 탈취력과 살균 효과를 확인했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의 테스트를 통해 탈취 효과를 검증했습니다. 대장균과 황색포도상구균 99.9% 감소도 확인했죠.”

3. 신발 살균기, 도마 등으로 라인업 확대

우드랑모닉 편백나무 도마. 나무결이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두강

2023년 3월 편백나무 천연가습기를 출시했다. 한번에 편백 큐브 1kg이 들어간다. 편백 큐브 1kg당 680ml 가량의 물을 흡수한다.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었습니다. 여름에는 주변의 습기를 끌어당기는 제습 효과를, 겨울에는 가습 효과를 내서 쓰임새가 좋은 데다 향이 좋다고 소문이 났나 봅니다. 집의 가구와 잘 어울리는 세련된 외관도 인기에 한몫했습니다”

요즘은 라인업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편백나무 신발 살균기를 개발했습니다. 퇴근 후 신발 안에 넣어 두면 고약한 냄새를 잡아주죠. 살균 효과도 있고요. 나무 도마도 출시했습니다. 사실 편백나무 도마가 아주 새로운 제품은 아닌데요. 저희 제품은 가격 경쟁력이 좋습니다. 시중 제품의 경우 기본형 도마가 3만원을 훌쩍 넘는데요. 우드랑모닉 나무 도마는 걸개나 받침대 같은 부가 기능을 갖추고도 가격이 3만원 안팎입니다.”

◇돈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돈을 만듭니다

김 대표는 기화형 가습기에 천연가습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가습기를 비롯해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 중이다. /더비비드

기화형 가습기에 천연가습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가습기를 비롯해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 중이다. “하이브리드 가습기, 발 지압기 출시를 앞두고 있어요. 신제품을 구상할 때 어떤 기준을 두는 편은 아닙니다. 편백나무를 적용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이 도전 대상이죠. 홈쇼핑 판매도 논의 중입니다. 목표로 하는 바들을 모두 이뤄서 월 2~3억원의 매출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하려 합니다.”

그에게 부도는 뼈아픈 고통이자 성찰의 시간이었다. “18억원이란 돈 덕에 경솔했던 지난날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냉혹함을 알려주는 책과 같은 시간이었죠. 지금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려 하지 않아요. 좋은 물건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업을 할 때 사람이 가장 귀하단 걸 알았어요. 잘 나갈 때의 저는 독불장군이었는데요. 결국 사업은 사람들과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더군요. 돈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돈을 거느리게끔 해야 합니다. 지금의 저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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