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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일 잘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시간 관리 습관"

업무 관리 인터페이스 개발한 오프라이트 홍남호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업무 관리 인터페이스 개발한 오프라이트 홍남호 대표. /더비비드

요즘 문구매대에 가면 2024년을 앞두고 각양각색의 다이어리가 깔렸다. 하지만 애써 고른 다이어리는 수개월, 아니 수 주내 방구석 한쪽을 차지하게 된다. 다이어트, 영어 공부, 금연 등 거창했던 신년 목표가 쉬이 잊혀지듯 우리는 다이어리의 존재도 쉽게 잊고 만다. 그러면서도 매년 습관처럼 홀린 듯 다이어리를 사게 된다.

오프라이트 홍남호 대표(33)는 이를 ‘불안’ 때문이라 설명한다. 올해는 작년과(또는 ‘내년은 올해와’) 달라야 한다는 불안함이 다이어리를 사라고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는 불안을 없애는 방법으로 ‘선택과 집중’을 제안했다. 해야 할 일들을 우선순위에 맞춰 나열한 뒤, 당장 할 일을 제외하곤 신경을 꺼버리는 방법이다. 이를 오프라이트(off light)라고 불렀다. 홍 대표를 만나 그의 온앤오프를 들었다.

◇오춘기 극복기

대학시절 친구들과 벚꽃을 보며 찍은 기념 사진. /홍남호 대표 제공

2009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성인이 된 후 뒤늦은 사춘기가 왔어요. 결석을 밥 먹듯 하다 2학년 2학기 땐 학사경고까지 받았습니다. 군 제대 후 ‘서비스 디자인’이란 강의를 들으면서 정신을 차렸어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유용하게 바꿔주는 앱·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어보는 수업이었는데요. 누군가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학구열이 솟아올랐습니다. IT·서비스 관련 산업으로 진로를 정한 것도 이때였죠.”

그동안 관심 없던 공모전이나 대외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케이큐브벤처스(현 카카오벤처스)에서 6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했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각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곳이었어요. 일주일에 30여 기업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자료를 만들어 매주 월요일마다 보고했습니다. 며칠간 머리를 싸매고 이해한 내용을 몇 분 만에 분석·평가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난 한참 멀었구나 싶었어요. 언젠가 내 능력을 충분히 키워 다시 돌아오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던 대학생을 위한 공모전·대외활동 정보 플랫폼 ‘캠퍼스 콤파스(campus compass)’ 웹 화면. /홍남호 대표 제공

원하는 서비스를 직접 만들기 위해 개발을 배웠다. “마침 교내에서 ‘멋쟁이 사자처럼’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 참가자를 모집하더군요. 5~6명이 팀을 이뤄 개발 강의를 듣고 실전으로 앱도 만들었어요. 대학생을 위한 공모전·대외활동 정보 플랫폼이었는데요. 이걸 사업화하고 싶었는데 팀원들이 취업을 하면서 흐지부지됐습니다. 다음 창업을 함께할 동료를 찾기 위해 저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2016년 3월 카카오모빌리티 데이터 담당자로 입사했다. “주차 파트에서 정산 하드웨어 인프라 자료를 조사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택시를 호출하면 어떤 택시부터 순차적으로 배차할지 ‘배차 로직’을 최적화하거나, 콜이 몰리면 가격이 올라가는 ‘가격 변동 로직’을 짜서 매출을 극대화하는 일도 했죠.”

◇카카오벤처스로의 복귀

카카오벤처스 재직시절 동료들과 함께 웃고 있는 홍 대표. /홍남호 대표 제공

입사 1년을 막 넘겼을 무렵 카카오벤처스 정신아 대표에게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주니어급의 심사역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어요. 너무 감사했지만 조심스럽게 거절했습니다. 이전에 인턴을 하며 느낀 부족함을 아직 채우지 못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정 대표님은 ‘그 부족함을 어떻게 채우고 싶은지’ 되물었고, 전 ‘실전 경험을 더 쌓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투자한 회사에 파견해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하셨어요. 더 이상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2017년 8월 출근지를 옮겼다. 심사역으로서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직무였다.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 ‘라프텔’ 투자 건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애니메이션 마니아로서 주요 OTT 플랫폼에 올라와 있는 작품은 이미 진부하다 느끼고 있었어요. 이번 분기 신작을 보려면 불법으로 다운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라프텔’은 이 문제를 합법적으로 풀었다는 점이 강점이었죠. 결국 6개월 만에 대형 전자책 플랫폼사에서 라프텔을 인수해 몇 배의 수익을 봤습니다.”

카카오벤처스 재직시절 홍 대표(왼쪽). /홍남호 대표 제공

성과를 낸 날을 제외하면 늘 미간을 한껏 찌푸리곤 했다. 가장 성가셨던 문제는 주주명부였다. “VC(벤처캐피탈)에서 스타트업에 주주명부 최신판을 요청하면, 스타트업 대표는 엑셀파일을 직접 수정해 인쇄하고 법인 인감을 찍은 스캔본을 PDF로 변환해 보냅니다. VC담당자는 이 PDF파일을 열고 그 값을 다시 자신의 엑셀 파일에 입력하죠. 이런 비효율적인 문제를 소프트웨어로 해결하고 싶었어요.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2019년 9월 스타트업 금융 업무를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 쿼타북을 개발했다. 주주총회·스톡옵션 기능을 더하면서 토스·당근·오늘의집 등 대형 고객사와 계약을 맺었다. “내심 아쉬움을 느끼던 부분은 ‘매일 쓰는 앱’이 아니란 점이었어요. 주총이 끝나면 3~4개월간 접속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죠. 유저들이 매일 쓰는 서비스를 만들겠단 포부를 안고 정든 쿼타북에 이별을 고했죠.”

◇불을 끄면 더 밝아진다

오프라이트 창업 전 동료들과 인터뷰하며 아이디어를 얻고 있는 홍 대표(가운데). /홍남호 대표 제공

2023년 2월 뜻이 맞는 동료들과 새 팀을 꾸렸다. 총 4명이었다. “나와 내 동료들이 매일 쓰는 업무 툴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떤 툴을 만들지 더 뾰족한 콘셉트를 잡기 위해 2개월간 160여 명의 사람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전 직장 동료부터 스타트업 CEO·직원, 학교 후배 등을 만나 ‘어떻게 일하는지’ 한 명 한 명의 타임라인을 쫓아갔죠.”

이메일 외에도 슬랙(slack), 노션(notion) 등 업무를 도와주는 툴은 많아졌다. “그게 문제였어요. 업무 요청이 다양한 툴에 흩어져 있어 매일 순회공연을 해야 했죠.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인데요. 산재된 일 속에선 익숙하거나 빨리 끝낼 수 있는 일부터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하려다 보면 시간이 지체되기도 하죠. 당장 집중해야 할 일 외엔 잠시 관심을 거둘 필요가 있어요. 여러 가지 업무·생각을 전구에 비유해 ‘오프라이트(off light·불을 끄다)’란 콘셉트를 잡았습니다.”

제12회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 발표하는 홍 대표. 오프라이트는 이날 대상을 받았다. /홍남호 대표 제공

2023년 5월 4일 오프라이트 법인을 설립하고 서비스 개발에 착수했다. 주요 업무 툴인 구글 캘린더·메일, 슬랙, 노션과 연동해 업무 요청들을 실시간으로 한곳에 모을 수 있게 했다. 메일은 5분, 노션은 15분마다 업데이트된다. 슬랙은 연동하고 싶은 메시지에 클릭 몇번만 하면 즉시 오프라이트로 옮겨진다. 무작위로 나열된 업무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오늘 끝내야 할 일을 따로 드래그하면 ‘선택과 집중’을 통한 업무가 가능해진다. 바로 옆 캘린더에 일정 등록도 할 수 있다.

7월부터 4차례에 걸쳐 사용자 테스트를 했다. “몇몇 지인을 시작으로 베타 테스트를 했어요. 일을 하다가 뭔가 놓쳤다고 생각하면 그걸 생각하느라 불안해 집중이 흐트러지는데요. 일정·업무 내용을 우선순위에 맞춰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니 불안함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들었죠.”

오프라이트 사용 화면. 크게 3분할로 나눠지며, 최상단에는 목표(GOAL), 최하단에는 현재 수행중인 업무 내용이 떠 있다. /홍남호 대표 제공

정식 출시 전까지는 사용자 수를 제한하기로 했다. “아직 영업 준비도 다 안 됐는데 수백명의 손님을 받을 순 없죠. 지금은 시식단을 초청해 맛을 평가받고 피드백을 바탕으로 다듬어가는 단계입니다. 주 3일 이상 오프라이트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덕분에 빠르게 피드백을 받아 제품에 반영하고 있어요.”

오프라이트는 개발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아산나눔재단이 주관하는 제12회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그 가능성을 확인받았다. “덕분에 마루180(아산나눔재단의 창업보육센터)에서 첫 사무실을 꾸렸습니다. 동료 스타트업 CEO들과 교류의 장이 열려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에요. 초기 스타트업의 요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산나눔재단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평가하는 사람에서 평가받는 사람으로

VC심사역 출신인 홍 대표는 심사역 설득의 기술로 ‘진솔함’을 꼽았다. /더비비드

VC 심사역에서 스타트업 CEO가 됐다. 평가하는 사람에서 평가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심사역을 설득하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진부하지만 ‘진솔함’이 가장 큰 무기입니다. 좋은 모습 보여주겠다고 침묵으로 포장한 거짓말을 할 때가 있는데요. 심사역 입장에선 꼬치꼬치 캐묻게 됩니다. 오히려 단점, 약점을 모두 솔직하게 보여주면 있는 그대로 봐줍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요.”

오프라이트는 오는 12월 말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단순 업무 내용 외에 ‘Goal(목표)’를 띄워두는 기능과 현재 수행 중인 업무를 음악 재생 화면처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화면 등을 추가했습니다. 지금 제 오프라이트 화면에 띄워진 목표는 ‘3년 안에 유료 가입자 3만명을 달성해 ARR(연간반복매출) 160억원을 만든다’입니다. 그 아래엔 세부, 단기 목표들이 이어져 있죠. 오프라이트를 통해 오프라이트를 밝혀나갈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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