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장비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뮤비처럼 쓰리아이 정지욱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사진이 실물을 못 담네”
여행지에서 눈 앞에 펼쳐진 풍경, 가까운 사람들과의 행복한 순간. 우리는 추억의 순간을 생생하게 담고 싶어 사진을 찍는다. 안타깝게도 전문 장비 없이는 행복했던 순간이 제대로 담기지 않아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촬영한 사진을 확인한 후 아쉬운 마음에 흔히들 던지는 말 한마디에 꽂혀 창업을 결심한 이가 있다. 인공지능(AI) 영상 기술 기업 쓰리아이의 정지욱(45) 대표다. 정 대표는 스마트폰을 얹어 사용하는 영상 촬영 장비 ‘피보’를 개발했다. 그를 만나 제품 개발기를 들었다.
◇애플 스토어에 공식 입점한 마성의 영상 장비
피보는 ‘스마트팟’이라고 부르는 스마트폰 전용 영상 촬영 장비다. 외양은 스마트폰 거치대와 유사하다. 하지만 기능은 훨씬 다양하다. 피보에 스마트폰을 장착하고 블루투스로 연동하면 사람이나 동물의 움직임에 맞춰 카메라 초점이 좌우로 이동한다. 피보에 360도 회전 모터가 달려있어 피보와 함께 스마트폰이 움직이는 원리다. 강연자, 영상 회의를 자주 하는 직장인, 라이브커머스 진행자, 운동선수, 유튜버 등 움직임을 영상으로 담아야 하는 이라면 누구나 피보를 마치 개인 전담 카메라맨처럼 활용할 수 있다.
피보와 연동시킨 스마트폰에서 전용 앱을 실행시키면, 피사체를 알아서 추적한다. 타임랩스, 되감기, 파노라마 등 다양한 영상 효과도 사용할 수 있다. 사물 인식, 인물 추적 기능을 이용해 단체 안무 영상 등 움직임 중심의 영상물도 손쉽게 촬영할 수 있다. 제품은 배터리 지속 시간과 거치 가능 무게 등 물리적 사양에 따라 피보 팟 라이트·피보 팟·피보 맥스 3종류가 있다. 피보 팟 라이트와 피보 팟은 스마트폰 전용 제품이고, 피보 맥스는 전문가용으로 아직 국내에선 출시가 안 됐다.
피보는 출시와 동시에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미국의 유명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 첫선을 보인 덕이다. 쓰리아이의 2022년 매출은 190억원인데, 그중 70%(130억원)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피보 팟과 피보 팟 라이트 등 피보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1년 만에 30만대를 팔았다. 미국 유명 대형 마트인 월마트와 애플 스토어에 공식 판매 중이고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도 입점했다. 지난 3월 출시한 전문가급 ‘피보 맥스’는 세계 최대의 국제전자제품박람회인 CES 2023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삼성전자 연구원·대학교수 생활 후 창업
정 대표는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전자공학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취업을 먼저 택했다. 석사 졸업 후 2004년 삼성전자에 취업해 7년간 스마트폰 선행 개발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스마트폰이 막 출시되던 격동의 시기였어요. 전 ‘갤럭시S’ 개발에 참여했죠. 7년간 매일 밤늦게까지 제품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2011년, 대구 영진전문대학교에서 교수 제의를 받았다. “석사 공부를 할 때부터 마음 한켠에 후학 양성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운 좋게 바로 취업이 돼 잠시 접어 뒀지만, 기회가 생긴 이상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2년간 반도체전자과에서 조교수로 활동하며 제자를 육성했습니다.”
별난 이력도 있다. 2년간 수학학원을 운영했다. " 2014년부터 2년간 대구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했습니다. 교수 생활을 하다 보니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더라고요. 교육에 사업을 접목하니 ‘학원’이 떠올랐죠. 일 자체는 즐거웠어요. 그때 가르쳤던 제자들과 아직까지도 교류합니다. 그런데 아침형 인간인 저와 학원 강사의 삶은 안 맞더군요. 학원은 아이들이 하교할 때부터 시작이니까요.”
◇’누가 우리 제품을 쓸까’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대기업 연구원과 교수. 선망받는 커리어를 쌓았지만 더 이상 사업을 미룰 수 없었다. 2017년 1월, 공동창업자와 쓰리아이를 창업했다. “김켄 대표와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둘 다 공대 출신인 데다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 아이템에 관심이 많아 꾸준히 안부를 주고받던 사이였죠. 창업 당시 스마트폰 카메라의 사양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 화질이 너무 좋아져,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퇴보할 정도였죠. 누구나 한 손으로 고화질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세상이 됐잖아요. 스마트폰 카메라를 보다 다양한 영역에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영상 촬영 소프트웨어 개발에 들어갔다. 영상, AI, 사물 인식 분야에서만 국내 67건, 해외 81건의 기술 특허를 확보했다. “공간을 촬영해 이를 디지털 영상, 사진으로 구현하는 기술을 연구했습니다. 지도 소프트웨어의 ‘거리뷰’ 기능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사진이나 영상을 공간감 있게 구현하려면 촬영된 사진에서 왜곡된 부분을 잘 다듬어야 해요. 파노라마 사진처럼 사진을 여러장 찍어 이어 붙이는 기술도 있어야 하고요. 사업 초기에 사진을 균일하고 정교하게 연결해 내는 원천 기술을 연구해 60건 이상의 특허를 냈습니다.”
확보한 기술로 처음 두드린 시장은 ‘부동산’이었다. “’유브이알(YOUVR)’이라는 부동산 매물 촬영 웹 솔루션이었습니다. 당시 부동산 앱 이용이 활성화되던 때라 부동산 매물의 사진이나 영상을 중요시하기 시작했거든요. 공인중개사가 집 내부 사진을 찍어두면, 그 집에 안 가봐도 누구나 매물의 내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매물의 구조를 가상으로 구현했습니다. 그런데 성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타깃을 잘못 정했죠. 웹에 매물을 등록하는 부동산 사장님들의 연령대가 높아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았거든요. 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경쟁 업체들이 등장한 바람에 점유율 확보 경쟁에 실패했습니다. 이땐 돈이 떨어져 개인 대출까지 받아 가며 회사를 운영했었죠.”
실패를 맛봤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해외로 눈을 돌려 기회를 모색했다.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 철저한 시장 조사를 거쳤다. “당시 유튜브, 틱톡 같은 영상 콘텐츠 플랫폼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미국에서 먼저 영상 콘텐츠 시장이 커지고 있었죠. 촬영을 전담할 스태프가 없는 1인 콘텐츠 크리에이터, 움직임을 추적하며 촬영하는 운동선수, 강의 콘텐츠를 촬영할 강사 등을 겨냥한 영상 촬영 관련 장비를 개발해 보기로 했습니다.”
쓰리아이가 개발한 영상 소프트웨어에 적용된 기술 중 상품화하기 좋은 것을 찾아 나섰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오토 트래킹(인물·사물 추적)’ 기능이다. “다양한 영상과 사물 데이터로 알고리즘을 학습시켜, 카메라 렌즈가 실시간으로 영상 속의 사람을 추적하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적용하면 흥미로운 기기가 탄생할 것 같았어요. 스마트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피사체가 이리저리 움직여도 렌즈가 피사체를 계속 따라가며 촬영하는 거죠.” 현재 온라인몰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피사체를 잘 따라다니도록 거치대에 좌우 회전 모터를 달았다. 2018년 11월, 기기와 앱을 엮어 판매를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출시했는데요. 단일 제품으로 250만달러(한화 약 33억원)의 모금액을 달성했습니다. 스마트폰를 작은 거치대에 꽂는 것만으로 활용성이 무궁무진해진다는 점이 주효했습니다. 성과를 인정받아 350억원의 누적 투자금도 유치했습니다.”
이용자의 사용 후기를 중심으로 제품을 보완했다.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으니 경쟁 제품이 빠르게 등장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제품의 차별점을 만들어야만 했죠. 차별화에 대한 답은 이용자의 제품 후기에 있었습니다. 피드백을 토대로 타임랩스, 360도 영상, 인물 복제, 파노라마 영상 등 소비자들이 원하는 기능을 꾸준히 추가했습니다. ‘승마가 취미인데, 자세 교정을 위해 승마하는 영상을 기록하고 싶다’는 후기에 아이디어를 얻어 동물 인식 기능도 제공하기 시작했어요. 이용자의 의견을 허투루 넘기지 않은 결과 시장에서 계속 사랑받을 수 있었죠.”
◇미국에서 더 유명한 한국 기업
쓰리아이의 피보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CES 2023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AI 기술을 기반으로 사람을 자동 추적하고 360도 회전 촬영이 가능해 혼자서도 손쉽게 원하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온라인몰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을 대상으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가상 공간에 실물과 똑같은 물체를 구현하는 기술) 서비스인 ‘비모’를 내놨다. “오랜 기간 다양한 영상 및 사진 데이터를 축적한 덕에 사물 인식 알고리즘이 정교해졌습니다. 비모를 통해 공장 제조 시설과 같은 산업 현장을 디지털 공간으로 구현해 원격으로 현장을 관리할 수 있게 돕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일본 통신사 NTT의 데이터 센터, 세아특수강 등 국내외 유명 기업이 비모를 도입했습니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끈기라고 강조했다. “포기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창업에서는 포기가 독입니다. 제가 부동산 시장에서 삽질했을 때 폐업 신고를 했다면, CES는 꿈도 못 꿨을 거예요.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죠. 내가 개발한 기술로 사회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누구에게 이 기술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고민하다 보면, 답은 분명 나옵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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