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뉴욕대 교수의 난방비 절약 방법, 접었다 폈다 가정용 사우나

더 비비드 2024. 7. 18. 09:48
이동식 사우나 '사우나라' 개발한 서경글로벌 홍석용 대표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주말에는 독자 반응이 가장 좋았던 BEST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서경글로벌 홍석용 대표. /더비비드

‘땀’은 ‘노력’이나 ‘수고’를 비유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이를테면 ‘땀의 결과로 얻어낸 아시안게임 금메달’, ‘농부가 땀 흘려 재배한 농산물’이라는 말에서 그간의 노고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땀은 인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몸의 열을 효과적으로 배출하는 데 ‘땀’ 만한 게 없다. 땀의 99%는 물이다. 나머지 1%를 통해 소금·암모니아·칼륨 등이 배출된다. 여기에 노폐물도 섞여 나온다.

가만히 앉아서 땀을 내는 행위, 이른바 사우나는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따뜻한 온기를 받으면서 땀을 쭉 빼고 나면 뭉친 근육이 풀리고 개운한 느낌이 든다. 서경글로벌 홍석용 대표(57)도 사우나에 단단히 중독됐었다. 이동식 사우나 ‘사우나라’를 개발하면서 매일 땀을 빼고 있다는 홍 대표를 만났다.

◇사우나를 접었다 펼쳤다

침대 위에 사우나라를 설치한 모습. /서경글로벌

사우나라는 이동식 가정용 온열 방이다. 돔형 텐트와 매트로 구성됐다. 매트에서 방출된 열이 텐트 내 반사돼 순환하면서 찜질 효과를 낸다. 텐트와 매트 모두에서 원적외선이 방출된다. 원적외선은 열작용과 침투력이 좋아 우리 피부에 따뜻한 느낌을 전달해 주는 성질이 있다.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해 뭉친 근육을 풀어주거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설치 방법은 간단하다. 부채를 펼치듯 한쪽 끝을 잡고 펼치면 돔 형태의 이동형 사우나가 만들어진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부피를 최소화해 접어서 보관하면 된다. 매트는 전자파가 방출되지 않도록 구리 선이 아닌 탄소사를 가공한 ‘C섬유’를 적용했다. 겨울철 난방비도 아낄 수 있다. 하루 10시간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 한 달 내내 틀어도 전기 요금은 5000원이면 충분하다.

◇경영학과 교수님이 여기엔 어쩐 일로

20대 시절 홍 대표. /홍석용 대표 제공

1987년 23살의 나이에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 유학길에 올랐다. “장학금을 받았지만 생활비까지 감당하기엔 턱도 없었죠. 일주일 중 7일을 아르바이트했습니다. 종목을 가리지 않았어요. 세탁소에선 옷을 나르고, 식당에선 음식을 나르고, 운전사로 일할 땐 사람들을 나르기도 했죠.”

경영학 중에서도 HRM(인적자원관리)을 세부 전공으로 삼았다. 1995년 박사 학위를 취득한 다음 바로 강단에 섰다. 뉴욕대 스턴 비즈니스 스쿨에서 한 반에 60~80명 정도인 학생들을 가르쳤다. “마흔이 가까워져 올 무렵 한국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 제안이 왔어요. 한국으로 귀국해 한 국립대 경영대학에서 HRM 강의를 하는 한편 영어학원에서 영어도 가르쳤죠. 그러면서 어렴풋이 내가 교육사업을 한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홍 대표(오른쪽)는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홍석용 대표 제공

한 조종사 전문양성 아카데미가 수년간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왕이면 수요가 적어 발전이 더딘 분야에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2010년 조종사 아카데미를 인수하기로 결심했죠. 훈련 항공기를 더 확보하고 졸업생을 위한 취업 추천 제도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매년 조종교육생 300명이 조종사가 됐죠. 제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던 일 중 하나입니다.”

적자였던 교육원을 인수해 운영·성장시켰던 경험은 또 다른 도전에 불을 지폈다. 2021년 기업 컨설팅 회사인 서경글로벌을 설립했다. “이듬해 7월 온열 매트 관련 특허권자라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온열 기능이 있는 1인용 텐트를 만들고 싶다며 사업 계획을 줄줄 읊더니 동업을 제안하더군요. 그 사람과 손을 잡기로 하고 공동 개발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특허 번호를 조회했더니 다른 이름이 나왔어요. 특허권자가 아니었던 겁니다.”

조종사 전문양성 아카데미를 인수해 300명의 조종사를 양성했다. /홍석용 대표 제공

수억원의 손실을 봤다. 하지만 사업 아이템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제가 구상한 최종 제품은 ‘이동식 사우나’였습니다. 저만 해도 땀 흘렸을 때의 개운함이 좋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사우나를 가거든요. 이걸 집에서 매일 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나라면 무조건 산다’ 싶었죠. 혼자서라도 제품을 개발해 마침표를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동식 사우나 ‘사우나라’ 개발 노트

1. 만들 수 없다면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

사우나라 제작에 쓰인 특허기술들. 전자파가 나오지 않는 탄소 매트 제작 기술이 핵심이다. /서경글로벌

이동식 사우나 개발의 첫걸음은 열 발생을 책임지는 매트 개발이었다. “전기장판의 가장 큰 단점은 전자파라고 생각했어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구리 선을 대체할 소재가 필요했죠. 수소문한 끝에 C섬유로 매트를 만들어 전자파 방출량을 제로(0)로 만든 특허권자를 찾았습니다. 특허 기술을 4건이나 보유했지만 이를 발전시켜 제품화할 여력은 없는 상황이었죠.”

서로 윈윈(win-win)할 전략을 제안했다. “이동식 사우나를 만들고 싶다면서 제 구상을 설명했습니다. 특허권에 관한 부분도 면밀히 살폈어요. 특허를 등록한 사람은 일정한 대가를 받고 사용 권한을 양도할 수 있습니다. 정식으로 사용 권한을 양도받아 제품화에 들어가기로 했죠. 대신 C섬유 매트만큼은 원 특허권을 가진 업체에서 생산하기로 했어요. 제품이 많이 팔릴수록 원 특허권자도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가 되길 바랐습니다.”

2. 일상에서 얻은 아이디어

사우나라 실내 모습. 탄소 매트의 겉감을 결정하기 위해 패브릭부터 차량용 시트까지 실험을 거듭했다. /서경글로벌

다음 단계는 C매트의 겉감을 결정하는 일이다. “처음엔 패브릭(직물·편물·부직포 등 섬유제품 전반)을 종류별로 가져다가 매트를 감싸봤는데요. 땀이 흘렀을 때 스며들지 않고 툭툭 털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탈락이었습니다. 인조가죽을 써봤더니 온도가 올랐다 내렸다 할 때마다 조금씩 변형이 생기더군요.”

매일 타는 차에서 힌트를 얻었다. “차량용 시트는 거의 매일 앉고, 온열 기능까지 있는데도 쉽게 변형되지 않습니다. 10년 넘게 타도 끄떡없죠. 여기에 착안해 차량용 시트에 쓰는 두꺼운 가죽으로 C섬유 매트를 감쌌습니다. 땀을 흠뻑 흘려도 물티슈로 닦기만 하면 됩니다. 열을 이용한 제품이다 보니 안전을 위해 방화 약제를 이용한 난연(難燃) 처리까지 마쳤죠.”

3. ‘접었다 펼쳤다’에 쏟은 시간 3개월

옆에서 바라본 사우나라. 마치 부채를 펼친 것 같은 모양이다. /서경글로벌

틈만 나면 마트의 캠핑용품 코너를 기웃거렸다. ‘이동식’ 사우나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가정용 사우나는 많습니다. 하지만 옷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부피가 크고 관리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죠. 부피를 최소화하려면 ‘접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습니다. 또 접었다 펼쳤다 하는 행위가 어렵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사우나가 좋다고 한들 조립했다가 분해했다가 정리하는 일이 번거로우면 점점 손이 가지 않을 테니까요.”

가장 먼저 참고한 제품은 원터치 텐트다. “펼치자마자 고개를 저었습니다. 텐트는 가끔가다 한 번씩 쓰는 물건이지만 이동식 사우나는 매일 쓰기 위한 제품이에요. 이대로 만들었다간 몇 번 접었다 폈다 하면 곧 망가질 것 같더군요. 지지대가 약해서 원단을 버틸 힘도 충분치 않았죠. 결국 완전히 새로운 구조체를 고안하기로 했습니다.”

사우나라를 접는 모습. 접은 다음에는 냉장고 뒤, 소파 뒤 등 틈새 공간에 보관할 수 있다. /서경글로벌

종이를 반으로 접듯 할 수 있는 형태를 떠올렸다. “옆에서 보면 부채의 모양과 흡사합니다. 한쪽 끝만 잡아도 접었다 펼쳤다가 가능한 구조로 만들었죠. 여기에 들어가는 철제 구조물 제작 역시 난항이었어요. 만나는 철물 제작 공장마다 거절하더군요. 시제품만 만들었다가 양산하지 못했던 사례가 너무 많았다면서요. 인천, 경기 광주 등 발길이 닿는 곳마다 문을 두드린 끝에 공장을 찾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4. 타깃층을 고려한 설계

다이얼을 끝까지 돌리면 최고 온도 70도로 설정할 수 있다. /더비비드

실제 사우나와 유사한 환경을 구현하려먼 바닥만 따뜻해선 안 된다. 공기 자체가 달라야 한다. “C섬유 매트에서는 0.884㎛(마이크로미터)의 원적외선이 나오는데요. 천장을 두르는 천에도 원적외선 처리 가공을 했습니다. 매트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이 천장에서 거울처럼 반사돼 내부 전체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원리입니다.”

매트와 콘센트 사이의 조절부에는 꼭 필요한 버튼만 남겼다. 주 타깃층인 중·노년층을 고려한 결정이다. “전원 버튼 그리고 온도를 설정할 수 있는 다이얼 하나가 끝입니다. 다이얼을 끝까지 돌리면 최대 70℃의 온도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겨울철엔 25~30℃ 정도로 두고 잠을 자는 난방텐트로도 활용할 수 있어요. 하루 10시간 기준 한 달 내내 사용해도 전기료는 5000원대 정도라 난방비 부담도 덜 수 있죠.”

사우나라는 1인용으로 제작됐지만 최대 2인까지 앉거나 누울 수 있다. /서경글로벌

지난 1월 이동식 사우나 ‘사우나라’를 출시했다. “홍보를 위해 블로그 체험단 10명을 모집했습니다. 2주 동안 사용한 후기를 블로그에 게재했는데요. 체험단 10명 중 4명이 ‘직접 사고 싶다’면서 사용 중이던 제품을 그대로 구매했습니다. 모집단이 너무 적긴 하지만 사용자의 40%가 구매를 결심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결과였죠.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출시 2개월 만에 7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유럽 수출을 꿈꾸는 제조업 새내기

사우나라를 개발한 홍 대표는 한국을 넘어 일본, 북유럽까지 진출할 계획을 밝혔다. /더비비드

소비자의 문의가 들어오면 늘 진땀을 흘린다. “온도가 빨리 올라가지 않는다거나 매트에서 냄새가 난다는 연락을 자주 받는데요. 구리 선과 달리 C섬유는 처음 제품을 사용할 때 1~2회 정도는 온도 상승이 더딜 수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빠르게 온도가 올라갑니다. 겨울에도 30분이면 70도까지 오르죠. 매트의 냄새는 신차를 탔을 때와 같은 상황인데요.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냄새가 빠집니다. 이젠 이렇게 자주 받는 질문과 답변을 정리한 FAQ를 구성품에 함께 넣었습니다. 이럴 땐 제조업 새내기 티가 좀 나죠.”

최근 일본의 가장 큰 펀딩 플랫폼인 마쿠아케 입점을 확정 지었다. “관계자의 말로는 500:1의 경쟁률을 뚫었다고 하더군요. 사우나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한국, 일본 그리고 북유럽 국가들입니다. 일본 수출을 발판으로 장기적으로는 유럽 수출도 계획하고 있어요. KC인증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의 전자파시험성적서 등은 이미 갖췄으니 이제 CE 인증을 준비할 차례입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