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굽은 목을 좍 펴는 물리치료사의 신기한 아이디어

더 비비드 2024. 7. 16. 10:03
목의 C커브 정렬을 돕는 목 운동기기 개발기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카이로케어의 김문희 대표. 그는 20년 차 물리치료사다. /더비비드

목은 작은 근육과 뼈로 이루어진 예민한 신체부위다. 우리 몸에서 가장 무거운 머리를 받치고 있어 균형이 조금만 틀어져도 부담감이 커진다. 굽은 정도가 커질수록 목이 버텨야 하는 하중은 무거워진다.

20년 차 물리치료사인 카이로케어의 김문희 대표(45)는 단골 환자들이 목 관련 질환으로 오래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치료 후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원흉이었다. 김 대표는 환자들이 집에서도 교정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목 운동기를 개발했다. 그를 만나 개발기를 들었다.

◇누워서 고개를 뒤로 젖히면 벌어지는 일

(왼쪽부터) 카이로핏의 구조와 카이로핏으로 환자의 목을 정렬하고 있는 김 대표. /카이로케어

목이 앞으로 굽은 거북목증후군은 현대인의 고질병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목 디스크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는 이도 증가했다. 카이로케어는 목과 척추의 올바른 자세를 유도하는 목운동기구 개발사다. 지금까지 의료기기인 카이로넥과 목 운동기 커브넥, 카이로핏 등을 출시했다. 물리치료사인 김문희 대표가 전제품을 개발했다. 모두 우리나라에서 제조했다.

대표 상품은 목 근육 밸런스와 뼈의 재형성을 돕는 능동 운동기구 ‘카이로핏’이다. 무너진 하부 경추를 받쳐줘 올바른 C커브를 형성하도록 돕는 기기다. 누워서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운동에 대한 부담이 적다. 지압점이 있어서 물리치료사가 후두부를 풀어주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스트레칭 효과를, 좌우로 도리도리 운동을 하면 지압 효과를, 상하로 끄덕뜨덕 운동을 하면 굳은 목을 풀 수 있다.

(왼쪽부터) 카이로핏의 지문을 해준 의사, 대한카이로프랙틱 학회 수상 당시 모습. /카이로케어

물리치료학 교수, 대한 카이로프랙틱 학회장, 정형외과와 통증외과 의사, 운동치료사, 물리치료사 등 각계의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서 만들었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경추 교정기 등으로 특허도 등록했다.

간단하지만 핵심을 파고든 원리로 전문가 집단과 목 관련 질환자에게 두루 인정받았다. 대한카이로프랙틱 학회에서 우수 제품상을 받았고, 유명 홈쇼핑에서 완판을 기록했다. 목, 경추 질환자들의 정보 공유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나 커뮤니티 운영자에게 먼저 홍보 제안을 받기도 했다.

◇20년차 물리치료사가 발견한 목 질환의 근본적인 해결책

김 대표(왼쪽)와 이현우 공동대표는 물리치료사와 환자로 첫 인연을 맺었다. /더비비드

20년 경력의 물리치료사이자 사업가다. 천안에 있는 한 마취통증의원 교정치료실의 센터장으로 근무하면서 대한 카이로프랙틱학회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카이로케어를 운영하면서 물리치료사, 트레이너 등 건강관리 전문가 양성 아카데미 라이즈비도 운영 중이다.

화려한 이력의 뒤엔 방황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젊었을 땐 그저 노는 게 좋았어요. 큰 목표 없이 살다가 주점을 차리는 게 꿈이었죠. 그러다 20대 중반이 됐을 때 주변을 둘러봤어요. 결혼해서 정착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친구들의 삶에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 엄습했죠. 그때부터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물리치료사를 쫓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부산 방방곳곳을 누비면서 교육을 받았어요. 그렇게 저만의 테크닉을 정립하고, 단골 환자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10년 차 물리치료사가 됐을 때 환자들이 반복적으로 제기한 문제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질환은 병원에서의 치료 뿐만 아니라 사후 관리가 중요합니다. 평소에도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꾸준히 운동을 해야 개선이 되죠. 하지만 집에서 운동을 하고 오면 더 아프다고 호소하는 분이 많았어요. 병원에서는 전문가의 지도 하에 재활운동을 하지만, 집에서는 마땅한 도구 없이 혼자 감으로 운동을 하는 게 원인이었죠. 당시 관련 운동 기구도 없었습니다. 집에서도 편히 목 관리를 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로 결심했죠.”

카이로넥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 /카이로케어

2년 간의 준비 끝에 2016년 카이로케어를 설립하고 의료기기 ‘카이로넥’을 출시했다. “수동식 정형용 운동장치로 의료기기입니다. 환자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개발했어요. 목을 받쳐주는 U자 형태의 후두부받침부, 목밴드, 어깨지지대 양측으로 손잡이가 달린 형태로, 목의 곡선에 맞게 받힌 후 손잡이를 잡고 고정하면 됩니다. 스프링 부분의 저항력을 이용해 목 근육을 강화하는 원리로 근육의 재건과 관절운동 회복, 스트레칭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병원, 재활센터에서 판매를 시작해 온라인 판매까지 진행했다. “지금까지 3만대 이상 팔았습니다. 병원 판매를 염두에 두고 개발한 건데, 보다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해서 온라인 판매로 판매처를 확대했어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마사지기나 자세교정 베개를 쓰면 되지 않냐’ 물었는데요. 운동을 하지 않고 변화를 기대해선 안 됩니다. 똑같이 산에 올라도 등산은 몸에 좋지만 케이블카는 건강 증진에 효과가 없는 것처럼 마사지기나 베개는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스스로의 노력은 완치의 전제 조건이죠.”

◇카이로넥 개발노트

1. “누워서 할 수 있는 운동기기 없나요”

카이로넥에 대한 아쉬움을 발판으로 카이로핏을 개발했다. /카이로케어

카이로넥에 대한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발판으로 신제품을 구상했다. “카이로넥을 둘러싼 반응이 좋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접수됐어요. ‘매일 일하느라 피곤한데, 또 시간을 할애해서 운동을 하는 게 힘들다’고 토로하는 분이 많았죠. 누워서 교정 운동도 하고 스트레칭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누워서 쓸 수 있는 목 운동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가장 적합한 구조부터 찾아 나섰다. “목이 C커브가 되도록 펴 주는 게 핵심인데요. 누웠을 때 C커브가 돼야 하니까 본체를 높게 설계했습니다. 크게 본체, 하부 경추 지지대, 롤링볼과 지압볼로 구성돼 있는데요. 목 길이별 사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본체의 각도를 30도로 설계했습니다.”

(왼쪽부터) 카이로핏 모형, 설계를 위해 이용자 테스트를 하는 모습. /카이로케어

관건은 디스크가 가장 많이 터지는 경추 4번과 5번을 받쳐주는 것이다. “하부 경추 지지대가 거북목 모양으로 무너진 경추 4번 5번을 밀어줘서 목을 펴주는 원리입니다. 본체에 어깨를 완전히 밀착하고 롤링볼에 후두부를 대고 누우면 목이 C커브를 그리면서 정렬이 맞춰집니다. 제대로 누우면 머리 뒷부분이 지압볼에 닿는데요. 그 상태에서 상하좌우로 움직이면 뭉친 부분을 시원하게 풀 수 있습니다. 물리치료사의 손맛을 녹였죠.”

2. 저렴한 플라스틱보다 10배 비싼 소재 선택

카이로핏을 들고 있는 김 대표. 카이로핏의 주요 소재로 인테그랄폼을 선택했다. /더비비드

소재를 고르는 게 쉽지 않았다. “플라스틱으로 시제품을 만들어서 테스트를 했는데, 환자 10명 중 5분이 불편하다고 했어요. 딱딱해서 아프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죠. 발품을 판 끝에 인테그랄폼을 택했습니다. 플라스틱보다 원가가 10배 비싼 소재인데요. 환자들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소재라 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편하게 느껴야 자주 쓸테니까요.”

인테그랄폼을 취급하는 공장을 찾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전화만 100곳 가까이 돌리고, 30곳 이상의 소재 공장을 다녔습니다. 상당수의 가공 업체가 단순 가공에 익숙해서, 카이로핏처럼 모양이 복잡하고 다른 소재와 혼합된 유형의 제품 제작을 망설이더군요. 이분들에게 ‘찍던 것만 찍지 말고 새로운 것도 해보자’ 설득을 해가면서 만들었습니다. 생소한 형태라 처음엔 불량품이 많았어요. 조금이라도 기준치에 미달하면 모두 폐기했죠. 수십번의 시행착오 끝에 제조 노하우를 완성했어요.”

카이로핏 컬러 테스트 모습. /카이로케어

컬러도 신중하게 골랐다. “인테그랄폼은 컬러 선택의 제약이 있는 소재입니다. 6~7가지 색상으로 시제품을 만든 후 직장인, 병원 환자, 카이로케어 직원 등 50여명을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했어요. 은은한 핑크빛의 로즈골드 색상이 명예의 1등을 차지했죠. 이용자들의 성별을 고려해 코코아골드도 추가했습니다.”

국산 제조를 고집한다. “중국에서 제조하면 단가를 낮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 쓰는 제품은 신뢰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우리나라에서 제조했습니다.”

3. 홈쇼핑 완판에 이어 해외 진출

롯데홈쇼핑 판매 당시 모습. /롯데홈쇼핑 캡처

2020년 카이로핏을 출시했다. “카이로넥과 마찬가지로 병원, 재활센터에서 시범 판매를 진행한 후 온라인에 진출했습니다. 롯데홈쇼핑에서 두 번, CJ온스타일 홈쇼핑에서 한 번 방송 판매도 했어요. 하루에 3000개가 팔릴 정도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셋 중 한번은 그날의 1등 매출품으로 선정됐어요. 홈쇼핑으로만 10억원의 매출을 냈죠.”

해외에도 진출했다. “일본의 크라우드 펀딩 마쿠아케에서 저희 제품들을 판매했습니다. 일본은 고령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국가라 건강 관리 제품이 꾸준히 잘 나가요. 담당 MD가 그 점을 높게 평가한 것 같습니다. 미국의 아마존에서도 판매 중입니다.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서 홈케어 제품 수요가 높은 시장입니다. 저희에게 걸맞은 타깃이죠.”

4. 물리치료사이면서 상담사 자처한 이유

(왼쪽부터) 카이로핏을 사용하고 있는 환자, 연구 중인 김 대표. /카이로케어

구매자 상담은 김 대표가 직접 한다. “상담 전화하는 분들 대부분이 아픈 분들이라 다른 사람이 응대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올바른 사용법을 설명해야 이해하는 속도가 빠르죠. 영상통화로 이용법을 알려준 적도 많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도 잘못 쓰면 가치가 없습니다. 잘 파는 것 못지 않게 잘 쓰게 하는 게 중요하죠. 현업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강연을 하고, 제품을 개발하고, 소비자 상담을 하느라 바쁘지만 재미있고 보람 있습니다.”

◇완치를 바란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카이로케어를 목과 허리를 바로 세우는 회사로 만드는 게 목표다. /더비비드

김 대표의 물리치료사로서의 실력도 출중하다. 공동창업자의 존재가 이를 뒷받침한다. “공동대표인 이현우 대표는 제 환자였습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 대표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목이 아프다며 저를 찾았는데요. 치료받은 후 빠르게 개선됐다며 친구들을 데려왔어요. 그렇게 단골 환자가 됐죠. 졸업 후에도 이 대표와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카이로넥을 개발할 땐 해외에서 근무하는 이 대표에게 연락을 해서 의견을 요청했죠. 제 열의에 진정성을 느꼈는지 이 대표가 귀국하고 카이로케어 합류 의사를 밝혔습니다.”

카이로케어 커브넥. /카이로케어
카이로케어

카이로케어를 목과 허리를 바로 세우는 회사로 키우는 게 목표다. “커브넥이란 이름의 보급형 제품도 개발해 출시했습니다. 물리치료사나 재활치료사의 교육용으로 개발했는데, 일반 소비자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압점이 있어서 뭉친 부분을 시원하게 풀 수 있죠. 지침 목을 이완하고 운동시킬 수 있습니다. 고급 실리콘 소재를 활용했고요. 언제 어디서나 목의 C커브를 교정하면서 피로 회복에 좋습니다. 허리 교정 운동 기구도 개발 중입니다. 저희 회사는 목과 허리에만 집중합니다. 둘만 잡아도 본전은 찾아요. 너무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받으세요. 치료 후 운동이 필요할 때 카이로케어를 찾아주세요. 운동하지 않으면 치료를 위해 쏟은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