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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000명도 안 사는 섬, 연매출 10억원 올리는 청년 어부

새천년 수산의 '팔금도 왕새우' 박세일 대표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을까.’ 귀농·귀촌을 꿈꾸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준비 없이 막연히 뛰어들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입합니다. 농어업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만 한 게 아니라, 뚜렷한 철학과 직업관을 갖고 뛰어든 청년들의 분투기. ‘청년 어부(농부) 맛’을 연재합니다.

전라남도에 팔금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인구수가 1000명도 채 안된다. 섬이지만 주수입원이 어업이 아니다. 여러 섬들 사이에 끼어 있어 바다와 맞닿은 부분이 좁아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

새천년 수산의 박세일(38) 대표는 팔금도 주민들 사이 몇 안되는 어부다. 새우를 양식한다. 우리나라 기후는 새우가 크기 좋은 조건이 아니다. 박 대표가 10년 전 귀어(歸漁)했을 때 제대로된 양식 시설도 없었다. 힘든 걸 알고도 귀어해 아등바등 일했더니 이젠 한해 평균 10억원의 매출을 내는 부자 어부가 됐다. 박 대표를 만났다.

(왼쪽부터) 바닷물을 끌어오는 양식장 펌프 앞에서 새천년 박세일 대표와 박 대표의 평소 모습. /본인 제공

◇아버지 따라 새우 양식,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였다

새천년 수산은 팔금도에서 25년 넘게 흰다리 새우를 양식하고 있다. 새우의 이름은 ‘팔금도 왕새우.’ 양식장의 규모는 5만평이다. 평당 100~150마리를 키운다. 최소 500만마리의 새우가 매년 박 대표의 손을 거치는 셈이다.

7월부터 10월까지 매일 새우를 출하하는데, 하루 평균 1000박스 넘게 나간다. 여름 휴가철이나 추석 연휴에는 3000박스씩 포장하는 일도 많다. 주력 제품은 6개월을 꽉 채워 키운 30미(1kg 기준) 제품이다. 수익의 80%가 온라인 판매를 통해 직거래 된다.

박 대표가 운영하는 팔금도 왕새우 양식장 전경. /박세일 대표 제공

박 대표는 팔금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새우 양식을 하셨어요. 원래 농부셨는데 30년 전 태풍이 마을을 덮치면서 한 해 농사를 망치셨어요. 과감하게 땅을 밀고, 그 자리에 물을 채워 새우를 키우기 시작하셨죠.”

어렸을 때는 새우가 미웠다. “새우는 워낙 예민해 전염병으로 폐사하는 일이 잦아요. 새우 양식을 시작할 때 새우 치어를 대량으로 사들이기 때문에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데, 중간에 새우가 모두 죽어버리면 돈을 다 날리는 거죠. 노하우가 쌓여도 운영하기 힘들어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가세가 기울었어요. 그 해 양식을 망쳤거든요. 형편이 어려워져 대학을 가지 못했고 바로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팔금도에서 왕새우 양식하는 청년으로 지상파 방송에 출연했던 박세일 대표 모습. /본인 제공

육지에서 살겠다 다짐하고 목포에 반찬 가게를 차렸다. “새우 양식에 한 번 데인 후에는 큰돈은 못 벌어도 안정적인 일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아버지 혼자 섬에서 계시다가, 양식을 안 하는 11월에서 1월 사이 목포로 올라와 가족과 함께 지내셨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부치시는 게 보였죠. 그 때부터 도서관에서 새우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고, 양식법도 조금씩 공부해 아버지께 알려드렸어요. 처음에는 그저 아버지를 돕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현장은 달랐다

새천년수산에서 양식하는 팔금도 왕새우 모습. 빛깔이 투명하다. /박세일 대표 제공

10년 전 아버지가 그를 섬으로 불러들였다. “아버지가 새우 양식업을 이어서 해보라고 제안하셨어요. 새우 양식이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한 사업인지, 양식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아는 사람은 저뿐이라면서요. 어려움이 있으면 도울 테니 사업을 키워보라고 하셨죠.”

가업을 잇기로 하고, 초반에는 공부만 했다. “새우 양식은 순식간에 실패합니다. 전날 멀쩡하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양식장의 한 구역 전체가 폐사해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불안정성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바다에서 물을 끌어오는 방법, 바닷물 환수 방법, 적정 염도, 온도, 습도 등 공부할 수 있는 건 다했죠. 양식 초기에는 고등학생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맞닥뜨린 현장은 이론과 달랐다. 아버지와 함께 매일 양식장을 돌며 실전 양식을 익혔다. “새우는 수온 25도 정도의 물에서 잘 자라요. 2월부터 양식장 옆 비닐하우스에서 1cm 크기의 치어를 가져 와 키웁니다. 5월이 되면 양식장에 수심 1m 50cm로 물을 대고, 외부에 있는 양식장으로 새우를 옮기죠. 하루 3번 먹이를 주는데, 120일에서 180정도 키워요. 먹이를 주는 양이나 새우의 상태에 대한 판단은 육안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이론으로 터득하기 어렵습니다. 직접 부딪치며 배우는 방법 외에 없습니다.”

◇새우에 인생 걸고 나만의 양식법 터득

포장을 했는데도 펄떡펄떡 뛰는 왕새우들. /박세일 대표 제공

7월 말부터 10월까지 새우를 출하한다. “새우를 모두 팔고 그 해 양식이 끝나면 물을 빼고 땅을 갈아냅니다. 반년 동안 고생한 땅을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거죠. 땅의 보수를 마치면 겨울에 2개월 정도 쉬다가, 다시 비닐하우스에서 새우 치어 양식을 시작합니다. 이게 매년 반복되죠.”

양식을 매년 같은 자리에서 하면, 토질(土質)이 나빠지는 문제가 생긴다. “바다 옆 땅에서 양식하는 걸 ‘노지 양식’이라고 합니다. 땅이 1년 동안 염분을 머금게 돼, 같은 자리에서 계속 양식을 하면 토양의 상태가 나빠져요. 매년 땅을 갈아주는 이유입니다. 제가 양식을 시작한 후에 지금까지 두번 정도 땅에 황토를 발라줬어요. 일반 토양보다 미생물과 효소가 많아 각종 전염병으로부터 새우를 지킬 수 있죠.”

박세일 새천년수산 대표가 운영하는 양식장에 물을 넣는 모습. 오른쪽에는 건져올리고 있는 새우가 보인다. /박세일 대표 제공

양식장 옆 500평 남짓 비닐하우스는 박 대표만의 실험실이기도 하다. “겨울 동안 따뜻한 곳에서 새우 치어를 키우는데요. 성체가 될 때까지 키우기도 합니다. 생산 단가는 1.5배 정도 비싸지만, 외부 환경에 완전히 차단되니 키우기에는 더 쉽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날씨를 예측하기가 힘들고 기후 변화도 잦아 양식이 힘들어요. 요즘엔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새우와 노지 양식 새우를 비교해보며 품질이나 생산, 수익 측면에서 어떤 게 더 나은지 비교해보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새우도 대부분 비닐하우스 양식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먹이 실험도 많이 한다. “새우끼리 전염병이 잘 돌아요. 감기 같은 건데, 양식장에서 서로 붙어살다 보니 잘 옮을 수밖에 없죠. 매일 물 위로 떠 오르는 새우들이 없나 살피는 방법이 최선이지만, 그게 어려우니 몇몇 양식장은 먹이에 항생제를 넣어 키웁니다. 저는 항생제는 넣기 싫어 먹이에 매실액을 넣어봤어요. 항생제가 세균 감염을 막는 원리인데 매실도 해독작용과 살균, 항균 작용이 뛰어나니 효과가 있겠다 싶었죠.”

항생제 대신 매실액을 사용하고 3년 정도 지나니 폐사율이 줄었다. “나중에 아버지께 여쭤보니 양식 초기에 매실을 갈아 쓰는 곳도 있다고 들으셨대요. 전통 방법이었던 거죠.”

◇규모 커져도 욕심은 금물

양식장을 도는 간이배 위에서 박 대표의 모습. /본인 제공

코로나 시기, 매출이 줄어들려던 찰나 판로를 바꿔 위기를 극복했다. “저희 양식장 규모로 새우 양식을 시작하려면 초기 자본만 5억원 가까이 듭니다. 5억원 이상 수익을 내지 않으면 다음 해 빚을 지고 사업을 시작하는 셈이죠. 그런데 2020년부터 새우 도매 가격이 내려가더군요. 마진이 아예 없는 구조라, 그때부터 온라인 직거래에 집중했습니다. 전략이 통했어요. 코로나로 외식이 줄고 온라인 판매는 늘면서 오히려 매출이 늘었죠. 계속 도매 판매만 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10년 전 2만평이었던 양식장이 5만평이 됐다. 양식장을 돌보는 직원, 택배 포장하는 직원까지 총 10명이다. 매출은 매년 다르지만 평균 10억원 수준이다. 꾸준히 새우의 품질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소비자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났다. “유통 과정 없이 새우를 건져 양식장 옆에서 바로 포장합니다. 신선도는 자부합니다. 택배로 받자마자 회로 드셔도 될 정도예요. 다른 새우보다 유독 찰지고 달다는 후기가 많습니다.”

(왼쪽부터) 바닷물을 끌어오는 펌프 앞에서 박 대표, 양식장에서 새우를 건져올리는 모습. /박세일 대표 제공

양식을 넘어 가공까지 도전하는 게 목표다. “새우장이나 새우살을 활용한 가공 제품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가공 제품을 만들려면 공장이 필요해서, 해양수산부의 창업 투자 지원사업 등 여러 정부 사업에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새우 출하로 바쁘지만, 양식이 마무리되면 본격으로 사업 계획서를 준비해보려고 해요.”

10년째 양식장을 운영하지만 여전히 새우가 어렵다고 했다. “저는 새우를 키우면서 과유불급이라는 인생의 교훈까지 얻었어요. 욕심부리면 안 됩니다. 책에서는 평당 150마리까지 키워도 된다고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안 합니다. 공간이 비좁아 새우가 제대로 크지도 않을뿐더러 한 번 병이 돌면 하루 만에 양식장 구역 전체가 폐사할 정도로 빨리 번지거든요. 적당한 선에서 멈추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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