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 전자계약 서비스 모두싸인 이영준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카카오톡’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서비스명이 아니다. 국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장을 선점해 개인 간 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 됐다. 대화를 나누다가 미처 하지 못한 말이 남았을 때, “카톡 해!”라는 말로 끝인사를 매듭짓는다.
전자 계약 시장에서 ‘카카오톡’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이가 있다. 이영준 모두싸인 대표(37)다. 전자 계약을 할 때 “모두싸인 하자”는 말이 나오길 바란다는 뜻이다. 2023년 12월 기준 모두싸인 이용자는 680만명이다. 경제활동인구(2900만명)의 1/4에 달하는 숫자다. 이 대표를 만나 모두싸인이 바라보는 미래를 들었다.
◇행정고시 취준생이 앱 개발에 빠지면
부산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먼저 합격한 선배가 밥을 사준다기에 따라나섰어요. 공무원 생활은 어떤지 이야기를 들으면 동기부여가 될 거라 생각했죠. 그 반대였습니다. 보람을 잘 느끼지 못하고 쳇바퀴처럼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푸념을 들으니 의욕이 확 꺾이더군요. 지금 돌이켜보면 취준생인 절 위로하기 위해 했던 말이었구나 싶네요. 그 길로 펜을 놓아버렸습니다.”
펜과 종이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공부를 그만둬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모든 걸 스마트폰에 기록하고,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죠. 관련 앱만 있으면 모든 세상과 통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앱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단 생각에 무작정 학교를 다시 찾았어요. 개발, 디자인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모아 ‘앱티브(apptive)’란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으로 개발한 앱은 ‘다함께 스트레칭’이었다. 스트레칭 동작을 사전처럼 카테고리별로 나눠 알려주는 앱이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동작을 수행하면 횟수를 세어주기도 했어요. 2013년 출시 3개월 만에 다운로드 수가 10만회를 넘어섰습니다. 어떤 사용자는 ‘아이에게 스트레칭을 시켰더니 키가 컸다’는 리뷰를 남기기도 했어요. 긍정적인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받으니 너무 신나고 마냥 재미있었어요.”
앱 개발에 심취하다 보니 전공과 관련한 문제가 보였다. “법학과 전공이라고 하니 ‘아는 변호사 있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정작 변호사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사건 수임을 못 해 안달이었죠. 변호사는 공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광고에 제약이 컸거든요. 의뢰인과 변호인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왕이면 창업을 통해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해 보기로 결심했죠.”
◇법과 관련한 문제를 IT로 풀다
2015년 로아팩토리(Law of factory)를 설립했다. 개발동아리 앱티브에서 만난 개발자, 디자이너와 의기투합해 3개월 만에 베타버전의 앱을 개발했다. 변호사 맞춤 검색 서비스 ‘인투로’였다. 그해 3월 ‘장영실 SW벤처포럼 최우수상’을 받았다. 다운로드 수는 금세 10만회를 넘었다.
외부의 반응과는 별개로 내부에선 고민이 깊어만 갔다. “명확한 한계가 있었거든요. 변호사 소개가 절실한 분들은 대부분 소시민입니다. 일반 시민들의 법률사건 대부분은 소송 금액이 3000만원 이내로 작은 편이죠. 그마저도 부담을 느낀 사람은 ‘나 홀로 소송(변호사 없이 진행하는 소송)’을 합니다. 실제로 ‘민사 소송의 72%가 나 홀로 소송’이란 조사 결과도 있어요. 사건을 소개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비즈니스 모델이 명확하지 못하다는 점도 한계였습니다.”
새로운 아이템을 물색했다. “로아팩토리는 법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IT기술을 활용해 해결하고자 하는 목표로 출발했는데요. 이번엔 해결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춰 봤습니다. 민사 사건의 시작은 늘 계약서에 있더군요. 계약서를 분실했다거나, 중요한 조항이 빠졌다거나 하는 식이죠. 상황에 따라 이용자에게 필요한 계약서를 자동으로 작성해 주고 스마트폰으로 보관·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고안했습니다.”
다시 개발에 뛰어들었다. 각종 계약서 양식을 분석하고 템플릿을 만들었다. 2015년 8월 계약서 제작 서비스 ‘오키도키’를 출시했다. “이용자가 각자의 개인정보 등 필수 정보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계약서를 생성하고 사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번에도 반응은 나쁘지 않았어요. 쟁쟁한 국내 데이터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K글로벌 DB스타즈’ 최우수상을 받아 상금으로 2000만원까지 받았죠.”
경진대회 수상은 잠깐의 기쁨일 뿐이었다. “계약서 양식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기능이 핵심인데, 이용자들이 그 기능을 잘 쓰지 않더군요. 이용자를 끌어들인 건 ‘계약서 자동 생성 기능’이 아니라 ‘종이없이 비대면으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좌절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서비스를 더 구체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으니까요.”
변호사 검색 서비스, 계약서 작성 서비스에 이어 2015년 11월 전자 계약 서비스로의 피봇(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사업 성격·방향을 바꾸는 것)을 결정했다. 사명도 변화가 필요했다. “당시 즐겨 사용하던 SNS에 설문을 올렸어요. 후보는 ‘모두싸인’과 ‘싸인매니저’였는데요. 압도적인 표차로 ‘모두싸인’이 새로운 사명으로 결정됐죠.”
◇비대면 계약이 필요할 때
초반에 구축한 핵심 기능은 ‘비대면 계약 체결’이었다. “당시 비대면으로 계약하려면 등기 우편이나 퀵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를 이메일, 카카오톡으로 옮겨왔죠. 다만, 종이가 아닌 ‘전자 계약 서비스’ 자체를 알리는 게 쉽지 않더군요. ‘전자문서에 어떻게 도장을 찍고 사인을 하냐?’는 식의 거부감이 팽배했습니다.”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터였다. “오키도키를 사용했던 이용자가 있으니, 분명 수요는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한참 동안 인터넷을 뒤지다가 도장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홈페이지를 찾았습니다. 그 홈페이지에서 하루에 생성하는 도장의 개수만 해도 수백 개에 달했죠. 도장 이미지 하나에 5000원씩 팔고 있는 판매 글도 수두룩했습니다. 견적서, 계약서 등을 이메일로 제출할 때 필요한 도장 이미지였죠. 이 사람들을 우선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도장 이미지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이름만 입력하면 여러 서체와 모양으로 도장이 만들어지도록 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도장 이미지를 업로드하면 배경을 제거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했어요. 도장 이미지 자동 생성 기능은 모두싸인의 주요 기능으로 자리 잡았죠. 3개월 만에 누적 회원 1만명을 유치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어지면서 비대면 계약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모두싸인 문서 체결 건수는 2018년 9만3659건, 2019년 27만8715건에서 2020년 101만96건으로 폭증했다. “여기에 공인인증서·공인전자서명 제도의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전자서명법 개정’으로 더 탄력을 받았습니다. 전자 서명의 법적 효력을 더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전자 서명·계약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은 점차 거둬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전자 서명에 대한 인식은 더욱더 긍정적으로 바뀔 겁니다. 모두싸인을 통해 계약한 이용자에겐 편리한 경험 하나가 쌓일 거예요. 그 경험이 모여 신뢰가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물리적인 보안도 단단하게 갖췄습니다.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서 관리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보안 인증인 ISO27001 보안 인증을 획득했죠.”
◇전자 계약에 인공지능을 더하면
2024년 1월 기준 모두싸인의 고객사는 26만개에 달한다. 이중 90% 이상이 고객사에서 먼저 문의를 해온 경우다. “사람·기업 가릴 것 없이 종이 계약의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의외로 종이 계약은 조작이 더 쉬워요. 똑같은 모양으로 도장 하나 파고 날짜는 제멋대로 기재해 찍으면 위조 문서 하나 뚝딱이죠. 전자 계약을 하면 누가 언제 이 문서를 열람했고 서명했는지 모든 기록이 남습니다. 민사 소송 시 법원에서도 더욱 풍부한 증거로 활용할 수 있어요. 전자 서명·계약을 하면 억울한 일은 확실히 덜 생길 겁니다.”
최근 가장 눈여겨보는 분야는 인공지능(AI)이다. “산업군을 막론하고 AI를 도입하는 추세죠. 전자 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계약 체결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면 앞으로는 그 전과 후까지 책임지고 싶어요. 오키도키에서 했던 것처럼 계약서를 쉽게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계약서의 내용을 이행하는 과정을 놓치지 않도록 돕는 역할까지 할 계획입니다. 그러려면 AI의 도움이 필요해요. AI 기술은 충분히 고도화됐고 보편화됐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싸인과 AI의 결합도 멀지 않았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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