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수도 작곡가도 아냐, 서울대 나와 K-POP 시장에 자리잡은 방법

더 비비드 2024. 6. 20. 11:15
음악 퍼블리싱 플랫폼 스트로베리필즈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스트림뮤직의 김찬영, 류지훈 공동대표. /더비비드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마약’이라는 농담이 있다. 그만큼 음악엔 힘이 있다. 감미로운 멜로디와 마음을 울리는 가사는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 준다. 

음악은 그 무엇보다 달콤한 존재지만 누군가의 피와 땀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식 발매 전 시연 용도로 만들어진 곡인 데모곡 선별 과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노동집약적이다. 유통 과정도 투명하지 않다. 

서울대 선후배인 스트림뮤직의 류지훈(30), 김찬영(31) 공동대표는 좋은 음악이 공정하고 효율적인 절차를 거쳐 유통되는 시장을 꿈꿨다. 음악 퍼블리싱 플랫폼 '스트로베리필즈'(strawberryfields)의 탄생 배경이다. 두 사람을 만나 딸기밭을 일구게 된 사연에 대해서 들었다. 

◇수중에 5억5000만원이 들어오자 내린 결단

두 사람은 서울대 동문이다. /더비비드

서울대 동문이다. 류 대표는 경영학과 정치학을 김 대표는 조선해양과학을 전공했다. 좋은 학교와 취업이 보장된 전공. 안정적인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가슴 뛰는 길을 택했다. 바로 스타트업 창업이다. 

(류 공동대표) “첫 취업이 창업이었습니다. 찬영이형과 그 회사의 공동창업자로 연을 맺었어요. 당시 블록체인 기술을 필두로 하는 NFT(대체불가능토큰)이 대세였는데요. NFT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트업을 조직해 기술 제공 비즈니스를 했습니다.”
(김 공동대표) “저는 7년자 개발자입니다. 데이터베이스 연구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창업 생태계에 뛰어들었죠. 당시 공동 창업자가 네명이었는데요. 찬영이와 유독 합이 잘 맞았습니다. 고민거리가 있을 때 직접 부딪혀보고 판단하는 성향이 비슷했거든요.”

2년간 한 길을 파니 볕들 날이 찾아왔다. 단 몇 달 만에 순수익 5억5000만원을 번 것이다.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블록체인 분야로 사업을 하자는 제안이 많이 들어왔지만 고민만 깊어졌다. 당시 했던 일이 ‘내 일’보다는 ‘외주 용역회사’의 속성을 띠고 있었던 탓이다. 벌어들인 돈을 목적지가 아닌 출발지로 삼기로 했다.

(류 공동대표) “번 돈으로 새 아이템을 시작하기로 했어요. 각자 가지고 온 아이템으로 치열하게 토론했는데요. 똑똑한 동료 3명을 동시에 설득해서 끌고가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제안하는 아이템마다 반려 당하기 일쑤였죠. 결국 어떤 아이템도 실행하지 못하고 팀이 해체됐어요. 뜻이 맞았던 찬영이 형과 새로운 일을 해보기로 했죠.”

◇좋은 곡이 모이는 딸기밭

스트로베리필즈 화면. /스트림뮤직

음악 산업과 관련한 아이디어는 류 공동대표의 관심사에서 출발했다. 취미로 작사를 배우고 싶었던 류 대표는 작사가가 되는 방법을 찾아봤다. 그 과정에서 ‘작사 아카데미’의 존재를 알게 됐다. 

(류 공동대표) “작사가 지망생은 최소 8개월 간 300~400만원의 돈을 지불해야 노랫말을 붙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네트워크를 가진 쪽이 돈을 받고 기회를 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한 시사추적 프로그램에서 작사 아카데미의 비리를 파헤쳤어요. 수강생의 작품이나 곡비를 중간에서 갈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더군요.”

(왼쪽부터) 개발 중 지쳐서 잠든 모습, 플랫폼 개발 중인 모습. /스트림뮤직

작사가와나 작곡가가 안심하고 작품을 올릴 수 있는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면. 기획사도 중간자 없이 좋은 가사나 곡을 받을 수 있다. 음악 시장을 조사한 후 데모곡을 중개하는 음악 출판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서비스 이름은 스트로베리필즈. 두 사람이 좋아하는 영국의 록 밴드 비틀즈의 곡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strawberryfields forever)에서 딴 이름이다. 좋은 곡(strawberry)이 모이는 딸기밭(fields)이란 의미다. 

​(류 공동대표) “음악 퍼블리싱(출판) 시장의 구조부터 설명할게요. 보통 작곡가와 기획사는 직접 연결되지 않아요. 음악 퍼블리싱 회사(퍼블리셔)가 작가를 대신해서 데모곡을 중개하죠. 기획사는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면서 ‘리드’라고 부르는 신규 기획을 음악 퍼블리싱 회사에 전달합니다. 그러면 퍼블리셔가 작가에게 리드를 넘기고, 작가는 거기에 맞는 곡을 창작해서 퍼빌리셔에게 넘깁니다. 중개 성공 시 퍼블리셔가 작가와 계약을 맺고 저작권을 양도받아요. 해당 저작권료의 분배율을 작가와 논의한 후 발생한 수익을 나눠 갖고요.”

(김 공동대표) “문제는 이 과정이 굉장히 노동집약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만 퍼블리셔 기업이 300곳 이상 있습니다. 최근엔 1인 중개자가 100~200곳 더 늘었다고 해요. 통계내기 어려운 수준이죠. 각 퍼블리셔가 기획안에 맞춰 보낸 곡을 듣는 건 기획사 A&R 담당자의 몫입니다. A&R 담당자는 일주일에 평균 300개의 데모곡을 들어요. 3테라바이트 크기의 드라이브에 10만곡의 데모곡 풀을 넣고, 그 속에서 기획안에 걸맞은 음악을 골라내야 하죠. 곡 선별 기술을 개발해서 리드에 맞는 추려주는 것을 목표로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니들이 할 수 있겠어?' 냉대를 환대로 바꾼 비결

스트로베리필즈의 주요 기능을 설명 중인 두 대표. /더비비드

시장 반응을 살피기 위해 ‘데모곡 공모전’을 열었다. 큰 기대가 없었는데 한 달 만에 400곡이 모였다. 연이 닿는 대로 음악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예상대로 폐쇄적인 분위기였다.  ‘인맥으로 돌아가는 시장인데 기술로는 혁신이 불가능하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는 청년들이 뭘하겠냐’는 냉대를 수없이 받았다. 달리 말하면 기술을 접목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커 보였다.

(류 공동대표) “공모전에 모인 곡들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모두 수준이 높았죠. 이런 플랫폼에 대한 작곡가들의 수요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곡을 모은 후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기획사에 메일을 보냈어요. 소속 아티스트와 앨범을 일일이 파악하고 공부한 후 어울릴 것 같은 곡을 역제안했죠. 메일조차 안보는 분들이 많이 회신율이 낮았지만 성과가 있었습니다. 몇 군데의 기획사와 연결이 됐거든요.” 

(김 공동대표) “결국 본질은 곡이고 기획사가 필요로 하는 것도 좋은 곡이라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은 곡을 추릴 안목이 있냐’ 물었는데요. 상당수의 A&R 분들도 비전공자입니다. 이 시장에서 통용되는 좋은 곡이란 대중이 좋아하는 곡인데요. 저희 둘 다 노래를 소비하는 대중이잖아요. 이 시장의 도메인 지식이 없다고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왼쪽부터) 등록된 곡에 태그가 삽입된 화면, 곡 중개 성사 후 녹음하는 가수에게 사인을 받는 모습. /스트림뮤직

자신감을 얻고 플랫폼을 개발했다. 작가가 스트로베리필즈에 데모곡을 올리면 평가, 선별, 아카이빙한 후 기획사와 중개해준다. 계약 체결 시 작가가 부담하는 수수료 개념의 저작권료 분배율은 업계 최저 수준으로 책정했다. 통상 퍼블리셔의 분배율은 30~50% 선인데 스트로베리필즈는 최대 25%로 책정했다. 데모곡 선정 과정 업무를 효율화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김 공동대표) “작곡가를 채용해 AI 기반의 선별 시스템을 구축 중입니다. 장르와 템포, 가창자, 사용된 악기, 곡 분위기 등 총 170개 정도의 기준을 토대로 곡 분류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새로운 곡이 들어올 때마다 태깅(tagging, 꼬리표를 붙이는 작업)하고 있는데요. AI가 새 곡을 자동으로 태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현실화되면 신규 기획안에 걸맞은 곡을 AI가 골라 A&R 기획자에게 전달할 수 있겠죠. 데모곡 선별 업무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어요.”

(류 공동대표) “작가의 입장을 고려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했습니다. 곡 계약은 작가가 이전에 한국저작권협회에 등록한 모든 곡과 향후 만들 모든 음악에 대한 원리를 중개자에게 넘기는 ‘전곡 계약’과 특정 곡에 대한 권리만 양도하는 ‘곡별 계약’이 있는데요. 전곡 계약 시 특정 퍼블리셔에게만 리드를 받을 수 있다는 한계점이 있어요. 저희는 곡별 계약만 합니다. 정책과 계약 측면에서 강제 규정을 최대한 배제했어요. 또한, 모든 진행단계를 작가에게 공유해요. 잘 안됐을 경우에도요. 이런 배려가 작가를 끌어 모으는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죠.”

◇아직 발굴되지 않은 명곡, AI가 찾아드려요

디데이 본선 진출 당시 촬영한 사진. /스트림뮤직

비전공자에 음악 경력도 없는 청년들의 도전은 음악 시장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울림을 줬다. 지난 1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캠프 본선에 진출했다. 

창업 초 숱하게 들었던 ‘오래 못 갈 청년들’이라는 인식은 ‘이 시장에서 사업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팀’이라는 평가로 바뀌어 있었다. 2024년 2월 기준으로 1400명의 작가가 2100곡을 스트로베리필즈에 등록했다. 발매로 이어진 곡은 3곡. 그 중 드라마 OST로 입봉한 작가도 있다. 기획안을 건네는 기획사도 점점 늘고 있다. 

(김 공동대표) “작년 어린이날 최소기능제품(MVP)를 공개했는데요. 솔직히 누가 여기 들어올까 의문이었는데 10명의 작가가 동시에 가입하더라고요. 그중 첫 타자는 10곡을 동시에 업로드했어요. 아직도 그분의 이름을 잊을 수가 없어요. 히트곡을 여러 개 쓴 유명 작곡가분이 연락을 해온 적도 있어요. 저작권료 분배율이나 규정을 꼼꼼하게 확인하더니 저희 플랫폼에 보유한 곡을 한 번에 올리더군요. 스트로베리필즈의 정책이 작가들에게 통한 것 같아 뿌듯했어요.”

(류 공동대표) “10만곡의 곡 풀에 방치된 잊혀진 곡이 많아요. 저희 기술을 활용하면 세상의 빛을 받지 못한 명곡을 쉽게 발굴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작곡된 곡도 새 리드에 걸맞으면 쉽게 발굴할 수 있죠. 기획사는 스트로베리필즈를 통해 신곡 탐색 비용을 줄일 수 있어요. 300~500곳의 퍼블리셔와 5만명의 작곡가를 모두 접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음악 시장의 트렌드 변화에도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뉴진스나 아이브 같은 아티스트를 보면 각 팀의 콘셉트가 다양하게 분화하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시장 변화 속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요.”

두 사람은 좋은 곡이 꼭 가야 할 사람에게 가는 혁신적인 흐름을 만들겠다고 했다. /더비비드

당면한 과제는 AI 곡 선별기술 고도화다. 곡을 직접 듣지 않아도 AI가 신곡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시스템을 완성한 후 곡과 기획안을 매칭하는 기술까지 구축하는 게 목표다. 규모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기 위해 ‘50곡 이상 판매’라는 상업적인 목표도 세웠다. 

“첫 창업 때 짧은 기간에 큰돈을 벌었지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3년 전부터 이 일을 하고 싶어요. 거절당해도 기분이 좋아요.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걸 매 순간 느끼거든요. 좋은 음악이 탄생하고, 가수에게 전달되고, 대중에게 닿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해결하고 싶어요. 좋은 곡이 꼭 가야 할 사람에게 가는 혁신적인 흐름(stream)을 만들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