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엑스코퍼레이션 김정익 대표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고졸 출신이란 편견 때문에 힘들지 않았나요?”
제로엑스코퍼레이션 김정익 대표(29)는 고졸 출신 사업가다. 여느 때처럼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곤 대답을 했다. ‘대학 어디 나왔냐’는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답이었다. 편견을 가진 채 김 대표를 만났다는 생각에 낯이 뜨거워졌다.
한 여름 건설 현장에서 땀 흘리며 자재를 나르고, 험한 말을 들어가며 아웃바운드 텔레마케팅 영업도 했다는 김 대표. 그가 설립한 제로엑스코퍼레이션은 4년 만에 연 매출 50억원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일상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아이디어 상품
제로엑스코퍼레이션은 홈즈리빙, 뭉연구소, 디얼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며 생활용품, 반려동물용품 등을 개발·판매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홈즈리빙은 일상의 불편을 해소하는 아이디어 상품에 특화돼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원터치 자동 변기 세정제다. 마킹 스티커와 상단의 플라스틱 마개를 제거한 후 제품을 양변기 수조 모서리에 놓기만 하면 된다. 일정 농도가 넘어서면 더 이상 용액이 나오지 않아 찌꺼기가 남지 않는다.
날이 더워지는 여름엔 쿨링 토퍼가 인기다. 몸에서 뿜는 열기는 3D 에어 메시로 방출되고, 차가운 바닥의 기운은 몸으로 그대로 전달돼 잠자리를 시원하게 유지할 수 있다. 반반 토퍼는 여름·겨울에 바꿔가며 쓸 수 있는 토퍼다.
한쪽 면은 양털로 돼 있어 가을·겨울에 사용하기 좋고, 반대 면은 나노 파이버로 돼 있어 봄·여름에 쓰기 좋다. 토퍼를 뒤집기만 하면 사계절 내내 포근하면서도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다.
◇물류 직원에서 MD가 되기까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입대를 하고, 제대와 동시에 일을 했다. “일찌감치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하지만 어떤 분야가 잘 맞을지 방향을 잡지 못했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자며 렌터카, 건설 현장, 텔레마케팅 등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쇼핑몰 물류센터도 그중 하나였어요.”
물류 직원으로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사수가 사라졌다. “팀장 자리가 공석인 채로 물류 팀 일감을 혼자 책임졌습니다. 오히려 좋았어요. 일 욕심이 많아서 대표님께 ‘저 많이 시켜달라’면서 일을 배웠죠. 중국 생산 공장에 발주를 넣고, 재고를 관리하다가 MD(상품관리자)까지 맡게 됐어요. 2020년엔 상품기획팀장 자리에도 올랐죠.”
일상에서도 일 생각뿐이었다. “운동하다가 잠깐 쉬는 시간에도 어떤 물건이 좋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차량 내부를 거품으로 청소하는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좋다는 생각에 바로 입점시켰고, 출시와 동시에 뜨거운 반응을 얻었죠. 출시 직후 월 매출 1억원을 기록했고, 1만개의 대량 납품 계약도 맺었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을수록 꿈은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서른 살까지 돈을 모아 창업하겠다고 다짐했는데요. ‘그러다 실패하면 어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진 않을까?’ 하며 자꾸 미루고 싶어지더군요. 이대로 서른 살이 되면 겁만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결심이 섰습니다. 일단 저질러 보자고요. 사직서를 쓰고 퇴직금을 끌어모아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홈즈리빙 상품 개발 노트
1. SNS에서 찾은 소비자의 마음
2020년 제로엑스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 제로(0)에 빗금을 치고,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았다. 초기 자본금은 2500만원이었다. “이전 직장인 쇼핑몰에서 배운 이커머스, 유통 관련 지식을 총동원했습니다. 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해 판매하고 유통하는 일까지 모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죠.”
소비자의 수요를 읽기 위해 여러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들락날락했다. “MD로 일하면서 요즘 유행하는 제품을 찾아보고 캡처해 저장해두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렇게 둘러보다가 찾은 게 ‘침구류’였습니다. 비싼 매트리스를 사는 것보다 20만원대의 저렴한 매트리스와 몇만원대의 ‘토퍼’를 깔아두는 게 합리적이란 인식이 생기던 시기였죠. 침구류 생산 과정엔 금형(똑같은 결과물을 반복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금속 틀)이 없어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도 유리했습니다.
2. 첫 번째 소비자는 ‘나 자신’이다
독립 5개월째가 되던 여름날 한계를 직감했다. “물건이 팔리지 않고 재고가 쌓였어요. 제1금융권은 물론, 카드론에다가 지인에게도 돈을 빌릴 지경이었죠. 가을이 되자 숨통이 트였습니다. 뜻밖에도 베개가 팔리기 시작하면서 전체 매출이 올랐어요. 10월 매출이 1억5000만원이었습니다. 이 자금을 제품 개발에 재투자했죠.”
토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사실 기존 제품은 ‘나도 안 쓰겠다’ 싶을 정도로 품질이 떨어졌어요. 품질을 높이기 위해 꼼꼼하다고 소문난 봉제 공장 5곳을 수소문해 샘플을 요청했습니다. 같은 폴리에스터를 쓰더라도 가공 기술력에 따라 부드럽기도, 거칠기도 해요. 공장을 선정한 후엔 직접 디자인하고 시안을 전달해, 본격 생산에 돌입했습니다. 그렇게 ‘나도 쓰고 싶은 제품’을 만들었어요.”
3. 브랜드가 곧 신뢰다
2023년 겨울 자사 브랜드 ‘홈즈리빙’을 론칭했다. 그 외에도 자주 다루는 제품군을 묶어 ‘뭉연구소(반려동물용품)’, ‘디얼(생활가전)’, ‘부테스(차량용품)’ 등의 브랜드를 별도로 운영하기로 했다. “생산하는 입장에선 첫 제품에서 어떤 점을 개선해 다음 제품이 나왔는지 눈에 훤하지만, 소비자의 눈엔 보이지 않습니다. 브랜드가 있어야 전작과 신작을 비교할 수 있어요. 이런 소비자의 반응을 데이터화해 신상품 개발에 힌트를 얻을 수도 있죠.”
이글루 쿨링 토퍼는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한 제품이다. “여름철마다 열대야가 기승이죠. 이를 위해 시원한 잠자리를 만들어 줄 시원한 토퍼를 개발했습니다. 사람 몸에 닿는 부분은 자가 쿨링 원단으로 폴리아마이드 75%, 폴리에스테르 섬유 25%로 만들었어요. 그 아래에는 진드기 방지 특수 성능이 있는 폴리에스테르 섬유와 냉감 기능성 섬유인 하드 코튼을 썼습니다.”
4. 최후의 협상 카드는 ‘생산 수량’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지 않는다. 다만 생활 속에서 불편했던 점을 개선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원터치 변기 세정제의 개발기가 딱 그렇습니다. 기존에 쓰던 고체형 변기세정제는 찌꺼기가 남아 덩어리가 쉽게 생겼어요. 다른 형태는 없을까 하고 찾아보니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세정력이 의심스럽더군요. 그 순간 느꼈어요. 곧 신제품이 나오겠구나 하고요.”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세정제를 수조에 넣고 물을 내리면 청소 걱정이 없는 형태를 원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여러 공장에 전달하고 샘플을 받았다. 고약한 방향제 냄새가 나거나 플라스틱 이음새가 어설픈 곳을 제외하는 등 품질 기준에 따라 공장을 추려 나갔다. “생산 공장이 대부분 중국에 있다 보니 디자인이나 색상 등이 중국 사람에게 맞춰져 있었어요. 복잡한 디자인은 없애고 심플하게 빨강·노랑 등 선명한 색상 대신 흰색으로 제작해 달라고 요청했죠.”
샘플을 주고받고 최종 형태를 확정 짓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원하는 디자인을 고집했더니 공장에서 생산을 꺼리더군요. 결국 최소 생산 수량을 1만5000개로 늘리기로 하고 공장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FITI시험연구원 항균 시험,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의 생활화학제품 인증까지 받았어요. 그렇게 출시까지 총 3개월이 걸렸습니다.”
◇글로벌 진출의 타이밍
중국 이커머스의 성장이 연일 화제다. 주변에서 부쩍 걱정 섞인 안부 연락이 잦다. “처음엔 저도 놀랐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낮은 가격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죠. 대책이랄 건 딱히 없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제품력으로 승부하는 수밖에요. 돈을 좀 더 쓰더라도 좋은 원단을 쓰고, 안전 인증을 받으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 제로엑스코퍼레이션은 연 매출 50억원을 달성했다. 최근엔 수출까지 고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가 계속 줄고 있고, 해외에서 국내로 진출하는 기업은 늘고 있어요. 시장이 줄어드는데 경쟁자는 늘어나는 형국이죠. 수출은 선택지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길이란 생각이 듭니다. 수출할 신제품을 찾기 위해 해외 커뮤니티나 유튜브 채널을 유심히 살펴보는 중입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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