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의 일론 머스크를 꿈꾸는 아역배우 출신 고졸 영업사원

더 비비드 2024. 6. 20. 14:11
국내 최초 전기차 개조 모빌리티 기업 JM웨이브 박정민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국내 최초 전기차 개조 모빌리티 기업 JM웨이브 박정민 대표. /더비비드

극한의 한파가 몰아치자 전기차의 한계가 드러났다.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방전 대란’이 일어난 것. 도로 한복판에서 배터리가 방전돼 견인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전기차 충전소에선 충전을 위해 수 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경우도 이어졌다. 극도로 낮은 온도에서는 배터리 양·음극 간 화학 반응이 느려지는 탓이다. 전기차의 성장세마저 꺾어 버릴 것처럼 보였다.

전기차 개조 스타트업 제이엠웨이브 박정민 대표(49)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었다. 그는 느긋했다. 과거에 휴대전화 배터리를 교체해 가며 쓰듯 전기차도 배터리를 교체하며 쓸 수 있다는 답이었다. 박 대표를 만나 전기차의 가까운 미래에 대해 들었다.

◇파격 승진에 이은 제자리걸음

아역배우 시절, 이순재·한혜숙·박근형 주연의 영화 ‘영원한 유산’에 출연한 모습. /박정민 대표 제공

4살에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 나가 아역배우로 데뷔했다. 배우 이순재와 영화를 찍고, 부라보콘,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대관령우유(현 서울우유) 등 CF에도 출연했다. “CF 한번 찍으면 50만원을 받았대요. 당시 고급 아파트 한 채가 700만~800만원하던 시절이었으니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버지의 반대로 아역배우 생활을 그만뒀습니다.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전 할머니와 함께 살았죠.”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굳이 특징을 꼽자면 또래보다 내향적이고 소심하다는 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19살에 만난 첫사랑과 20대 초반에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어요. 분윳값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시가를 팔던 오메가 트레이딩코리아에 일하던 친구의 소개로 창고를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고졸 출신으로 창고 관리자에서 12년 만에 억대 연봉자가 됐다는 박 대표. /더비비드

영업 부서에 빈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보직 변경을 신청했다. “인센티브(성과급)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요. 부서를 이동한 후 퇴근을 마다하고 회사에 살다시피 하면서 시가를 팔았어요. 시가는 주로 고급 술집이나 호텔에 유통했는데 새벽 시간대에 가장 많이 소비되더군요. 새벽 4~5시마다 거래처를 돌면서 시가를 팔고 수금했습니다. 자금이 잘 회수되니 제품 공급도 빨라지는 등 선순환이 이뤄졌죠. 부서 이동 7개월 만에 실적 1등을 기록했습니다.”

2001년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코리아(이하 토바코 코리아)로 이직했다. “던힐 담배를 홍보하기 위해 강남·압구정 일대에 있는 고급 술집에 무상으로 나눠줬습니다. 그곳을 방문한 유명 연예인이 던힐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자주 비치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올라갔죠. 성과를 인정받아 제 연봉은 10년 만에 146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랐습니다.”

토바코 코리아에서의 마지막 직함은 ‘차장’이다. “그다음 자리가 ‘이사’였는데요. 한계를 느꼈습니다. ‘고졸 출신인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지레 겁먹기도 했죠. 적어도 5년 안에 승진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판단이 쉬워졌어요. 5년간 제자리걸음을 할 바에야 창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자동차 튜닝, 불법만 있는 건 아닙니다

박 대표는 성수의 정비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동차에 대해 더 공부했다. /박정민 대표 제공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가장 좋아하는 분야를 먼저 들여다봤다. 자동차 튜닝이었다. “‘팀 벤티’란 이름의 자동차 튜닝 동호회의 주 활동 멤버였어요. 자차는 없지만 동호회원들의 차를 함께 고치거나 법적인 문제를 다루는 일을 맡았습니다. 군대로 치면 ‘행정병’이랄까요. 자동차 튜닝을 불량한 행동으로 보는 인식이 강했어요. 어떤 회원이 경찰 단속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두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경찰서·지자체·시의회를 오가며 법 조항을 따져 물었죠.”

창업을 결심하곤 직장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2007년부터 성수동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기름때 낀 장갑을 꼈습니다. 자동차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죠. 보닛 속은 물론 자동차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을 하나하나 뜯어볼 수 있었습니다. 3년 정도 지나자 그제야 자동차에 대해 좀 알 것 같더군요. 이제 비로소 독립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성AMC에서 개조한 레드불 윙스카. /박정민 대표 제공

2010년 6월 자동차 튜닝 전문 업체 태성AMC(Auto Mobile Company)를 설립했다. “튜닝이라고 하면 엔진 소리를 크게 만드는 것부터 떠올리곤 하는데요. 기업에서 이벤트를 위해 만드는 차량도 튜닝의 일종입니다. 레드불의 윙스카나 디제이카, 교통안전공단의 교육용 차량, BMW의 이동형 과학관 차량도 저희가 만들었어요. 차량 20대를 개조하는 등 큰 프로젝트를 맡으면 한 번에 16억원을 벌기도 했죠.”

매출이 쑥쑥 성장했다. 그런데 아쉬웠다. “제조사를 하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습니다. 차량 전면에 우리 로고를 달고 싶단 욕심이 들었죠. 그러던 중에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가 혜성처럼 등장했어요. 전기차가 자동차 시장의 주류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새로운 차를 만들진 못해도 기존 내연기관 차량을 개조해 전기차로 만드는 일은 해볼 만하다 싶더군요. 결심이 서자마자 핸들을 틀었습니다.”

◇전기차와 함께 떠나는 길

직접 개조한 미니쿠퍼 전기차로 제주국제전기차엑스포에 참가한 모습. /박정민 대표 제공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빛컴퍼니(현 JM웨이브)라는 새 이름도 지었다. 전기차 개조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지만, 미국의 개조 방식을 참고하거나 활용하지는 못했다. “미국은 네거티브 규제(법률·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 방식인 반면 우리나라는 포지티브 규제(법률·정책에 허용되는 사항을 나열하고 그 밖의 것을 금지) 방식이기 때문이죠. 미국식으로 개조했다간 규제에 걸려 도로로 나갈 수 없으리라고 봤습니다.”

미니쿠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기로 했다. 2019년 5월에 있던  제주국제전기차엑스포를 디데이로 잡고 밤샘 작업을 했다. “차를 작은 부품 단위로 모두 분해한 다음 내연기관과 관련된 부품은 따로 분리했어요. 전기 배터리는 물론 음성 인식 소프트웨어도 심었습니다. 그렇게 5개월 만에 미니쿠퍼 전기차 제작에 성공했죠. 무려 5억원을 들인 결과물이었습니다.”

차량에 전기 배터리를 결착하기 전(왼쪽)과 결착한 후(오른쪽)의 모습. /박정민 대표 제공

반응은 뜨거웠다. 전시회에서 미니쿠퍼를 보는 사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중에 한진택배 관계자도 있었습니다. 전시회 후 한진택배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트럭을 전기차로 개조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죠. 2020년 2월 한진택배와 MOU를 맺고 물류용 트럭 한 대를 전기차로 개조했습니다. 나중엔 9대까지 늘렸어요. 같은 해 12월 제주도에서 운행 테스트까지 마쳤습니다.”

전기차 개조에 걸리는 시간을 빠르게 단축했다. 한 대에 5개월 걸리던 것에서 지금은 3일이면 된다. “전기차 관련 부품을 모듈화했습니다. 세세하게 나누면 700여 가지에 달하는 부품을 60여 개의 모듈로 만들었죠. 더 크게 나누면 11개의 모듈로 볼 수도 있어요. 차량에 모듈을 장착하고 모듈끼리 연결만 하면 됩니다.”

2020년 12월 한진택배와 함께한 택배 차량 전기차 개조 시범 운영식. /박정민 대표 제공

가장 큰 산이 남았다. 법적 규제를 넘어서는 일이다. “국토부·환경부 등 관계 부처 담당자를 만날 때마다 설명에 진땀을 뺐습니다. 국내에선 내연기관 차량을 전기차로 개조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죠. 노후 내연기관 차량을 친환경 전기차로 바꿀 수 있고, 미국의 개조 시장 산업이 커지고 있다는 부분을 많이 강조했어요. 2년간 환경부를 설득해 전기차 개조 시에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어 대한상공회의소·산업통상부의 ‘산업융합 규제샌드박스 실증 특례’에도 선정됐죠.”

◇헌 차 줄래, 전기차 줄게

전기 배터리를 결착한 트럭의 모습. /박정민 대표 제공

이빛컴퍼니는 JM웨이브로 이름을 바꿨다. JM웨이브가 개조한 차량 전면엔 사명을 형상화한 로고가 박힌다. “지금은 물류 트럭만 타깃으로 하고 있습니다. 개조 비용은 한 대에 2000만원인데요. 정부 보조금 1500만원을 제하면 소비자가 부담할 가격은 500만원에 불과하죠. 신형 전기트럭의 경우 보조금을 고려하더라도 2500만원 이상의 비용을 내야 해요. 이와 비교하면 훨씬 합리적이죠.”

배터리 용량은 40.26kWh에 완충 시 최대 주행거리는 약 160㎞다. 신형 전기트럭에 비해 낮은 스펙이다. “물류트럭으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서울·부산 등 장거리 운행을 하는 차량은 소수입니다. 대부분은 동·읍 단위로 정해진 권역을 오가죠. 하루 주행거리는 60~70km 남짓입니다. 배터리는 교체가 가능하니 충전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걱정도 없습니다.”

전기차 개조를 위한 도면을 가리키며 설명하는 박정민 대표. /더비비드

JM웨이브는 2024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한진택배·대신택배 등 물류사에서 특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23년 11월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주최하는 ‘2023 디캠프 올스타전’ 무대에 올라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전기차는 이제 더이상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타고 있는 차를 죄다 폐차하고 전기차를 살 순 없죠. 탄소 내뿜는 내연기관, 그 자리만 비우면 됩니다. 그 빈 자리는 제가 채울게요.”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