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만대 히트 무선 청소기 개발한 모젠인터내셔널 박덕현 대표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독자 반응이 뜨거웠던 베스트 인터뷰를 다시 소개합니다.
철옹성 같던 무선 청소기 시장에 균열을 낸 중소기업이 있다. 한국 생활가전 브랜드 ‘기펠’(GIPFEL) 운영사 모젠인터내셔널이다. 모젠인터내셔널은 우리나라 가정 상황에 맞는 기능을 갖추면서도 10만원대 가격을 실현한 무선 청소기를 개발해 25만대를 팔았다. 150억원대였던 연매출은 300억원으로 두 배 뛰었다.
다이슨, 삼성, LG 등 유명 기업 제품이 득세하는 무선 청소기 시장에서 어떻게 틈새를 찾은 걸까. 모젠인터내셔널의 박덕현 대표(57)를 만나 무선 청소기 개발기를 들었다.
◇백화점에도 입점한 중소기업 무선 청소기
2005년 설립한 모젠인터내셔널은 홈쇼핑, 기업 특판, 온라인 등으로 주방용품과 생활용품을 유통하는 기업이다. 국내 1000여개 기업에 60개 품목을 납품하며 몸집을 키워 나갔다. 작년부터는 B2C판매를 통해 소비자 시장을 본격적으로 두드리고 있다.
주요 제품은 무선 청소기, 무연그릴, 글라스 에어 프라이어 등이다. 최고 인기 제품은 무선 청소기 ZET-10 디텍트 컴플리트다. 본연의 청소 기능에 충실하면서 무게와 가격 부담을 줄였다. 2020년 출시한 1세대는 25만대 팔렸다. 성능과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한 2세대는 출시 2개월만에 1만대 이상 나갔다. 롯데백화점과 온라인몰에서 판매 중이다.
◇처참하게 6000만원 손해보고 깨달은 것
주방용품 기업 ‘셰프라인’ 출신이다. 1990년에 입사해 15년간 근무했다. “셰프라인은 스테인리스 냄비, 압력밥솥 같은 주방용품을 제조해서 우리나라와 해외에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자금부로 입사해 경리부, 영업부를 거쳤습니다. 회사 사정 때문에 지방에서 근무하느라 3년 반을 주말부부로 지낼 정도로 열심히 일했어요.”
마음 한 켠엔 늘 신상품 개발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갈망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1997년 외환위기(IMF) 때 회사에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고 나니 중국산 저가 제품이 유입돼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약해졌어요. 위기 극복을 위해 주방용품보다 마진이 높은 가전 제품을 개발하자고 제안했지만 그 당시 회사 사정이 녹록지 않았어요. 회사 입장도 있는데 제 뜻을 관철시킬 수 없었습니다.”
숙원사업을 스스로의 손으로 일구기로 결심했다. 2005년, 정든 직장을 떠나 모젠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뭐든 빨리 성취해야겠다는 생각에 깊은 고민 없이 다른 브랜드의 오븐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확보해서 홈쇼핑 판매를 진행했어요. 인지도가 부족했던 터라 정액 광고비를 지급하고 진행했죠. 당시 다른 회사의 오븐이 홈쇼핑에서 잘 나갔거든요. 그런데 성과가 저조했습니다. 광고비를 부담하느라 6000만원에 가까운 손실만 발생했죠. 로또 같은 일순간의 큰 수익을 기대했다가 쓰라린 실패만 맛봤습니다.”
1년을 방황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전직장에서 주로 했던 특판 업무가 떠올랐어요. 특판으로 입지를 다진 후에 판매처를 넓히기로 결심했죠. 당시 마블 프라이팬이 인기였는데요. 마블 프라이팬 세트를 구성해서 기업 판매를 시작했어요. 수입이 발생하는 족족 새 제품 확보에 투자해서 라인업을 확장해 나갔죠. 2007년엔 자사 브랜드 기펠을 론칭했어요. 차근차근 성장하니 대기업 바이어가 저희 상품을 찾기 시작했어요. LG, 삼성 같은 기업에 사은품이나 직원 선물용으로 제품을 납품했죠. 어느덧 연매출 150억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기펠 무선 청소기 ZET-10 개발노트
회사 최고 효자상품인 무선 청소기는 역설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탄생했다. “이름 들으면 알법한 중견 가전기업이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어요. ‘내 영역을 침범 당하고 있으니 나도 당신들의 영역에 뛰어들겠다’는 도전의식이 발동했죠. 중견기업이 활발히 제조하는 물건 중에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군을 찾아봤어요. 청소기가 눈에 들어왔죠. 그렇게 감히 소기업에서 청소기를 개발했습니다. 처음엔 유선 청소기를 출시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자신감을 얻어 무선 청소기 개발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1. 시중 제품의 단점을 신제품의 차별점으로
틈새를 찾기 위해 시장 조사를 했다. 유명 브랜드 제품을 필두로 하는 무선 청소기 시장은 스펙 경쟁이 과열된 양상이었다. “시장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청소기들은 최대 흡입력만 강조하고, 최대 흡입력 모드를 사용할 때 배터리가 받게 되는 손상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흡입력이 필요 이상으로 높으면 배터리 수명이 짧아져요. 게다가 한 손으로 쓰기엔 너무 무거웠어요. 무선 청소기 평균 무게가 1.81kg나 했죠. 불필요하게 과도한 기능은 가격 상승 요인입니다.”
적정 흡입력을 결정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출시된 모든 무선 청소기 구매 후기를 검토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일반 모드의 흡입력에 주목했어요. 타사 제품 이용자의 경우 고양이 모래나 작은 돌을 흡입하지 못해 최대 흡입력 모드로 사용하더군요. 일반모드의 흡입력은 1만5000PA로, 터보모드의 흡입력은 2만7000PA로 설계했습니다. 일반모드 구동 시 고양이 먼지를 흡입할 수 있고, 터보모드 구동 시 화분 마감석, 바둑알까지 빨아들입니다. 너무 부족하지도, 과도하지도 않은 세기죠.”
이용자의 눈과 손목까지 고려했다. “백색 LED를 탑재한 청소기는 많지만 여전히 먼지를 식별하지 못합니다. LED 대신 먼지를 야광으로 보이게 하는 녹색의 루미너스 조명을 탑재했어요.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틈새의 먼지를 말끔하게 청소할 수 있죠. 무게는 1.26kg으로 줄였어요. 고가의 제품들은 비싸 보이기 위해 헤드를 두껍고 무겁게 만들었는데요. 두꺼울 필요가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축소했습니다. 가볍고 내구성 좋은 ABS 재질로 설계했죠.”
2. 믿음직한 파트너를 찾기 위한 노력
이 모든 조건을 수렴할 제조공장을 찾는 게 관건이었다. “아시아권에서 무선 청소기 제조 역량을 갖춘 국가는 중국뿐입니다. 중국 내에서 옥석을 가리는 게 중요했죠. 수없이 많은 공장과 미팅한 끝에 생산력이 뛰어나고 신용이 좋으며 원부자재 구매력을 갖춘 청소기 전문 공장의 손을 잡았습니다. 오너의 마인드도 검토 대상이었어요. 문제 발생 시 나몰라라 하고 뒤로 빠지는 오너가 많은데요. 저희가 협력하는 제조사 대표는 무슨 일이 생겨도 본인이 책임지려 나섭니다. 믿음이 갔죠.”
3. ‘싼 값은 비지떡’이라는 인식 타파 위한 객관적 토대 마련
각종 성능 시험과 인증은 필수다. “공장에 16개의 청소기 전용 검사 시험 설비가 있습니다. 극한의 테스트를 시행하죠.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없애기 위해 운송 시험도 실시했습니다. 각종 인증도 완료했어요. KC 안전인증, KC 전자파 적합성(EMC) 검증, 유럽 시장내에서 유통될 때 필수로 부착해야 하는 유럽 CE 인증, 국제 전기표준회의기구의 IEC 전자제품 및 부품 적합성 인증, 국제 환경물질 표준(ROSH) 등을 취득했고 배상물 책임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ROSH 인증은 원재료나 부품에 적용된 환경규제물질을 엄격히 통제하기 때문에 취득이 어려운 편입니다.”
청소기 스펙의 핵심인 배터리의 성능도 인정받았다. “배터리 성능을 볼 때 중요한 건 용량이 아니라 내구성입니다. 기펠 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보면 전용면적 84㎡(30평형대) 우리나라 가정의 평균 청소기 사용 시간은 약 10분에 불과하거든요. 오래 청소하는 것보다 오래 쓸 수 있는게 중요하죠. 배터리 내구성이 좋은 교체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적용했는데요. 그 덕분에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7대 청소기로 선정됐습니다. 배터리 내구성이란 충방전 테스트를 250회 이상 시행해서 유지되는 배터리 성능을 의미하는데요. 해당 테스트에서 성능을 96% 유지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공영방송국인 KBS 뉴스에도 소개됐다. “한국 소비자원이 이런 조사를 진행중인 줄도 몰랐어요. 나중에 조사 내용이 보도될 것이란 연락만 받았죠. ‘애써 만든 거 평가 한번 받아보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배터리 부분에서 최고 평점을 받았습니다. 의도한 바가 통해서 고무적이었습니다. 가격이 저렴하면 나쁜 제품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싶었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4. 가전 브랜드의 생명은 AS
대기업 못지 않은 AS 체계를 구축하는데 역량을 쏟아부었다. “AS 과정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브랜드 이미지가 망가집니다. 콜센터를 외주로 운영하는 대신 전문지식을 가진 담당자가 직접 수리 및 관리하는 센터를 운영합니다. 5000만원을 투입해 365일 AS 접수가 가능한 모젠 서비스 센터 플랫폼도 구축했어요. 카카오톡으로 접수하고, 진행단계를 공유 받을 수 있죠. 택배 기사가 방문해서 제품을 수거 및 배송하는 딜리버리 서비스도 운영 중입니다. 소비자 불편함 해소라는 원칙을 제품뿐만 아니라 서비스에도 적용했죠.”
제품 판매 이후에도 소비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공들였다. “타사 제품은 배터리 교체 시 몇 십만원을 받는데요. ZET-10 전용 배터리는 3~4만원이면 재구매 할 수 있습니다. 가끔 ‘돈 주고서라도 맡길 테니 교체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는데요. 오가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잖아요. 그 비용을 아끼라고 미리 제작한 배터리 교체 영상을 보내 드립니다. 핵심 부품인 모터에 한해서는 소비자 과실만 없다면 평생 보증합니다.”
◇알짜 기업 만드는 세 가지 규칙
2020년 ZET-10 1세대를 기업 복지몰 등에 판매했다. 유명 브랜드 제품의 가격 문턱을 부담스러워했던 이들 사이에서 ‘대리만족 무선 청소기’라고 입소문이 났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PPL 광고를 집행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순식간에 25만대가 팔렸다. 1세대의 성공 덕분에 연매출은 두배 뛰었다.
2023년 10월, 가격대는 유지하면서 흡입력과 배터리 내구성을 강화하고 티타늄 코팅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한 2세대를 출시했다. 2세대의 등장과 동시에 B2C 시장에 뛰어들었다.
모젠인터내셔널을 샤오미 같은 종합 상품 브랜드로 키우는 게 목표다. “특정 상품군에 안주하지 않고 여러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요. 성능이 뛰어난 고가의 로봇 청소기를 개발 중입니다. 나중에 ZET-10 3세대도 출시할거예요. 사실 작은 기업이 신상품을 10개 이상 개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요. 저희에게는 그럴 역량이 충분히 있습니다. 모젠인터내셔널은 주방용품, 생활가전 특화 기업이라는 인식을 뛰어 넘고 싶어요.”
회사를 알짜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면 딱 세 가지만 지키라고 당부했다. “첫째, 직원과의 화합이 가장 중요합니다. 1년에 한 번 씩 다같이 해외여행을 갑니다. 대표가 직원을 위해서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면 직원이 내 회사처럼 일해요. 둘째, 돈 관리를 잘하고 무리한 사업 확장은 자제하세요. 자금 사정이 좋아졌다고 여러 자산에 투자했다가 파산한 주변인을 많이 봤습니다. 셋째, 뒤처리도 중요합니다. 악성 재고나 위기 발생 시 현실적인 극복 방안을 고민하세요. 저는 재고가 남으면 반값에라도 처분합니다. 누가 찾지도 않는 걸 갖고 있으면 쓰레기가 되지 돈이 되지는 않거든요. 잘 될 때만 생각하지 말고 잘 안 될 때도 생각하세요.”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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