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웨덴 카이스트 졸업, 홍콩 버리고 한국와서 하는 일

더 비비드 2024. 7. 15. 08:56

홍콩 스웨덴 이중국적, 한국에서 플랫폼 스타트업 창업
볼보, 에릭슨 등과 함께 주한스웨덴상의 이사로 활약
스웨덴 국민행주 ‘웨텍스’ 시작으로 양국 가교 역할

서울 강남이나 경기도 판교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한 외국인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청년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납세 의무도 지면서 대한민국 경제의 정당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데요. 그들은 왜 자국을 놔두고 머나먼 타국에서 창업하게 됐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창업한 외국인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스타트업 비정상회담’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존팅 리(John-Ting Li) ‘위즈페이스’ 대표는 홍콩과 스웨덴 이중국적자다. 부모님은 홍콩인, 출생지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에서 창업한 아이템 그대로 2017년 한국에 들어와 ‘위즈페이스’를 창업했다.

스웨덴 시장 규모에 한계 느끼고
절친 따라 한국행


1989년생인 존은 국적과 인종의 장벽을 허무는 성장 배경 덕에 어려서부터 해외를 많이 다녔다. “대학생이 돼서도 일본과 대만에서 교환학생을 하며 동아시아권 친구들을 두루 사귀었습니다. 이때 맺은 인연들이 지금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출처: 더비비드

위즈페이스 로고를 들고 있는 존팅 리 대표

존은 우리나라로 치면 카이스트에 해당하는 스웨덴의 명문공과대학인 왕립공과대학 산업공학과를 나왔다. 취업해서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었지만 창업을 택했다. “스웨덴에서 기업과 프리랜서를 이어주는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프리랜서가 본인의 이력과 작품을 등록하면 기업이 채용하는 방식이죠. 반응이 나쁘지 않았지만, 인구 1000만명 안팎의 스웨덴에선 성장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외국으로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의 고향인 홍콩, 교환학생 때 만난 절친이 있는 한국을 최종 후보에 올렸다. “두 곳에서 각각 3개월씩 지내며 사전조사를 했습니다. 살아보니 홍콩은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습니다. 반면 한국은 홍콩보다는 부담이 덜하면서,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다양해서 창업하기 좋았습니다.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속도가 빠르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길로 한국에 들어와 스웨덴에서 했던 프리랜서 연결 플랫폼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 정착은 지금은 코파운더가 된 한국 친구가 도왔다. 아이템을 구체화해서 한 데모데이에 출전했다. “많은 분들이 좋다고 찬사를 보냈지만 딱 한 명의 심사위원이 행사가 끝나고 조용히 저를 불렀어요. 타깃이 너무 넓어서 제 아이디어가 실패할 것이라고, 타깃을 특정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출처: 위즈페이스

존은 홍콩과 스웨덴 이중국적자다.

뼈아픈 말이었다. 조언에 따라 아이템을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위한 플랫폼’으로 변경했다. “결과적으로 무척 고마웠습니다. 직설적인 평가 덕분에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 광고효과 분석 시스템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빠르게 한국 시장에 스며들고 있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 D.CAMP, 삼성SDS, 서울글로벌창업센터 등에서 지원 스타트업으로 연이어 선정됐다.

꾸준히 새로운 서비스에 도전하고 있다. 암호화폐 소셜 트레이딩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리그오브트레이더스’(League of traders)가 대표적이다. 7개의 거래소와 연동해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실시간 투자정보, 거래소 계정관리, 자동매매, 투자자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앱을 통해 수익률이 높은 투자자들의 순위와 투자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덕에 6000명에 가까운 이용자를 확보했다.

출처: 위즈페이스

리그오브트레이더스 구동 화면

앱(https://bit.ly/lot-download)을 깔아 서비스에 접속하면 수익률을 기반으로 트레이더(투자자)의 랭킹을 볼 수 있다. 하루에만 100% 넘는 수익률을 거두는 등 상위에 올라간 트레이더가 누군지 확인할 수 있다. 상위 수익자를 구독하면 그의 포트폴리오를 따라할 수 있고, 참가자의 자산가치를 달러가치로 표시해서 거래 스타일 분석도 해준다. 또 이용자들은 트위터와 비슷한 커뮤니티를 통해 뉴스와 투자전략을 공유할 수 있다.  

“사람들이 주식 할 때는 손절라인이라도 잡아 놓고 하는데 암호화폐는 그렇지 않아요. 리그오브트레이더스를 이용하면 내가 한달에 몇 번 사고 팔았는지, 최대 낙폭은 얼마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내 수익률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얼마나 생각없이 거래해왔는지 확인을 시켜주죠. 암호화폐 거래의 반성문 역할도 하는 셈입니다.”

서비스 개시 이후 유의미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용자수가 6000명을 넘었고, 그 중 20% 가량인 1000여명이 시스템에 거래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 창업, 코파운더가 큰 힘


외국인 신분으로 한국에서 사업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언어장벽 문제가 가장 크고, 행정 절차, 서류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그래도 한국인 코파운더 친구가 있어 든든합니다. 외국인만 대표로 있으면 언제든 외국으로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요. 코파운더가 그런 불신을 없애줍니다.”

출처: 위즈페이스

함께 식사하는 동료들

존의 가장 큰 강점은 언어다. 영어와 중국어, 광동어(홍콩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덕에 설득할 수 있는 투자자와 제휴처의 범위가 넓다. 여러 나라에 살아보면서 비즈니스 매너 등도 몸에 배어 있다. “남들이 점심 먹을 때 출근해서 남들 잘 때 퇴근합니다. 다양한 해외 파트너들과 새벽이나 밤에 화상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스웨덴 주한상의 이사로 활약,
스칸디나비아 제품 도입 신사업

출처: 위즈페이스

스웨덴 대사관 관계자들 앞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존팅 리 대표

존팅 리의 활약은 주한 스웨덴인들 사이에서 화제다. 2019년 주한 스웨덴 대사, 스웨덴 기업들의 한국지사 CEO들이 잇따라 위즈페이스를 다녀갔다.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고, 뭘 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물어보시더라고요. 무척 신기했나 봐요.”

방문 이후 주한스웨덴상공회의소의 이사로 초대됐다. “두 달에 한 번 볼보, 에릭슨 같은 유명 스웨덴 기업의 한국지사 대표님들과 주한스웨덴상공회의소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처음 ‘제가 그럴 자격이 있나’ 생각이 들었는데, 새로운 관점과 스타트업 마인드가 필요하다며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다양한 비즈니스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출처: 위즈페이스

스웨덴 국민행주 웨텍스


한국과 스웨덴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최근 새 사업 아이템으로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신박한 물건을 한국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일을 시작했다. 첫번째 아이템은 스웨덴 국민행주 웨텍스(wettex)다. 온라인몰 등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셀룰로오스 70%, 면 30%로 이뤄진 행주인데, 일반 펄프행주와 비교해 물 흡수력이 20배 뛰어나다. 주방을 청소하거나 물을 엎질렀을 때 몇 장이면 충분하다. 스칸디나비아식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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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70년 된, 스웨덴을 대표하는 상품인데요. 소금 성분이 가미돼 때를 녹여서 씻어내는 효과도 있습니다. 불필요한 종이 낭비를 막을 수 있어 환경적으로도 의미가 있죠. 스웨덴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이 스웨덴에 들어갔다 올 때 선물용 등으로 잔뜩 사오시는걸 보고 사업성이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쌍두마차 체계 덕에 빠른 성과 이끌어 내

출처: 위즈페이스

존은 외국어 능력과 비즈니스 매너를 필두로 외국 기업과의 제휴 및 해외 투자 유치에 집중한다.

-국적이 다른 코파운더와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하나요.

“가장 좋은 친구이자 동업자죠. 업무적으로 따져야 할 건 확실히 따집니다. 서로 불만인 부분은 솔직히 말합니다. 다툼이 생길 수 있는데 영어로 싸우니 감정이 덜 상하는 것 같아요.(웃음)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저는 주로 꿈과 비전을 공유하며 보듬어주는 역할을 하고요. 코파운더는 비전 달성까지의 로드맵을 꼼꼼히 짜서 알려주며 채찍질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제가 창의와 문화를 이야기할 때 코파운더는 납기와 세일즈를 거론하는 식이죠. 직원들이 우스갯소리로 저는 푸근한 아버지, 코파운더는 깐깐한 어머니 같다고 합니다. 저와 코파운더 모두 서로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방향성, 비전, 목표 같은 큰 틀에서 이견이 없어 갈등이 생겨도 잘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운영 중인 플랫폼들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앱으로 성장시키고 싶고요. 또 한국 진출을 희망하는 스웨덴 기업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스웨덴 진출을 원하는 한국 기업도 많을 거고요. 중간에서 좋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인기있는 물건을 아시아인의 관점으로 볼 줄 아는 것이 제 경쟁력 중 하나입니다. 스웨덴에서 뭐가 인기있으면서, 그중 뭐가 한국에서 통할지를 다 알 수 있는 거죠. 물론 반대 방향의 소개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스웨덴 사이의 좋은 가교가 되고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